삼성 LG 대우일렉 가전시장 점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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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찬 삼성전자 키예프 지사장.(좌)
류태헌 LG전자 키예프 지사장. | |
우리나라가 우크라이나와 외교 관계를 맺은 것은 1992년이다. 그해 12월에 키예프에 한국 대사관이 문을 열었다. 한국에서는 ‘키예프 통신’으로 유명한 김석원 키예프국립대 교수가 우크라이나에 유학온 것도 이즈음이다. 당초에는 한국 대학에 우크라이나 학과를 개설해보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사람들이 좋아 이곳에 남았단다. 비슷한 시기 오데사국립해양대에 교환연구원으로 온 정천식 트라이스텔 테크놀로지 사장도 이곳에 남았다. 대우자동차에서 일한 것이 계기가 돼 비즈니스로 진로를 바꿨다. 두 사람은 우크라이나에 적을 둔 첫 한국인이다. 기업인으로 우크라이나를 처음 노크한 인물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다. ‘김키즈칸’으로 불린 김 전 회장은 97년 1억5000만 달러를 들여 자포로지 자동차 공장을 인수했다. 또 교환기 생산 공장에 500만 달러, 건설 분야에 739만 달러를 투자했다. 나중엔 웰콤이라는 회사를 세워 이동통신 사업에도 도전했다. 모두 1억7000만 달러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돈을 이 오지(奧地)에 투입한 것이다. 전직 대우그룹 임원은 “우크라이나에 적어도 4억 달러가 투입됐다”고 말해 대우의 ‘우크라이나 사랑’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도네츠크국립대의 이반 알렉산드로프 교수는 “대우 같은 회사 덕분에 우크라이나의 오늘이 있는 것이다”고 평가했다. 혹시라도 대우가 살아 있었더라면 지금 우크라이나의 경제 지도가 달라져도 한참 달라졌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식품·유통은 유럽이, 부동산·건설은 터키와 러시아가, 노다지 사업이라는 이동통신 서비스 역시 러시아가 휘어잡고 있는 것을 보면 대우 몰락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욱 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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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교 대우일렉 키예프 지점장.
정진욱 STX 오데사 사무소장.
금지원 에코비스 키예프 지사장. |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이 ‘첫 삽’ 현지에서 ‘최고’로 통하는 한국 회사는 삼성전자와 LG전자다. 두 회사는 TV·냉장고·가스레인지·모니터·에어컨·휴대전화 등 가전과 정보통신 모든 분야에서 ‘1등 자리’를 놓고 격돌하고 있다. 삼성이 14개, LG가 7개 부문에서 1등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니 가전·IT 제품 시장을 한국 업체가 휘어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우일렉(옛 대우전자)도 틈새 가전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다. 휴대전화 숍에 들어가 보면 팬택과 VK 제품도 후한 대접을 받고 있다. 키예프 보리스필 공항부터 한국 전자회사들의 힘을 실감할 수 있다. VIP 영접실은 PDP TV부터 에어컨·VCR·LCD모니터 등이 삼성 제품으로 도배가 돼 있다. 광고 간판도 요란하다. 키예프 번화가인 크리샤틱 거리는 물론 오데사 한 골짜기에서도 삼성과 LG 광고판을 찾아볼 수 있었다. 연제찬 삼성전자 키예프지사장(상무)은 “연간 광고에 5000만 달러를 쓴다”고 말했다. 현지에서는 소니나 HP보다 더 유명한 회사가 삼성전자다.
“2004년 삼성 휴대전화가 러시아에서 1등을 차지해 해외 시장에서 처음 리딩 업체가 됐다고 보도됐지만 사실 그 전해에 우크라이나에서 1등을 차지했습니다. 이곳 시장에서 삼성은 최고 품질의 명품 업체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모니터 60%, TV 40% 등 점유율도 엄청나다. 당연히 수상 실적도 화려하다. 삼성전자 키예프 사무실에는 우크라이나 소비자협회에서 주는 ‘초이스 오브 더 이어’, 소비자·광고주·대리점이 주는 ‘비즈니스 올림푸스’ ‘어워드 오브 엑설런스’ 등 주요 상패들이 널려 있다. 더 이상 진열할 곳이 마땅치 않아 회의용 책상에 놔두고 있는 형편이란다. 삼성이 이렇게 선전하는 것에 대해 연 상무는 “선순환이 잘 됐다”고 평가한다. “일단 품질이 좋아서입니다. 품질이 좋으면 마케팅이 필요 없잖아요. 게다가 동유럽 시장에서 삼성은 고급 브랜드로서 포지셔닝이 잘 됐습니다. 휴일도 휴가도 없이 직원과 현지 채용인들이 수고해준 덕분이기도 하지요.” 96년 키예프에 진출한 LG전자는 CD롬·DVD롬 드라이브를 비롯해 전자레인지·청소기·냉장고·세탁기 등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류태헌 LG전자 키예프지사장(상무)은 “연평균 50%가 넘는 매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중동·아프리카를 포함해 전 세계 90여 개 나라에서 해외 영업을 해왔다는 류 지사장은 우크라이나 시장에 대해 “인도나 남미 다음으로 큰 ‘A-급’규모다. 충분히 미래 가치가 있는 시장”이라고 평가했다. 현지에서 삼성이나 LG는 ‘인재사관학교’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취재진은 우연히 류태헌 지사장 집무실에서 3시간여를 보냈는데, 그는 회사를 그만두는 두 명의 직원들과 ‘굿바이 면담’을 하고 있었다. LG에서 2년 동안 근무하던 직원이 현지 업체로 스카우트돼 간다는 것이었다. “LG에서 근무했다고 하면 현지 헤드헌팅 업체의 타깃이 됩니다. 1~2년만 일해도 몸값이 2배 이상으로 뛰거든요. 초임으로 월 400~500달러를 받다가 현지 IT 업체의 매니저급으로 옮기면 800달러 넘게 받기도 합니다. 기분 좋게 놔주는 거지요. LG가 상품만 잘 파는 회사가 아니라 인재를 가꾸는 회사라는 생각을 하게 돼 어깨가 무겁기도 하지요.” 대우일렉 역시 연 2배씩 성장하는 ‘무서운 회사’다. 대우일렉이 현지에서 영업을 시작한 것은 95년. 통신·건설 부문과 함께 들어와 한국 업체 가운데 역사가 가장 길다. 그러다 보니 우크라이나에 시장경제의 씨앗을 뿌린 회사라는 자부심이 강하다. 역경도 많았다. 99년 모그룹이 부도나면서 ‘대우’ 브랜드가 된서리를 맞은 것. 그런 와중에도 대우일렉은 비즈니스를 계속해 2003년 법인으로 전환했다. 이 회사 서성교 키예프지점장은 “지금까지는 키예프 위주로 영업을 해오다 최근 오데사와 몰도바에 매장을 내는 등 신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대우일렉이 마케팅 타깃으로 삼은 것이 직장인 여성이다. “우크라이나에는 직장 생활을 하는 여성들이 많아요. 이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맞춤 상품’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가령 소독과 라디오 기능이 있는 전자레인지 같은 아이디어 제품이 인기가 많아요. 최근엔 양문형 냉장고·TV 등도 판매량이 늘고 있습니다.”
현지에서 성공한 CEO도 늘어 현지 시장 개척에 나선 여성 CEO도 있다. 에코비스 키예프지사장인 금지원씨는 ‘러시아어학과 1세대’다. 대학에서 러시아어(91학번)를 전공하고 곧바로 옛 소련권 전문 복합운송회사인 에코비스에 입사했다. 에코비스는 모스크바를 비롯해 키예프·알마티(카자흐스탄)·타슈켄트(우즈베키스탄) 등에 지사가 있다. 이 회사 김익준 사장은 “91년 소련 붕괴 이후 ‘비즈니스의 보고(寶庫)’가 될 것이라는 확신으로 들어왔다”고 말했다. 금지원 지사장은 2001년 키예프지사 설립을 자원한 케이스다. 행정서류 작업을 마무리하는 데 6개월을 씨름하다가 2002년 봄 키예프에 사무실을 냈고, 지금은 현지 채용인 20여 명을 둔 어엿한 중견 물류회사로 성장했다. 금 지사장은 “한국 업체의 통관 대행을 주로 하다가 지금은 ‘한국 회사’라는 꼬리표를 떼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포부를 밝혔다. “지금은 서울 본사와 연계된 매출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자체적인 생존력을 갖추는 것이 과제입니다. 현지 회사와 제대로 경쟁하고 싶어요. 올 봄에 현지의 헬기 엔진 3대를 네팔 카트만두로 보냈습니다. 물류업체 간 경쟁이 치열했는데 에코비스가 따낸 것입니다. 헬기 같은 군수 시장은 현지 업체도 개척하기 쉽지 않거든요.” 흑해로 나가는 관문인 오데사에도 한국 비즈니스맨이 근무하고 있다. STX팬오션 오데사 사무소의 정진욱 소장은 ‘비용 절감’을 위해 파견된 사례다. 1등 항해사 출신인 정 소장은 2004년 이곳에 배치됐다. 정 소장은 이곳에 상주하면서 회사 선박이 ‘단기간 체류’하는 일을 책임지고 있다. “선적을 하고 출항하는 시간을 아끼는 일이지요. 하루 용선료가 3만 달러인 것을 감안해 열흘 걸릴 항만 업무를 일주일로 단축시켜도 10만 달러를 버는 것입니다.” STX가 이곳에 취항하는 선적이 연간 50여 척임을 감안하면 약 500만 달러를 절감하는 셈이다. 이 회사는 연간 2000만t 이상의 철강제품·비료·곡물을 도네츠크·드네프로페트롭스크 등에서 받아 중국·파키스탄·인도 등으로 운송한다. 97년 개소한 STX팬오션 오데사 사무소는 ‘흑해의 터줏대감’으로 불린다. 현재 오데사에 사무소를 둔 전 세계 유일한 민간 해운사다. 정확히 말하면 STX가 너무 영업을 잘해 다른 해운사들이 모두 철수했다.
인기 끄는 한국어학과 |
높은 경쟁률, 졸업하면 ‘귀한 몸’ 올해 25세의 안드레이 레스코프와 20세의 예브게니 레스코프는 형제간이다. 우크라이나 북부 고노토프 지방에서 태어난 이들은 모두 키예프국립대에서 한국어를 전공하고 있다. 안드레이는 고등학교를 2년 만에 마치고 18세에 대학에 입학한 수재. 우연한 기회에 아시아 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한국 전문가가 되자고 결심해 한국어과를 지망했다. 원광대·연세대 등에 유학했다가 현재는 키예프대에서 박사 논문을 쓰고 있는 중이다. 예브게니는 형의 권유로 한국어과를 선택했다. 키예프대에서 현재 이 학과의 정식 이름은 ‘중국·한국·일본 언어학과’다. 한국어과는 아직 개별학과로 독립하지 못한 상태다. 키예프대 말고도 키예프외국어대·키예프국제대학에 한국어과가 개설돼 있다. 고려인이 많은 우크라이나 제2의 도시인 하리코프에는 한국어학교가 있다. 92년 키예프대로 유학을 온 김석원 교수가 학과 개설의 산파 역을 맡았다. 지난해엔 10평 남짓한 한국문화센터를 개설했다. 한국문화센터에서 만난 예브게니와 오데사 출신인 세르게이 피에트로슈크(20)는 태극 문양의 목걸이를 걸치고 있었다. 두 학생의 꿈은 모두 삼성·LG 같은 한국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다. 서울로 어학 연수를 다녀온 덕분인지 이제 2학년인데도 두 사람의 한국말은 유창하다. ‘제주도’ ‘지하철’은 물론이고 ‘스카이(서울대·고려대·연세대)’의 뜻도 제대로 알고 있었다. 한국 역사에도 밝다. 세르게이는 “한국은 6·25전쟁 이후 경제 기적을 이뤘다. 우크라이나도 한국의 성장 사례를 본받아야 한다”는 어른스러운 말도 했다. 키예프대는 고교 성적 5% 안에 드는 우수한 학생들이 입학하는 ‘우크라이나의 두뇌’다. 이 대학에 한국어과가 개설된 것은 97년. 1, 2기 졸업생이 40명 가량 된다. 현재는 2학년 7명, 1학년 9명이 다니고 있다. 올해는 40명이 지원해 14명이 합격했다. 이들은 주로 삼성·대우·LG·KOTRA 등에 취직했다. 김 교수는 “한국어과 인기가 상당히 좋은 편이다”고 전했다. 기업들로부터 한국어과 졸업생을 추천해달라는 요청이 많은데, 졸업생이 적어 최근엔 일본어과 졸업생을 대신 보내주기도 했다고 한다. |
심실 우크라이나문화예술원장 |
“느긋한 강, 푸근한 사람, 해바라기를 사랑해요” “유라시아 대륙의 숨은 보석이 바로 우크라이나입니다. 러시아와 유럽 사이에 놓여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은 물론, 경제적인 잠재력도 아주 큽니다. 정서적으로 보면 ‘또 다른 우리나라’로 불릴 만큼 비슷한 역사와 문화를 가졌지요. 수없이 외침을 당했는데도 사람들이 정이 많고 따뜻합니다.” 프로모션·마케팅 회사인 유니원커뮤니케이션즈의 심실 회장은 ‘우크라이나 전도사’로 더 유명하다. 1990년대 후반부터 우리나라에 우크라이나를 알려왔다. 99년 12월에는 자신의 사재를 털어 우크라이나문화예술원을 개설했다. 우리나라에 있는 외국 문화원 중에 ‘이방인’이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곳은 여기가 유일하다. 외국 문화원은 자국에서 발령받은 인사들이 원장으로 있게 마련인데 우크라이나문화원장만은 예외다. 그만큼 그의 우크라이나 사랑은 유별나다. “처음에는 낯선 여행지겠거니 했는데 보면 볼수록 정이 가는 겁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창(唱)과 비슷한 구성진 음악을 들으면서 애정을 갖기 시작했어요. 키예프대 역사학과의 노브호스키 교수(전 우크라이나 문화부 장관)와 만남을 가지면서 ‘이 보석 같은 나라를 하루라도 빨리 소개해야겠다’는 생각에서 문화원을 세웠습니다. 우크라이나 정부에서도 설립을 흔쾌히 수락하더군요.” 심 원장은 우크라이나의 문화와 예술을 알리는 메신저 역할이라면 어디든 달려가고 있다. 최근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고통을 겪는 아이들을 돕는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심 원장은 이런 공을 인정받아 2003년 우크라이나 정부로부터 올가 훈장을 받기도 했다. 올가 훈장은 우크라이나를 세계에 알려온 사람에게 수여하는 상. 외국인이 이 상을 받기는 심 원장이 10년 만에 처음이라고 한다. 10년이나 우크라이나를 왕래하다 보니 지금은 현지에서도 유명 인사가 됐다. 레오니트 쿠치마 전 대통령 부부와는 “형부” “언니”라고 부르는 사이다. 류드밀라 쿠치마 전 대통령 부인이 두 번이나 방한한 것도 심 원장을 만나기 위해서였다고. 물론 심 원장도 1년에 한두 차례씩 우크라이나를 다녀온다. 마케팅 회사의 수장답게 ‘우크라이나 홍보’도 감각이 있다. “한 번은 모 방송사 사장님께 ‘발리에서 생긴 일’ 2탄으로 ‘키예프에서 생긴 일’을 만들자고 했어요. 끝없이 이어진 해바라기 밭을 배경으로 하면 ‘죽여주는’ 로맨스가 펼쳐질 수밖에 없지요. 아니면 키예프 시내 한복판에 100명의 발레리노를 뒤에 도열시키고 효리(이효리)가 광고 촬영을 찍는 겁니다. 어때요? 이만하면 우크라이나 알리기 제대로 하고 있는 거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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