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잔머리·무임승차는 퇴출 1호

잔머리·무임승차는 퇴출 1호

“직장에서 퇴출 안 당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에 대다수의 사람은 “상사 비위를 잘 맞춰야 한다”고 답할 것이다. 어떤 조직이든 유능한 인재를 선호하고,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을 때 직원을 해고하며, 능력이나 실적에 따라 자연스레 승진하거나 연봉 수준이 높아진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회사가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은 50가지 비밀』이란 책에서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알려준다. 이 책에 따르면 조직은 나의 말을 직접 듣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직속상사(문지기)의 말로 나를 평가한다. 결국 이들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직장이 나를 좋게 평가해주길 바란다면 상사에게 언제나 좋은 모습으로 각인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의 관리자들은 자신이 인사권자라면 어떤 부하들을 내보내고 싶어할까. 크게 다섯 가지 유형으로 분류해 보았다.


이지고잉형 국내 한 자동차업체 영업본부의 K 임원은 오래전부터 이른바 ‘012 부대’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1년 내내 차를 단 한 대도 못 팔거나 한두 대 파는 게 고작인 영업사원들의 리스트에 붙여진 별칭이다. 012부대는 그러고도 적잖은 연봉을 받아간다. 차 한 대 팔지 못해도 70%의 기본급을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K임원은 “차 팔아 돈 버는 회사가 차 한 대 팔지 못하는 직원에게까지 월급을 꼬박꼬박 주어야 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어느 지점이나 012부대 요원들은 포진돼 있다. 이들은 지점 판매 실적을 갉아먹고 있다. 이처럼 ‘무임승차’로 묻어가는 이지고잉형 직원들은 어느 회사에나 있게 마련이다. 한 생명보험사 영업소장은 “이런 직원들의 공통점은 실적은 하나도 못 내면서 늘 바쁜 척 한다”는 것이라며 “이들 중에 최고로 못 봐주는 인사는 조직이나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조차 없는 뻔뻔스러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런 이지고잉형 직원들은 회사는 무조건 자신의 고용을 보장해야 하며 자신은 회사에 출퇴근하는 것만으로도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 관리자들의 얘기다.


잔머리형 한 이동통신 업체 H 부장은 휴가철만 되면 과장 하나 때문에 분통이 터질 지경이다. 명색이 관리자이면서도 10일짜리 휴가를 통으로 쓰는 것은 물론이고 앞뒤로 주말을 붙이고, 여의치 않을 때는 월차까지 끌어다 이론적으로 가능한 최장의 휴가를 보내기 때문이다. 더 얄미운 것은 부장 휴가를 미리 파악해 하루도 겹치지 않게 피해가는 것이다. 결국, H부장은 이 과장을 거의 한 달 동안 못보고 지낼 때도 있다고 한다. 보다 못해 “그래도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커뮤니케이션을 못하면 업무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으니 나와 비슷한 시기에 휴가를 가라”고 눈치를 주면 “부장님 안 계시면 저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끔찍이나 조직을 생각하는 척 하는 것을 보면 어떨 땐 혈압이 머리 끝까지 치솟는다고 한다. 이런 ‘잔머리형’ 직원들은 출장 때도 두뇌회전을 멈추지 않는다. 주말을 앞뒤로 출장 스케줄을 잡는 것은 물론, 심지어 가족까지 데리고 가면서 항공료와 호텔 숙박비를 줄여보자는 속셈을 한다. 국내 한 가전업체 임원은 “어떤 과장은 회사에서 출장 계획이 나오자마자 아래 직원들을 보낼 수 없는 온갖 이유를 갖다 붙여 기어코 자신밖에 갈 사람이 없다고 주장한다”고 혀를 내둘렀다. 접대비 쓰는 데도 잔머리형은 특유의 기지를 발휘한다. 한 외국계 기업 CEO는 대관업무 담당자가 얄미워 죽을 지경이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술자리가 잦기에 한 달에 5회 이상을 넘기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그런데 올라오는 접대비가 줄지 않아 다른 직원을 시켜 알아보았더니 접대하면서 비싼 술을 몇 병씩 시켜 죄다 보관(keep)해 놓고 나중에 자기 혼자 가서 홀짝 홀짝 마시더라는 것이다. 이 CEO는 “그런 좋은 머리를 업무에도 활용하면 얼마나 좋을까”라며 혀를 찼다.


마당쇠형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이다. 마당 쓸라면 마당은 쓴다. 마루를 닦으라면 마루를 닦는다. 그런데 집안 대청소를 하라면 도무지 감당을 못한다. 유명 홈쇼핑 업체 L본부장은 “부지런하다고 능사라고 생각하는 직원들이 있는데, 이들은 여러 가지 일이 겹치면 일의 경중을 따지지 못하고, 여러 상사로부터 지시를 받으면 누구 지시부터 수행해야 하는지도 모른다”며 “눈 앞에 시킨 일밖에 못하는 이런 마당쇠들을 계속 데리고 써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마당쇠형의 가장 큰 문제는 당최 아이디어가 없다는 점이다. 카드사 P부장은 “회의 시간에 뭘 잔뜩 들고 오기는 하는데 얘기를 들어보면 뭐 하나 건질 만한 게 없다”며 “그런 직원들에게 한 장짜리로 요약해 오라면 밤을 새워도 답을 못 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숨을 쉰다. 잔머리형이 얄미워서 퇴출시키고 싶다면, 반대로 마당쇠형은 답답해서 쫓아내고 싶다는 것이 관리자들의 심정이다.


남탓이오형 일 못하는 사람치고 핑계 안 대는 사람 못 봤다는 것이 관리자들의 공통된 얘기다. 한 자동차 영업소장은 “무슨 탓이 그리 많은지, 경기 탓, 경쟁사 탓, 회사 방침 탓, 심지어 동료 탓이나 부하직원 탓은 물론이고 대놓고 내 탓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며 “그런 직원들의 공통점은 일이 잘되면 순전히 자기 덕이라고 주장하며 온갖 생색은 다 낸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핑계를 대는 직원에게 “당신이 쫓겨나는 것은 누구 탓이냐”고 물어보았더니 가만히 있더란다. “특히 부하 직원들 핑계를 대는 건 책임감을 모르는 한심한 작태”라는 것이 소장의 얘기다.


눈치부재형 한 의류회사 디자인팀장은 S양이 자꾸 눈에 거슬린다. 첫 출근 때 정장 차림으로 온 것은 예의상 그랬다 치자. 한 달이 다 되어가도록 계속 불편한 정장을 입고 오는 것이 아닌가. 팀장을 비롯해 선배들 모두 캐주얼 차림으로 바삐 뛰어다니는데 S양만은 정장을 고집했다. 보다 못해 팀장이 “편한 복장으로 오라”고 했더니 이번엔 도가 지나친 야한 옷을 입고 사무실을 돌아다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이번엔 “일하는 곳이 디자인팀인 만큼 웬만하면 깔끔하고 세련된 옷을 입으라”고 했더니 “저보고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냐”며 훌쩍거리더란다. 관리자 눈엔 분위기 파악을 못 하고 눈치없는 사람도 퇴출 대상이다. M이사는 “회식 자리에서 수저통이 자신 앞에 있는데도 멀뚱멀뚱 쳐다만 보는 직원이나 노래방에서 자기 흥에 취해 주위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 마이크를 독점하는 직원도 꼴불견”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눈치 부재(不在)형은 특히 젊은 직원들 사이에서 많이 나타난다. 세대차이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극도의 개인주의적 성향으로 조직형이 되는 것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업무효율 저하 부담에…대기업 10곳 중 3곳만 60세 이상 고용

2尹대통령 내외 사리반환 기념식 참석…"한미관계 가까워져 해결 실마리"

3 대통령실, 의료계에 "전제조건 없이 대화 위한 만남 제안한다"

4이복현 금감원장 "6월 중 공매도 일부 재개할 계획"

5정부 "80개 품목 해외직구 전면차단 아니다…혼선 빚어 죄송"

6 정부 'KC 미인증 해외직구' 금지, 사흘 만에 사실상 철회

7"전세금 못 돌려줘" 전세보증사고 올해만 2조원 육박

8한강 경치 품는다...서울 한강대교에 세계 첫 '교량 호텔' 탄생

9서울 뺑소니 연평균 800건, 강남 일대서 자주 발생한다

실시간 뉴스

1업무효율 저하 부담에…대기업 10곳 중 3곳만 60세 이상 고용

2尹대통령 내외 사리반환 기념식 참석…"한미관계 가까워져 해결 실마리"

3 대통령실, 의료계에 "전제조건 없이 대화 위한 만남 제안한다"

4이복현 금감원장 "6월 중 공매도 일부 재개할 계획"

5정부 "80개 품목 해외직구 전면차단 아니다…혼선 빚어 죄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