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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소액만 4조2648억원

피소액만 4조2648억원

지난해 국내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100대 기업의 소송 사건은 총 1만1039건으로 확인됐다. 1개 기업당 평균 110건인 셈이다. 이는 이코노미스트가 각 기업들의 공시를 분석한 결과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매년 소송건과 소송가액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시가총액 20대 기업의 지난해 총 소송은 1258건이었다. 2002년 소송과 비교해 410건 늘었다. 소송가액도 1조1413억원이나 늘었다. 쌓이기만 하는 소송 앞에 기업들의 시름은 깊어간다.


사례1 SK㈜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기름값 담합으로 공정거래위원회가 192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기 때문이다. 4개 정유사 중 최고 금액이다. SK 측은 “부당하다. 정확한 근거도 없는 추정 담합으로 이 같은 과징금을 부과했다”고 항변했다. SK뿐만 아니라 공동으로 과징금을 부과받은 GS칼텍스와 현대오일뱅크, S-오일도 상황은 마찬가지. 공정위는 “4개 정유사가 2004년 4월부터 6월까지 가격결정 공조체제를 구축해 판매가격을 공동으로 인상했기에 이 같은 제재를 내렸다”고 밝혔다. 한국석유협회 조상범 과장은 “공정위의 증거 미확보로 판결 기간이 길어졌다. 결국 추정근거로 과징금이 부과됐다. 이 기간 동안 정유사들의 이미지 훼손은 어떻게 보상할 거냐”고 반문했다.

사례2 하이닉스반도체의 A이사는 요즘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다. 반도체 설계회사인 램버스와의 오랜 특허권 소송 최종판결이 얼마 안 남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미 연방법원은 특허침해 배상금으로 하이닉스에 1억3340만 달러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다만 램버스사의 기술이 불법 독점 시비에 휘말려 있어 최종 판결이 어떻게 내려질지는 미지수다. 이 회사는 특히 지난해 도시바와의 특허권 분쟁에서 패한 적이 있어 소송 문제에 아주 민감하다.

사례3 2006년 12월 현재 국민은행이 부담해야 할 피소가액은 5115억원이다. 여기에 걸린 피소 건만 173건. 다른 금융사에 비해 소송 건은 물론 소송액도 월등히 많다. 경쟁사인 신한금융이나 하나금융은 공시된 주요 소송이 전혀 없다. 우리금융지주 역시 2건, 13억원에 불과하다. 2005년 국민은행은 한국토지신탁과 전기공사공제조합으로부터 각각 401억원, 252억원의 소송을 당했다. 이들은 국민은행이 양도성예금증서(CD)를 위변조해 손실을 입었다며 예금반환 청구소송을 냈다. 2005년 10월에 열린 1심에서 국민은행은 두 건 모두 패소했다. 국민은행은 공시를 통해 “영업과 재무에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사례4 삼성화재는 지난해 10월 한 달에만 무려 187건에 피소됐다. 피소가액만 45억2800만원에 달한다. 하지만 187건은 전체 소송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지난해 3분기까지 삼성화재가 안고 있는 전체 피소 건은 2867건(소송가액 2311억원). 2년 전과 비교해 무려 1003건이 늘었다. 2004년 삼성화재 피소건은 1864건(2382억8400만원). 대부분 자동차 보험, 일반 보험 손해배상에 관한 것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이어지는 소송 문의와 관련 업무 처리로 다른 일을 할 틈이 없다. 소송건 처리에 하루가 다 간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국내 기업들이 늘어나는 소송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코노미스트가 지난해 국내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100대 기업 공시를 분석한 결과 72개 기업이 소송에 걸려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항공의 경우 소송은 있었으나 자료가 충분치 않아 분석에서 제외했다. 현대자동차·신한금융·하나금융·삼성테크윈 등 27개 기업은 공시를 통해 밝힐 만한 주요 소송이 없다고 발표했다. 72개 기업은 모두 1만1039건의 소송을 안고 있었다. 이 중 7148건이 피소 건이다. 피소 소송가액만 4조2648억원에 달한다. 또 해외소송 소송가액이 72억 달러나 된다. 반면 이들 기업이 제소한 건은 3891건으로 나타났다. 제소 소송가액은 1조8052억원이다. 1개 기업당 평균 110건의 소송에 휘말린 셈이다. 기업당 평균 71건에 피소됐으며 39건을 제소한 셈이다. 이 중 준사법기관이라 불리는 공정위와의 소송은 80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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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기업 4년 사이 400건 늘어 기업들의 소송 몸살이 불과 1~2년 내에 불거진 현상은 아니다.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20대 기업을 살펴보면 이들 기업은 지속적으로 각종 소송에 휘말린 것으로 나타났다. 20대 기업의 2002년 총 소송은 848건이었다. 2004년 1373건, 지난해에는 1258건이었다. 근래 2년 사이에는 115건이 줄었지만 소송가액은 7455억원 늘었다. 소송가액이 적은 소송은 단기간에 해결됐지만 소송가액이 큰 소송들이 진행 중이거나 새로 발생한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해 20대 기업 소송가액은 2조6367억원이었으며 2004년 소송가액은 1조8912억원이었다. KT·GS건설 등은 매년 지속적으로 소송 건이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KT는 2002년 78건, 2004년 80건, 지난해 131건으로 집계됐다. GS건설은 2002년 11건, 2004년 28건, 지난해 34건으로 조사됐다. 삼성전자와 한국전력공사 등은 소송 건 증가는 덜했지만 소송가액은 급격히 늘어났다. 삼성전자는 2002년, 2004년에는 각각 25건, 23건이었지만 2006년에는 36건이었다. 여기에 걸린 소송가액만 1087억원으로 2004년과 비교해 97억원 늘었다. 민원 소송이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한국전력도 2002년 290건에서 2004년 252건으로 줄어드는 추세를 보였지만 지난해 들어 다시 290건으로 증가했다. 소송 건이 같았던 2002년과 지난해를 비교해 보면 소송가액은 큰 차이를 보였다. 4년 만에 847억원이 뛰었다. 기업소송연구회 전삼현 회장(숭실대 법학과 교수)은 “기업들의 소송 건이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다. 기업당 평균 100건 이상의 피소 건을 안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기업의 공격적 경영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해석했다. 특히 보험회사들은 전부 1000건이 넘는 소송 건을 안고 있었다. 피소 7148건 중 5304건은 보험회사 피소 건이었다. 시가총액 100대 기업에 속한 보험회사들은 앞서 언급한 삼성화재 외에 동부화재가 1062건, 현대해상이 1375건을 피소 당했다. 두 회사 전체 피소 소송가액도 2142억원을 넘는다. 이 두 회사의 주요 소송 건은 자동차보험 청구소송, 보험금 청구소송 등이다. 보험회사의 지급액과 피해자가 원하는 보험 청구액이 달라 발생한 소송인 셈이다.
반면 동부화재 제소 건은 385건(262억원)이었으며 현대해상 제소 건은 1416건(272억원)이었다. 보험회사 제소 건은 자동차·일반 보험 등과 관련한 구상금 청구가 대부분이다. 피소·제소 건만 구분될 뿐이지 보험금 관련 소송이라는 점은 똑같다. 보험회사들은 처리해야 할 소송이 너무 많다는 입장이다. 동부화재의 우등 변호사는 “잠시라도 손 놓을 틈이 없다. 내부 인력으로는 턱없이 부족해 외부 변호사까지 의뢰해 소송 건을 처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송 건이 100개가 넘는 기업은 7개로 나타났다. 외환은행이 1574건으로 가장 많았다. 1574건 중 1409건은 외환은행 측이 제소한 것이었다. 원고 소송가액이 3649억원에 달한다. 외환은행 임방남 대리는 “외환은행은 카드 채권을 은행이 통합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카드대금 연체로 인한 카드대금 청구건이 1100건이 넘는다”고 말했다. 피소된 165건은 대부분 론스타 주식 매각과 관련해 시민단체 등이 제소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밖에 국민은행(311건), 한국전력(290건), 한진해운(218건), 현대건설(175건) 등이 뒤를 이었다. 한진해운 같은 경우는 주로 해외기업과의 소송 건이 많은 편이었다. 일부 기업은 공정위와의 소송과 특허권 등 지적재산권 관련 소송을 벌이고 있다. 기업과 공정위 간의 소송은 80건이다. 1996년까지만 해도 공정위 관련 소송은 10건을 넘지 못했다. 이후 97년 22건, 2002년 61건으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었다. 98년부터 공정거래 업무가 확대되면서 공정거래 행정을 둘러싼 첨예한 소송들이 대두되기 시작한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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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소송도 10여 건이나 2001년 대법원에는 공정위와 기업 간의 소송이 19건 계류돼 있었다. 전부 공정위 과징금 부과에 대한 반발 소송이었다. 그중 10건을 공정위가 패소했다. 대법원이 공정위 과징금 과다부과를 대체로 인정한 것이다. 전삼현 회장은 “공정위는 매출액을 기준으로 과징금을 부과한다. 하지만 과징금의 원래 취지는 부당이익을 돌려받자는 것이다. 이것만 봐도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기준이 명확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과징금 부과 제도는 기업을 감독하기 위한 하나의 강력한 기준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숭실대 법학과 채우석 교수는 “과징금 부과가 부당이득에 관한 환수가 아니라 때론 돈을 거둬들이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말했다. 100대 기업 중 공정위와 소송에 얽혀있는 기업은 10여 개 안팎이었다. 이 중 LG카드는 공정위에 3건을 피소 당해 소송가액만 73억원에 이른다. 소송 내용은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주택할부금리 인상)’ ‘부당 공동행위(각종 수수료율 담합 인상)’ ‘불공정 거래행위(백화점 수수료율 차별)’다. LG카드 한 관계자는 “공정위 측에서 명확한 근거 없이 영업 행태를 지적한 것”이라며 반발했다. 반면 공정위는 “기업들의 불법 활동에 맞는 과징금을 부과한 것”이란 입장이다. 이 밖에도 공정위의 시정명령 및 과징금 부과취소 청구소송도 있다. 현대중공업(392억원), SK(38억원), 포스코 등이 이와 관련된 기업이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부당거래로 인한 공정위 과징금에 반발해 75억원을 환급받고 추가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다. 한편 지적재산권 관련 소송도 해마다 늘고 있다. 2000년 866건이던 게 2004년 878건, 2005년 1115건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앞서 언급한 하이닉스반도체뿐 아니라 SK텔레콤, LG필립스LCD 등이 특허소송에 휘말려 있다. LG필립스LCD는 청화픽처튜브(Chunghwa Picture Tubes)사 등을 액정디스플레이와 TFT-LCD 제조공정 관련 특허와 LCD 디스플레이 장치 관련 특허 침해로 제소했다. 반면 LG필립스LCD와 LG전자는 휴대용 컴퓨터에 대한 특허 침해를 이유로 청화픽처튜브사에 피소됐다. 이 소송은 아직 진행 중이다.


기업 ‘옥죄는 법’ 줄줄이 대기 기업들도 남발되는 소송에 대비하기 위해 여러 방책을 강구 중이다. 한 예로 국내 기업들의 임원 배상 책임보험 가입 증가를 들 수 있다. 임원 배상 책임보험이란 ‘주식회사의 임원이 직무수행 과정에서 과실로 회사 및 제3자에 대해 법률상의 손해배상 책임을 짐에 따라 입게 되는 손해를 보상해주는 보험’을 말한다. 2000년 309억원이던 게 2003년 840억원, 2005년 1998억원으로 6배가량 늘었다(표 참조). 전경련 기업정책팀 은현철 연구원은 “보험 액수가 늘어난다는 것은 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 남발이 많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기업이 넘어야 할 산은 이뿐만 아니다. 올해부터 증권집단소송제가 시행됐고 앞으로 이중대표소송제와 소비자집단소송제 등 다양한 법률 이슈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이중대표소송제는 상법조정위원회에서 조정 중이며 소비자단체소송제는 국회 통과만을 기다리고 있다. 전경련 김주태 선임조사역은 “이 제도를 종합적으로 시행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며 “이중대표소송제 같은 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기업 자율경영권, 적극적인 사업 진출 등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심한 기업규제로 대부분의 제조 공장이 중국, 베트남으로 떠난 상태다. 여기에 기업들이 각종 송사에 휘말리며 고전하고 있다. 기업 관계자는 “그러잖아도 힘든 판에 송사까지 늘어 대한민국에서 정말 기업 할 맛이 안 난다”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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