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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표가 34년 불문율 깼다

성적표가 34년 불문율 깼다

▶1950년 서울 출생 69년 서울 동성고 졸업 73년 연세대 행정학과 졸업 73년 행시 14회 합격 88년 미 밴더빌트대 경제학 석사 92년 대통령비서실(경제) 94년 재경원 보험제도과장 97년 뉴욕영사관 재정경제관 2000년 금융감독위원회 기획행정실장 겸 대변인 2001년 금감위 증선위원 2002년 금융감독원 부원장 2004년 기업은행장 2007년 기업은행장(2기)

강권석(56) 기업은행장이 지난 3월 7일 연임에 성공했다. 국책 금융기관장은 연임하지 못한다는 오랜 불문율을 강 행장이 깼다. 기업은행장 연임은 정우창(1967~73년) 행장 이후 34년 만이다. 사실 정우창 행장 시절에야 전문가들이 그리 많지 않아 연임 자체가 그리 큰 뉴스가 되지 못했다. 요즘은 달라도 한참 다르다. 뛰어난 전문가도 많거니와 관료 출신들이 줄줄이 대기 상태다. 더구나 지금은 참여정부 임기 말이다. 기업은행 같은 ‘알짜’에 CEO가 되려 하는 사람이 넘쳐났다. 정부로서도 마지막 인사이니만큼 챙겨줘야 할 사람이 많았을 게 뻔하다. 이런 여러가지 난관을 뚫고 연임을 했으니 금융계는 물론 정부까지 화제가 될 수밖에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강 행장의 연임은 어려워 보였다. 자신도 “연임 가능성은 10%도 안될 것으로 생각했다”고 밝혔을 정도다. 장병구 수협은행장이 한참 앞서가는 듯했으나 3월 초 분위기가 반전됐다. ‘성과를 내고도 연임하지 못한다면 누가 열심히 하겠는가’라는 여론의 강한 비판에 직면해 정부가 원점에서 재검토하기에 이른 것이다. 강 행장은 연임에 대해 큰 미련은 없었다. 대신 그는 우리은행 회장 쪽에 관심을 두는 듯했다. 1월 말께 강 행장은 “그동안 원없이 일했다. 아무런 후회도 미련도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민간은행에서 새로운 역할을 해보고 싶다는 뜻도 전했다. 그는 후덕한 얼굴에 이웃집 아저씨 같은 인상을 풍긴다. 하지만 특유의 친화력으로 밀어붙이는 추진력은 주변을 압도하기에 충분하다. 부드러운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임원회의만 하면 ‘1등’ ‘생존’ ‘경쟁’ 같은 전투적 용어를 동원하면서 분발을 촉구하는 스타일이다.

시민단체에 “날 밟고 가라” 그는 또 누구보다 조직에 대한 애착이 강한 인물이다. 그는 2000년 금융감독위원회 대변인 겸 기획행정실장을 맡고 있었다. 이근영 금감위원장 시절로 일도 많고 탈도 많았던 때였다. 당시 한 시민단체가 금감위 기자실에 와 금감위와 금융감독원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하려 했다. 그러자 강권석 대변인이 온몸으로 저지했다. 기자들이 “기자실에서는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밝힐 수 있다”고 했으나 그는 “기자실도 기관 안에 있다”고 맞섰다. 그는 “차리리 날 밟고 가라”고까지 했다. 그는 정통 경제관료다. 그러나 그에게서는 상대적으로 관료의 냄새가 덜 난다. 본인 스스로 관료로서 행세하는 것도 꺼린다. 어쩌면 이런 그의 모습이 ‘반관 반민’ 성격의 기업은행과는 잘 맞아 떨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입도 무겁다. 금감위 대변인 시절 굵직한 사건이 많이 터졌다. 기자들의 성화가 대변인에게 빗발쳤을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그는 끄떡도 안했다. 대변인으로 설화(舌禍)를 입을 법도 한데 한 번도 당하지 않았다. 이러니 기자들에게는 영 달갑잖은 대변인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를 싫어하거나 나쁘게 말하는 기자들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친화력도 좋아 초짜 기자나 직원들에게도 늘 예의를 갖춰 대한다. 엘리트 관료 출신 중에는 전문성이 모자라면 기자고, 부하직원이고 얼굴이 화끈할 정도로 일침을 가하는데 그는 그런 면이 없다. 그에게 붙어 다니는 별명은 ‘자산 100조, 순익 1조’다. 인수합병없이 그가 기업은행 행장으로 있으면서 자력으로 일군 이 은행의 사상 최대 실적이기 때문이다. 국민·하나·신한·우리은행 같은 공룡들과 경쟁하면서 이룬 것이기에 더 의미가 깊다.
2004년 3월 그가 취임한 이후 기업은행은 괄목상대하게 변했다. 지난 3년 간(2003년 말~2006년 말) 기업은행 총자산은 75조원에서 106조원으로 31조원(41%) 증가했고, 순익은 2240억원에서 1조531억원으로 8291억원(370%) 늘어났다. 덕분에 주가는 7600원에서 1만7150원으로 9550원(125%)이나 올랐다. 이 기간 중 수익성 지표인 ROA(총자산수익률)와 ROE(자기자본수익률)도 각각 0.33%, 6.56%에서 1.1%, 19.6%로 3배 이상 증가했다. 또 건전성 지표인 부실채권비율(고정이하 여신비율)도 2.58%에서 0.68%로 크게 내려갔는데, 이는 금융권에서 가장 낮은 수치다. 한마디로 강 행장이 3년 만에 성장성, 수익성, 건전성이란 세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았다는 얘기다. 그는 행장 취임 후 각종 기발한 아이디어를 동원해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직원들은 그를 ‘아이디어 뱅크’라고 부른다. 잘 알려진 그의 독창적 아이디어 정책은 꽤 많다. 그중 ‘비올 때(중소기업이 어려울 때) 우산을 뺏지 않는다’는 우산론이 먼저 눈에 띈다. 현대 사회에서 기업이 사회발전의 핵심이란 내용의 ‘기업인 천하지대본’ 역시 강 행장의 머리에서 나온 말이다. 그는 이를 실천하는 차원에서 2004년 ‘중소기업 명예의 전당’까지 건립했다. 이를 통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 CEO를 이 전당에 헌정했고, 동시에 중소기업인의 자긍심도 고취시켰다. 지난 3년간 11개 중소기업 기업인이 헌정됐다. 기업금융을 하면서 은행은 ‘사후조치’보다 ‘사전예방’ 서비스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기업주치의론’도 그의 작품이다. 강 행장은 스스로 기업 주치의를 자임한다. 숫자로 보면 보다 명확해진다. 2004년 은행권 중기대출 순증액의 74%인 4조4000억원을 기업은행이 공급했다. 2005년에는 55%인 6조6000억원, 2006년에는 10조3000억원으로 확 늘었다.

“중소기업의 ‘큰 우산’ 되겠다” 기업대출을 중시하는 강 행장의 드라이브 덕분에 기은은 중기대출 시장에서 점유율 1위(19.3%)를 차지하고 있다. 중기대출 시장점유율은 첫 취임 초 15.03%(2003년 말)에서 19.3%(2006년 말)로 올라갔다. 강 행장은 보험·증권사 인수를 통해 기업은행을 종합 금융그룹으로 키우려는 복안을 세워 놓은 상태다. 그는 평소 “기업은행의 설립 목적은 중소기업 금융을 더욱 잘 하기 위한 것인 만큼, 이 같은 종합 금융그룹화는 기은에겐 발등의 불”이라고 강조했다. 게다가 은행의 대형화, 겸업화, 글로벌화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으로 떠오른 지 오래다. 강 행장은 이를 위한 포석으로 지난해부터 보험사 인수를 추진 중이고, 증권사 인수에도 적극 나설 방침이다. 강 행장은“기업은행이 2010년, 50대 글로벌 은행에 진입한다는 비전을 갖고 이에 걸맞은 해외진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연초에 “50주년이 되는 2011년에 모든 실적을 지금의 2배(순이익 2조, 시가총액 20조, 자산 200조원)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했던 주문이 실현될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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