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商人물결로 해가 지지 않는다

商人물결로 해가 지지 않는다

“이우에 없으면 세상에 없다.” 중국 사람들이 남방의 작은 도시 이우를 가리켜 하는 말이다. 액세서리ㆍ완구 등 세계 시장에서 팔리는 잡화류의 30%가 이곳 이우를 거쳐 수출된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라면 이우는 ‘세계의 시장’이다. 중국 저장성 한가운데 있는 이우는 시내가 온통 시장이다. 상주 인구 68만 명 중 3분의 1이 상인이다. 이코노미스트가 창간 기념 특별기획으로 이우를 집중 취재했다. ‘샌드위치론’에도 아랑곳없이 잘나가는 삼성중공업 닝보법인, 한국형 화장품의 세계화 전진기지 LG생활건강 항저우법인, 산둥성 칭다오를 중국의 LA로 변모시키고 있는 세정그룹 칭다오법인도 현지 취재했다.
“이우(義烏) 물건이 15일만 끊기면 한국의 물가가 오를 겁니다. ”중국 저장성 닝보(寧波) 공항에서 첫 대면한 중국동포 가이드 허학룡씨는 이우시에 대한 한국 경제의 높은 의존도를 한마디로 뭉뚱그렸다. 올해 서른넷인 허씨는 여행업을 하면서 무역도 함께하고 있다. 그는 액세서리의 경우 한국에서 유행하고 나서 중국에 들어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과거엔 3년이나 시차를 두고 유행한 적도 있지만 요즘은 한국에서 뜬 지 두어 달 후면 중국에서 유행합니다. ” 그에 따르면 이런 유행엔 패턴이 있다. 홍콩에서 디자인한 액세서리를 이우에서 만들어 한국에 팔고 나면 다시 중국에서 유행하는 식이다. 그 연결 고리가 한국 드라마다. 중국인들이 한국 드라마에서 목격한 액세서리를 찾기 때문이다. 한·중 간 유행의 시차가 단축된 데는 한류의 영향도 있을 것이라고 그는 분석한다. 취재 중 만난 왕쑤에훙 절강중국소상품성집단공사(상청그룹) 당위 부서기는 한류 스타 원빈과 이영애를 알고 있었다. 그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들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상청그룹은 이우의 간판 격인 푸톈(福田)시장의 오너다. “여기 사람들은 한국 스타일의 옷을 좋아합니다. 한국 드라마를 보면 자기 또래의 출연자들이 어떤 옷을 입는지 유심히 봐뒀다가 시장에서 같은 스타일의 옷을 사죠. ” 그는 “한국의 로제화장품 에슬리를 3개월째 쓰고 있는데 가격에 비해 만족스럽다”고 털어놓았다. 마음에 드는 한국 제품으로 그는 화장품과 커피잔을 꼽았다. 기자가 이우에서 묵은 빈왕루 인두호텔 뒤 한 식품점 간판에선 또 다른 한류 스타 장나라가 활짝 웃고 있다. 그의 얼굴 옆엔 ‘한국 인기 우상’이라고 한자로 적혀 있다. 한류는 중국 저장성(浙江省) 중부에 자리잡은 현급 도시 이우에서도 기세를 떨치고 있었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라면 이우는 세계의 시장이다. 세계 시장에서 팔리는 잡화류의 30%가 이우를 거쳐 유통된다. 중국 내수시장에서 팔리는 잡화의 60%가 이우 물건이다. 이우는 규모 면에서는 저장성 내 7위에 불과하다. 시라고는 하지만 인근 진화(金華)시의 예하 도시로 진화시의 행정지도를 받게 돼 있다. 이우 시정부는 그러나 진화를 거치지 않고 성 정부에 직접 보고를 한다. 이우의 성장 속도가 빨라 진화시가 관리하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이우시에 따르면 이우의 성장률은 연 25%에 이른다. 이우의 인구는 68만 명이다. 그런데 그보다 많은 73만 명의 외지인이 이우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이우시 푸톈 시장

대부분 다른 도시나 다른 나라에서 온 상인들이다. 이우(義烏)는 ‘의로운 까마귀’다. 전설에 따르면 한 효자가 이곳에 살았다. 노모를 모시고 있었는데 엄동설한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는 그러나 장례 치를 돈은 고사하고 땅을 팔 도구 하나 없었다. 마침 한 무리의 까마귀들이 날아와 부리로 땅을 팠다. 그 덕에 장례를 치렀지만 땅을 파느라 몸을 상한 까마귀들은 모두 죽고 말았다. 후세 사람들이 이 까마귀들을 기려 이곳을 ‘의로운 까마귀’라고 불렀다. 그 이우가 가난한 세계 시민을 위한 글로벌 시장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우는 시내 전체가 시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주 인구 중 20여 만 명이 상업에 종사하고 있다. 상가 수는 5만8000여 개. 상가당 10초씩만 둘러봐도 족히 20일은 걸린다. 시장의 면적은 총 78만6500여 평으로 여의도 면적에 육박하는 규모. 연간 교역액은 248억 위안(약 2조9760억원)에 이른다.

2000~3000원짜리 MP3도 대표적 시장은 푸톈 시장으로 통하는 국제상무성이다. 서울로 치면 강남에 해당하는 신시가지. 이 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큰 무역 시장으로 중국 국가품질감독총국으로부터 전국에서 유일하게 “품질을 중시하고 신용을 지키는 시장(守信用 重質量)”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점포 수는 2만4000여 개에 이른다. 이 밖에 신발·벨트 등 경공업 제품을 파는 소상품 시장이 있다. 이우 최초의 도매 시장이다. 의류·침구류 등을 파는 빈왕 시장, 4000여 개의 점포로 이뤄진 양말 시장도 있다. 황원로에 있는 내의 전문시장에 들러 러닝 셔츠를 하나 샀다. 40대 중반의 내의 가게 여주인은 도매가 900원짜리 러닝 셔츠를 2160원에 팔았다. 그는 100벌부터 도매 시세로 판다고 말했다. 모자 가게에 들러 샘플을 구입하고 싶다고 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이 집도 최소 단위는 100개였다. 이우에서 거래되는 대표적 상품으로는 액세서리, 공예품, 완구, 문구, 양말, 지퍼, 와이셔츠 등이 있다. 한마디로 잡화다. 중국에서는 이들 잡화를 소상품이라고 한다. 이우에서 거래되는 상품의 종류는 총 40여만 종에 이른다. 유엔에 공식 등록돼 있는 상품 종류 50여만 종에 육박하는 규모다. 이우는 국제 물류 도시다. 국내 250여 개 도시와 운송 라인을 갖추고 있고, 매일 1000개 이상의 컨테이너가 이우 세관을 통해 세계 200여개 국에 수출되고 있다. 수출 대 내수의 비중은 7대 3이다. 이우 상품의 가격경쟁력은 저가품 소비지인 중동·아프리카·동남아의 바이어들이 이곳에 몰려들고 있는 데서 잘 드러난다. 이우 시장에서 파는 물건값은 얼마나 할까?
조현석 이우 한인회 수석부회장은 “도매 가격이기는 하지만 단가가 우리 돈으로 몇 원짜리부터 있다”고 말했다. “2000~3000원짜리 MP3에, DVD 플레이어가 2만원도 안 됩니다. 무엇보다 다양한 종류의 저가품을 소량으로 구입할 수 있다는 게 장점입니다. 컨테이너용 카턴 박스 1~2개 물량도 살 수 있으니까요. ” 이 값에 물건을 팔 수 있는 것은 물론 저임금 덕이다. 이곳 공장 근로자의 급여는 월 12만~13만원, 잡역부의 시간당 임금은 3~4위안(360~480원) 수준이다. 많은 공장이 구내식당도, 경비원도 없다. 당연히 간접비도 그만큼 덜 든다. 근로자들은 200원이면 한 끼를 해결한다. 이우는 국제화된 도시다. 외국인은 시장은 물론 거리에서도 구경거리가 아니다. 이우에서 활동 중인 외국인은 1만여 명, 출신 국가는 100여개 국에 이른다. 특히 중동 사람들은 수적으로 한국인을 능가한다. 반면 서유럽·미국 등 선진국 상인들은 드물다. 이런 사실은 이우 물건이 품질 면에서는 떨어진다는 것을 시사한다.

100여 개 국서 1만여 명 몰려 이우 상인들도 품질과 브랜드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이우시 청구공업구(靑口工業區)에 자리 잡고 있는 액세서리 회사 신광집단에는 “브랜드를 만들어 사회에 복무하자(創造名牌 服務社會)”는 캐치프레이즈가 적혀 있다. 이 회사의 장쩌린 사장 특별보좌역은 “우리 회사는 자체 브랜드로 수출할 뿐만 아니라 브랜드 가치도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다른 대도시에도 소상품 도매 시장은 있다. 이들 도시에 진출한 상인 중 다수가 이우 사람들로 알려져 있다. 물건 값은 이우보다 1.5~2배 비싸다. 랴오닝(遼寧) 성의 선양, 후베이(湖北) 성의 우한 등에는 이우 같은 대형 도매 시장이 있다. 그러나 점포 수, 시장 면적, 거래액 등의 면에서 이우에 크게 뒤진다. 이들 세 도시는 중국의 3대 도매 시장으로 꼽힌다. 이우의 간판 상품은 액세서리다. 액세서리류는 본래 광둥(廣東) 성 성도인 광저우가 본산이었다. 광저우는 화난(華南)지방 최대의 무역도시로 광저우 박람회는 한때 소상품 전시장으로 통했다. 당시엔 이우에서 만든 액세서리도 광저우에서 광저우 산으로 팔렸다. 그러던 것이 가격경쟁력을 잃으면서 액세서리 명가로서의 명성을 이우에 넘겨줬다. 이우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은 7000명 선으로 추정된다. 2005년 말 중국 공안국 출입경관리국은 이우에 거주하는 한국인이 4800명이라고 발표했다. 7000명은 무등록 거주자, 상시적으로 왕래하는 기업인을 포함한 것이다. 이우의 한국인들이 종사하는 업종은 제조, 임가공, 운송, 도소매, 무역 대행 등으로 다양하다. 이우에 거주하는 중국 동포(조선족)는 3만~5만 명으로 추산된다. 한인 무역업체는 대부분 3인 이상 10인 미만의 사업장이다. 이우 한국상회에는 250여 업체가 정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이우 제품의 품질을 높이는 데는 한국 상인들이 한몫했다. 한상들은 대체로 주문량이 적다. 더욱이 단가는 낮추려 들고 제품 질에 대해서는 고품질을 요구한다. 그래서 한국 사람과는 거래하지 않겠다는 이우 상인이 꽤 있다고 한다. 반면 중동 상인은 주문량이 많고 품질에 대한 요구도 그리 까다롭지 않다. 이우 상인들로서는 중동 상인을 선호하는 것이 당연하다.

▶푸톈 시장 내 액세서리 시장.



한국 상인들, 품질 향상에 기여 고희정 이우 한인회장도 그런 일을 겪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럴 때면 “좋은 물건을 만들어 내면 나 아니라도 다른 사람들이 사 준다”고 중국인을 설득했다고 그는 회상했다. “한국산 액세서리는 품질이 뛰어나다”는 장쩌린 신광집단 사장 특별보좌역은 “한국인의 의지력을 높이 평가하고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한인 사회와 중국동포 사이에서는 미묘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취재 중 만난 한 한국 상인은 아예 “중국동포를 채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말이 통하는 대신 여러 가지 마찰이 생깁니다. 능력은 오히려 떨어지는데 급여를 두 배 요구한 적도 있습니다. 중국어가 되면 중국동포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되고요. ” 김대석 이우 국제상무성 한상관 운영위원회장은 그와 입장이 달랐다. 그는 “중국동포의 도움은 절대적이다”고 말했다. “중국인 직원과의 사이에서 귀와 입 노릇을 합니다. 중국 비즈니스와 중국동포는 불가분의 관계예요. 개중에 동포에게 당한 사람도 있습니다만…. ” 이우 시내는 외제 승용차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인력거와 삼륜 자전거 사이를 고급 외제 승용차가 누비고 다닌다. 1960년대와 21세기가 공존하는 도시. 한 한상은 “BMW가 하도 많이 팔려 본사 사장이 다녀가기까지 했다”고 전해줬다. 취재차 들른 북원공업구(北苑工業區)의 내의 회사 펜리의 주차장엔 롤스로이스가 주차돼 있었다. 김대석 한상관 운영위원회장은 “돈이 많다 보니 거리는 무질서한데 좋은 차들이 넘친다”며 “비싼 차 많기로는 중국 전역에서 최고 수준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우는 그러나 과거에는 해먹을 것이 없는 지역이었다.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 장터를 열었다. 그 장터가 오늘날의 대형 시장으로 발전한 것이다. 이우 사람들은 기질적으로 강인하다. 또 신용을 중시한다. 신용이 떨어지는 거래처와는 상담도 하려 들지 않는다. 경향 각처는 물론이고 세계 각국에서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몰려오기 때문이다. 이우 상인 중에는 이들 외지인과 거래하다 피해를 본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한다. 강인하고 신용을 중시하는 것은 이우의 상인 정신이라 할 만하다. 이우시가 무역 도시라는 정책 목표를 견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정신적 유산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우 사람은 교육열도 높다. 초등학생의 90% 이상이 중·고에 진학하고 젊은 세대의 42%가 대학에 다닌다. 젊은이들의 차림은 자유분방하다. 시내를 활보하다 보면 펑키나 울프컷 헤어 스타일로 한껏 멋을 낸 젊은이들과 심심치 않게 마주친다. 이들의 관심은 돈을 버는 것에 맞춰져 있는 듯했다. 젊은이만이 아니다. 이우 인근의 주지시에서 만난 허이원 제기신화의침유한공사 회장은 중의(한의사) 출신이었다. 20년 경력의 의사인 그는 “의사 시절이 더 편했지만 아들에게 탄탄한 사업기반을 물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30여 분 그를 인터뷰한 회사 샘플실은 손이 곱을 만큼 추웠다. 이우가 발전한 데는 시정부의 일관된 정책도 한몫했다. 시정부의 이니셔티브를 보여주는 좋은 예. 외환관리법상 외국인의 월 환전 한도액은 5만 달러다. 이런 규제가 시장 상인들이 외국인에게 물건을 파는 데 제약이 되자 시정부가 성정부에 정책 변경을 건의했다. 마침내 이우에 대해서는 환전 한도액을 풀어 준다는 특별유예 조치를 이끌어냈다. 주변에 소상품 공장이 모여 있는 것도 이우의 발전을 부추겼다. 이우시 처우쩌우씨루에 있는 액자 메이커 화홍공투집단 궁핀쭝 사장은 “1998년 회사를 설립할 때 판로로서 이우 시장을 염두에 두었다”고 말했다. “설립 초 80% 선이었던 이우 시장에 대한 의존도는 20%까지 낮아졌습니다. 현재로선 더 내려갈 가능성이 큽니다. 대형 바이어들은 이우 시장을 통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조달을 하기 때문이죠. ”

관공서 문턱은 여전히 높아 궁 사장은 이우 상인들이 더 좋은 제품을 만들어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제품의 고급화가 나아갈 방향입니다. 그러자면 국제영업 등에 경험이 있는 인재를 뽑고 관리도 국제적 수준으로 높여야 합니다. ” 항저우에서 만난 강응철 항주창행인무역유한공사 사장은 “수출할 물건은 이우에서 조달 못한다”고 말했다. “퀄리티가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죠. 내가 쓰고 버릴 물건은 이우 것을 쓰지만 수출할 물건은 충칭(重慶)·칭다오(靑島) 등에서 주문자 상표 부착생산(OEM)으로 조달합니다. 말하자면 이우에서는 제품의 다양성을 보는 거죠. 정보는 이우에서 얻고 조달은 다른 데서 합니다. ” 그는 CJ홈쇼핑·LG홈쇼핑 등엔 이우 물건이 거의 없다고 귀띔했다. 이우에서는 해마다 80여 회의 각종 전시회가 열린다. 연중 전시회가 열리는 셈이다. 10월에 열리는 이우 국제 소상품 박람회는 중국에서 셋째로 규모가 큰 전시회다. 이 박람회는 1995년 처음 열렸다. 이후 한국을 비롯해 대만과 서남 아시아권 상인들이 몰려들면서 이우는 국제 무역도시로 꽃을 피우게 된다. 3.5㎢였던 시내의 규모는 현재 45㎢로 지난 10년 새 13배 가까이 커졌다. 2003년 이우의 사회경제 종합발전지수는 전국 17위를 기록했다. 성장 속도는 전국 최고 수준이다. 이우는 교통의 요충이기도 하다. 철도는 북쪽으로는 저장성 성도 항저우를 경유해 장쑤(江蘇) 성 상하이와 연결되고 남쪽으로는 장시(江西) 성 난창을 거쳐 남방으로 달린다. 저장성 내 다른 도시엔 고속도로로 3시간 이내에 닿을 수 있다. 광저우·선전·싼토·샤먼·베이징·우루무치 등은 국내선 항공편으로 이동할 수 있다. 시내엔 광통신망도 깔려 있다. 이우 시내 4성급 호텔방에서 기자는 인터넷을 별 불편없이 쓸 수 있었다. 성장은 그늘을 남긴다. 고속 성장일수록 그 그늘도 짙게 마련이다. 취재 중에 만난 한 상인은 공무원의 부패 문제를 지적했다. “공무원 봉급으로는 그렇게 좋은 집에 살면서 저녁이면 고급식당에서 외식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에 관공서의 문턱은 높다. 인허가 업무를 맡은 공무원은 불친절하고 2~3번씩 퇴짜놓기 일쑤다. 이우에서는 의장권·실용신안권이 보호받지 못한다. 항저우에서 만난 이성근 LG화장품유한공사 사장은 “‘짝퉁’을 우려해 이우엔 절대 물건을 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자는 이우 취재 후 일정을 변경해 산둥성 칭다오로 향했다. 이를 위해 국내선 항공권을 사고 귀국편을 항저우 발에서 칭다오 발로 바꿨다. 그런데 이우 시내의 항공여행사는 마스터카드도, 달러도 받지 않았다. 국제선 항공권을 자국 화폐로만 살 수 있는 현실은 국제도시로서 이우의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기자가 묵은 인두호텔 뒤쪽으로 저녁이면 야시장이 섰다. 주변 건물들은 시터우청(洗頭城)으로 불야성을 이뤘다. ‘머리를 감겨 준다’는 업종명과 달리 시터우청은 유사 성 매매업소다. 5층 건물에 다섯 집이 문을 연 곳도 있었다. 한 곳은 간판에 한국 여배우 문근영의 대형 사진이 프린트돼 있었다. 한류를 비추는 일그러진 거울이랄까? 한류는 이우의 뒷골목에서도 중국과 한국을 이어주는 가교였다.


인터뷰|이종덕 디그레 사장


“싸구려 시장 이미지 벗어야 살아남지요”

“이우 시정부가 이우 시장에 대한 마케팅에 나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급품을 만드는 외국계 제조 기업들을 키워야 합니다. ”이종덕 디그레 사장은 “이우 시장은 잠재력이 크지만 싼 물건을 파는 시장이란 인식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며 “이런 인식을 불식하지 않으면 저가의 액세서리·생활용품 시장으로 굳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우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무역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역업은 투자에 한계가 있습니다. 제조업을 유치해야죠. 제조업 기반을 강화해야 무역도 살 수 있습니다. 무역만 해서는 품질관리가 제대로 안 돼요. 반면 제조업은 품질이 좌우합니다. ”

-무역업체가 품질개선을 요구할 수도 있죠. “무역은 말 그대로 물건을 사고 파는 겁니다. 품질에 신경쓸 겨를이 없어요. 사정이 이렇다 보니 품질을 끌어올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실 이우 시장 물건 중 이우에서 만든 것은 많지 않습니다. 상당수가 장쑤성 쑤저우(蘇州)에서 갖다 파는 것이죠. 또 판로가 한국·중동·남미 등에 치우쳐 있습니다. 정작 고부가 제품은 광둥성 광저우(廣州)에서 만들죠. ” 이 사장은 직접 제품을 만드는 곳이라야 품질관리와 투자가 쉽게 이뤄진다고 주장했다. 그가 CEO로 있는 디그레는 핸드백 메이커이다. 이우 인근 진화시에 있는 이 회사는 OEM으로 생산한 제품을 전량 미국·유럽·일본에 수출한다. 장 프랑코 페레·DKNY 등이 디그레가 생산하는 OEM 브랜드. 핸드백과 원단으로 장식된 그의 사무실은 샘플실을 방불케 한다. 그는 이우 시장은 무엇보다 이미지를 쇄신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숲속에선 숲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거리를 둬야 제대로 관찰할 수 있죠. 이우도 바깥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저급품 시장이란 인식 때문에 이우에 가면 회사 이미지가 나빠진다는 시각이 있습니다. 미국에 거주하는 한 중국인 바이어는 그래서 가격이 15% 더 비싸지만 광저우나 둥관(東莞)으로 갑니다. ”

-이우 시정부가 이우 시장을 키우려면 어떤 정책을 써야 합니까? “세금 우대죠. 기업들에 세제상의 혜택을 줘야 합니다. ”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 정부 'KC 미인증 해외직구' 금지, 사흘 만에 사실상 철회

2"전세금 못 돌려줘" 전세보증사고 올해만 2조원 육박

3한강 경치 품는다...서울 한강대교에 세계 첫 '교량 호텔' 탄생

4서울 뺑소니 연평균 800건, 강남 일대서 자주 발생한다

5가상세계 속 시간을 탐구하다

6고령화·저출산 지속되면 "2045년 정부부채, GDP 규모 추월"

7해외서 인기 폭발 'K라면'…수출 '월 1억달러' 첫 돌파

8한국의 ‘파나메라’ 어쩌다...“최대 880만원 깎아드립니다”

9치열한 스타트업 인재 영입 경쟁…한국도 대비해야

실시간 뉴스

1 정부 'KC 미인증 해외직구' 금지, 사흘 만에 사실상 철회

2"전세금 못 돌려줘" 전세보증사고 올해만 2조원 육박

3한강 경치 품는다...서울 한강대교에 세계 첫 '교량 호텔' 탄생

4서울 뺑소니 연평균 800건, 강남 일대서 자주 발생한다

5가상세계 속 시간을 탐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