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 부동산 거품 안꺼진다
대도시 부동산 거품 안꺼진다
전 세계 침체 우려 비웃듯이 일류 도시 고급 주택지 가격은 날개 달린 듯 계속 고공비행 중 스페인인 은행직원인 에드릭 카나스(33)는 지난 12년 동안 후한 보수를 받으며 외국 주재원으로 생활했다. 보스턴과 런던에서도 살아 봤지만 가장 잘 아는 도시는 뉴욕이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을 나온 그는 1997년 맨해튼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다. 2005년 말 마드리드로 전근 발령을 받았을 때 배터리 파크의 침실 하나짜리 아파트를 팔았지만 이번 겨울 다시 뉴욕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최근 미드타운의 침실 두 개짜리 아파트를 130만 달러에 구입했다. 이번에는 다음에 어디로 가든 이 뉴욕 아파트를 팔지 않을 작정이다. “뉴욕시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금융 중심지다. 전 세계 사람들이 찾는다”고 카나스는 말했다. “게다가 앞으로 언젠가는 뉴욕으로 다시 돌아오겠지 싶다.” 카나스는 세계를 누비는 전형적인 고소득 글로벌 엘리트다. 이들은 세계 유수 도시의 집값을 천정부지로 끌어올린다. 일부 시장의 국가 전체 부동산 시세는 세계적 경기침체와 부동산 거품 우려 속에 계속 하락한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시애틀·모스크바·상하이 등지의 노른자위 주거용 부동산 가격은 날아오른다. 이런 추세는 그동안의 상식을 완전히 뒤엎는다. 가장 과대포장됐던 도시의 집값이 가장 빨리 큰 폭으로 하락하리라고 예일대의 로버트 실러 같은 전문가들이 한동안 예측해 왔기 때문이다. 한때 밀접하게 동반하던 국가와 지역 부동산시장의 탈(脫)동조화 움직임은 새로운 ‘초고급(superprime)’ 부동산 투자자들의 주거 양식을 반영한다. 글로벌 부동산 조사업체 존스 랭 라샐르에 따르면 그중 절반 정도가 해외주재원이다. 세계화 덕택에 자본의 세계적인 이동이 자유로워졌지만 사람은 그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카나스와 그의 동료들은 예외다. 이들은 대체로 지역적 여건의 영향을 받지 않는 국제적 자본에 편승해 세계를 돌아다닌다. 게다가 자금도 풍부하다. 그들의 수입은 나날이 늘어간다. 은행과 금융업 종사자들은 2년 연속 두둑한 보너스를 받았다. 그 때문에 런던의 사우스 켄싱턴, 뉴욕의 어퍼 웨스트사이드 같은 특급 주거지의 주거용 부동산 수요가 되살아났다. 이런 세계적 금융 중심지가 아니어도 이제 파리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임시 거주 아파트를 수집할 정도의 부동산 투자자 계층이 생겼다. 이들은 평범한 부자들이 자동차나 와인을 수집하듯 집을 사모은다. 10년간의 주가상승으로 초부유층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시중에 그렇게 돈이 많이 풀리다 보니 일류 도시의 고급주택 수요가 공급을 뛰어넘었다. 그래서 값이 그렇게 어마어마하게 올랐다. 이런 현상은 일류 도시의 초특급 주거지가 특히 심하다. 초특급 주거시장의 성장은 흔히 도시 전체의 두 배, 심지어 세 배에 달한다. “이런 투자자들이 전 세계를 휘젓고 다닌다는 사실은 상당히 흥미로운 역설”이라고 존스 랭 라샐르의 수 폭슬리 주거용 부동산 조사팀장은 말했다. “그들이 구입하려는 곳은 전 세계에서 100개 지역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상업 중심지의 수요가 가장 높을 만하다. 해외주재자들은 자신이 근무하는 곳에서 수준 높게 살고 싶어한다. 상하이는 금융과 보험 같은 고급 서비스산업이 집중돼 있다. 그런 도시의 집값은 정치 수도 베이징의 세 배 수준으로 뛰었다. 인도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난다. 경제 수도 뭄바이의 고급 부동산 가격은 2006년 90% 뛰었다. 반면 같은 기간 뉴델리도 60%나 상승했지만 그에 못미쳤다. 이런 통계는 서비스업종의 초고소득자들이 부동산 가격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잘 보여준다. 그런 인재들이 몰려드는 도시 부동산시장은 “엄청난 가치를 부르는 고급 상품”이 된다.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 시장의 표현이다. 침실 두 개짜리 아파트의 ‘가치’가 150만 달러(14억원 이상)나 되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호황의 저변을 이루는 거시경제적 요인은 분명하다. 수퍼스타 도시들은 저마다 성장 동력을 보유하지만 그 과정에서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골디락스’ 세계 경제의 도움을 받는다. 세계적으로 금리가 상승세를 보이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5~6%의 역사적 저점 수준을 맴돈다. 여기에 전 세계 많은 지역의 탄탄한, 그리고 일부 눈부신 성장이 겹쳐 집값 폭락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저인플레·저금리 환경에서는 역사적 기준에 비춰볼 때 주택 가격 하락이 비교적 완만하다”고 매사추세츠주 소재 경제예측·컨설팅 회사 글로벌 인사이트의 수석 경제전문가 나리만 베흐라베시는 말했다. “저금리가 지속되는 한 집값이 회복돼 다시 뜀박질을 하게 된다.” 뉴욕 같은 지역에서는 사실상 가격 둔화 한번 없었다. 전미 부동산중개인협회의 지난 2월 발표를 보면 2006년 4분기 미국 전체 집값은 평균 2.7% 하락했다. 그러나 부동산 평가회사 밀러 새뮤얼에 따르면 맨해튼의 주택 가격은 지난 1월 14.4% 올랐다. 일부 추산에 따르면 초특급 부동산 구매자의 절반 이상이 현지 거주 외국인들이었다. 달러 약세를 이용해 득을 보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11월 말의 추수감사절 두어 주 전부터 집값이 정말 날아올랐다. 좋은 물건은 나오자마자 동이 난다”고 부동산 회사 프루덴셜 더글러스 엘리만의 뉴욕시 중개업자 해리어트 노리스는 말했다. “내가 보기에 뉴욕시나 맨해튼이 가격 하락에 저항하는 어떤 내성이 있는 건 아니고 가격 하락이 일어날 징후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 일류도시 특급 부동산의 그칠 줄 모르는 상승세는 대표적인 부동산시장 종말론자 로버트 실러의 어두운 전망을 뒤엎는다. 예일대 경제학자인 그는 7년 전 자신의 저서 ‘비이성적 과잉(Irrational Exuberance)’에서 주가 폭락을 정확하게 예견해 명성을 날렸다. 그 책의 개정판에서 그는 미국의 과열된 주택시장에 같은 분석을 적용했다. 그리고 엄청난 집값 상승은 대부분 비논리적인 군중심리 탓이라고 분석했다. 실러는 향후 20년 동안 실질 주택가격이 40% 하락한다는 예측을 고수하며 계속해서 부동산 거품 붕괴가 상당한 경기침체를 유발하기 쉽다고 경고한다. “일류 도시를 믿는 사람이 많은데 이런 도시는 수백 년 전부터 존재하면서 집값의 상승과 하락이 반복됐다”고 실러는 말했다. “이번에만 [상승] 추세가 계속된다는 이유를 모르겠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비이성적 과잉’ 개정판에서 실러는 피에트 아이크홀츠의 선구적인 연구논문에 크게 의존했다. 네덜란드의 부동산 금융학 교수인 아이크홀츠는 1628~1973년 사이 암스테르담 고급 주거지구의 주택가격 추이를 조사했다. 그리고 350년 가까운 기간에 실질 주택가격 상승률은 연간 0.2%에 불과했다고 결론지었다. 실러는 그 수치를 인용, 장기적으로는 부동산 가격 상승폭이 아주 작다는 자신의 일반 명제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아이크홀츠 자신은 향후 5~10년 사이 암스테르담과 파리를 포함한 세계 일류 도시 다수의 주택가격이 붕괴된다고 보지 않는다. 도시화 확대와 세계적인 경제성장의 영향으로 한정된 도심 부동산 수요자가 늘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이 언제까지나 계속된다는 말은 아니다”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현재로선 나의 예측은 성장 쪽이다.” 일류 도시가 통상적인 경기순환 주기의 영향을 적게 받는다는 증거는 또 있다. 와튼 비즈니스스쿨과 컬럼비아 대학의 경제학자 세 명이 비영리단체 전미 경제연구소의 의뢰로 저술한 장문의 연구보고서다. 이들은 샌프란시스코·로스앤젤레스·시애틀, 그리고 보스턴 등 갈수록 많은 고소득자가 기꺼이 웃돈을 지불하고 들어가 살려는 여러 미국 도시를 밝혀냈다. 그런 도시의 부상은 20세기 후반 미국에 아주 부유한 가구가 전례 없이 확산된 데 기인한다. 미국 대도시에 거주하는 전체 가구 수는 그 기간에 배로 늘었지만 2000년 물가 기준으로 연간 소득 14만 달러 이상인 가구 수는 여덟 배가 됐다. 이 연구는 미국에 초점을 맞췄지만 일부 외국 수도에서도 비슷한 과정이 진행중이라고 저자 중 한 명은 말한다. “두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야 한다. 특정 시장에 몰려 살려는 고소득자의 증가, 그리고 상당한 물량의 신규 주택을 공급하려는 의지나 능력의 부재”라고 와튼스쿨 부동산·금융학과 조셉 기오르코 교수는 말했다. “런던과 파리가 이런 기준에 들어맞는다. 경제가 성장하고, 소득분배가 편향됐으며 수요가 많은 지역의 공급이 극히 제한적이다.” 물론 세계의 모든 주요 도시 집값이 일제히 반등하는 건 아니다. 홍콩의 주거용 부동산시장은 큰 폭의 하락을 겪었다. 2005년 3분기 20% 이상 올랐던 집값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2.6% 떨어졌다. 한때 상승세를 타던 시드니의 집값 상승률은 호주 전국 평균에 못 미친다. 두 도시 모두 금리 상승이 원인이다. 더 큰 우려는, 고급 부동산 시장이 일제히 폭락한다면 그 원인은 무엇일까 하는 점이다. 세계 경제의 장기 불황은 분명 주택가격 급락을 부른다. 거기에는 어떤 고급 주택지라도 예외가 없다. 과거를 기준으로 할 때 그런 집값 붕괴에는 중앙은행이 큰 역할을 한다. “역사에서 교훈을 배운다면 집값 폭락은 거의 항상 실정(失政)이 원인이라는 점”이라고 영국 왕립 공인측량사학회의 수석 경제전문가 밀런 카트리는 말했다. 예를 들어 1990년대 일본 정책당국자들이 신속히 금리를 인하하지 못해 급격한 경기하락의 충격이 커졌다. 수많은 주택보유자가 주택담보부 대출금을 갚지 못했고 은행은 신규대출을 중단했다. 영국도 같은 기간에 비슷한 사태를 겪었다. 가파른 금리인상 때문에(1년도 안 되는 기간에 배로 올랐다) 집값이 폭락했다. 그 후 중앙은행이 훨씬 더 똑똑해졌다고 많은 전문가가 말한다. 글로벌 경제, 그리고 중앙은행이 그에 미치는 영향을 더 잘 이해하고 그런 그릇된 정책결정을 피할 만한 지혜를 갖췄다. 그보다 당초 일류 도시 부동산 호황을 초래한 세계화가 더 큰 위협이 될지도 모른다. 전 세계 중산층의 몰락 우려가 커지면서 자유무역과 자유화를 향한 반발, 그리고 보호주의 논리에 갈수록 힘이 붙는다. 유럽과 보통 개발도상국뿐 아니라 미국 같은 지역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 의회의 민주당 지도자들은 최근 콜롬비아·페루와 합의한 자유무역 협약의 승인을 유보할지도 모른다. 저가 수입품의 범람을 줄이려는 생각이다. 무역장벽과 통화관리가 다시 도입되면 의심의 여지 없이 세계 경제가 둔화되고 결국에는 주거용 부동산 시장도 주저앉게 된다.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1920년대 미국 부동산 경기는 보호무역 정책을 채택하면서 냉각됐다. 하지만 이는 대공황을 부르는 디딤돌을 제공했다. 당시 세계 최대 도시의 부동산 가격까지 하락했다. 모스크바에서 옛 공산당 시절의 임대 아파트를 구입하겠다는 대기자가 줄을 잇고, 런던의 고급 주거지구에서는 막힌 골목의 응달진 집조차 호가에 30% 웃돈이 붙어 판매되는 지금 그것은 새겨둘 만한 교훈이다. 세계의 유력가들이 자신들의 경제적 이득을 좀 더 빨리 골고루 파급시킬 방안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그들의 집값도 결국 타격을 입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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