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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호의 “책 속에 삶이…”] 한국인을 낯설게 바라보기

[남윤호의 “책 속에 삶이…”] 한국인을 낯설게 바라보기

▶진중권 지음 ·웅진 · 1만3,000원

선진국에서 몇 년간 살다 온 사람들은 한결같이 한국 사회에 대한 뭔지 모를 낯섦, 예민한 사람은 한국인에 대한 불편함과 거북함까지 느낀다고 한다. ‘빨리빨리’로 상징되는 조급증, 남을 배려 안 하는 무신경과 몰염치, 무조건 이기고 보자는 과잉 승부욕, 동방예의지국은 어느 신화에 나오는 얘기냐고 할 정도의 무례한 행동 등 사례를 들자면 이루 셀 수가 없다. 집 밖을 한번 나가보자. 길거리에 침을 탁탁 뱉는다. 파란 불이 켜지자마자 튀어나가지 않으면 영락없이 뒤차가 빵빵 거린다. 아파트에선 창문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쓰레기를 내던진다. 지하철에선 휴대전화를 잡고 자기 집 안방처럼 고함을 쳐댄다. 남을 툭툭 치며 걸으면서도 미안해 하지 않는다. 이런 모습을 본 선진국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 도대체 왜 이래”라며 분개할 만하지 않을까. 하지만 한 번 따져보자. 나 자신도 선진국에 다녀오기 전에는 바로 그런 사람이지 않았을까. 게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한국 사회에 적응할수록 그 낯섦이란 것도 무뎌지지 않나. 똑같은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호모 코레아니쿠스> 는 저자의 이 같은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한다. 물론 사적인 얘기와 감상을 늘어놓은 신변잡기는 아니다. 한국인으로서 한국인을 낯설게 바라보고 한국인의 특성을 이 구석 저 구석 파헤친다. 그가 뒤집어 보는 것은 일상생활만이 아니다. 기업 · 정부 · 학교 등 모든 조직사회에서 나타나는 한국인의 의식적 특징을 퍼즐 조각 맞추듯 찾아낸다. 저자는 시종일관 한국인의 의식이나 행태는 근대와 전근대의 불균형적 화합물로 구성돼 있음을 보여준다. 박정희 시대의 전근대적이고 군대식 의식구조가 21세기에서도 우리의 삶을 좌우하고 있다고 본다. 창의성과 개성을 중시해야 하는 시대인데도 군대식 집단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술을 마셔도 즐기기보다는 ‘다 같이 마시고 죽자’식으로 폭탄주를 돌리는 대다수의 남성들, 사장이 마라톤 성적을 고과에 반영한다고 하자 무리해 연습하다 숨진 한 근로자, 자신의 직업을 기능이 아니라 신분인양 착각하며 아무에게나 반말을 찍찍 내뱉는 판사, 신입사원 연수를 마치 해병대 훈련처럼 해야 한다고 믿는 기업 등등…. 저자는 이런 군상 속에 숨은 전근대적 의식 구조를 낱낱이 끄집어낸다. 동시에 겉모습은 멀쩡하게 근대적인 탈을 쓰고 있다는 점도 아프게 지적한다. 또 우리 의식 속에 전체주의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비가 그친 거리에서 하늘에 무지개가 걸리자 수많은 행인들이 일제히 디지털 카메라를 꺼내드는 모습에서, 영화 <괴물> 에 1,000만 명 이상이 몰려드는 현상에서 저자는 전체주의적 요소를 감지한다. 그렇다고 저자는 한국인의 의식이나 행태가 못났다고 매도하진 않는다. 품위 있게 전근대적이란 표현을 쓴다. 사실 둘 다 비슷한 말이다. 그가 내린 한국인에 대한 진단은 다음의 표현에 압축돼 있다. “한국인의 신체가 아무리 그로테스크해 보여도 오늘의 한국을 만든 것은 바로 그 몸이다. 다만 신체는 급조된 근대화에 따르는 부작용으로 고통받고 있고, 미래로 나아가야 할 시점에서 아직도 과거의 타성에 사로잡혀 있다.” 여기에서 벗어나 미래로 향하려면 한국인의 몸을 이루는 세 가지 역사적 층위, 즉 근대 · 전근대 · 탈근대가 최적의 배합을 이루도록 재배치돼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책을 죽 읽으며 현상을 짚어내는 통찰력과 원인을 파헤치는 분석력에 압도당한 독자는 이런 결론에 다소 맥이 빠지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저자에게 한국인의 의식 개조를 위한 처방을 내려달라고 할 수는 없다. ‘개조’란 말 자체가 무지막지한 전근대적 발상이 아닌가. 이 책을 읽다 보면 한국인으로서 자기 자신을 객관화하거나 3인칭으로 놓고 구석구석 바라볼 수 있다. 남은 훤히 보고 있는데 나만 못 보고 있는 ‘나’는 도대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그 궁금증을 이 책은 충분히 채워주고도 남는다. 다만 상당한 냉소가 섞인 탓에 독자에 따라서는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감동과 감격은 빨리 하면서도, 천착(穿鑿)과 성찰엔 서투르다고 스스로 생각한다면 한 번 읽어볼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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