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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찬’만 했을 뿐인데 대박이?

‘협찬’만 했을 뿐인데 대박이?

최근 SBS에서 가수 이효리 주연의 드라마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이 방영됐다. 드라마는 이씨의 신곡 발표에 맞춰 기획사 엠넷미디어가 거액을 들여 제작해 방송사에 무상으로 제공했다. 이씨는 백혈병에 걸린 가수 지망생으로 출연했고, 신곡은 배경음악으로 사용됐다. 드라마를 둘러싸고 방송가는 “드라마가 개인 홍보물이냐?” “새로운 형식을 갖춘 참신한 시도”라는 엇갈린 시각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사랑한다면~’은 지상파 드라마를 신곡 홍보용으로 이용한 최초이자 ‘PPL(Product Placement)’의 극단을 보여준 사례로 기록됐다. PPL은 제품이나 브랜드 로고를 드라마나 영화 등의 영상매체에 노출시켜 홍보효과를 노리는 마케팅 기법으로 국내에선 2000년대부터 활성화됐다. 미국은 1982년 개봉된 영화 ‘E. T’에 등장한 초콜릿이 개봉 3개월 만에 66% 매출신장을 기록하면서 본격 PPL 시대를 열었다. 우리나라는 91년 영화 ‘결혼이야기’에 삼성전자가 가전을 협찬하면서 PPL이 시작됐다. 99년 영화 ‘쉬리’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30개 업체가 PPL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이후 이 분야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이 급증했다. PPL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제품이나 장소 등을 협찬하는 경우와 제작비 지원 형식으로 현금 협찬을 함께 하는 경우다. 지상파 방송사가 자체 제작하는 프로그램은 방송법에 의해 현금 협찬을 받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반면 외주제작사의 경우 두 가지 PPL 모두 가능하다. PPL에 참여할 경우 TV 프로그램 마지막에 협찬사의 기업 이름(혹은 브랜드 이름)이 자막으로 뜨는데 ‘제작 지원’과 ‘협찬(협조)’ 두 종류가 있다. 드라마의 경우 화면 하단에 ‘제작 지원’이라는 제목으로 3~4초간 기업 이름을 띄우려면 최소 1억원에서 많게는 10억원의 협찬비를 지원해야 한다. 제품만 지원하거나 소액의 현금을 협찬한 경우 엔딩 자막이 올라갈 때 ‘협찬’으로 회사 이름을 알릴 수 있다. 이 경우 자막이 워낙 빠르게 올라가 업계에서 ‘미사일’이라 불린다. 따라서 시청자에게 전달력이 거의 없음에도 자금력이 크지 않은 중소기업들은 ‘협찬’에 이름을 올리기 위해 사활을 건다. 부수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립컴퓨터 판매를 전문으로 하는 인터넷쇼핑몰 (주)컴파라의 이상훈 차장은 7년째 방송사를 상대로 PPL 업무를 해 왔다. 그는 “1년에 통상 2~3건씩 제품 협찬만 해왔다. 컴퓨터는 외형이 회사마다 비슷해 큰 특징이 없기 때문에 PPL로 효과를 보기는 어렵다. 더구나 우리 회사는 조립 전문이기 때문에 내세울 브랜드도 없다. 그런데 계속 협찬하는 이유는 쇼핑몰에 ‘×× 드라마에 협찬한 제품’이라고 홍보해 소비자 관심을 끌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방송에 협찬한 회사라는 이미지가 쇼핑몰 신뢰도를 높이는 효과도 있다”고 설명했다. 영화와 달리 불특정 다수 시청자를 상대로 하는 TV 드라마의 경우 PPL은 방송법에 따라 엄격한 규제를 받는다. 하지만 일각에서 PPL이 안방 드라마를 상업적으로 물들이고 시청자를 제품에 강제 노출시켜 권리를 침해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2004년 방영된 드라마 ‘파리의 연인’과 ‘황태자의 첫사랑’, 이듬해 방영되어 일명 ‘비데 공주’라는 오명을 남긴 ‘루루 공주’가 연이어 과대 PPL로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그 파장이 국회로까지 번졌다.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의 방송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의원들이 PPL을 두고 ‘규제 완화’와 ‘규제 강화’로 팽팽히 맞서며 설전을 벌였던 것.

PPL 전문 대행사 100여 곳 방송, 광고업계, 기업과 시민단체, 시청자 등 각각 입장에 따라 PPL에 대한 찬반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지만 PPL 시장은 여전히 뜨겁고 경쟁이 치열하다. 특히 봄, 가을이면 PPL 시장은 더욱 달아오른다. 결혼 성수기를 맞아 가구, 주방가전 등 혼수제품들의 PPL 진입 경쟁이 봇물을 이루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방송사의 프로그램 개편 시기여서 PPL을 노리는 기업에 절호의 기회가 되고 있다. 마케팅 전문가들에 따르면 PPL은 비용 대비 노출효과가 매우 크다. TV의 직접광고 비용과 비교할 때 PPL이 20~30배 효과가 있다는 연구 보고도 있다. ‘파리의 연인’에서 박신양은 극중 ‘GD자동차’ 회사 사장으로 출연했다. 이때 국내 모 자동차 회사가 10억원을 협찬했다. 드라마가 성공하면서 협찬사 이미지 상승효과는 투자액의 수십 배가 넘은 것으로 업계에 알려졌다. 원래 타 자동차 회사에서 먼저 협찬 제의를 받았지만 주인공들을 둘러싼 복잡한 가정사가 자칫 회사 이미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거절했다. 그 회사는 뒤늦게 후회했다는 후문이 돌았다. 같은 드라마에 협찬한 휴대전화는 일명 ‘박신양 폰’으로 뜨면서 하루 1000대씩 팔려나가는 인기를 누렸다. 요즘 한창 잘나가는 한 화장품 업체는 과거 수입 화장품을 들여와 판매하던 사장이 대표로 있다. ‘올인’에 협찬한 수입 화장품이 말 그대로 ‘대박’이 나면서 회사를 세울 수 있었던 것. 2000년대 들면서 나타난 수입차 대중화 현상 또한 “드라마와 영화의 PPL 영향”이라는 것이 광고업계와 경제전문가들의 분석이다. PPL은 영화나 드라마 한 편의 단발효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케이블TV, 비디오 제작, 해외 수출 등 후속 시장을 통해 파급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어 매력적인 마케팅 수단으로 꼽힌다. 삼성, LG 등 대기업들이 거액의 협찬금을 내고 PPL을 하는 것도 동남아로 확산되는 한류 시장을 내다보기 때문이다. 모니터 제조업체 전 대표였던 신재민씨는 “동남아에서 열리는 해외 박람회 때 코트라 한국전시관에 우리 모니터를 가지고 간 적이 있다. 그때 부스에서 우리 제품을 협찬한 드라마를 틀어주면서 홍보활동을 벌였는데 반응이나 효과가 꽤 좋았다”고 회상했다.

뇌물 받고 간접광고 해주기도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는 지상파에서 방영되는 드라마 대부분을 제작하고 있는 30여 개의 굵직한 외주제작사가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이외에 소규모 제작사를 포함, 드라마 외주제작사는 50여 개에 달한다. 방송사나 외주제작사, 기업을 연결해 주는 PPL 대행사 가운데 드라마를 전문으로 하는 업체는 20곳, 기타 제품 홍보대행과 겸업하는 업체까지 따지면 100여 개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지상파 방송 3사가 1년간 방영하는 드라마 수는 40~50편이다. PPL 대행사 레인보우홀딩스 김주영 이사는 “40~50편 가운데 방송사 자체 제작물을 제외하면 PPL을 할 수 있는 게 20~25편 정도다. 그에 비해 PPL 대행사는 네 배 이상 많기 때문에 PPL을 따내기 위한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얻으려는 기업과 방송위 제재를 피해가려는 방송사 사이의 밀고 당기기가 치열한 가운데 PPL 대행사가 겪는 어려움도 적지 않다. 김주영 이사는 “기업의 요구에 따라 신제품 출시 타이밍도 맞춰야 하고, 최대한 제품이 돋보일 수 있는 드라마를 골라야 한다. 또 노출이 많은 주인공을 중심으로 제품을 배치하려면 쉽지 않다. 방송 3사 프로그램 편성표를 사전에 입수하고 드라마 무대와 인물 분석을 하는 건 기본”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PPL이 성공하면 그만큼 보람도 크다. ‘파리의 연인’에서 히트했던 대형 돼지저금통의 경우가 그것. 김 이사는 “업체가 대형 저금통을 제작한 이유는 ‘파란만장 미스김 10억 만들기’에 협찬하기 위해서였다. 이게 불발되고 ‘파리의 연인’에 협찬하게 됐다. 처음엔 저금통이 너무 커 협찬 제품으로 쓰기가 망설여졌다. 그런데 촬영장에 갖고 갔더니 박신양씨가 보고 재미있어 해 얼떨결에 선택됐다”고 했다. 영세업체로 저금통만 생산했던 회사는 이후 다른 아이템에도 손을 대는 등 사업을 확장했다. 김 이사는 “영세업체가 PPL을 통해 빛을 보면 뿌듯하고 애착이 간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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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L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이를 둘러싼 잡음과 해프닝도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검찰은 드라마 외주제작사로부터 억대의 돈을 받고 드라마에 간접광고를 해준 혐의(배임수재)로 모 방송국 전 드라마 PD 김모씨와, 같은 방송 자회사 소품담당 총감독 박모씨를 구속 기소했다. 같은 혐의로 모 외주제작사 전 PD 등 2명도 불구속 기소됐다. 지난 3월에는 유명 드라마 작가가 외주제작사 대표로부터 인격권을 침해당하고 부당하게 대본 집필을 강요받았다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법원에 냈다. 사정에 밝은 방송 관계자는 “작가는 이미 구성안을 다 만들어놓았데 외주제작사가 협찬이 여의치 않자 PPL을 끌어오려고 갑자기 원고 내용을 바꾸라 해서 갈등이 불거졌다. 유사한 사례는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적지 않다. 실제로 드라마 무대나 주인공의 직업군 등이 바뀌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귀띔했다. 경력 20년차인 이모 작가는 “시놉시스를 넘기면 등장인물 수를 좀 줄일 수 없겠느냐고 PD한테 전화가 온다. 그런 일을 몇 번 겪다 보니 아예 작품 구상 때부터 최소한의 인물만 배치하게 된다. 뒤늦게 인물을 빼게 되면 뼈대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다른 작가들도 똑같이 겪는 일”이라고 했다. MBC미술센터 소품담당 이규상씨에 따르면 협찬금은 통상 계약금과 중간지급으로 나눠 지불된다. 그런데 드라마 시청률이 저조해 조기 종영될 경우 협찬사가 남은 돈을 지불하지 않고 거부하는 경우가 있다. 자사 제품이 화면에 잘 안 나와 PPL 효과를 못 봤다며 돈을 못 주겠다는 업체도 있다. 이런 경우 기업과 제작사 사이에 갈등이 불거지고 소송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그는 “2000년대 들어 PPL 대행사가 난립하기 시작했다. 인허가 등 시장 진입 장벽이 없어 사무실만 있으면 누구든 일을 할 수 있고 심지어 1인 업체까지 등장했다. 우후죽순으로 영세업체가 느는 바람에 기업이나 광고회사에서 받은 협찬금을 제작사에 주지 않고 중간에서 가로채 소송을 당하는 업자도 있다”고 덧붙였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PPL에 적극적인 곳이 지방자치단체다. ‘모래시계’로 정동진이 급부상한 이후 전국 곳곳에 세트장이 들어서는 광경이 연출됐다. 세트 부지를 무상 제공하고 수십억원씩 협찬해도 차후 관광지로 활용할 수 있고, 전국적으로 지역 특산물을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는 등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특히 한류 바람으로 해외 관광객까지 유치할 수 있어 지자체들의 경쟁이 뜨겁다. 최근 케이블TV가 자체 드라마 제작에 열을 올리고 온라인 게임을 대상으로 한 PPL이 관심을 끄는 등 PPL 시장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PPL을 통해 수익을 올릴 목적으로 드라마 펀드가 생겨나는 등 시장규모도 커지는 추세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지난해 방송위는 ‘간접광고 관련 세부 심의 기준’을 제정하고 규제를 완화했다.

PPL 시장 양성화 방안 시급 평가심의국 김양하 부장은 “과거와 달리 TV 드라마에서 제품 로고나 브랜드명이 일회성으로 단순 노출되거나 자연스러운 흐름에 의해 노출될 경우 크게 규제하지 않는다. 대신 의도적이고 지속적으로 노출하는 경우 과거에 비해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고 했다. 2005년 국회에서 문화관광부 장관이 방송의 중간광고와 간접광고를 허용할 뜻을 내비쳤다 의원들로부터 집중포화를 받고 정정하는 소동을 빚었다. MBC 미술센터 이규상씨는 “조만간 TV 리모컨을 이용한 쌍방향 서비스 T커머스가 실시될 것이고 인터넷, 케이블 등 다매체 시대가 되면 필연적으로 PPL 허용 분위기가 뒤따라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부 비판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PPL은 지금 진화 중이다. 신제품이 나오기 전 단계인 신제품 개발 컨셉트와 아이디어 이미지를 제품 출시 몇 개월 전에 보여줌으로써 미래의 소비자인 시청자에게 이미지 및 브랜드를 간접적으로 광고하는 APPL(Advanced Product Placement) 기법이 최근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마케팅 전문가들은 “한류 드라마의 산업적 효과, 드라마 PPL을 통한 국내 제품의 해외수출 실적 제고를 위해 적절한 기준 아래 PPL 시장을 양성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PPL의 효과적 활용 방법


노골적 노출은 반감만 키워
기업의 모든 소비자 커뮤니케이션 활동은 자사 브랜드에 대한 인지도 제고나 호의적 이미지 구축 단계를 거쳐 최종적으로 소비자의 구매를 목적으로 한다. PPL이 브랜드 회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대부분 연구에서 입증되고 있다. 그러나 PPL은 일시적으로 매출 증대효과가 있지만 드라마나 영화 종영 이후까지 지속적으로 매출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반면 브랜드 인지도 제고나 브랜드 회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대부분 연구에서 입증되고 있다. 따라서 PPL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려면 몇 가지 알아둘 것이 있다. PPL에는 신제품이 효과적이다. 인지도를 단시간에 대중에 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세계 유수 기업들이 자사의 신제품을 소비자에게 알리기 위한 방편으로 거액을 들여 영화와 드라마로 눈을 돌리는 이유가 여기 있다. 흔히 PPL에서 노출되는 제품의 경우 일반적으로 노출되는 횟수가 많을수록 브랜드 인지도가 높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의도된 연출에 의한 지나친 제품 노출은 오히려 브랜드 이미지에 해를 미칠 가능성이 크다. 시청자들이 단번에 의도를 눈치채고 거부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전개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라 적합한 상황에서 출연 배우의 연기와 더불어 노출될 때 가장 효과적이다. 일반적으로 기업이 드라마 대본이나 영화 시나리오에 간섭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기획 단계부터 제작사 측과 긴밀하게 협조한다면 자연스러운 노출 포인트나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염두에 둘 점은, PPL은 단순히 일시적 제품 노출 차원에서 이뤄져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제품 노출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다른 마케팅 활동과의 적극적인 협력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PPL은 통합적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 PPL에 의한 소비자 관심이 증폭되도록 지속적이고 시의적절한 화제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화제는 소비자의 호기심을 자극해 구매로 유도할 가능성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박정현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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