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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빌릴 곳 없는 서민에겐 ‘그림의 떡’

돈 빌릴 곳 없는 서민에겐 ‘그림의 떡’

▶1998년 이자제한법이 폐지된 후 시민들은 법의 부활을 주장해 왔다.

재정경제부에서 파악한 우리나라 미등록 대부업체 수는 2006년 기준 최대 4만5000여 개에 달한다. 시장 규모만 10조원이 넘는다. 여기에 개인 간 거래까지 더하면 그 규모가 얼마나 큰지 짐작하기 어렵다. 국내 금융기관들은 각기 다른 대출 이자율을 적용한다. 은행 8~14%, 신용카드사 20~28%, 캐피털 20~50%, 저축은행 30~60%, 대부업체 40~66%, 불법 대부업체 및 민간 사채업자 67%~그 이상 등이다. 금융감독원이 채무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알려진 것보다 높다. 지난해 등록업체는 181%, 미등록업체는 217%의 평균 이자율을 기록했다. 대부업체의 높은 이자는 과거부터 심각하게 제기돼 온 문제다. 지난 3월 29일, 1998년에 폐지됐던 ‘이자제한법’이 9년 만에 새롭게 제정되면서 이자율 규제 문제에 불이 붙었다. 이자제한법은 대부업체가 돈을 빌려주면서 받는 이자의 최고 한도를 정해 놓은 제도다. 미등록 대부업체와 개인 거래만을 대상으로 한다. 이자제한법의 주요 내용은 ‘계약상 이자율 한도를 연 40% 범위 안에서 정한다’는 것이다. 지난 6월 대통령령에 따라 그 한도가 30%로 정해졌다. 30%가 넘는 이자는 무효라는 얘기다. ‘서민 채무자들의 구세주’로 등장한 이자제한법은 6월 30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법을 제정한 목적은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없는 저신용 등급자들을 불법 대부업체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다. 정부가 의도한 대로 법이 잘 적용된다면 빌린 돈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범죄를 저지르는 일은 확연히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실제 법을 적용하는 데 한계도 있다. 형사 처벌 조항이 없다는 것. 이자제한법은 민사상 효력만 갖는다. 초과한 만큼의 이자를 돌려받으려면 채무자가 부당이득반환 소송을 청구해야 한다. 돈이 없어 대부업체를 찾은 서민들에게 재판진행 비용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등록 대부업체 단체인 한국대부소비자금융협회의 이재선 사무총장은 “피해 구제를 받아야 할 당사자들에게 이자제한법은 ‘그림의 떡’”이라고 표현했다.

등록업체도 안 지키는 이자율 규제 현재 시행되고 있는 대부업법에 따르면 등록 대부업체의 이자율 한도는 66%다. 미등록 대부업체가 대부업 등록을 하면 36%의 이자를 더 받을 수 있게 되는 셈이다. 김연준 재정경제부 보험제도과 사무관은 “등록업체와 미등록업체 사이의 이자율 격차를 법으로 인정해 미등록업체의 등록을 유발하려는 것”이라며 이자제한법 시행의 취지를 설명했다. 현재까지 알려진 대부업 등록률은 30%에 못 미친다. 2002년 대부업법이 제정되고 현재까지 1만7000여 개의 대부업체가 등록했다. 하지만 이자제한법이 시행되면 미등록 업체들이 과연 등록 쪽으로 눈을 돌릴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법을 피해 음성적 대부업자가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이 사무총장은 “미등록 대부업체와 개인 거래자들은 제도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며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30%든 66%든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라고 회의적 반응을 보였다. 현실에서 효력이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또 이 사무총장은 “30% 이자율 한도를 아예 0%로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등록 대부업체들도 66% 이자율 한도를 지키지 않는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이자율 한도 초과로 피해를 본 건수가 387건이다. 대부업법이 제정된 2002년에 889건, 2003년에는 1126건으로 오히려 피해가 늘었다. 66% 제한을 지킨 사례는 전체 대출의 19%에 머물렀다. 등록 대부업체도 관리감독이 제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서 음지의 미등록업체를 제도화하는 것은 무리라는 주장이다. 한 대부업계 관계자는 “대부업은 채무자 한 명 한 명을 따로 관리하느라 비용이 많이 들고 다른 곳에서 사채를 끌어다 돈을 빌려 줄 정도로 자금 조달이 어렵다”며 “그런 업체들은 이자제한법이 시행돼도 이자율 한도를 지키기 어려울 것”이라고 알려줬다. 내심 이자제한법 시행을 원하는 대부업체도 있다. 자금 여유가 있는 대형 업체들은 이 기회에 이자율을 낮춰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계산이다. 이런 업체들은 투명한 거래를 강조한다. 소규모 업체보다 채무자의 신용도도 높다. 거래에 따르는 위험이 작을수록 이자율은 낮아지기 때문. 신용불량자인 양모(45)씨는 이자제한법 시행을 두고 “나처럼 신용상태가 나쁜 사람은 돈을 빌릴 수 있는 곳이 지금보다 적어진다”며 “결국엔 법을 무시하고 1000% 이상의 높은 이자를 요구하는 대부업체들을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자제한법은 누구를 위한 규제인가. 시장을 무시한 간섭은 아닌가. 6월 30일 이후 어떤 형태로든 그 모습이 드러날 것이다.


대부업체 불법 백태


감당하기 힘든 이자율 한도
돈 앞에선 법도 없다. 2002년 대부업법이 제정됐지만 대부업체들의 불법 행위는 잦아들 기미가 없다. 안웅환 금융감독원 유사금융조사반장은 “이자율 초과가 피해 사례 가운데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폭력과 협박을 통한 불법채권추심이 다음으로 심각하다. 충남에 사는 홍모(42)씨는 카드대금을 갚으려고 대부업자에게 300만원을 빌렸다. 이자율은 10일에 10%. 연 이자율로 바꿔 계산하면 360%가량이다. 홍씨는 “3개월이 지나자 도저히 이자를 감당할 수 없었다”며 “돈이 생기는 족족 이자를 붓는데도 연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자율한도 초과는 3년 이하 징역 혹은 3000만원 이하 벌금에 해당하는 불법 행위임에도 홍씨는 항의 한마디 하지 못했다. 김모(28)씨도 마찬가지. 대학원생인 김씨는 지난해 12월 대부업체로부터 500만원을 빌렸다. 각종 수수료와 선이자를 떼고 실수령액은 420만원. 4개월 후 원금을 갚으려는 그에게 대부업자는 700만원의 이자를 요구했다. 김씨는 억울했지만 500%가 넘는 연 이자율을 부담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직장인 황모(31)씨는 그보다 더했다. 1년 전 100만원을 빌린 황씨는 일주일에 20만원씩 이자를 냈다. 연 이자율을 따져보면 놀랍게도 1300%다. 황씨는 700만원이 넘는 이자를 다 치르고 두 달 후, 다른 대부업자에게 또다시 100만원을 빌렸다. 그는 “다시는 대부업체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처음보다 문을 두드리기가 오히려 쉬웠다”며 고개를 떨구었다. 황씨는 지금도 열흘에 15만원씩 이자를 내고 있다. 대구에 사는 김모(54)씨는 불법채권추심으로 피해를 보았다. 김씨는 대부업체에서 대출받은 후 자금 사정이 나빠져 개인회생절차를 밟고 있다. 대부업자는 김씨의 직장에 전화해 욕설을 내뱉기 일쑤였고, 동료들 앞에서 김씨에게 ‘뻔뻔한 사람’이라고 망신을 주기도 했다. 또 김씨의 아내에게 빚을 대신 갚으라고 강요했다. 김씨의 아내는 “욕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집으로 쳐들어오겠다고 협박하곤 했다”며 “전화 벨소리만 들어도 손이 떨린다”고 울먹였다. 김씨의 아내는 충격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한 상태다. 사생활에 큰 피해를 줄 정도의 불법채권추심 행위는 3년 이하의 징역 혹은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불법인 것을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맞서지 못했다. 대부업자들이 ‘억울하면 돈 갚아라’ ‘이자가 비싸면 다른 데 가서 알아봐라’는 식으로 배짱을 부리기 때문. 대부업체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는 금융감독원에 상담해 적절한 대응 방안을 찾아야 한다. 위의 피해 사례 가운데 세 건은 등록 대부업체가 저지른 일이다. 불법 행위는 등록ㆍ미등록 업체를 가리지 않고 벌어진다. 미등록 대부업체는 ‘업’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다. 불법 광고도 문제다. 금융감독원의 불법 대부광고 사이버감시단에 의하면 대부업체들은 ‘저축은행 수탁업체’ ‘법적보장! 수익성! 안전성! 100%!’ ‘미성년자 부모님 동의 없이 당일대출 가능’ 등의 광고 문구로 채무자들을 현혹한다. 김기열 금감원 수석조사역은 “허위 대부광고가 화제가 되기 시작한 것이 고작 서너 달 전”이라며 “그 전에는 관리감독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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