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 PEOPLE] 임직원과 함께 해병처럼 "도전"
[CEO & PEOPLE] 임직원과 함께 해병처럼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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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1. 1998년 7월 대한재보험 사장에 내정돼 회사 경영상태를 살펴보던 그는 깜짝 놀랐다. 아무리 외환위기 때라지만 그렇게 심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99년 3월까지 회계연도의 순손실이 2,800억원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그대로 가면 공적자금을 받거나 문을 닫을 판이었다. 박종원 사장은 ‘내가 이런 곳을 왜 찾아 들어왔나’ 하는 생각에 밤잠을 설쳤다. # 장면2. 2002년 10월 21일 경기도 용인의 레이크사이드 컨트리클럽 서코스. 원혁희(81) 코리안리 이사회 의장, 박종원 사장 등이 라운딩을 하고 있었다. 코리안리는 대한재보험의 새 이름. 박 사장이 파4인 14번 홀에서 이글을 잡았다. 원 명예회장이 그보다 더 기뻐하며 말했다. “사장이 이글을 했으니 앞으로 회사가 더 잘 되지 않겠어요. 기념패를 멋지게 만들어줄 테니 집에 가져가지 말고 꼭 회사에 두세요.” 박 사장은 98년 첫해에 회사를 소생시켰다. 이후 줄곧 흑자를 이어갔다. 2002년 3월 말에 마감한 회계연도엔 사상 최대인 681억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대주주인 원 의장이 기대한 대로 박 사장은 이후에도 회사를 꾸준히 내실있게 키워왔다. 그는 지난 6월 14일 주주총회에서 다시 선임되며 네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이글엔 운이 따라야 한다. 그러나 박 사장의 코리안리 경영실적은 실력이다. 이는 보험업계 평균을 훨씬 웃도는 장기 성장률에서 드러난다. 수입보험료 기준으로 코리안리는 박 사장 취임 이후 지난 9년간 연평균 약 13% 성장했다. 보험업계 전체의 성장률은 약 5%였다. 98년 3월 말까지 회계연도에 1조541억원이었던 수입보험료가 2006년 3월 말 마감한 회계연도엔 3조1,752억원으로 증가했다. 지난 회계연도까지 8년간 순이익 4,204억원을 거뒀다. 창립 이후 그전까지 36년 동안 올린 827억원의 약 5배를 달성한 것이다. 6월 중순 현재 코리안리 주식은 1만4,000원대에서 거래된다. 액면가 5,000원에서 500원으로 분할된 점을 감안하면 98년 7월 초 6,500원대와 비교해 21배 이상이 된 셈이다. 국제적인 위상에서도 눈에 띄게 올라갔다. 보유보험료 기준 세계시장 순위가 13위로 10단계 뛰었다. 아시아 시장에선 2001년에 이미 일본의 토아리(東亞Re)를 제치고 선두를 차지했다. 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 앤 푸어스(S&P)가 평가한 신용등급은 BBB-에서 A-로 올라갔다. 10%를 밑돌던 외국인 지분이 40%대에 달한다. 주총 다음날인 15일 집무실에서 만난 박 사장은 “4연임은 내 영광이 아니다”라면서 “직원들과 한 방향으로 매진해 좋은 성과를 이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CEO로서 우리 회사 개개인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여건을 조성하고 자신감을 불어넣었다”고 자신의 역할을 설명했다. 박 사장은 코리안리 취임 전 재무관료로 25년 동안 일했다. 각오를 단단히 하고 코리안리에 취임한 그는 또 한번 놀라고 말았다. 코리안리에 만연한 공기업 같은 행태 때문이었다. 코리안리는 78년에 민영화된 뒤에도 제도적으로 보호받으면서 땅짚고 헤엄치기식으로 영업했다. 회사가 어려워진 다음엔 패배의식이 팽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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