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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 PEOPLE] 임직원과 함께 해병처럼 "도전"

[CEO & PEOPLE] 임직원과 함께 해병처럼 "도전"

▶ 1944년 경기 화성 生 · 숭실고 · 연세대 법대 · 행시 14회 ·재무부 재정융자과장 · 재정경제부 공보관 · 코리안리 사장(1998년 7월~)

금융업계에선 드물게 4연임에 성공한 박종원(63) 코리안리 사장. 그의 4연임 뒤에는 기록적인 경영실적이 있었다. 지난 9년 동안 외형을 연평균 약 13% 성장시킨 원동력이 뭘까.
# 장면1. 1998년 7월 대한재보험 사장에 내정돼 회사 경영상태를 살펴보던 그는 깜짝 놀랐다. 아무리 외환위기 때라지만 그렇게 심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99년 3월까지 회계연도의 순손실이 2,800억원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그대로 가면 공적자금을 받거나 문을 닫을 판이었다. 박종원 사장은 ‘내가 이런 곳을 왜 찾아 들어왔나’ 하는 생각에 밤잠을 설쳤다. # 장면2. 2002년 10월 21일 경기도 용인의 레이크사이드 컨트리클럽 서코스. 원혁희(81) 코리안리 이사회 의장, 박종원 사장 등이 라운딩을 하고 있었다. 코리안리는 대한재보험의 새 이름. 박 사장이 파4인 14번 홀에서 이글을 잡았다. 원 명예회장이 그보다 더 기뻐하며 말했다. “사장이 이글을 했으니 앞으로 회사가 더 잘 되지 않겠어요. 기념패를 멋지게 만들어줄 테니 집에 가져가지 말고 꼭 회사에 두세요.” 박 사장은 98년 첫해에 회사를 소생시켰다. 이후 줄곧 흑자를 이어갔다. 2002년 3월 말에 마감한 회계연도엔 사상 최대인 681억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대주주인 원 의장이 기대한 대로 박 사장은 이후에도 회사를 꾸준히 내실있게 키워왔다. 그는 지난 6월 14일 주주총회에서 다시 선임되며 네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이글엔 운이 따라야 한다. 그러나 박 사장의 코리안리 경영실적은 실력이다. 이는 보험업계 평균을 훨씬 웃도는 장기 성장률에서 드러난다. 수입보험료 기준으로 코리안리는 박 사장 취임 이후 지난 9년간 연평균 약 13% 성장했다. 보험업계 전체의 성장률은 약 5%였다. 98년 3월 말까지 회계연도에 1조541억원이었던 수입보험료가 2006년 3월 말 마감한 회계연도엔 3조1,752억원으로 증가했다. 지난 회계연도까지 8년간 순이익 4,204억원을 거뒀다. 창립 이후 그전까지 36년 동안 올린 827억원의 약 5배를 달성한 것이다. 6월 중순 현재 코리안리 주식은 1만4,000원대에서 거래된다. 액면가 5,000원에서 500원으로 분할된 점을 감안하면 98년 7월 초 6,500원대와 비교해 21배 이상이 된 셈이다. 국제적인 위상에서도 눈에 띄게 올라갔다. 보유보험료 기준 세계시장 순위가 13위로 10단계 뛰었다. 아시아 시장에선 2001년에 이미 일본의 토아리(東亞Re)를 제치고 선두를 차지했다. 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 앤 푸어스(S&P)가 평가한 신용등급은 BBB-에서 A-로 올라갔다. 10%를 밑돌던 외국인 지분이 40%대에 달한다. 주총 다음날인 15일 집무실에서 만난 박 사장은 “4연임은 내 영광이 아니다”라면서 “직원들과 한 방향으로 매진해 좋은 성과를 이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CEO로서 우리 회사 개개인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여건을 조성하고 자신감을 불어넣었다”고 자신의 역할을 설명했다. 박 사장은 코리안리 취임 전 재무관료로 25년 동안 일했다. 각오를 단단히 하고 코리안리에 취임한 그는 또 한번 놀라고 말았다. 코리안리에 만연한 공기업 같은 행태 때문이었다. 코리안리는 78년에 민영화된 뒤에도 제도적으로 보호받으면서 땅짚고 헤엄치기식으로 영업했다. 회사가 어려워진 다음엔 패배의식이 팽배했다.
회사를 살려내기 위해서, 또 구성원들을 독려하기 위해서 칼을 대야만 했다. 조직을 통폐합하면서 282명이던 임직원을 197명으로 30% 줄였다. 과장급 이상 비율은 35%로 낮췄다. 현재 인원은 220여 명이다.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된 사람들이 연줄을 동원하면서 각처에서 압력이 들어왔다. 누구를 제외해 달라는 얘기였다. 박 사장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한 사람의 가장으로서 다른 가장들을 내치는 일이 정말 가슴 아팠어요.” 박 사장은 지난 9년 중 그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수술을 거치자 회사의 몸이 가벼워졌다. 직원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온실 속의 화초 같았던 직원들의 야성(野性)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박 사장은 해병 출신이다. 연세대 법대 2학년 재학 중에 자원했다. 그는 “해병으로 훈련받고 복무하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며 “미리 한계를 설정하지 않는 긍정적인 시각과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한다. 그는 구조조정 뒤 ‘해병대식 압박경영’에 돌입했다. 신상품 개발과 신규시장 개척, 해외영업을 독려했다. 코리안리는 임원배상책임보험을 개발했다. 보험사가 이를 팔도록 마케팅했다. 코리안리는 보험사가 받은 임원배상책임보험료의 일부를 재보험으로 유치했다. 또 각종 직능단체가 상호부조를 위해 만든 공제회를 공략했다. 그리고 공제회에게서 재보험을 가입 받았다. 해외시장 개척 실적은 국내보다 더 눈부시다. 98 회계연도에 5,000만 달러였던 해외로부터의 수입보험료를 지난 회계연도에 4억5,000만 달러로 9배 키워 놓았다. 박 사장은 아시아 재보험사 사장단 연례회의 때 중국 재보험사인 차이나리(ChinaRe)와 PICC 등의 사장들을 대상으로 직접 영업활동을 벌였다. 담당자들이 박 사장을 뒤따라 공략하면서 해외 수입보험료 중 중국이 차지하는 비율을 3% 미만에서 30%로 높여놓았다. 아울러 중동특수를 파고 들어가 건설공사와 관련된 보험을 따왔다. 박 사장이 구성원들을 밀어붙이기만 한 건 아니다. 그는 일을 잘할 여건을 갖춰 주었다. 연봉제와 인센티브를 도입했다. 해외 경영대학원 교육을 비롯한 전문성 함양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한 부서에서 5년 이상 일한 사람을 다른 부서로 보내는 순환근무제를 시행했다. “같은 업무를 오래 하다 보면 타성에 젖게 마련입니다. 잘못된 습관이 있더라도 본인들은 알아채지 못합니다. 새로운 도전에도 나서지 않죠.” 구성원들은 처음엔 “전문성이 떨어진다”며 순환근무제에 반대했다. 그러나 다른 부서에 배치된 직원들은 자신의 경험과 외부의 시각을 새 업무에 접목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국내시장만 바라보던 생명보험 관련 부서가 해외 쪽 일을 개척했다. 그는 분당 집에서 진돗개 세 마리를 키운다. 그 중 ‘진돌이’를 가장 사랑한다. 진돌이는 지난 3월 파보장염을 앓았다. 치사율이 80%에 이르는 병이다. 그는 진돌이를 동물병원에 한 주간 입원시켰다. 사경을 넘어온 진돌이는 이제 늠름한 성견으로 자라고 있다. 인터뷰에 앞서 5월 28일에 만난 박 사장이 들려준 이야기다. 그는 “코리안리를 사랑하는 까닭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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