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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 체감경기] 해외 수요 느는 기업 · 업종만 ‘온기’

[분야별 체감경기] 해외 수요 느는 기업 · 업종만 ‘온기’

정부가 발표하는 지표상으로는 경기가 살아나는 것 같지만 내수 · 투자 ·수출 현장에선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외환위기 이후 악화하고 있는 양극화 현상 탓에 ‘아랫목’과 ‘윗목’의 온도차가 확연해지고 있다. 명품 수요는 늘어나고 있지만 서민층이 자주 찾는 할인점 매출은 게걸음이다. 투자도 본격적인 회복세를 탄 게 아니다. 그나마 수출이 ‘불안한 상승세’를 이어가며 한국 경제를 견인하고 있다.
신발 전문 멀티숍인 ABC마트코리아의 안영환 사장은 요즘 출점 전략을 다시 점검하고 있다. 백화점 입점을 제외한 전국 32개 점포(5월 말 기준)의 실적이 지역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 수도권의 16개 점포 매출은 6월 중순까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 정도 늘었다. 반면 16개 지방 점포에서는 대개 제자리 걸음이거나 마이너스 5%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안 사장은 “신발이나 의류는 경기에 민감한데 서울 · 수도권과 지방의 체감 경기가 확연히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명품 수요는 급증, 할인점 매출은 제자리 = 지역뿐만 아니라 계층 간 ‘온도차’도 느껴진다. 중산층의 소비를 가늠해볼 수 있는 백화점 매출은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 백화점 매출은 어린이날 · 어버이날 등이 몰린 5월부터 회복세를 보이더니 6월 들어 좀더 나아지고 있다. 롯데백화점 본점은 5월에 3.6%로 올라가더니 6월 13일 현재 13%대로 뛰었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4월이 저점이라는 관측이 많지만 좀더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민층이 많이 찾는 대형 할인점 사정은 백화점만 못한 편이다. 이마트의 1분기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0% 늘었지만, 5월에도 2.5% 늘어나는 데 그쳤다. 삼성테스코 홈플러스의 매출 증가율도 5월에는 0.8%에 머물렀다. 이마트 관계자는 “6월 들어선 올해 들어 이어지고 있는 주가 상승과 더운 날씨 등에 힘입어 다소 살아날 조짐”이라고 밝혔다. 이와 달리 명품 매출은 두자릿수의 증가세를 보여 소비 양극화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5월까지 모든 점포의 명품 매출이 30%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현대백화점도 1분기 20%, 4월 17%, 5월 13%로 성장이 꾸준하다. 신세계백화점의 경우 본점 본관 개점에 힘입어 명품 판매가 4월 67.8%, 5월 90%나 늘어났다. 경기 상황을 잘 보여준다는 사무용 빌딩과 상가 시장도 내수 회복세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부동산 시장 사정에 밝은 한 유통업체의 A사장은 6월 초에 보증금과 월세를 기존 사무실보다 30%나 더 주고 근처의 비슷한 크기 건물로 이사했다. 그는 “경기가 좋아져 사무실 임대 수요가 늘었다기보다 부동산값이 오르면서 보증금과 월세도 덩달아 오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일본계 부동산 투자회사의 B대표는 “기업과 개인 상대 물건의 양극화가 심해졌다”고 말했다. 한국의 오피스 빌딩 시장은 경기가 좋아졌다기보다 경제 규모에 비해 좋은 물건이 적어 가격이 오르고 있다는 것. 반면 개인이 주로 투자하는 상가는 장사가 잘 되지 않아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는 분석이다.

투자도 업종별로 엇갈려 = 미래에셋자산운용의 구재상 사장은 “메릴린치 등 세계적인 투자 회사 사람들이 하나같이 삼성전자에 자사주는 제발 그만 사고 투자 좀 하라는 말을 전해달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구 사장의 말처럼 경기 회복을 이끌 투자도 회복세라고 말하긴 힘든 상황이다. 기계 · 건설 등의 부문이 회복세를 보여 4월 설비투자가 지난해 같은 달보다 두자릿수 늘었다. 하지만 한국 경제의 간판이랄 수 있는 반도체갟CD 쪽에서는 이미 발표한 투자 계획까지 철회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LG필립스LCD는 5,000억원 규모의 5.5세대 LCD 생산라인 투자 계획을 철회했다. 삼성전자도 지난해 발주한 8세대 설비 일부 반입 시기를 내년 초로 연기했다. 대규모 투자 경쟁으로 LCD 패널 값이 가파르게 떨어지면서 수익성이 나빠진 탓이다. LCD뿐만 아니다. D램 가격 폭락으로 올 2분기에 최악의 실적이 예상되는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대규모 장비 발주를 2분기 들어 자제하고 있다. 이에 따라 반도체 장비업체의 수주량도 급감하는 양상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반도체 투자비를 지난해보다 19%, LCD 설비 투자비를 45% 낮춘 상황이다. 반도체 검사장비업체 관계자는 “1분기까지만 해도 반도체 호황을 예상해 설비 투자를 늘릴 움직임이었지만 2분기 들어 발주한 장비의 납기마저 2~3개월 늦추고 있다”며 “하이닉스의 청주 공장을 빼고는 올해 이렇다 할 대규모 설비 투자가 없을 전망”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해외 수요가 늘어난 기업 사정은 조금 다르다. 대우종합기계를 인수한 두산인프라코어는 연구 · 개발(R&D) 투자비를 지난해 1,200억원에서 올해 1,800억원으로 50%나 늘려 잡았다. 창원 1공장에서는 100억원에 이르는 가공 기계를 새로 들여놨다. 다만 국내 경기가 좋아서 투자를 늘린 건 아니다. 중국을 비롯한 해외 매출이 급증하고 있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수출은 그나마 선방 = 경기회복의 열쇠를 쥔 수출 쪽은 그나마 훈풍이 불고 있다. 다만 마음을 푹 놓을 상황은 아니다. 재계 관계자는 “환율, 중국 긴축, 유가를 비롯한 변수가 많은데다, 자동차 · 반도체 · 조선 · 철강 ·기계 ·석유화학 6개 품목의 수출 비중이 절반이 넘어 안정성이 떨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걱정 섞인 목소리도 나오지만 조선겙퓬퀋기계 업체들은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특히 조선 부문의 수출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세계 1위 조선업체인 현대중공업의 경우 전체 매출에서 수출 비중이 80%가 넘는다. 올 들어 5월 말까지 모두 53억 달러어치의 물량을 따내 올해 목표(92억 달러)의 60%를 달성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예전엔 원자재 가격이 뛰면서 순이익이 떨어졌지만 요즘은 원자재 가격이 안정되면서 순이익도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조선업과 더불어 기계·플랜트 부문이 수출의 삼두마차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공작기계 산업은 지난 몇 년 동안 연 20%대의 수출 증가율을 보였다. 세계 3위 공작기계 업체인 두산인프라코어 관계자는 “중국을 비롯한 신흥 공업국에서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 담수설비 업체인 두산중공업도 두바이를 비롯한 중동에서 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1조원대의 수주를 기록했다. 김주형 LG경제연구원장은 “원화 강세에도 한국의 수출이 늘어나는 이유는 비선진국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수출이 잘 되고 있지만 뜻밖의 고민도 생겼다. 예컨대 조선업계가 달러를 긁어 모으면서 원화 강세 현상이 벌어져 반도체 · 자동차 등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는 탓이다. <월스트리트 저널> 은 6월 11일자 기사에서 “원 ·달러 환율이 2005년 이후 10%나 오르며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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