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EO 결단의 순간] ‘갑’ 인생 25년 “이제 ‘을’이 되자”
[ CEO 결단의 순간] ‘갑’ 인생 25년 “이제 ‘을’이 되자”
"당(정당)에 전문위원으로 파견 나갔을 때 여러 분야 사람을 만났습니다. 금융이 아닌 다른 세상을 알게 됐지요. 공직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두형(55) 한국증권금융 대표는 공무원 출신의 민간 기업 CEO다. 그것도 ‘모피아(재경부 마피아라는 뜻)’ 출신이다. “권력이오? 부담이겠지요. 이 자리에 오면서 결심했습니다. ‘을’이 되자. 고객과 직원에게 먼저 다가가자. 그리고 시장이 하는 말을 듣자.” 25년여 동안 국록(國祿)을 받으면서 ‘갑’에 익숙해졌을 법도 한데 이 대표에게선 권세(?)가 느껴지지 않았다. 권위는 있다. 공기업 이미지가 강한 한국증권금융의 체질 개선을 진두지휘하면서 직원들의 신뢰를 듬뿍 받고 있는 것. 이 대표가 민간 기업 경영에 욕심을 낸 것은 열린우리당에서 수석전문위원을 지낼 때다. 공무원을 천직이라 생각한 그였지만 넘치는 승부욕을 채우기에 공직 생활은 너무 정적이었다. 재경부 출신으로 먼저 기업 경영에 나선 강권석 중소기업은행장과 박종원 코리안리 대표가 이 대표의 결심에 불을 댕겼다. “나도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타올랐습니다. 언제까지나 공직생활을 할 수도 없었고요. 마침 2년 동안의 전문위원 임무를 마치고 본부로 돌아가야 했지요. ‘때가 왔구나’싶었습니다.” 고민한 기간은 2년이었지만 결단을 내리는 데는 이틀도 걸리지 않았다. 인생 좌우명인 ‘생각은 신중하게, 행동은 과감하게’라는 문구를 그대로 실천한 셈이다. 재경부 증권국에서 일한 경험이 자신감을 더욱 키웠다. 이 대표는 “이미 모든 일을 시장 중심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며 그때를 떠올렸다. 그는 “사장으로 취임하고서 결단을 내릴 일이 부쩍 늘었다”며 “내 결단에 따라 바로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기분 좋은 자극을 준다”고 말했다. 다른 이는 실적 때문에 머리를 쥐어뜯는데 기분 좋은 자극을 느낀다니, 그의 승부욕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아닌 듯했다. “경쟁에서 지고 나면 그날 밤잠을 설칠 정도였지요. 바둑 같은 잡기에서조차 톱(Top)에 가까운 실력을 지키려고 했으니까요.” 이런 이 대표의 승부욕이 한국증권금융을 바꾸고 있다. 한국증권금융은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회사다. 공적 업무를 다루고 있어 민간기업으로서 이미지는 옅다. 우스갯말로 ‘신이 숨겨놓은 직장’이라 불릴 정도로 시장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이 대표는 취임 후 이런 분위기를 깨고 ‘영업 강화’를 최우선으로 강조했다. “재무부에서 일할 때 한국증권금융의 업무를 대강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내부에서 회사를 보니 많은 변화가 필요하겠더군요. 일단은 회사를 외부에 드러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공보관 출신인 그는 홍보팀을 신설하고 회사 보도자료를 일일이 직접 챙겼다. 빨간 펜 첨삭도 마다하지 않았다. “예전에 종합금융회사가 있었잖아요. 도매금융을 다루는 곳이라 일반인들은 잘 모르지요. 한국증권금융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 고객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갈지 고민하고 있어요.” 이 대표는 한국증권금융에 처음 와서 ‘무거움’을 느꼈다고 했다. 조직이 안정되다 못해 정체할 수 있겠다는 위기를 느꼈다. 변화와 활기가 필요했다. “직원들이 직접 느끼는 게 제일 중요하거든요. 회사가 처한 문제를 인식하고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예상할 수 있어야 해요.”
| ▶ 1952년 출생. 서울대를 졸업하고 22회 행정고시에 합격. 1980년부터 재무부 공보관실, 증권국, 금융감독위원회 기획행정실장, 열린우리당 수석전문위원 등을 거쳐 지난해 11월 한국증권금융 대표로 취임했다. 재무부 시절부터 산을 찾았던 이 대표는 ‘등산 매니어’다. 몸을 지지해주는 등산용 로프를 보험에 빗대는가 하면 워크숍 장소를 직접 정하기도 한다. 물론 ‘산’으로다.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경영의 영감을 얻고, 직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한다. | |
이 대표는 세미나, 워크숍 등 토론의 장을 많이 열었다. 올해 들어 벌써 다섯 번째 워크숍에 다녀온 한국증권금융 직원들은 대화와 토론을 통해 서로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고 있다. “금융시장 환경이 변하고 있습니다.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잖아요. 그에 맞게 직원들도 변하고, 포트폴리오도 새롭게 짜야지요.” 한국증권금융은 현재 2조원 규모의 자산을 운용하고 있다. 그중 채권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이 대표는 이례적으로 외부에서 채권 전문가를 데려와 팀장 자리를 주었다. 또 주식운용팀을 신설하고, 자금관리실을 ‘부’로 승격했다. 우수한 인력을 뽑아 운용 파트에 포진하고, 신규 수익원을 발굴하기 위해 상품개발팀을 만들었다. 수익 포트폴리오를 짜기 전에 인력부터 재배치한 것이다. 이 대표는 “경쟁력은 결국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라며 개개인의 능력과 전문성을 강조했다. 그는 “전체 업무의 70%가 경쟁 업무”라며 “단순한 경쟁을 넘어 경쟁사와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상생 사업을 개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우증권, 현대증권으로부터 1조60억원의 CMA(종합자산관리계좌) 자금을 예수하기도 했다. “증권사는 우리 최대주주이자 고객입니다. 금리 등 다른 부분에서 경쟁사보다 불리한 점을 서비스로 채워가야지요.” 공직에서 민간기업으로 자리를 옮긴 이 대표처럼 한국증권금융도 공적 업무보다 민간 업무에 힘을 쏟고 있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공적 업무는 줄어들 겁니다. 대출업을 강화하고 유가증권 투자를 확대해 수익을 늘릴 계획입니다.” 증권회사에 자본을 공급하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겠다는 얘기다. 즉, 자본시장에서 증권사들의 은행이 되겠다는 것. 그 일환으로 추진한 사업이 증권사 소액지급결제 창구가 되겠다는 것이었다. 결국 지난 6월 한국증권금융을 통하지 않고 증권사들이 개별적으로 소액지급결제를 할 수 있게 돼 이 대표의 계획은 무산됐지만 그는 보다 큰 목표에 집중했다. “수익을 노리고 소액지급결제를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 자본시장통합법 시행 이후 경쟁자이자 고객인 증권사와 함께하면서 자연스럽게 증권업계에서 한국증권금융의 존재 이유를 찾고자 한 것 뿐이에요. 고객을 위한 서비스 차원에서 말이지요.” 이 대표의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그가 공무원에서 민간 CEO로 변신했듯이 그의 두 번째 결단이 주목된다. 그는 다시 ‘때’를 기다리고 있다.
한국증권금융은… |
증권시장의 보이지 않는 큰손 한국증권금융은 1955년 설립된 국내 유일의 증권금융 전담회사다. 증권시장의 자금 공급을 기본으로 고객예탁금·우리사주관리 등 공적 업무와 증권담보금융·유통금융을 통한 증권산업지원, 일반고객금융 등 다양한 금융 업무를 맡고 있다.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두형 대표를 새 수장으로 들인 후, ‘2011년 자산규모 100조, 순이익 1100억, 자기자본 1조, 예수금 10조’를 중장기 목표로 적극적 영업 전략을 펼치고 있다. 올 3월 새롭게 예수한 증권회사 CMA(종합자산관리계좌)가 두 달 만에 1조원을 돌파했고, 증권유통금융 분야에서 2000%가 넘는 성장을 보였다. 우리사주 지원대출과 일반담보대출도 꾸준히 늘고 있다. 대출·자산운용 수익을 늘리고, 도매금융을 특화하기 위한 증권사와의 상생전략도 추진할 계획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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