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자도 철수도 ‘펀드 전성시대’
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현재 국내 펀드 계좌 수는 1588만 개로 사실상 ‘1가구 1펀드’ 시대가 됐다. 저금리, 고령화의 영향으로 펀드가 ‘국민 재테크’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당분간 펀드 전성시대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금리가 인상되고는 있지만 여전히 낮은 수준인 데다 길어지는 노후를 보장할 만큼 충분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는 독자들의 펀드 투자에 도움을 주고자 한국펀드평가와 공동으로 ‘돈 잘 버는 펀드 50’을 선정, 소개한다.
#장면 1 = 올해 초 ‘미래에셋 3억 만들기 중소형주식’ 펀드에 가입한 김상원(45)씨는 최근 펀드 통장을 볼 때마다 흐뭇하다. 증시 활황에 힘입어 펀드 수익률이 무려 61%를 넘었기 때문이다. 7개월도 채 안 돼 투자원금 5000만원은 8065만원으로 불었다. 김씨는 상승장이 계속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하루하루가 즐겁다.
#장면 2 = 대기업 법인영업을 맡고 있는 유남영(35)씨는 고객사가 조만간 큰 건수의 계약을 체결할 것이라는 내부 정보를 듣고 해당기업에 4000만원을 투자했다가 반토막이 났다. 박씨는 자신의 보유자금 2000만원에 신용융자까지(2000만원) 받아 투자한 상태라 투자원금을 고스란히 날리게 됐다. 특히 자신과 함께 투자한 회사 동료들도 큰 손해를 입어 직장생활마저 곤혹스럽게 됐다.
#장면3 = 연초 강남 지역 30평형대 아파트에 투자한 최동산(41)씨는 여의도만 바라보면 속이 쓰리다. 증시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지만 자신이 투자한 아파트는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정책으로 오히려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 지금이라도 아파트를 처분하고 주식투자에 나서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담보대출과 마이너스 통장 등 빚과 갚아야 할 이자를 생각하면 머리만 아프다. 증시 활황과 함께 재테크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불패 신화로 불리던 부동산과 가계의 필수 재테크 상품으로 여겨졌던 예금은 지고, 주식투자 그중에서도 간접투자 상품인 펀드가 각광받고 있다. 최근 펀드 투자에 대한 시장의 관심은 가히 열광적이다. 시중자금의 이동 경로를 보면 펀드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확실히 알 수 있다. 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7월 20일 현재 펀드 설정액은 260조원으로 지난해 말 대비 26조원가량 늘었다. 영업일수(138일)로 계산하면 매일 1884억원 정도의 신규자금이 펀드로 유입된 것이다. 그야말로 펀드 전성시대라 부를 만하다. 특히 주식형펀드 자금 유입이 눈에 띈다. 올해 펀드에 투자된 신규자금 중 84%인 22조원이 주식형펀드에 집중됐다. 이에 반해 주식 직접투자 대기 자금이라 할 수 있는 고객예탁금은 연초 대비 6조원가량 증가하는 데 그쳤다. 주식 직접투자보다는 간접투자가 더 인기를 끈 셈이다. 김덕수 우리투자증권 명동지점 부장은 “증시가 활황을 보이고 있지만 주식투자는 과거와는 다른 패턴을 보이고 있다”며 “주식 직접투자보다는 오히려 간접투자인 펀드를 선호하는 고객이 많다”고 전했다. 예금과 부동산은 오히려 감소했다. 시중은행들의 주요 운용자금인 요구불예금은 올 상반기에만 5조원 이상 줄었다. 이는 개인들의 투자 패러다임이 예금에서 투자로 바뀌고 있다는 방증이다. 부동산 투자도 마찬가지다. 개인들의 부동산 투자 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아파트 거래량은 올 들어 감소세가 뚜렷하다.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전국 아파트 거래량은 17만2000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6.5%가량 줄었다.
주식 직접투자보다 펀드 선호 김정민 미래에셋증권 잠실 지점장은 “예금, 부동산 등을 처분하고 펀드 투자에 나서려는 고객이 점점 늘고 있다”며 “저금리, 고령화 등의 영향으로 개인들의 재테크도 큰 변화가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시중자금이 펀드로 집중되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여타 재테크 수단에 비해 상대적으로 투자수익률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부동산, 주식, 펀드, 예금 등 주요 재테크 중 가장 돋보이는 성과를 보인 것은 단연 펀드다.
주식 직접투자 수익률의 척도가 되는 종합주가지수는 올 상반기 21.55% 올랐다. 국내 주식형펀드의 수익률은 이보다 4%포인트 높은 25.55%(설정액 50억원 이상 펀드의 평균 수익률)를 기록했다. 가장 성과가 좋은 펀드는 ‘미래에셋 3억 만들기 중소형주식’ 펀드로 수익률이 무려 43.91%에 달했다. 가장 저조한 펀드도 은행 적금의 이자수익률보다 4배가량 높은 12.79%의 수익률을 올렸다. 부동산(집값)은 정부의 부동산 억제정책으로 상반기 전국 평균 수익률이 1.7%에 머물렀다. 그나마 가장 높은 수익률을 보였던 곳은 의정부로 14.3%를 기록했다. 주식형펀드 중 가장 저조한 펀드와 비슷한 수익률을 보인 셈이다. 박현철 메리츠증권 펀드매니저는 “올 들어 펀드 투자수익률은 여타 재테크 수단들에 비해 우수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며 “투자 성과가 높게 나타나면서 펀드로의 자금 유입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펀드 투자가 각광받는 이유는 단순히 투자수익이 높아서만은 아니다. 펀드 투자의 최대 장점은 ‘전문가에게 투자를 맡긴다’는 점이다. 즉 펀드가 여타 재테크 수단들에 비해 안전하고 편리하기 때문에 돈이 몰린다는 것이다. 장인환 KTB자산운용 사장은 “초보 투자자들은 결과만 놓고 투자를 판단하지만 재테크를 잘하는 부자 고객들은 투자 대비 수익과 함께 효율도 따진다”며 “지난해 해외펀드 투자 열풍이 부자 고객들로부터 시작된 것도 펀드의 투자효율이 높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초보 투자자들은 ‘주식만 잘 고르면 펀드 투자보다 훨씬 낫다’는 주식 대박 환상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이 같은 환상은 결과적으로 낭패를 보기 쉽다. 개인 혼자서는 종목 선정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매매 타이밍, 주가 흐름 등을 제대로 파악하기도 힘들다. 개인투자자들이 외국인과 기관들에 비해 투자수익률이 저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재주는 개인이 부리고 돈은 외국인과 기관들이 가져가는 현상은 올해도 어김없이 이어지고 있다. 올 들어 증시가 거침없이 오르고 있지만 개인투자자들의 주식 직접투자 성과는 썩 좋지만은 않다.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7월 16일까지 개인투자자들이 순 매수한 종목보다 오히려 순 매도한 종목의 주가가 더 많이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안정성, 편리성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펀드 투자의 또 다른 장점은 ‘해외투자 등 개인 혼자서는 사실상 불가능한 투자도 펀드를 통해서는 가능하다’는 점이다.
|
2004년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이 시행된 이후 펀드 투자 대상은 주식, 채권은 물론 국내외 부동산, 물, 기후 등 모든 유·무형의 자산으로 엄청나게 넓어졌다. 이제는 ‘모든 재테크는 펀드로 통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투자 방식도 다양해졌다. 목돈을 투자하는 것은 물론 적금처럼 부담 없이 매월 소액을 투자할 수 있게 됐고, 차익 실현도 환매를 통해 한 번에 받을 수 있는가 하면 매월, 매분기, 매년 배당을 통해 받을 수도 있게 됐다. 신용일 도이치자산운용 사장은 “개인들이 할 수 없는 모든 투자를 펀드로 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며 “고객의 성향에 따라, 또 자금의 용도에 따라 얼마든지 펀드를 고를 수 있게 되면서 재테크의 대세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식이나 펀드 투자를 결정할 때 개인들이 가장 많이 고민하는 것이 바로 상품 선택과 타이밍(투자시점)이다. 최근처럼 주가가 많이 올랐을 때는 더욱 그렇다. 어떤 펀드를 언제 투자해야 할지가 수익률에도 큰 영향을 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펀드전문가들은 “펀드 투자를 결정했다면 타이밍은 재지 말라”고 강조한다. 펀드 투자 결과는 투자 시점이 아닌 투자 기간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또 펀드 선택 역시 전문가와 상담을 통해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충고한다. 이원기 KB자산운용 사장은 “항상 펀드 투자 시기는 바로 ‘현재’라고 생각해야 한다”며 “주가가 오르면 환매하고 떨어지면 가입한다는 발상 자체가 난센스”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펀드와 같은 장기 투자 상품은 투자 시점이 아닌 투자기간에 따라 수익률에 큰 차이가 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국내 대표 주식형펀드인 ‘미래에셋 인디펜던스주식’ 펀드는 최근 1주간 수익률이 2.42%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2001년 2월 14일 설정 이후 누적수익률(19일기준)은 647.39%를 기록 중이다. 6년4개월 만에 거둔 성적을 연 수익률로 따지면 100%가 넘는다. 1억원을 투자했다면 6년 4개월 만에 5억원가량을 벌어들인 셈이 된다. 같은 기간 종합주가지수는 199.24% 상승하는 데 그쳤다. 펀드 수익률이 증시 상승률의 3배나 되는 셈이다. 최상위권 펀드만 고수익을 올리는 것은 아니다. 지난 3년간 국내 주식형펀드의 평균 수익률은 150%가 넘는다. 3년 전 보통의 주식형펀드를 골랐어도 평균적으로 150% 수익을 냈다는 결론이다. 연 50% 수준이다. 펀드전문가들이 펀드에 투자하려면 투자 시점을 재지 말고 바로 지금 투자해 최소 3년 이상 묵혀두라고 충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민주영 미래에셋 투자연구소 팀장은 “펀드를 주식처럼 단기 대박 상품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며 “‘바로 지금’ 가입해 ‘3년 이상’ 장기간 넣어두고 투자전문가들이 시장 상황에 맞는 최적의 운용성과를 낼 것이라 믿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