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 사진 전시하면 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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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서울중앙지법(민사합의 10부)은 배용준, 이병헌, 최지우, 문근영, 김석훈씨 등이 일본 카바야식품 등을 상대로 “원고의 동의 없이 껌 판촉을 위해 뮤직비디오 DVD를 소비자들에게 배포했다”며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문제가 된 DVD 케이스 앞면에는 ‘한류뮤직무비껌’이라는 표제와 더불어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이들의 초상(김석훈 제외)이 실려 있었다. 재판부는 “DVD를 제작, 판매하면서 원고들의 허락 없이 그 초상을 케이스와 내부 리플렛 등에 삽입해 껌 판촉을 위한 영리목적으로 이용했고, 이러한 피고들의 행위는 원고의 초상권과 퍼블리시티권을 침해하는 불법행위에 해당된다”면서 “피고들은 손해배상을 할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원고와 피고 양측이 모두 항소한 이 사건은 현재 서울고등법원에서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어 지난 3월에는 전지현, 배용준, 송일국, 김태희씨 등 연예인 66명이 인터넷 업체를 상대로 7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집단소송을 제기해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소송 대상 업체는 사이버 모의증권 시장인 엔스닥. 엔스닥은 정치인, 기업인, 연예인, 운동선수 등 유명인의 인기도와 활동상을 주가로 표현해 거래한다. 소송을 제기한 연예인들은 “특정인을 물건처럼 사고팔 수 있도록 해 인간으로서 인격권을 침해한 것은 물론 영리 목적으로 동의 없이 사진과 이름을 게재해 퍼블리시티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해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최근 1~2년 사이 유명 연예인과 스포츠 선수 등이 제기하는 퍼블리시티권 침해 관련 소송이 폭증하고 있다. ‘퍼블리시티권’은 초상과 이름, 목소리 등 개인 정체성의 재산적 가치를 인정해 상업적으로 침해당하지 않을 배타적·독점적 권리를 말한다. 우리나라 법원이 퍼블리시티권을 최초로 인정한 것은 1995년 고 이휘소 박사의 미망인과 딸이 이휘소에 관한 소설을 쓴 작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다. 10여 년이 지난 최근에 와서 소송이 급격히 증가한 이유는 무엇일까. 남형두 연세대 법대 교수(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엔터테인먼트산업 발달로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들이 자신의 경제적 가치를 알게 됐고, 초상이나 성명 등에도 재산적 가치가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남 교수는 이휘소 사건의 피고 측 소송대리인을 맡았고, 한국법학원(법률연구 기관)이 발간하는 논문집(저스티스)에 ‘세계시장 관점에서 본 퍼블리시티권’ ‘퍼블리시티권의 철학적 기반’ 등의 논문을 발표하는 등 오랫동안 퍼블리시티권을 연구해 왔다. 연예인들의 잇단 소송에 일부 부정적 시선도 있다. 영화 ‘댄서의 순정’에 출연한 배우 문근영, 박건형씨가 “영화에서 춤추는 장면을 무단으로 광고에 이용해 초상권과 퍼블리시티권을 침해당했다”며 소송을 제기한 기사가 나가자 “너무한 거 아닌가? 그냥 영화 한 장면 CF에 내보냈는데 3억원씩이나 소송을 걸다니”라는 부정적인 의견도 있었다. 엔스닥 홈페이지에는 소송과 관련해 “언제부터 연예인들이 상품화됐는지 모르지만 팬이 있어 인기가 오르면 연예시장에서 부를 축적해야지 팬들의 눈으로 인기를 가늠하는 이곳에서 초상권 운운하는 사고방식으로 접근한다면 공인으로 대접받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간짜장)”라는 의견 글이 올랐다. 부정적 시선의 저변에는“억대 몸값의 스타가 공인으로서 돈을 너무 밝힌다”는 질시와 비판이 깔려 있다. 이는 퍼블리시티권에 대한 인식이 아직 우리 사회에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한데 우리나라에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하는 법이 없는 것도 한 원인이다. 퍼블리시티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고 소송이 급증하고 있지만 법원의 판결은 오락가락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혼란만 부채질하고 있다.
2005년 1월 가수 은지원씨는 “화보 촬영 사진을 허락 없이 광고 포스터와 플래카드에 사용해 퍼블리시티권과 초상권을 침해당했다”며 교복업체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수원지법(민사22 단독)은 “피고 업체는 원고의 사진이 있는 광고포스터 등을 제작, 게시함으로써 원고의 초상권을 침해했으므로 정신적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 주었다. 그러나 퍼블리시티권 침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는 기각했는데 “퍼블리시티권의 개념을 인정할 필요는 있지만 성문법주의를 취하는 우리나라에서 법률적 근거 없이 원고가 주장하는 퍼블리시티권은 인정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반면 배우 겸 탤런트 이영애씨와 광고모델 계약을 체결한 화장품 회사가 계약기간이 지난 후에 이씨의 초상을 광고사진으로 사용한 사건에서는 서울지방법원이 퍼블리시티권 침해에 따른 손해배상을 인정했다. 같은 권리를 놓고 재판부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 사례라 할 수 있다.
관련 법안 국회서 2년째 낮잠 판결이 오락가락하는 주원인은 우리나라에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하는 법 규정이 없고, 하급심에서 근거로 삼을 대법원 판례마저 없다는 데 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에 관련 법 규정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퍼블리시티권을 배척하거나 관습법에 따라 현실적으로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는 등 법원이 계속 갈지자 행보를 하고 있다. 취재 중 만난 몇몇 변호사는 “퍼블리시티권과 관련된 몇 건의 사건이 현재 대법원에 상고되어 있다. 또 대법원에서 재판연구관을 중심으로 특별팀을 만들어 퍼블리시티권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알려줬다. 그러나 법원행정처의 B판사는 “법안 개정과 관련해 국회에서 의견을 묻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 해당 부서 연구원이 답변하긴 하지만 퍼블리시티권과 관련한 대법원의 움직임에 대해 들은 바가 없다. 특별팀 얘기가 법조계에서 나왔다면 아마 법률연구공동조에서 하고 있을 것이다. 따로 확인한 것도 없고, 퍼블리시티권 관련 사건을 집계한 통계자료도 없다”며 말을 아꼈다. 남 교수는 “중구난방식 판결 때문에 대법원도 고민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법 규정에 없는 권리를 인정하라고 할 수도 없고, 유명인 얼굴이나 이름이 현실적으로 경제적 가치가 있으니 인정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국회만 바라보고 관련 법을 만들어주기를 기다리며 숙고를 거듭하는 까닭은 퍼블리시티권과 관련한 문제가 그만큼 중요하고 민감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국회 관계자는 “연예인 기획사와 법원이 입법을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퍼블리시티권 판결을 미루는 법원도 있다. 그 시기나 방법에서 키를 쥔 것은 정부다. 퍼블리시티권 인정이 대세임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관련 부처에서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고 불만스러워 했다. 2005년 11월 한나라당 박찬숙 의원(대표 발의)을 비롯한 국회의원 31명이 공동 발의한 퍼블리시티권 관련 법률안(저작권법 일부 개정 법률안)은 2년째 문화관광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박 의원은 “무분별한 초상 도용과 광고 등의 상업적 이용으로 유명인의 권리가 침해 당하는 사례가 늘고 있고 정당한 경제적 보상 또한 박탈되고 있다. 최근 한류 열풍으로 국제시장에서 문화 콘텐트의 산업적 가치가 높아지고 있어 법적인 장치에 의한 재산권 보호가 더욱 절실하다”고 법률안 제안 이유를 설명했다. 남 교수는 “퍼블리시티권을 누릴 주체를 일반인을 제외한 유명인으로 한정할 것인가, 퍼블리시티권의 보호 대상으로 개인적 특성(정체성)을 어디까지로 한정할 것인가, 양도성과 상속성 인정 여부, 상속성이 있다고 볼 때 요건과 보호기간은 얼마로 할 것인가 등 입법을 통해 일일이 세부 규정을 정하지 않으면 안 될 사안들이 많다. 이런 사안에 대해 찬반 논란이 활발한 가운데 충분한 논의가 이뤄져야 하는데 입법을 찬성하는 사람만 있고 반대하는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제대로 된 논의 없이 섣불리 입법하면 무리가 따른다”고 지적했다. 엔터테인먼트법 전문 홍승기 변호사(법무법인 세진)는 “퍼블리시티권은 전 세계를 무대로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발달한 미국에서 주로 논의되는 것이다. 그런데 퍼블리시티권 적용 법이 주마다 다르다. 영국은 퍼블리시티권을 따로 두지 않고 기존의 법으로 보호하고 있다. 최근 한류를 내세워 입법을 찬성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류는 주로 동남아 국가들에 퍼져있다. 그 나라들과 상호 입법이 돼야 퍼블리시티권이 제대로 보호받을 수 있는데 이들 나라는 관련 법이 없다. 한류 거품이 언제 꺼질지 모르는데 국내에서 퍼블리시티권을 입법하면 미국에 의해 자칫 우리의 발목을 잡힐 수 있다. 퍼블리시티권의 입법은 시기상조”라며 입법을 반대했다. 홍 변호사의 견해는 상임위의 개정안 검토 단계에서 지적된 부분이기도 하다. 법안을 검토한 전문위원은 “국내 유명인의 초상은 동남아에서 보호받지 못하면서 서구인 초상만 국내에서 보호받는 역효과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입법 필요성 여부와 별도로 현실적 부분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의원 측 김덕중 보좌관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앞두고 퍼블리시티권 입법에 오히려 우리가 수세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하지만 미국을 놓고 입법의 역효과를 주장하는 부분은 객관적으로 입증할 자료가 나와 있지 않다. 입증할 자료가 없는 상태에서 입법의 시기상조를 얘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한류 문제를 떠나 퍼블리시티권의 본질은 경제적 이득이 있는 곳에 대가가 있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잠을 자는 사이, 쏟아지는 법원 판결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퍼블리시티권의 범위를 너무 폭넓게 인정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남 교수는 “미국은 70~80년에 걸쳐 퍼블리시티권의 인정범위가 확대돼 왔는데 우리는 불과 10여 년 만에 너무 넓게 인정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적당한 균형이 필요하다”며 두 가지 사례를 예로 들었다. 지난 1월 서울중앙지법(민사82 단독) 홍이표 판사는 연예기획사 컬트엔터테인먼트가 “SBS ‘웃찾사’의 ‘따라와’ 코너에서 소속 개그맨들이 선보인 동작과 대사를 모방한 광고를 제작, 게시했다”며 SK텔레콤 등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홍 판사는 판결문에서 “해당 개그맨들은 이 코너를 통해 음성, 동작, 실연 스타일 등 총체적 인성에 대한 상품적 가치인 퍼블리시티권을 갖게 됐다. 이를 무단으로 모방해 광고를 제작한 것은 퍼블리시티권 침해로 인정된다”고 밝혔다. 개그맨 정준하씨는 “내 얼굴을 형상화한 캐릭터를 이동통신사에 무단 제공해 수익을 올렸다”며 모바일 콘텐트 제작업체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퍼블리시티권 침해를 인정받아 일부승소 판결을 받았다.
개그맨 동작 모방한 광고도 안 돼 남 교수는 “유행어나 실제 초상이 아닌 그 사람을 연상시키는 것(캐릭터)까지 인정하는 등 너무 급작스럽게 퍼블리시티권이 팽창하고 있어 염려스럽다. 법에서 인정한 표현의 자유와 충돌을 고려할 때 과연 이렇게까지 인정할 필요가 있는가 논란을 불러오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표현의 자유’에 영향을 준 사례가 있었다. 현대미술작가 이동재씨는 박지성 선수의 초상을 한 달에 걸쳐 쌀알을 붙여 완성했지만 “퍼블리시티권 침해에 해당할 수 있다”는 변호사의 조언을 듣고 전시회 출품을 포기했다. 홍 변호사는 “우리 연예인들의 권리의식이 과잉상태라고 본다. 퍼블리시티권은 우리나라 전반적인 연예산업 시장과 걸맞게 점진적으로 변화하면서 확대, 인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립국어원(원장 이상규)은 최근 ‘퍼블리시티권’의 우리말로 ‘초상사용권’을 선정했다. 하지만 박찬숙 의원은 개정안에서 ‘초상재산권’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미국의 예에서 따온 ‘퍼블리시티권’을 원래대로 사용하자는 등 용어조차 통일되지 않고 있다. 그 사이 퍼블리시티권이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무심코 연예인의 얼굴이나 목소리, 이미지 등을 이용한 기업이 엄청난 손해배상에 내몰리고 있다. 수십 명의 연예인에 의해 ‘7억 청구’ 집단소송을 당한 엔스닥 김태훈 대표는 “지난해 4월 모의증권 시장을 개장했다. 이전에도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유사 사이트가 있었기 때문에 퍼블리시티권 침해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다만 초상권에 대한 약간의 염려가 있었지만 무료로 운영하고 있고, 팬을 비롯한 일반인의 관심을 반영한 공익성을 추구한다는 생각으로 크게 문제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연예인들이 인격권과 퍼블리시티권 침해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지금까지 상황으로 봐서 인격권에 더 큰 비중을 두는 것 같다. 재판부에서 중재를 시도하고 있지만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며 답답해 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퍼블리시티권은 갈수록 확대되고 확산될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홍 변호사는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너무 쉽게 이미지가 도용되고 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은 퍼블리시티권을 입법하든 안 하든 초상권 자체에 의해 남의 이미지를 함부로 쓰는 것이 불법이기 때문에 본인 허락 없이 절대 함부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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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법안 국회서 2년째 낮잠 판결이 오락가락하는 주원인은 우리나라에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하는 법 규정이 없고, 하급심에서 근거로 삼을 대법원 판례마저 없다는 데 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에 관련 법 규정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퍼블리시티권을 배척하거나 관습법에 따라 현실적으로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는 등 법원이 계속 갈지자 행보를 하고 있다. 취재 중 만난 몇몇 변호사는 “퍼블리시티권과 관련된 몇 건의 사건이 현재 대법원에 상고되어 있다. 또 대법원에서 재판연구관을 중심으로 특별팀을 만들어 퍼블리시티권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알려줬다. 그러나 법원행정처의 B판사는 “법안 개정과 관련해 국회에서 의견을 묻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 해당 부서 연구원이 답변하긴 하지만 퍼블리시티권과 관련한 대법원의 움직임에 대해 들은 바가 없다. 특별팀 얘기가 법조계에서 나왔다면 아마 법률연구공동조에서 하고 있을 것이다. 따로 확인한 것도 없고, 퍼블리시티권 관련 사건을 집계한 통계자료도 없다”며 말을 아꼈다. 남 교수는 “중구난방식 판결 때문에 대법원도 고민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법 규정에 없는 권리를 인정하라고 할 수도 없고, 유명인 얼굴이나 이름이 현실적으로 경제적 가치가 있으니 인정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국회만 바라보고 관련 법을 만들어주기를 기다리며 숙고를 거듭하는 까닭은 퍼블리시티권과 관련한 문제가 그만큼 중요하고 민감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국회 관계자는 “연예인 기획사와 법원이 입법을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퍼블리시티권 판결을 미루는 법원도 있다. 그 시기나 방법에서 키를 쥔 것은 정부다. 퍼블리시티권 인정이 대세임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관련 부처에서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고 불만스러워 했다. 2005년 11월 한나라당 박찬숙 의원(대표 발의)을 비롯한 국회의원 31명이 공동 발의한 퍼블리시티권 관련 법률안(저작권법 일부 개정 법률안)은 2년째 문화관광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박 의원은 “무분별한 초상 도용과 광고 등의 상업적 이용으로 유명인의 권리가 침해 당하는 사례가 늘고 있고 정당한 경제적 보상 또한 박탈되고 있다. 최근 한류 열풍으로 국제시장에서 문화 콘텐트의 산업적 가치가 높아지고 있어 법적인 장치에 의한 재산권 보호가 더욱 절실하다”고 법률안 제안 이유를 설명했다. 남 교수는 “퍼블리시티권을 누릴 주체를 일반인을 제외한 유명인으로 한정할 것인가, 퍼블리시티권의 보호 대상으로 개인적 특성(정체성)을 어디까지로 한정할 것인가, 양도성과 상속성 인정 여부, 상속성이 있다고 볼 때 요건과 보호기간은 얼마로 할 것인가 등 입법을 통해 일일이 세부 규정을 정하지 않으면 안 될 사안들이 많다. 이런 사안에 대해 찬반 논란이 활발한 가운데 충분한 논의가 이뤄져야 하는데 입법을 찬성하는 사람만 있고 반대하는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제대로 된 논의 없이 섣불리 입법하면 무리가 따른다”고 지적했다. 엔터테인먼트법 전문 홍승기 변호사(법무법인 세진)는 “퍼블리시티권은 전 세계를 무대로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발달한 미국에서 주로 논의되는 것이다. 그런데 퍼블리시티권 적용 법이 주마다 다르다. 영국은 퍼블리시티권을 따로 두지 않고 기존의 법으로 보호하고 있다. 최근 한류를 내세워 입법을 찬성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류는 주로 동남아 국가들에 퍼져있다. 그 나라들과 상호 입법이 돼야 퍼블리시티권이 제대로 보호받을 수 있는데 이들 나라는 관련 법이 없다. 한류 거품이 언제 꺼질지 모르는데 국내에서 퍼블리시티권을 입법하면 미국에 의해 자칫 우리의 발목을 잡힐 수 있다. 퍼블리시티권의 입법은 시기상조”라며 입법을 반대했다. 홍 변호사의 견해는 상임위의 개정안 검토 단계에서 지적된 부분이기도 하다. 법안을 검토한 전문위원은 “국내 유명인의 초상은 동남아에서 보호받지 못하면서 서구인 초상만 국내에서 보호받는 역효과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입법 필요성 여부와 별도로 현실적 부분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의원 측 김덕중 보좌관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앞두고 퍼블리시티권 입법에 오히려 우리가 수세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하지만 미국을 놓고 입법의 역효과를 주장하는 부분은 객관적으로 입증할 자료가 나와 있지 않다. 입증할 자료가 없는 상태에서 입법의 시기상조를 얘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한류 문제를 떠나 퍼블리시티권의 본질은 경제적 이득이 있는 곳에 대가가 있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잠을 자는 사이, 쏟아지는 법원 판결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퍼블리시티권의 범위를 너무 폭넓게 인정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남 교수는 “미국은 70~80년에 걸쳐 퍼블리시티권의 인정범위가 확대돼 왔는데 우리는 불과 10여 년 만에 너무 넓게 인정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적당한 균형이 필요하다”며 두 가지 사례를 예로 들었다. 지난 1월 서울중앙지법(민사82 단독) 홍이표 판사는 연예기획사 컬트엔터테인먼트가 “SBS ‘웃찾사’의 ‘따라와’ 코너에서 소속 개그맨들이 선보인 동작과 대사를 모방한 광고를 제작, 게시했다”며 SK텔레콤 등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홍 판사는 판결문에서 “해당 개그맨들은 이 코너를 통해 음성, 동작, 실연 스타일 등 총체적 인성에 대한 상품적 가치인 퍼블리시티권을 갖게 됐다. 이를 무단으로 모방해 광고를 제작한 것은 퍼블리시티권 침해로 인정된다”고 밝혔다. 개그맨 정준하씨는 “내 얼굴을 형상화한 캐릭터를 이동통신사에 무단 제공해 수익을 올렸다”며 모바일 콘텐트 제작업체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퍼블리시티권 침해를 인정받아 일부승소 판결을 받았다.
퍼블리시티권 관련 법률 필요하다 “초상이나 성명에도 경제적 가치가 있다” “오락가락, 법원의 판결 기준이 없다” “한류 열풍으로 국제 시장에서 문화 콘텐트의 가치가 점점 중요해진다” “경제적 이득 있는 곳에 대가 있다” 시기상조다 “공인으로서 돈만 너무 밝힌다” “용어조차 통일되지 않았다” “한류 거품 언제 꺼질지 모른다. FTA로 오히려 미국에 발목 잡힐지도” “표현의 자유 침해할 수 있다” |
개그맨 동작 모방한 광고도 안 돼 남 교수는 “유행어나 실제 초상이 아닌 그 사람을 연상시키는 것(캐릭터)까지 인정하는 등 너무 급작스럽게 퍼블리시티권이 팽창하고 있어 염려스럽다. 법에서 인정한 표현의 자유와 충돌을 고려할 때 과연 이렇게까지 인정할 필요가 있는가 논란을 불러오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표현의 자유’에 영향을 준 사례가 있었다. 현대미술작가 이동재씨는 박지성 선수의 초상을 한 달에 걸쳐 쌀알을 붙여 완성했지만 “퍼블리시티권 침해에 해당할 수 있다”는 변호사의 조언을 듣고 전시회 출품을 포기했다. 홍 변호사는 “우리 연예인들의 권리의식이 과잉상태라고 본다. 퍼블리시티권은 우리나라 전반적인 연예산업 시장과 걸맞게 점진적으로 변화하면서 확대, 인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립국어원(원장 이상규)은 최근 ‘퍼블리시티권’의 우리말로 ‘초상사용권’을 선정했다. 하지만 박찬숙 의원은 개정안에서 ‘초상재산권’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미국의 예에서 따온 ‘퍼블리시티권’을 원래대로 사용하자는 등 용어조차 통일되지 않고 있다. 그 사이 퍼블리시티권이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무심코 연예인의 얼굴이나 목소리, 이미지 등을 이용한 기업이 엄청난 손해배상에 내몰리고 있다. 수십 명의 연예인에 의해 ‘7억 청구’ 집단소송을 당한 엔스닥 김태훈 대표는 “지난해 4월 모의증권 시장을 개장했다. 이전에도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유사 사이트가 있었기 때문에 퍼블리시티권 침해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다만 초상권에 대한 약간의 염려가 있었지만 무료로 운영하고 있고, 팬을 비롯한 일반인의 관심을 반영한 공익성을 추구한다는 생각으로 크게 문제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연예인들이 인격권과 퍼블리시티권 침해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지금까지 상황으로 봐서 인격권에 더 큰 비중을 두는 것 같다. 재판부에서 중재를 시도하고 있지만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며 답답해 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퍼블리시티권은 갈수록 확대되고 확산될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홍 변호사는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너무 쉽게 이미지가 도용되고 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은 퍼블리시티권을 입법하든 안 하든 초상권 자체에 의해 남의 이미지를 함부로 쓰는 것이 불법이기 때문에 본인 허락 없이 절대 함부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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