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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료 부담 싫어, 현금 내라”

“수수료 부담 싫어, 현금 내라”

세금을 현금이 아닌 카드로 낼 수 있다? 이르면 내년 7월부터 가능해진다. 그동안 국세청은 조세연구원에 의뢰해 국세를 신용카드로 납부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조사했다. 그 결과가 지난 10일 발표됐다. 국세 신용카드 납부 문제는 지난 5년간 수차례 언급됐지만 ‘수수료 부담을 누가 질 것인가’라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계속 보류됐다. 이번 연구 결과 발표로 그 실마리가 풀린 셈이다. 조세연구원은 이번 연구결과에서 “(수수료는)납부자가 부담해야 한다”며 “국세 신용카드 납부 허용은 이용자의 편의를 도모하는 것이기에 납세자 부담이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조세연구원 안이 시행될 경우 국민은 1% 안팎의 수수료를 부담하고 종합소득세와 부가가치세, 관세 등을 신용카드로 납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가맹점 수수료가 3~5%인 것에 비하면 낮은 편이다. 예컨대 내야 할 세금이 100만원이라면 수수료 1만원을 포함해 101만원을 납부해야 한다. 국세 신용카드 대납은 지정된 대행기관에서 담당한다. 대행기관은 국세청 홈텍스시스템과 연계된 카드사, 한국은행 전산망을 통해 납부할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반대하는 의견도 있다. 회사원 백정락(29)씨는 “현재 우리나라에는 여신전문금융업법(이용자의 수수료 납부를 금지하는 법, 여전법)이 시행되고 있다. 아무리 국민의 편의 제공 측면에서 도입을 고려한다고 하지만 이는 법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재진 조세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반 상거래에서 표면적으로는 가맹점 수수료를 상점이 내고 있지만 수수료가 가격에 포함돼 있기 때문에 결국 소비자가 부담하고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덧붙여 “직접 은행을 방문해 세금을 납부하는 데 들어가는 교통비, 시간상 비용 등을 감안한다면 실제 부담은 평균 0.7% 정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미국은 ‘이용 편의 수수료’라는 제도를 도입해 시행 중이다. 납세자가 2%가량의 수수료를 부담해 세금을 신용카드로 납부하는 것이다. 또 영국 등 몇몇 유럽 국가는 직불카드로도 세금을 낼 수 있다. 선진국들이 세금 신용카드 납부를 별 문제없이 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신용카드 국세 납부는 큰 문제가 없는 한 조만간 시행할 것으로 보인다. 2000년부터 시행된 지방세 신용카드 납부는 서서히 정착되고 있다. 신용카드 납부를 최초로 시행한 곳은 서울시와 LG카드. LG카드는 서울시 지자체에 가맹점 수수료를 받지 않고 있다. 대신 지급 기일을 한 달가량 연장했다. 지급 기일 연장이란 카드사에서 카드결제로 들어온 돈을 바로 지자체에 주지 않고 한 달 뒤에 지급하는 방식으로, 카드사는 이 기간에 발생하는 이자로 수수료를 대체할 수 있다.

▶서초구 보건소는 지난해 4월부터 진료비를 신용카드로 받고 있다.

현재 지방세를 신용카드로도 받는 지자체는 200여 곳 이상. LG카드는 서울시, 울산시 등 96개 지자체와 지방세 신용카드 수납 가맹점 계약을 맺었으며 삼성카드는 서울시, 부산시, 인천시 등 124개 지자체의 지방세를 카드로 받고 있다. 최근에는 롯데카드와 현대카드도 지방세 신용카드 수납을 시작했다. 삼성카드는 일부 지자체로부터 평균 1.5%의 수수료를 받고 지방세 수납 업무를 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1년에 80만 건(1조2000억원)가량의 지방세 신용카드 납부가 이뤄지고 있다. 도입 취지대로 시민들의 반응도 좋고 점점 확대되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문제는 국세와 지방세를 제외한 공공기관 대금을 신용카드로 납부할 수 없다는 점이다. 여권 발급비, 지하철 요금이 가장 대표적인 예. 이들은 수수료 부담 원칙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서울 시내에서 여권 발급 업무를 담당하는 구청은 18곳이다. 이 가운데 카드를 받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현재 유효기간 10년짜리 일반 복수여권을 새로 발급 받으려면 5만5000원이 필요하다. 4인 가족이 함께 만들려면 총 22만원이 든다. 여권 발급 비용을 신용카드로 낼 수 없는 이유는 여권법 시행령 때문이다.

지자체는 카드 납부 확산 시행령 제23조에는 ‘일반여권 또는 여행증명서의 발급·재발급·갱신발급 등을 받고자 하는 자는 수수료를 현금 또는 현금의 납입을 증명하는 증표 등으로 납부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외교통상부 여권과 박해윤 계장은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신용카드 납부제를 고려하고 있지만 수수료 부담 문제로 시행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또한 하루 600만 명 이상이 이용하고 있는 지하철 요금 역시 현금으로만 정기권 구매와 교통카드 충전이 가능하다. 지하철공사는 “하루에 수만 명의 사람이 오가기 때문에 일일이 카드 결제 서명을 하게 된다면 혼란만 가중될 뿐이다. 신용카드 결제를 못하는 것은 복잡한 창구에서 혼란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요즘은 종이 매출전표에 서명하는 시스템보다 전자판 결제 시스템이 정착되고 있어 3초면 모든 과정을 끝낼 수 있다는 점에서 지하철공사의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이 또한 지하철공사의 표면적인 이유일 뿐, 실제 이유는 다른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수수료 부담에 원인이 있는 것이다. 지하철공사가 신용카드 결제를 허용할 경우 카드사에 연간 70억~100억원의 수수료를 내야 한다. 이 수수료가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보건소 이용료와 고속도로 통행료도 신용카드 결제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보건소의 경우 서울시 서초구 보건소, 경남 마산시 보건소 등 전국 7개 보건소를 제외한 나머지 보건소들은 신용카드 결제가 불가능하다. 또 고속도로 통행료 역시 신용카드 결제가 안 된다. 서초구 보건소는 지난해 4월부터 전국 최초로 카드결제 시스템과 현금영수증 발급을 실시했다. 서초구보건소는 2%가량의 수수료를 부담하고 후불제 결제방식을 해결책으로 신용카드 결제 시스템을 도입했다. 공공기관 대금 외에 대학 등록금, 아파트 관리비, 보습학원 학원비 등도 신용카드 결제가 안 되고 있다. 서울 소재 대학 35개 중 덕성여대를 제외한 34개 대학 모두가 등록금을 현금으로만 받고 있다. 덕성여대도 신입생들의 입학금과 등록금만 카드로 받고 있다. H대 재무팀 한 관계자는 “대학들이 등록금을 신용카드로 받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가맹점 수수료가 부담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학이나 아파트 관리소에서 후불제 결제방식 등 보완책을 감안한다면, 시행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지배적인 의견이다. 정부는 신용사회와 공평과세를 실현하겠다는 취지로 1998년부터 신용카드 사용을 지속적으로 권장해왔다. 하지만 그 주체인 공공기관이 신용카드 결제를 거절하고 있으며 대학과 아파트 관리소는 수수료 부담을 이유로 신용카드 납부를 거부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작 정부는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세무조사까지 받으며 신용카드 결제 시스템을 도입한 자영업자들은 불만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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