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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다 갚고 다리 한번 쭉 펴볼까

언제 다 갚고 다리 한번 쭉 펴볼까

한동안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장으로 전 세계가 떠들썩했다. 신용이 낮은 사람들에게 고금리로 집값을 대출해주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신용사회에서 할부인생을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주택담보대출, 자동차 할부, 대학 학자금 융자 등 할부에 치여 사는 고단한 인생들. 누가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숙명과도 같은 현대사회의 멍에다. 이코노미스트가 현대인의 할부인생을 추적했다.
“오늘로 집세도 다 치렀어요. …하지만 이젠 집이 텅 비겠군요. 이젠 빚도 없고 홀가분해졌는데… 이젠 마음 놓고 살 수 있는데….” 미국 극작가 아서 밀러가 1949년 발표한 『세일즈맨의 죽음』에 나오는 마지막 구절이다. 이 작품에서 평생 외판원으로 살던 주인공 윌리는 36년간 다니던 직장으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고 가족들에게 생명보험금을 남겨 주기 위해 자동차 폭주로 자살한다. 아내 린다는 평생 빚 갚는 일에만 집착하다 빚이 청산된 시점에 인생을 마감하는 남편을 향해 울부짖는다. 이 작품 속 주인공 윌리는 지금 우리의 모습과 얼추 닮아 있다. 매일 출·퇴근길 만원 버스와 지하철 손잡이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 꽉 막힌 도로에서 운전대를 잡고 시간과 싸우는 샐러리맨들의 머릿속은 항상 복잡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집값 할부, 늘어나는 은행대출 이자, 자동차 할부, 부모님 보험료…. 매일 이렇게 열심히 살면 할부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지금의 성실함이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보험이 될 수 있을까?’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갚아도 갚아도 빚은 끝이 없고 은행 이자는 늘어만 간다. 다 갚았다 싶으면 유령처럼 다시 나타나 삶을 옥죄는 할부금. 그렇다고 누구를 탓할 것인가. 매월 정해진 월급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천정부지로 오르는 서울의 아파트 한 채를 장만하기 위해선 은행 돈을 빌릴 수밖에 없다. 주택 마련을 위한 은행의 융자 할부와 자가용 할부금을 다 갚아 나갈 때쯤이면 성장한 자녀들을 위해 집을 넓히기 위한 할부금을 또 추가로 만들게 된다. 자녀 대학 보내고 결혼시킨 후엔 앞으로 먹고살 일이 걱정이다. 할부금 갚아가며 겨우 마련한 내 집. 그 집을 담보로 다시 돈을 대출받는 삶을 살게 된다. 빚 내서 대학 다니고, 빚 내서 결혼하고 집 사고 차 산다. 나이 들어 병들면 병원 갈 일도 걱정이다. ‘할부’ 에 매여 사는 기간도 점점 늘고 있다. 예전엔 직장인이 내 집 마련을 위해 시작한 주택 자금 대출이 할부의 시작이었다면 요즘은 대학생 때부터 할부인생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미국식 학자금 대출은 이제 국내에서도 보편화되어 가고 있는 추세다. 2006년 만기 20년짜리 정부보증 학자금 대출에 전국에서 대학생 31만3800명이 몰렸다. 전체 재학생의 14% 수준이다. 만기 14년짜리 2005년 2학기 학자금 대출 때 18만2000명이던 것보다 37%나 늘어난 수치다. 올해 1학기에는 1조원이 넘는 학자금 대출이 있었다.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라 주택 대출금의 규모도 점점 커지고 금리 인상으로 상환 액수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현재 주택담보대출 최고 금리는 8%에 달하고 있다. 금리가 0.5%포인트 높아지면 가계의 이자 부담은 연간 1조5755억원씩 늘어난다. 금융권에서 돈을 빌려 쓰는 기간도 점점 길어지고 있다. 은행에서 10년 이상 장기 대출을 이용하는 비율은 지난해 말 현재 48.8%로 2년 전보다 6배가 늘었다. 할부인생을 사는 것은 신용사회가 낳은 어쩔 수 없는 숙명일지 모른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고도로 발전할수록 개인의 ‘신용’을 담보로 수익을 얻는 금융공학이 발전하기 때문이다. 서브프라임 사태를 불러일으켰던 미국은 할부인생의 원조 격이라 볼 수 있다. 미국인들은 대학 학자금뿐만 아니라 평생 집 값을 할부로 갚고 병원비와 가구까지 할부 신세를 지고 있다. 사회주의였던 중국 역시 시장경제 체제를 따르면서 ‘미국식 할부 인생’을 답습하고 있다. 중국국어위원회에서는 지난해 ‘방노’(房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발표했다. ‘방노’는 집값 할부인생을 뜻한다. ‘노예’(奴)라는 표현은 자본주의 경쟁 속에 편입된 중국 사회에서의 개인의 위상을 상징한다. 중국은 1998년 이후 일체의 주택 배급제도를 폐지한 이후 부동산 경기를 활성화하기 위해 파격적인 은행 대출 상품을 내놓았다. 2000년 이후 대부분의 중국인이 이 대출 상품을 애용했는데 중국의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은행 대출 이자가 오르면서 ‘집의 노예’처럼 힘겨워 하고 있는 것이다. 모두들 어쩔 수 없이 할부인생을 살아야 한다면 ‘빚’의 고리에 평생 끌려 다니지 않을 현명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본인의 재무상태와 현금 흐름을 꼼꼼히 파악해 좀 덜 쓰고, 힘들더라도 저축하는 습관을 들이라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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