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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경영] 윗사람 깎아내려 잘난 척 마라

[역사와 경영] 윗사람 깎아내려 잘난 척 마라

중국 역사책을 읽다 보면 ‘산군매직(言山君賣直)’이란 말이 종종 나온다. 문자 그대로 “임금을 비방해 강직하다는 명성을 산다”는 뜻이다. 신하의 덕목 중에는 충성도 있지만 강직도 있는 것이다. 강직한 신하는 죽음을 무릅쓰고 거리낌 없는 직언을 한다. 그런데 그 직언이 나라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만을 위한 경우가 있어 문제다. 강직하다는 평을 얻으면 그것은 강력한 정치적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문제를 삼아 황제를 비판하면 불경죄로 장형이나 강등·파면·유배 등의 형벌을 받지만 대신 ‘강직한 신하’라는 명성을 얻을 수 있다. 황제도 그처럼 강직한 신하를 함부로 대하기 어렵고 자리에서 쫓아낸다 해도 다시 중용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을 받게 된다. 그렇게 해서 다시 복직하게 되면 입지가 더욱 단단해질뿐더러 역사에 길이 이름을 남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노림수가 바로 산군매직이다. 산군매직의 대표선수로 명나라 때 추원표라는 인물을 들 수 있다. 그는 나이 스물여섯에 진사가 됐는데 오랫동안 관직에 오르지 못했다. 어느 날 그는 황제에게 상소를 올렸다. 당시 원보(영의정)였던 장거정(張居正)이 부모상을 당했음에도 관직을 떠나 3년상을 치러야 한다는 성현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았다며 그의 후안무치를 나무랐다. 일단 비판하고 보자는 심보였다. 하지만 장거정이 누군가. 황제인 만력제가 즉위한 직후부터 10년 동안이나 원보의 자리에 있으며 대외적으로 북쪽 몽골의 남침을 막고 대내적으로는 황하의 치수 공사를 완성한 인물 아닌가. 부모상을 당하고도 3년 동안 상복을 입지 못한 것도 장거정에 대한 신임이 두텁던 황제가 그가 없을 경우 국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할 것을 걱정해 허가하지 않은 탓이었다. 따라서 추원표의 상소는 곧 황제를 욕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만력제는 진노해 추원표의 진사 자격을 빼앗고 곤장을 친 뒤 오지로 귀양 보냈다. 5년 뒤 추원표는 죄를 용서받고 다시 수도로 불려와 감찰 직을 수행하는 급사중에 임명됐다. 추원표는 복직이 되자마자 다시 상소를 올렸다. 이번에는 황제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황제가 청심과욕(淸心寡慾), 즉 마음을 깨끗이 하고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만력제가 얼마나 기가 찼을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추원표는 강직한 신하라는 평가를 받던 시절도 있었으나 최근에는 그야말로 산군매직의 대명사처럼 인식되고 있다. 현재 홍콩 성시대학 명예교수로 있는 류짜이푸(劉再復) 교수 같은 이는 추원표를 “상식 이하의 행동을 한 미치광이”라고 혹평할 정도다. 정직을 상품으로 여기고 팔아 이득을 꾀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타인의 도덕적 수양을 극력 부인함으로써 자신의 고상함을 증명하고자 했다는 얘기다. 타인이 높은 자리에 있는 인물일수록 자기 도덕의 강직성은 상대적으로 높이 평가될 수 있었던 것이다. 추원표는 장거정이 죽고 나서 원보 자리에 오른 명신 해서(海瑞)에게도 공격의 화살을 늦추지 않았다. 해서가 임금의 권위를 훼손하고 국가 체면을 모독했으며 공맹(孔孟)의 도를 기만했다며 해서를 임금을 팔아 명예를 구한 위선자로 몰아붙였다. 자신이 얻은 산군매직의 혐의를 해서에게 되씌우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해서가 이런 비방으로 타격을 입을 인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도태된 것은 추원표 자신이었다. 주위를 보면 이처럼 윗사람보다 잘나 보이려 애쓰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자신의 세일즈 포인트를 과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윗사람의 능력이나 도덕성을 깎아 내려 자신을 돋보이게 만드느라 혈안이 돼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런 인물은 조직에서 성공하기 어렵고 성공해서도 안 된다. 인사권자는 조직을 위해 하루빨리 잘라버려야 한다. 추원표의 경우 역시 현명한 만력제가 속아 넘어가지 않았지만 싹을 자르지 못하는 바람에 끊임없이 당파싸움을 조장함으로써 결국 만주족이라는 화를 키워 명나라 멸망을 재촉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서양에도 비슷한 인물이 있다. 프랑스 루이 14세의 즉위 당시 재무대신이던 니콜라 푸케가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임금을 비난함으로써 명예를 구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능력을 볼썽사납게 과시함으로써 국왕을 욕보이고 눈 밖에 난 경우다. 그는 젊은 왕에게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사상 최대의 파티를 열었다. 파리 근교에 지은 자신의 저택, 보르비콩트 성의 완공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파티에는 라퐁텐, 몰리에르 등 푸케가 후원하는 당대 최고의 문학가들은 물론 유럽 각국의 명문 귀족들이 대거 참석했다. 파티는 산해진미가 차려진 저녁 식사로 시작됐다. 식사 중에는 푸케가 왕을 위해 특별히 작곡을 의뢰한 세레나데가 연주됐다. 식사를 마친 다음 푸케는 루이 14세를 안내해 성의 정원을 산책했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보르비콩트 성의 정원과 분수는 당시 유럽 최고 수준이었다. 특히 각종 관목과 꽃밭이 기하학적으로 배치된 정원은 보는 이들의 탄성을 멈출 수 없게 만들었다. 화려한 불꽃놀이가 정원의 운하를 수놓았고 몰리에르의 연극 공연이 펼쳐졌다.

호화파티 끝난 다음날 감옥행 푸케는 파티를 통해 자신의 우아한 취향과 다양한 인맥과 인기를 과시함으로써 자신이 탁월한 수상감임을 증명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손님들이 푸케에게 미소를 보낼 때마다 루이 14세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손님들이 국왕인 자신보다 푸케에게 더 호감을 느낀다고 생각했다. 루이 14세는 푸케에게 생애 최고의 파티이며 가장 아름다운 성이라고 칭찬했다. 하지만 다음날 푸케는 왕의 경호실장에게 체포됐다. 독직 혐의였다. 푸케는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피레네 산맥 깊숙한 곳에 있는 감옥에 20년 동안 갇혀있다 죽었다. 왕보다 더 잘나 보이려 했다가 하루아침에 천길 낭떠러지에 떨어지고 만 것이다. 볼테르는 이렇게 말했다. “저녁이 될 때 푸케는 세상의 꼭대기에 있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이 됐을 때 그는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이처럼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윗사람을 밟고 일어서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 그런데 역사 속에 수많은 뛰어난 인물이 이런 평범한 진리를 깨치지 못하고 잘못을 저지르고 만다. 때로는 자신의 능력을 감추고 필요한 만큼만 적당히 꺼내 보여주는 것도 현명한 일이다. 그것 또한 능력이 아닐 수 없다. 푸케의 뒤를 이어 재무대신이 된 콜베르의 예를 보자. 콜베르는 유머 감각도 없이 돈만 셀 줄 아는 멋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파리에서 가장 재미없는 파티를 여는 것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국고를 튼튼히 하는 데는 그를 따를 사람이 없었다. 특히 국고로 들어오는 돈은 모두 국왕의 손을 통해 집행되도록 했다. 자연히 국왕의 창고에 금화가 쌓였다. 루이 14세는 그 돈으로 보르비콩트 성을 지은 건축가와 정원설계사를 불러 더욱 화려하고 더욱 웅장한 성과 정원을 지었다. 그것이 바로 베르사유 궁전이다. 콜베르가 루이 14세의 총애를 받았음은 물론이다. 중국에도 추원표 같은 인물만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 그 예를 보자. 장탕(張湯)은 한무제 때의 승상이다. 법률지상주의자로 추상 같은 법 집행을 한 혹리(酷吏)로 유명한 인물이다. 그의 법 집행은 가혹할 정도로 거침이 없었다. 고관대작의 자제나 황제의 친족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황제 앞에서는 결코 잘난 체하지 않았다. 공은 늘 황제의 것으로 돌렸으며 잘못은 자신이 취했다. 의문이 나는 안건의 결재를 청할 경우, 미리 분명하고 풍부한 자료를 밝혀 황제가 취하도록 유도했으며 그것을 꼭 기록으로 남겨 황제의 현명함을 드러내 보였다. 올린 안건이 기각됐을 때 장탕은 자신이 바로 책임을 지고 사과한 뒤 황제의 의견을 따랐다. 그럴 때마다 이렇게 아뢨다. “다른 신하들이 신에게 말한 의견들은 폐하께서 신을 꾸짖으신 의향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신이 그들의 의견을 듣지 않아 이런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렇다고 장탕이 무조건 황제의 뜻만 좇는 간신은 아니었다. 탄핵하려는 상대가 세력가일 경우 법을 교묘히 적용시켜 반드시 죄에 걸리게끔 만들었다. 상대가 가난하고 무력한 백성일 경우에는 황제에게 “법조문으로는 죄가 되기는 하오나 폐하의 현명하신 보살핌으로 재량이 있기를 바라는 바이옵니다”고 말했다. 따라서 백성들이 용서를 받는 경우 또한 많았다. 현명한 사람은 이처럼 윗사람보다 잘나 보이려 하지 않는다. 잘나 보이려고 윗사람의 능력을 깎아내리는 것은 더욱 어리석은 일이다. 윗사람에게 양보한 공은 모두 자기에게 돌아오게 마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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