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9월 14일, 최후 승자는
| ▶서울 태평로의 오양수산 본사. | |
오양수산 창업주인 김성수 회장이 세상을 떠난 지(지난 6월 2일) 이제 3개월이 됐다. 이미 알려진 대로 장례식은 첫날부터 뜻하지 않은 파행을 겪었다. 결국 발인은 9일이나 지나 이뤄졌다. 맏상주가 아버지 장례를 미룬 이 사건은 세간의 화제가 됐지만 장남-어머니, 장남-사위들 간 대립은 식을 줄 몰랐다. 9월 14일 오양수산 임시주총을 앞두고 사태는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요즘 오양수산 임직원들은 본업도 본업이지만 퇴근 후 ‘회사 지키기’에 바쁘다. 사조산업 측의 기습적 인수합병(M&A)을 막기 위해서다. 오봉암 과장(남·36)은 서울 중화동에 있는 소액주주의 집을 찾았다. 김명환 부회장(고 김성수 회장의 큰아들)을 지지해 달라는 위임장을 받기 위해서다. 그러나 주주는 경기도 포천으로 이사 가고 없었다. 주소를 물어 찾아가 끝내 위임장을 받았다는 오 과장은 “부당한 M&A 시도에 맞서 회사를 지키는 일”이라며 “지금은 오양수산 살리기가 ‘본업’”이라고 말했다. 전산팀의 박분순 과장(여·34)도 업무를 마치고 위임장을 받기 위해 나섰다. 연희동, 홍제동 등 여섯 곳을 방문했고, 다음날 두 군데에서 위임을 허락하는 전화를 받았다. 이미 47.63%의 지분을 확보했다고 공시한 바 있는 사조 측도 직원들에게 승진 문제까지 거론하며 주식 위임에 사력을 다하고 있다. 오양수산의 주주는 1713명. 업계에서는 주식 매입 주체인 사조CS 외 다른 사조그룹 계열사 직원들까지 위임장 확보에 나섰다고 알려져 있다. 오양수산 측은 “한 주주에게 사조 직원이 끈질기게 위임을 요구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지분 경쟁이 치열함을 알려줬다. 9월 14일 오양수산 임시주주총회를 앞두고 벌어진 진풍경들이다.
오양 측, 의결권 금지 가처분 신청 8월 14일 현재 사조CS는 47.63%의 오양수산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 김 회장이 6월 1일 매각한 100만6438주(35.19%)를 포함한 수치다. 여기에 우호지분 2.7%를 더하면 사조는 과반의 지분을 갖게 된다. 경영권을 확보하는 데 무리가 없다. 사조는 왜 이미 유리한 고지에 있음에도 무리해 지분을 확보하려 하는 것일까. 이창주 사조산업 실장은 “사조만이 아닌 여러 일반주주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고자 위임장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오양수산 김명환 부회장의 지분은 11.65%에 불과하다. 이에 김 부회장은 7월 27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주식매매 계약의 원천무효를 주장하며, 9월 임시주총에서 이미 사조CS에 인도된 87만2246주의 의결권 행사를 금지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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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부회장 측은 “의결권 금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사조CS의 지분은 17%로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사조산업도 안심할 수 없는 형국이다. 그러나 이 실장은 “이미 유족들에게 매각대금이 입금된 상태여서 우리에게 불리할 이유가 없다”며 “김 회장이 지난해부터 오양수산을 매각하려고 했던 증거 자료도 모두 법원에 제출했다”고 말했다. 그는 “사조산업에 의결권이 있다는 것으로 판결 날 것을 확신한다”고 밝혔다. 오양수산은 사조CS가 오양수산 임직원 150여 명의 자택으로 보낸 추인서를 문제 삼았다. 이 추인서에는 주식 인수 경위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오양수산 측은 “추인은 하자가 있는 계약이 전제되는 것”이라며 “추인서를 답변서에 첨부해 사법부에 제출한 것만 봐도 주식매매 계약을 무효라고 인식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반박했다. 또 김 부회장은 상속 재산에 대해 가족 모두와 협의한 적이 없기에 ‘상속인 전원의 동의가 없는 상속 재산의 분할은 무효’라는 판례를 들어 상속 재산에 포함된 김 회장의 주식은 무효라고 주장하고 있다. 의결권 금지 가처분 판정이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처럼 가처분 판정을 놓고 두 회사는 서로 다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가처분 여부는 9월 14일 임시주총을 열기 전 결정될 예정이다. 김 회장이 타계하기 전 올해 3월 작성한 위임장도 경영권 향방의 주요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위임장은 김 회장이 오양수산 주식을 처분하는 일과 이를 위한 법률상의 권한을 법무법인 충정의 장용국, 조용연 변호사에게 모두 맡긴다는 내용이다. 오양수산 측은 위임장이 위조된 것이라고 주장하며 8월 16일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해당 변호사를 고소했다. 김 부회장 측에서 위조의 근거로 삼은 부분은 서명이 세 개나 된다는 점, 사설 문서감정원에 의뢰한 결과 서명이 위조라는 점, 위임 주식 수가 실제와 다르다는 점 등이다. 김 부회장은 고소인 자격으로 남대문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고, 위임장 사본을 자료로 제출한 상태다. 피고소인인 장용국 변호사는 아직 위임장 원본을 제출하지 않고 있다. 사건을 담당한 안광범 경사는 “강제로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없고, 현재 고소인 조사 외에 구체적으로 진행된 것이 없지만 고소 후, 2개월 안에 사건을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 변호사는 위임장 위조에 대한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그는 “원래 위임장은 서명이 없어도 효력을 발휘하는데 워낙 중요한 내용이라 서명을 요청한 것”이라며 “필체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 두 번, 세 번 하시게 했다”고 말했다. 또 “위임장 원본은 가장 중요한 서류인데 함부로 경찰서에 가져갔다가 찢어지기라도 하면 어쩔 것이냐”고 반박했다.
김성수 회장 위임장 위조 논란도 사조산업 측은 김 부회장이 주장한 위임장 위조에 대해 ‘생각이 다르다’고 말했다. 또 “계약 당시 적대적 M&A가 아니었고 정당하게 주식을 인수한 것인데 부도덕한 기업인 양 매도되고 있다”며 억울함을 드러냈다. “임시주총이 불법 파행으로 이뤄진다면 법적 조치를 다할 생각”이라고 강경한 입장을 내세우기도 했다. 오양수산 측은 “확실한 위임이 맞는지 회사에 점검조차 하지 않은 사조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는다”며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를 대비해 다른 법적 대응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정수 사조CS 대표는 “주식 매각이 있기 전 개인적으로는 김 부회장이 고인의 뒤를 이어 오양수산을 맡기 바랐다”며 “의결권이 오양 쪽으로 넘어가면 그때 상황을 봐서 대책을 세우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다만 고용승계 문제에 있어 “인수합병 후 가능하면 오양 직원들을 계속 고용하겠지만 100% 장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에 따르면 사조는 ‘오양수산 임직원 여러분께’라는 글을 통해 과거 신동방, 대림수산 등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구조조정을 한 적이 없다고 밝혔지만 문서로 고용을 약속한 적은 없다는 것이다. 오양수산 관계자는 “8월 초 사조 협력업체 관계자가 김 부회장을 찾아와 ‘가만히 있으면 사조에서 3년 임기를 보장해 준다’는 말을 했다”고 밝혔다. 오양수산 측은 “임시주총 안건으로 ‘대표이사 해임건’을 내세우면서 뒤로는 회유책을 쓴 것”이라며 “떳떳하지 못한 행동”이라고 말했다. 주진우 사조CS 회장의 부친인 고 주인용 회장과 김 회장은 함께 원양어업을 이끌어왔다. 과거 법문사를 같이 꾸리기도 했고, 주인용 회장에게 원양어업을 하게끔 권유한 사람이 바로 김 회장이었다. 40년 가까이 이어온 친분이 2대에 와서 경영권 다툼으로 변모한 셈이다. 고인이 떠나고 없는 지금, 위임장의 위조 여부도, 주식 의결권 금지 가처분 신청도 법원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9월 14일 오양수산의 운명이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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