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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투자은행들 ‘나 어떡해’

거대 투자은행들 ‘나 어떡해’

‘그때가 좋았지~’. 유행가 가사가 아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문제가 불거진 이후 투자은행들과 바이아웃 시장을 노리던 사모펀드에 닥친 상황은 만만치 않다. 이유는 금리가 올랐기 때문이다. 금리가 오르자 뉴욕 주식시장 상승을 견인했던 사모펀드 인수 바람이 역풍을 맞고 있다. 연 5% 미만에서 자금을 차입할 때만 해도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는데 금리가 오르자 차입매수(LBO) 상황이 곤란해진 것이다.
매번 벼락 경기에 뒤따르는 약세장에는 민망한 사례들이 속속 등장한다. 아직 종결되지 않은 몇몇 대형 LBO 대출 계약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씨티그룹과 JP모건, 골드먼삭스, 메릴린치 등 여러 투자은행과 상업은행들은 6개월 안에 끝내기 어려운 딜에 낮은 이율로 자금을 공급하기로 합의했다. 그것도 시장 상황이 악화되었을 때를 대비한 면책 조항도 없이 말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은행들은 그런 딜에 따르는 언더라이팅 또는 인수합병 자문 수수료를 챙기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모펀드들은 이를 잘 알고 그 어느 때보다 공격적인 대출 조건을 밀어붙였다. “과거 몇 년간 그랬듯이 현재도 아폴로나 KKR, 텍사스 퍼시픽 등 사모펀드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커버넌트 리뷰(Covenant Review)의 애덤 B 코헨은 말한다. 커버넌트 리뷰는 투자자들에게 채무 계약 분석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다. 그는 “은행들은 취약한 상황에 놓여 있다. 좋지 않은 시장 상황 속에서 달갑지 않은 대출을 잔뜩 떠안아야만 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지난 3~4개월 동안 은행들은 바이아웃에 자금을 조달해 주기 위해 LBO 대상 기업에 3000억 달러 대출을 약속했다. 은행들은 그 채권을 기관투자가들에게 팔겠다는 속셈이었다. 그러나 최근 시장이 불안한 가운데, 기존 LBO 채권 수익률이 오르고 있음에도 LBO 채권에 대한 수요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결국 은행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10~12%에 달하는 손해를 보면서 투자자들에게 채권을 팔거나, 채권을 떠안고 시장이 나아지기만을 기다리는 것이다. 대부분의 투자 전문가는 은행들이 상황이 허락할 때 빨리 혹을 떼어버리는 쪽을 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채권을 쥐고 있다가 시장이 더 안 좋아질 수도 있고, 또 대상 기업의 신용도가 악화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은행들이 자금을 묶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을 택하든 은행은 이익 면에서 압박을 받을 것이다. 손해를 보고 채권을 팔면, 일부 은행의 경우 자그마치 15%의 분기 이익 감소를 감수해야 한다. 울며 겨자 먹기로 빚을 덜어내는 꼴이다. 또 채권을 쥐고 있으면 신규 대출할 수 있는 여력이 줄 것이다. 이것 역시 수익에 큰 타격을 줄 것이다. 그 결과 수익 성장세가 한풀 꺾이게 될 것이며 주가도 떨어지게 될 게 뻔하다.
그렇다면 은행들은 이런 문제를 어떻게 풀었는가? 레이섬 앤드 왓킨스(Latham & Watkins)에서 증권 변호사로 재직했던 코헨은 “2004년 이전에는 은행들이 시장이 급격하게 변할 경우 딜에서 빠지는 것을 허용하는 조항을 계약에 포함시켰다”고 말한다. 그러나 차입매수 붐이 일면서 사모펀드들이 자금 조달 계획에 더 이상 그런 조항들을 삽입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거래를 성사시켜 수수료를 챙기고 싶었던 은행들은 그들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계약서에 따라 은행들은 어떠한 장애가 있더라도 자금을 조달해야만 하는 의무를 갖게 됐다”고 코헨은 지적한다. 예전에 은행들은 LBO 대상 기업의 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줄거나 또는 재정상황이 심하게 기울 경우 자신들이 딜에서 손을 뗄 수 있도록 ‘중대한 부정적 변화에 관한 조항’의 삽입을 주장했었다. 하지만 이제 은행들은 대상 기업의 상황 악화가 동일산업 내 다른 기업들보다 더 심각하다는 것을 입증해야만 한다. 즉, 서브프라임 사태와 같이 업계 전체의 상황이 좋지 않다면 그 대출 계약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은행은 손해를 볼 것을 알면서도 계약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되는 셈이다.

사모펀드들에 덜미 잡혀 또한 시장의 하락을 반영하는 쪽으로 은행이 대출 조건의 일부를 바꾸는 것도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최근의 몇몇 딜에서 은행들은 시장이 쇠퇴할 때 대출 이자를 0.25%포인트 올리기로 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것도 레버리지채권 가산금리가 2%포인트까지 벌어진 오늘날의 시장에서 별다른 위안이 되지 못한다. “근래에 진행되고 있는 일부 딜에서는 은행들이 이자율을 1~2%포인트까지 탄력적으로 올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제프리스(Jeffries & Co.)의 사모펀드 서비스 그룹 애덤 소콜로프는 말한다. 최근에는 은행이 대출과 채권의 계약조건을 느슨하게 작성하고 있다. 중간 점검의 강도도 줄었다. 그 결과 대상 기업은 자사의 신용도를 높이기 위해 현금을 보유하는 대신 이를 주주들에게 배당할 수 있는 재량권을 더 가지게 됐다. 또 기업이 LBO 채무보다 우선하는 신규 대출을 끌어올 수도 있다. “전체적으로 2006~2008년에 이뤄진 LBO 계약 조건들은 과거에 이뤄진 계약들과 비교했을 때 비슷한 점이 거의 없다”고 코헨은 말한다. 그렇다면 LBO시장에 거품이 끼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은행이 대출뿐 아니라 자본 투자를 약속했다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40억 달러의 자본이 필요한 딜이라면, 사모펀드가 절반을 대고 딜이 종결될 때까지 은행들에 나머지를 대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모펀드들은 다른 자본 투자자를 물색할 시간을 버는 것이다. 올텔의 바이아웃에서 씨티그룹과 로열 뱅크 오브 스코틀랜드(RBS.U.K.)는 각각 4억5000만 달러의 자본 투자를 약속했다. 그리고 TXU 딜에서는 씨티와 JP모건, 모건스탠리(MS)가 각각 5억 달러를 투자해야 한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딜에 위약금 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사모펀드가 딜에서 손을 뗄 경우 보통 사모펀드가 인수 대상 기업에 위약금을 지불한다. 일부에서는 사모펀드가 딜을 철회할 수 있도록 투자은행에서 이 위약금을 지불하기를 희망했었다. 그럴 경우, 은행은 LBO 채권을 팔고 손해를 보는 때보다 손실을 줄일 수 있다. 코헨은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그리 높지는 않다”고 경고했다. 왜냐하면 은행들이 바이아웃 대상 기업으로부터 소송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자금조달 방법에서 한 투자은행의 위험 노출 정도를 판단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많은 은행이 연관되어 있고 또 위험을 줄이기 위해 이들이 파생상품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요 바이어 중 하나가 사라진 상황에서 3000억 달러의 채권을 팔기란 아주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빚잔치 이후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심각한 후유증뿐이다.


용어정리

LBO leveraged buy out의 약어. 기업 매수 자금을 매수 대상 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한 차입금으로 조달하는 방법을 뜻한다. 다른 사람의 돈을 빌려 기업을 매수하는 수단으로 적은 자본으로도 기업 매수가 가능하지만 거액의 차입을 수반하기 때문에 기업 매수 후에는 자기자본비율이 크게 떨어져 신용위험이 높아진다.

바이아웃 기업인수, 미국 증시 랠리를 주도한 핵심 동력이자 사모펀드들의 높은 수익 달성에 크게 기여한 주인공이다.

가산금리 채권이나 대출금리를 정할 때 기준금리에 덧붙이는 위험가중 금리. 스프레드(spread)라고도 한다. 해외에서 채권을 팔 때는 미국 재무부 증권(TB) 금리나 리보(LIBOR: 런던은행 간 금리) 등 기준금리에 얼마의 가산금리를 덧붙여 발행금리가 정해진다. 위험도가 낮으면 가산금리가 낮고, 위험도가 높으면 가산금리도 높다. 기준금리는 큰 변동이 없으므로 통상 시장에서는 가산금리의 변동을 체크하게 된다. 가산금리가 오르면 그만큼 채권의 위험도가 높아졌고, 가격은 떨어졌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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