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 TREND]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달러 기근’
[NEWS & TREND]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달러 기근’
원 ·달러, 원 · 환율이 급등하고 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에 따른 전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 시장의 대세였던 ‘원 ·달러 환율 900원대까지 하락’ 논리는 벌써 ‘1,000원까지 상승 가능’이란 전망에 안방을 내줬다. 이 같은 전망을 바탕으로 달러 사재기, 은행을 통한 달러의 국내 유입 감소 등으로 시장에서 달러화 기근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 게다가 외국인 투자가들이 국내 증시에서 주식을 대량으로 팔고, 이를 달러로 환전해 가면서 달러 부족 사태를 부추기고 있다. 한국은행 최고위 관계자는 “외국 여행 경비와 유학 비용을 너무 많이 쓰는 것도 우려할 일”이라고 말했다.
달러가 모자란다 = 프랑스 BNP파리바 소속의 세 개 펀드가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따른 손실로 인해 환매 중단을 선언한 9일 이후 중공업 업체인 A사 외환 담당 부서에는 비상이 걸렸다. 환율 상승이 지속된다면 이미 수출대금으로 받아둔 달러를 언제 파느냐가 회사 수익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더 큰 문제는 환율 변화에 따른 환차손 위험을 줄여야 한다는 것. 이 회사 관계자는 “환위험 헤지를 위해 선물환 매도 기법을 주로 활용하는데 8월 10일 이후 선물환을 매도하기가 아주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해외 수출 계약 성사로 1~3년 후에 달러가 입급되지만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을 줄이기 위해 달러 표시 선물환을 은행에 판다. 앞으로의 환율 변동에 얽매이지 않도록 현재 상태에서 환율을 결정짓기 위한 것이다. 그러면 선물환을 사들인 은행은 업체에 지급할 원화를 마련하기 위해 국내보다 낮은 금리(주로 리보금리+알파)로 해외에서 달러를 차입한 뒤 이를 다시 시장에 내다판다. 은행 입장에선 국내외 금리 차를 이용해 손쉽게 이익을 챙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다 문제가 발생했다. 업체의 선물환 매도를 받아준 것은 주로 외국계 은행의 국내 지점인데 이들 은행의 본점이 서브프라임 사태로 달러화 부족 사태에 직면한 것이다. A업체 관계자는 “10일 이후 사정이 조금씩 나아지곤 있지만 은행의 선물환 매수 규모가 크게 준데다 거래조건도 나빠졌다”며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우리 같은 수출업체는 환율 변동의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시장에 달러화가 부족하다는 것은 통화 스와프(CRS) 금리의 급락에서 증거를 찾을 수 있다. CRS 금리가 떨어졌다는 것은 달러에 대한 수요가 많아져 기업이나 은행이 달러를 빌릴 경우 지불해야 할 비용이 그만큼을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산업은행에 따르면 BNP파리바 사건이 발생한 직후 10일 CRS 금리는 4.53%에서 4.19%로 0.34%포인트가 하락했다. 2003년 SK글로벌 사태 이후 낙폭이 가장 컸다. 이후 소폭 상승하던 CRS 금리는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 우려로 미국과 유럽의 증시가 급락하자 16일엔 3.89%로 전날에 비해 0.38%포인트가 급락했다. 한국은행 통화금융팀 김남영 차장은 “CRS 금리가 4% 이하로 떨어졌다는 것은 기업이나 금융회사가 달러화를 사들이기가 극히 어려워졌다는 것을 반증한다”며 “해외 금융시장의 달러화 기근 사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국내 상황도 해소되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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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 “달러 공급할 때 아니다” = 서브프라임 부실 문제가 본격적으로 촉발되기 전까지 국내 외환시장에선 달러화 풍년이었다. 수출이 사상 최대 실적을 내면서 수출기업들이 공급하는 달러가 많았다. 중공업 업체들의 선물환 매도와 이를 매수해 이익을 내려는 국내 외은지점의 달러화 반입도 일조했다. 올 1분기에 외은지점이 국내에 들여온 단기 외채만 121억 달러에 달했고, 이 영향으로 한국의 대외 단기외채 비중은 외환보유액(약 2,500억 달러)의 절반에 이르렀다. 외국인 투자가들도 6월부터 본격 주식 매도에 나서기 전까지 달러를 들여와 원화로 바꿔 국내증시에 투자 비중을 늘려간 것도 달러화 풍년에 기여했다. 그 결과 원?달러 환율은 943.1원(3월 2일)에서 914.1원(7월 24일)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서브프라임 사태가 상황을 극반전시켰다. 먼저 외은지점의 달러화 차입이 힘들어졌다. 환율 하락을 부추겼던 외국인 투자가들이 주식시장에서 17일 하루에만 1조원어치를 팔아치우는 등 주식 순매도로 원화를 달러로 바꿔간 것도 영향을 미쳤다. 미래에셋증권 이정호 리서치센터장은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편입된 헤지펀드의 경우 사실상 펀드 환매가 불가능해 한국 증시에서 주식을 팔아 환매자금 수요를 맞추려 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수출기업들은 환율 상승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판단하고 벌어들인 달러를 내다파는 데 소극적으로 나섰다. 게다가 자산운용사들이 해외투자 펀드 설정 시 환위험을 헤지하기 위해 사놓은 선물환을 조기 상환하면서 달러를 거둬들였다. 이 와중에 은행들은 달러화 사재기에 나섰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각 회사 외환 딜러들이 달러화 상승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공격적으로 달러화를 사들이면서 달러화 기근 현상이 심해진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처럼 시중에 달러 부족이 심화되고 있지만 금융당국은 달러를 푸는 데 소극적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일부 외은지점이 달러화 공급을 요청한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중앙은행이 외환보유액를 헐어 달러 유동성을 공급할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환율 하락을 부추겼던 중공업 업체와 외은지점에 대한 미운 털도 이 같은 결정에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관계자는 “현재 보유한 달러가 아닌 앞으로 벌어들일 달러(선물환)까지 팔아 치워 머니게임을 벌인 당사자들한테 다시 달러를 공급하는 것은 일종의 도덕적 해이”라고 질타했다. 환율 하락이 수출업체의 채산성을 악화시킬까 봐 전전긍긍해온 외환당국으로선 최근의 환율 상승이 내심 반가운 측면도 있다. 굳이 애써 환율을 내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만약 국내 금융시장에서도 달러화 유동성 부족이 악화되는 조짐을 보이면 외환보유액을 풀어서라도 외화 조달이 순조롭게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달러화는 엔화를 제외하곤 전 세계적으로 약세를 이어왔다. 엔화의 약세는 저금리로 엔화를 빌려 상대적으로 투자수익률이 양호한 자산에 투자하는 엔캐리 트레이드가 극성을 부렸기 때문이다. 엔화를 빌려 투자가 이뤄지는 해당 국가의 통화를 바꾸기 위해선 엔화를 팔아야 하고, 시중에 엔화가 넘치자 엔화가 약세를 보인 것이다.
엇갈리는 향후 원 · 달러 환율 전망 = 약세였던 달러화가 상승세로 반전한 것은 서브프라임 사태로 단기 자금이 고갈됐기 때문이다. 펀드의 환매 자금 부족을 메우기 위해 단기자금의 수요가 많아지자 시중금리 상승을 예견한 금융사들이 돈 빌려주기를 꺼렸기 때문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 유럽중앙은행 등이 막대한 유동성을 시중에 공급한 것이다. 또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커지자 안전자산으로 간주되는 달러화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는 것도 달러화 가치 상승을 이끌었다. 다만 엔캐리 트레이드의 청산에 따라 엔화만이 상대적으로 달러화에 강세를 보였다. 그렇다면 달러화 약세 시대는 종말을 고하고 강세 기조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인가. 관건은 서브프라임 부실로 인한 파장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 것인지에 달렸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한국금융연구원 하준경 연구원은 “서브프라임 부실이 더 이상 확대되지 않는다 해도 간헐적인 금융시장의 불안 양상은 최소한 1~2년은 갈 것”이라고 말했다. 서브프라임 부실은 근본적으로 지나치게 낮았던 미국의 금리 때문에 발생했다. 금리가 너무 낮아 수익을 내기 어려워진 금융사들이 낮은 신용도의 서브프라임을 기초자산으로 해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게끔 파생상품을 마구 만들어냈다. 그러나 미국이 2004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정책금리를 계속 올리자 문제가 터졌다. 금리 인상으로 서브프라임 대출자를 중심으로 연체율이 높아지면서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물론 관련 파생상품에서 손실이 누적되기 시작한 것이다. 하 연구원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대출 후 2년 뒤부터 금리가 크게 상승하기 때문에 지난해 6월 금리 인상 영향이 2008년 6월에 본격화된다는 얘기”라며 “그때까지는 간헐적인 금융시장의 불안과 그에 따른 달러화의 가치 상승은 계속될 공산이 크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거대 투자은행 중 한 곳이라도 부실 악화에 따라 파산 위험에라도 처하게 되면 그땐 금융시장은 거의 공황 상태로 빠져들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중 · 장기적으론 달러화 약세가 대세란 전망도 많다. 삼성경제연구소 권순우 수석연구원은 “비록 금융시장의 불안이 달러화 강세를 이끌고 있지만 그동안 달러화 약세를 초래했던 경제의 기초 여건(펀더멘털)은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고 말했다. 미국의 쌍둥이 적자(재정 · 경상수지 적자)는 여전히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이 적자를 메우기 위해선 국채를 팔아 부족한 자금을 공급받아야 한다. 달러화가 더 풀린다는 얘기다. 미국이 파는 국채를 받아 줄 돈도 충분하다. 전 세계 유동성 과잉을 이끌었던 중동국가의 오일 달러는 여전하다. 어디든 투자해서 수익을 올려야 한다. 미국 국채만큼 안전한 자산은 흔하지 않다. 한국 · 중국 · 일본 등 아시아 국가의 외환보유액도 계속 쌓이고 있다. 이 또한 미국 국채의 주요 수요자다. 권 연구원은 “미국의 쌍둥이 적자가 그대로인데다가 세계 경기의 호황 국면이 금융시장 불안으로 큰 타격을 입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최근의 불안 양상이 해소되면 달러화는 다시 약세로 돌아설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 FRB가 17일(현지시간) 시중은행에 대한 대출금리인 재할인율을 낮추자 달러는 약세로 돌아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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