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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안 나와도 어려움 없어요”

“대학 안 나와도 어려움 없어요”

▶ 개리 소퍼 대표는 1994년부터 영국무역투자청에서 근무하기 시작했다. 호주, 브라질, 콜롬비아를 거쳐 2006년 11월부터 한국에서 일하고 있다.

공무원에게는 ‘부자가 되고 싶다’는 평범한 꿈이 사치일지 모른다. 안정, 명예와 같은 가치를 이미 지급 받았기 때문이다. 올해로 영국 정부에서 일한 지 30년. 영국무역투자청의 개리 소퍼 대표 또한 백만장자는 아니다.

오늘의 바토크 주인공은 처음으로 정부기관의 장이다. 개리 소퍼가 대표로 있는 영국무역투자청은 한국-영국 간 투자 및 무역을 증진하는 영국 정부 기관이다. 한국으로 치면 KOTRA쯤에 해당되는 곳이다.

그는 공복(public service) 역할을 자처했지만 부임한 나라에서 자신을 부자로 만들어 줄 새로운 사업 아이템이나 기회도 많이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 필요할 때 힘이 되어 줄 사람도 여럿 만났을 법한데 왜 그는 다른 일을 찾지 않은 것일까. ‘혹시 백만장자가 되고 싶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성공한 사업가처럼 큰돈을 벌 수는 없겠지요. 그렇다고 가난하게 살 걱정도 별로 없습니다. 어느 직장에서건 업무가 좋으면 사람이 힘들고, 사람이 좋으면 업무가 힘들게 마련이니 본인이 균형과 조화를 찾아서 스스로 만족하는 삶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는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며 공무원 인생 30년을 단숨에 들려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아버지가 ‘너는 무슨 일을 하고 싶으냐’고 물으셨는데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뉴스를 보다가 서무직에 해당하는(clerical officer) 일종의 하위 공무원 구인공고를 보시게 됐고 저에게 지원하라고 했습니다. 별 생각 없이 지원했죠.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거든요.”

얼마 후 런던으로 면접을 보러 오라는 통지가 왔다. 그러나 웨일스 남부 조용한 시골마을 출신인 그에게 런던은 너무나 먼 곳이었다. 그는 17세까지 런던에 한 번도 가 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운명이었을까. 그는 자신이 공무원이 된 것을 ‘운명’이라고 표현했다.

“덴마크 출신 학생에게 아르바이트 삼아 영어를 가르치다가 같이 런던에 갈 일이 생기더군요. 기왕 머무를 거 하루만 더 머무르자는 생각에 면접을 봤습니다. 그리고 18세에 처음으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첫 직무는 영국 전역의 교도소를 관리하는 업무. 그리고 각종 무선통신과 관련된 규제를 담당하는 부서에 발령이 나서 HAM(아마추어 무선) 라이선스 발급 관리 업무도 담당했다. 1994년 그는 현재 근무하는 영국투자청에서 다시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최근 한국에선 학력 위조 사태로 큰일이 벌어졌었죠? 영국에서는 아마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만 해도 대학을 나오지 않았으니까요. 전혀 일하는 데 거리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일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고 해서 타지에서 일하는 것이 쉬운 것만은 아니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각종 모임에 나갑니다. 제가 하는 일 중 중요한 부분이죠. 한국의 인사들 소위 키 맨(key man)을 만나기 위해서죠.”



LG디자인센터 런던에 유치

한국에서는 모임도 많고, 조찬도 많아 그는 한국 사람들이 부지런하다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도 덩달아 부지런하게 됐는데 여기저기 영국 기업이 벌이는 행사에 찾아가면 그의 얼굴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워낙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즐기는 성격이라 다른 문화에도 쉽게 적응한다”는 그는 이상하게도 “폭탄주는 한 번도 마셔본 적 없다”고 말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저는 바이어(buyer)도 셀러(seller)도 아닙니다. 저는 일의 중재자(facilitator)입니다.” 자신은 어떤 일에 사인하는 사람이 아니니 한국 사람이 자신에게 술을 먹여 사인하도록 만들 필요가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의 말처럼 영국무역투자청은 신규 벤처기업에서 세계적 대기업에 이르기까지 많은 회사가 영국에 기반을 두고 전 세계로 뻗어나가도록 지원하는 일을 맡고 있다. 특히 영국 단일 시장이 아닌 유럽시장 진출을 위한 디딤돌로서 영국이 가진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도록 조언 및 실질적 서비스(시장조사, 비즈니스 파트너 및 유통업자 소개 등)를 제공하고 있다.

그는 늘 보다 많은 외자를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마디로 주식회사 영국을 파는 데 앞장서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영국이 ‘세계에서 투자유치가 가장 많은 나라 2위’ ‘미국 다음으로 투자액이 큰 나라’라며 인터뷰 내내 본연의 임무를 잊지 않았다.

그가 최근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일은 LG디자인센터가 런던으로 옮겨가게 된 일이다. “영국에 가면 유럽을 잡을 수 있습니다. 이머징마켓이 최근 한국 경영진들의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지만 유럽은 유럽시장이고 이머징마켓은 이머징마켓이죠. 영국 기업들도 한국 기업처럼 브릭스 국가들에 당연히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죠. 다만 분명한 것은 유럽시장을 공략할 때 영국이 좋은 거점이 될 것이란 것이고, 특히 디자인이나 금융, R&D면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스탠더드 차터드 은행의 피터 샌즈 총재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를 이야기하며 한국금융시장에 영국이 좋은 영향을 주고 받길 바란다고 말했다. “투자 유치액이 늘어남에 따라 영국 정부가 무역투자청에 더 많은 힘을 실어주고 있다”며 그는 자신이 제트족은 아니지만 다이내믹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무사안일과 같은 지루한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기에 백만장자를 꿈꾸지 않아도 그는 충분히 바쁘다. 그는 추석연휴에도 싱가포르에서 열린 투자 관련 세미나에 다녀왔다.



영국대사관 안에 있는 Broughton Club Seoul


쿠폰 내고 마시는 시원한 흑맥주와 스낵


영국대사관에 들어가는 절차는 꽤나 까다롭다. 신분증 검색은 물론이고, 차 보닛까지 열어 구석구석 살펴보는 일도 거르지 않는다. 그러나 일단 대사관에 들어갔다면 지하의 바에 들어가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주한영국대사관 직원의 초대만 있으면 된다.

바의 정식 명칭은 ‘Broughton Club Seoul’이며 매주 금요일 오후 5시부터 개방하며 주한영국대사관 직원과 직원을 동반한 가족·친지들도 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인지 바 바깥쪽에 있는 휴게실에서 바 안쪽까지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이곳에선 돈 대신 쿠폰이 오간다. 쿠폰으로 음료와 스낵을 살 수 있다. 이곳에는 영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맥주 기네스(Guinness), 맨체스터 지역에서 나는 맥주인 보딩턴(Boddingtons), 비숍스핑거(bishop’s finger)를 비롯해 각종 와인, 위스키, 보드카, 스낵을 팔고 있다.

이날 소퍼 대표는 기네스 맥주를 골랐다. 이 바가 대사관 직원을 위한 곳인 만큼 소퍼 대표의 부인인 줄리 클라크 소퍼도 만날 수 있었다. 그녀는 현재 주한영국대사관 부대사(Mr. Guy Warrington)의 비서로 근무하고 있다. 영국무역투자청에서는 영국 외 지역으로 직원이 발령받았을 때 그 가족이 함께 일하는 것을 장려하고 있다.

대사관 관계자에 따르면 부부가 한 직장에서 일하면 이혼율도 떨어지고 인력도 쉽게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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