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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딸’한비야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

‘바람의 딸’한비야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


멀쩡히 잘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배낭을 싼 서른다섯 노처녀. 7년 동안 65개국의 오지를 바람처럼 걸어서 찾아 다녔다. ‘바람의 딸’로 불리는 그는 이제 오지 여행가 한비야는 잊어달란다. 대신 재난 현장에 48시간 안에 달려가는 국제 구호단체 긴급구호팀장으로 기억해 달라고 한다.
지난 여름 경기도 김포 학생 야영장에선 특별한 학교가 열렸다. 이름하여 세계시민학교. 국제 구호단체 월드비전이 마련한 중 · 고생 캠프다. 경쟁률은 약 10대 1, 참가비는 없다. 성적순이 아닌 ‘자기발전계획서’를 써낸 전국 중 · 고생 500여 명 중 50명을 선발, 3박4일 동안 ‘지도밖 행군단’ 교육 과정을 거치도록 했다. 설립자이자 교장은 한비야(49)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 공익광고 모델 출연료 1억원 전부를 기부해 만든 캠프에서 아이들에게 체험담을 들려주는 한 팀장을 만났다.

“학년별로 몇 명씩인지 중1부터 차례로 확인하는데, 고3은 당연히 없을 줄 알고 고2에서 끝냈지요. 그런데 아이들이 ‘고3도 있어요’ 하는 거예요. 글쎄 확인해보니 1기생 50명 중 넷이 고3이더라고요. 그 아이들에게 큰 박수를 보냈어요. 요즘 아이들은 우리 클 때와 달라요. 어려서부터 세계를 알고 지구촌 문화를 이해합니다.”



가슴이 뛰는 일을 하라


세계시민학교 학생들은 한 팀장의 특강에 푹 빠져들었다. 강의는 열정 그 자체였다.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말이 무척 빨랐다.

“여러분! 알아요? 지금 여기 모인 여러분들이 자신도 모르게 싱글벙글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오늘 딱 세 가지, 즉 머리와 가슴, 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첫째, 머리 속에 세계 지도를 그려 넣으세요. 우리가 필요로 하는 나라가 아닌 우리를 필요로 하는 나라까지. 그래야 우리의 범위가 확 넓어집니다. 먼저 집에 세계 지도를 붙여 놓고 국제 뉴스에 나오는 나라와 지명부터 찾아보세요. 점차 우리의 생각과 관심이 한국과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뻗어나갈 것입니다.

둘째, 가슴이 뛰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가슴을 때리는 사람이 되세요. 공부를 잘해서, 머리를 써서 남을 기쁘게 하기보다 (다른 사람의) 가슴을 움직이는 사람이 되세요. 여러분, ‘언제 무엇이 내 가슴을 뛰게 했나?’라고 한번 생각해봐요. 사실 별로 없었지요? 우리 모두 가슴 뛰는 일이 이어지도록 합시다.

내 가슴뿐만 아니라 나와 연관되는 사람들의 가슴도 함께 뛰도록 말이죠. 그러려면 엄마겲틤?선생님의 바람이 아닌 나 자신의 꿈을 꿔야 합니다. 나중에 우리 서로 만날 때 ‘지금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한 팀장이 갑자기 두 손을 들어 펴 보였다) 여러분! 사람에게 왜 손이 두 개일까요? 두 손 중 하나는 남을 위해 쓰라고 그런 거예요. 제 손이 이렇게 작아도 (재난 현장에) 물자 배분을 나가면 큰 손이 돼요(웃음). 세상은 (먹고 먹히는) 밀림의 정글만은 아닙니다.

두 손 중 하나는 내 몫이 아니라 남에게 빌려주세요. 훔치거나 빼앗아오는 손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상처를 만져주고 눈물을 닦아주는 손, 내 것을 기꺼이 나눠주는 그런 손 말입니다.”



한비야는…
1958년 서울 生, 숭의여고 · 홍익대 · 영문학과 졸업, 미국 유타대 커뮤니케이션학 석사 90~93년 홍보대행사 버슨 마스텔라 코리아 근무, 93~99년 세계 오지 여행 2001년~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 2004년 한국YWCA 선정 ‘젊은 지도자상’ 수상, 2005년 환경재단 선정 ‘세상을 밝게 만든 100인’



저서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 (전 4권) ·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 (99년) · <한비야의 중국견문록> (2001년) ·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2005년)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이 세상 어느 누가 굶주리는 나라에서 태어나고 싶었겠어요? 마치 뽑기를 한 것처럼 그 나라에서 태어난 거예요. 그러므로 (인류는) 서로 도와야 합니다. 한국도 1950년부터 30여 년 동안 도움을 받는 나라였지요. 이제 우리를 필요로 하는 나라를 도울 때입니다.”

한 팀장은 대한민국이 전 세계 육지 면적의 270분의 1에 불과한 작은 나라임을 강조한다. 국내에서 인쇄된 세계 지도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오대양 육대주를 그리고 있는데 그 ‘지도 밖으로 나가라’고 주문한다. 그래야 세계가 제대로 보이고 지구촌을 무대로 뛸 수 있다.

“르완다 학살사건은 온 인류가 부끄러워 해야 할 일입니다. 지금은 옆 나라의 신음 소리를 인터넷이란 유리 벽만 열면 죄다 알 수 있는 시대예요. 이웃 나라가 왜, 무슨 일로 고통을 받는지 알고 살아가야 합니다.”

소녀 한비야의 집에는 늘 두 개의 지도가 있었다. 하나는 아빠가 사온 세계 지도, 다른 하나는 한비야가 그린 동네 지도다. 이사 갈 때마다 버스 정류장은 어디, 만화방은 어디 하는 식으로 동네 지도를 그려 엄마에게 줬다. 아빠는 아들딸을 세계인으로 키우고 싶어 했다. 용돈을 줄 때 세계 지도에서 지명을 맞추도록 하고, 식사할 때 밥풀이 묻으면 ‘인도에 밥풀 묻었어’라며 웃었다.

그 세계 지도를 보며 초등학생 한비야는 걸어서 세계 일주를 하겠다고 마음 먹는다. 대학 입시에 실패한 뒤 어려운 가정 형편에 재수는커녕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대학에 간 것은 6년 뒤, 그것도 4년 장학금을 주는 곳이라 가능했다. 대학을 나와 세계적 홍보 회사 버슨 마스텔라에서 잘 나가던 중 갑자기 사표를 던지고 배낭을 쌌다. 서른다섯 노처녀로선 놀라운 도전이다.

“어려서부터 해온 생각을 실행한 거예요. 3년여 직장에 다니며 여행 자금이 모아지자 사표를 쓴 거지요. 지금 지구본을 한번 탁 쳐 보세요. 1∼2초도 안 걸려요.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기, 직장을 잡고 결혼하고 아파트 평수 늘리기 등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것이 거기 있습니다.”

7년 동안 세계 65개국을, 그것도 오지를 걸어서 찾아 다녔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이니 험할 수밖에요. 그러나 그 길을 가는 즐거움이 (가지 않는) 괴로움보다 훨씬 큽니다.” 거기서 보고 느낀 것을 책에 담았다. 쓰는 족족 잘 팔렸다.

오지 여행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로 이름을 날렸다. 어느 날 일기를 쓰며 문득 생각했다. “지구는 좁다. 튀어 봐야 지구 안”이라고. 오지 여행 7년 만인 마흔둘의 나이에 여행과 글 쓰는 게 더 이상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이 아님을 깨달았다.

“오지 여행을 다니면서 섭씨 99도와 100도의 차이를 느꼈어요. 여행만으론 100도로 끓는 인생이 되긴 어렵다고…. 마지막 1도는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이어야 한다며 선택한 게 긴급 재난구호 활동입니다.”




일에 미치면 잠도 안 온다


한 팀장은 열정 그 자체로 일한다. 특히 긴급구호 현장에 나가면 며칠 동안 잠을 자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바쁘기도 하지만 일을 하다 보면 새벽이 밝아온다고. 며칠 날밤을 새운 끝에 눈동자 실핏줄이 터지기도 했다. 한 번은 하품하다가 뭐가 끈적거려서 보니 피눈물이었다.

“자학증인가요? 그때 피눈물을 닦으니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그러면서 생각했죠. ‘지금 할 만큼 하고 있구나’, ‘내 힘을 아끼지 않고 있구나’라고요. 얼마 전 보고서를 쓸 일이 있어 새벽 두 시 너머까지 일하다가 거실에서 잤는데 새벽 5시에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어요. 속으로 말했지요. ‘독한 년…’이라고.”

다른 사람에 비해 더위도, 추위도 타지 않는 편인 그는 평소 건강에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오랜 해외 근무로 피로가 누적된 탓인지 지난해 며칠 병원 신세를 졌다. 그래서 올 1월 1일 독하게 마음 먹은 게 ‘매일 잠을 자는 것’이다.

한 팀장은 손도, 발도 작다. 발 길이가 225mm다. 발에 맞는 기성화를 구하기 어려워 230mm에 깔창을 다섯 개 정도 깔고 신는다. 사람들이 신발만 보고선 웬 어린애가 와 있는 줄 안다고. 그 작은 발로 걸어서 지구를 세 바퀴 반 돌았다니.

그는 1년의 절반 이상을 난민촌 등 해외에서 보낸다. 국내에 있을 때는 모금과 홍보를 위해 여기저기 강연을 다니느라 바쁘다.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은 얼굴도 달라지게 만들어요. 스스로 좋아서 하는 일이니 그럴 수밖에요. 어디 구호 · 자선단체에서 일하는 사람치고 웃지 않고 인상 쓰는 사람 보셨어요?”

그 자신 오지 여행가 시절 날카롭던 눈매가 긴급구호팀장을 하면서 온화한 표정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한 팀장은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딸이 셋이다. 큰딸(젠네부 · 13)은 에티오피아, 둘째(아도리 · 13)는 방글라데시, 막내(엔크흐진 · 4)는 몽골에 산다. 모두 구호 현장에서 인연을 맺었고, 매달 2만원씩 6만원의 후원금을 보낸다.



한국 젊은이들 싹수 있다


한비야 팀장은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기성 세대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깨어 있다고 평가한다. 어른들이 보는 것처럼 그리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이지도 않다는 것이다.

“길 가다가 젊은이들을 만나면 세 부류로 나눌 수 있어요. 첫째, 사인해 달라는 친구들, 둘째, 휴대전화 사진을 같이 찍자는 친구들, 그리고 지갑에서 5,000원, 1만원짜리를 꺼내 필요한 데 써달라는 친구들이죠. 그 친구들이 뭘 믿고 저에게 용돈을 헐어 건네겠어요. 어른들은 과거에 도움을 받았으니 살 만해진 이제 우리가 도와야 한다는 부채의식을 갖고 있는 데 비해 요즘 젊은이들은 인류애로 접근합니다.”

그는 짬짬이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할 때면 특히 글로벌 리더십을 강조한다. 그 전제 조건은 세계 시민의 자질을 갖추는 것이다. 세계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는 길을 향해서 우리 손으로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시작해 나가자고 강조한다.

“산도 중턱에서 머물지 않고 정상에 올라가야 시야가 넓어지듯 세상도 마찬가지죠. 내가 사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잖아요. 지금은 우리의 범위를 아시아, 그리고 전 세계로 넓히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라고 봐요. 요즘 젊은이들은 나라 밖 여행을 다니고 연수도 다녀오면서 지식도, 세계화 수준도 높아진 것 같아요.”

긴급구호 체험담을 적은 책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는 100만 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다. 이 책을 읽고 후원을 자청한 10·20대 젊은이가 5만여 명이다. 한 팀장은 여기서 “우리 사회의 희망을 본다”고 말한다.




긴급구호 정신은 희망이다


월드비전은 세계 100여 개국에 현지 사무소를 둔 국제 구호단체다. 그런 만큼 직원들의 안전 관리에 철저하다. 재난구호 지역을 위험도에 따라 그린(Green · 낮음), 옐로(Yellow · 중간), 레드(Red · 높음, 테러리스트 활동), 블랙(BlacK · 심각, 분쟁 지역) 등 네 단계로 나눠 관리한다. 지난 7월 탈레반 인질 사건이 벌어진 아프가니스탄의 경우 카불 등 주요 도시는 레드, 그 외 지역은 블랙이다.

“위험을 감수한 채 작은 일을 하려다간 정작 더 크고 중요한 구호 활동을 못하게 돼요. 어디서 차를 몰든 그 나라의 교통 규칙을 지키듯 안전수칙을 따라야지요.”

한 팀장이 긴급구호팀장으로 맨 처음 간 곳이 아프간이다. 그는 이번 아프간 인질 사태로 긴급구호 정신이 혹시 일반인의 오해를 살까봐 내심 걱정이 많았다. 한 팀장은 2003년 낮 기온이 섭씨 50도가 넘는 이라크 구호 현장에서 일할 땐 쇠로 만든 방탄 조끼를 입고 다녔다. 통풍이 안 되는 그 쇳덩이 때문에 몸에 콩알만한 땀띠가 나 바로 누울 수가 없어 옆으로 비스듬히 앉아 칼잠을 자야만 했다.

“한 마디로 전쟁은 미친 짓이에요. 지금 복도에 물이 넘쳐 땀을 흘리며 열심히 닦고 있는데 반대쪽에서 수도꼭지를 트는 사람이 있어요. 그럴 때마다 ‘지금 내가 아까운 인생 · 청춘 다 바치며 뭐 하자는 것인가’란 생각도 들어요. 그럴수록 적어도 ‘굶는 아이가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며 마음을 다잡곤 합니다.”

생지옥과 같은 재난 현장에 가면 맨 먼저 하는 게 천막학교 설치다. 그 안에서 구구단을 외우는 아이들의 소리는 바로 희망의 소리다.

“천막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아이들의 낭랑한 소리를 들으며 이를 악물어요. 바로 그 희망의 끈을 잇고 놓지 않도록 해주는 게 긴급구호 요원의 임무라고 생각해요.”

한 팀장은 공적개발원조(ODA)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국내에도 도울 사람이 많은데 무슨 해외 원조냐는 시각도 있지만 빚으로 여기지 말고 할 수 있는 한 기꺼이 주자고 강조한다. 아무리 장기 저리라도 조건이 붙는 유상 원조 자금은 가져가려 들지 않으므로 조건 없이 무상 원조함으로써 자립과 경제 개발을 위한 씨앗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돕자는 것이다.

“한국도 선진국 클럽(OECD 회원국)이라지만 ODA가 민망할 정도로 적어요. 좀 늘리자고 하면 정부는 국민을 설득하기 어렵다고 하는데 이제 국민의식도 달라졌어요. 금액도 적지만 자금 집행 방식도 바꿔야 합니다. 국가 대 국가 중심으로 이뤄지면 돈이 어디서 나와 어떻게 쓰이는 지 잘 모릅니다.

‘얼굴 없는 돈’이 되고 말아요. 국제 구호단체 등 NGO(비정부기구)를 활용해야 최전방에서 그 나라 국민을 만날 수 있고 그게 어디서 온 돈인지도 알게 하지요. 정체를 알기 힘든 ODA에 얼굴을 만들어 주는 게 NGO입니다.”

그는 선진국의 경우 ODA의 절반 이상이 NGO를 통해 전달되는 반면 한국은 금액 자체가 적은데다 NGO를 통한 집행이 3~5%에 머문다며 안타까워했다. 지난해 한국의 ODA는 4억4,600만 달러. 국민 1인당 ODA가 9달러로 OECD 회원국(평균 139달러) 중 최하위권이다.




남에게 줄 줄 알아야 진짜 부자


우리나라 기업들의 사회공헌 활동에 대해 한 팀장은 “겨울이 지나 봄이 오는 단계”로 평가한다. “이제 기업들은 세계를 무대로 물건을 팔고 사야 하잖아요. 그러니 어려운 나라에 대해 보듬고 같이 살아간다는 세계 시민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물론 NGO들이 다 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한 팀장은 솔직히 인정한다. “성장통을 겪듯 조직이 커가는 과정에서 실수나 시행착오도 있다”며 NGO가 진화하는 과정으로 이해해 달라고 부탁한다. 아울러 9월부터 출국할 때 항공료에 1,000원씩 붙는 국제 빈곤 퇴치 기여금도 준조세로 보지 말고 흔쾌히 내달라고.

“기아에 허덕이는 남아프리카에서 한 가정을 한 달 먹이는 데 2만원이면 돼요. 그 정도 낼 수 있는 사람이 많이 있잖아요. 거기 얘들이 무슨 잘못이에요. 걔네는 굶으면 살이 빠지는 게 아니라 죽어요.”

월드비전 후원자도 큰 돈을 내기보다 매달 2만원씩 기부하는 정기 후원자가 대부분이다. 특히 현재 21만4,000명의 후원자 중 학생이 약 1만5,000명으로 7%에 해당한다.

“배고파 본 사람이 배고픈 걸 알아요. 두 개 있는 사람은 그 중 하나를 남에게 주는데 99개 가진 사람은 잘 안 줘요. (많이) 가진 자가 부자가 아니고 (남에게) 줄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부자예요. 내가 부자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방법은 간단해요. 스스로 ‘내가 기꺼이 잘 주고 있는가?’ 물어보세요.”

그는 9월 15일 남아프리카 짐바브웨로 파견 근무를 떠났다. 짐바브웨를 베이스캠프로 해 레소토 · 스와질란드 등 주변 아프리카 6개국에서 석 달 동안 일한 뒤 12월 말에 귀국할 예정이다.

난민 구호 활동으로 바쁘고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면서도 그는 수시로 메모하고 매일 일기를 쓴다. 그는 이를 ‘사랑의 유전자를 받아 적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어릴 적부터의 ‘일기 쓰는 버릇’은 그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의 책도 여기서 나왔고. “메모는 생각날 때마다 바로 찍어두는 감정의 디지털 카메라예요.”



일에서 벗어나면 평범한 여성


인간적인 면모가 궁금해졌다. 결혼에 대해 물었다. “결혼 안 한다고 한 적 없다”며 웃는다. “이 사람 때문에 지금 이 일을 접을 수 있을까”란 고민을 하게 만든 사람이 아직 없었단다.

“콧대나 눈이 높은 게 아네요. 쉰다섯이 되면 시간이 되는대로 7대륙의 가장 높은 산에 오를 작정이에요. 그때 같이 갈 사람을 찾고 싶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면서 학생들과 마주쳤다. 앞다퉈 다가와 한 팀장에게 인사한다. 악수하고 특강 도중 손이 작다는 말이 생각나는지 손을 대보는 소녀도 있다. 네 명의 고3 수험생 중 하나인 김혜빈 양이 다가왔다.

“여기 오기 전에 엄마 아빠와 말다툼까지 했어요. 지금 그런 데 갈 시간이 어디 있느냐며 뭐라 하셨지만
선생님 특강을 듣고 진로를 확실히 정했어요.”

“그래 참 대단하다. 내 조카가 고2인데 걔도 이런 생각을 못하는데….”

저녁식사 메뉴를 보니 식판 위에 달랑 밥과 반찬 한 가지씩이다. 1식1찬이다. 3박4일 동안 아이들을 저렇게 먹이느냐고 물었다. 한 팀장은 “저게 바로 체험이자 교육이에요. 하루 이틀 지나면 밥만 먹어도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어요”라고 받아넘긴다.

올해 우리 나이로 쉰, 그도 이따금 외로움을 탄다. 1999년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더욱 그렇다. 지금은 같은 아파트 아래층에 사는 큰언니가 어머니처럼 약이 되는 잔소리를 해댄다.

“긴급구호 요원들은 50대를 ‘현장의 꽃’이라고 불러요. 경험과 노하우 · 사명감 측면에서 최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죠. 제가 딱 그 나이입니다. 앞으로 10년은 더 현장에서 꽃을 피워야지요.”

한 팀장은 “60대는 그 스스로가 구호 대상”이라며 웃는다. 그때 가선 현장이 아닌 책상에서 구호 정책을 짜거나 난민구호 관련 국제기구나 NGO에서 일해야 할 것이라면서.

김포 야영장에서 서울로 가는 시골길에 꽃들이 앞다퉈 자태를 뽐낸다. “어머! 저기 칸나 좀 봐. 너무 예쁘다. 와! 저기 해바라기도 있네….” 강한 신념으로 똘똘 뭉쳐 있는 줄로만 알았던 그도 여전히 소녀와 같은 감성을 지닌 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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