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을 넘어선 제약회사 판촉활동
상식을 넘어선 제약회사 판촉활동
공짜 점심과 선물 공세로 의사들 처방 얻어내 뉴욕의 내과 개업의인 조너선 모러는 얼마 전까지 제약회사 영업사원들의 출입을 허용했다. 그들 덕분에 일상적인 진료 중에 잠시 휴식을 취하기도 했고, 공짜 펜이나 점심, 약품 샘플을 받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신약의 궁금증을 풀었다. 그러나 그들의 방문 횟수가 많게는 하루 10번까지 이르자 인내심이 한계에 이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2004년 가을 결국 관계를 끊었다. 광고를 많이 하는 진통제 비옥스(Vioxx)가 심장마비의 위험을 높인다는 증거가 밝혀져 판매금지됐을 때였다. “거의 매주 이 약의 사용을 권유받았었다. 의학지에 그 약의 문제가 제기됐을 때도 그랬다”고 모러는 말했다. 그는 영업사원을 쫓아내고 다시는 오지 말라고 했다. “그동안 어떻게 견뎠는지 모르겠다. 이제 정말 안심이다.” 제약회사의 판촉활동을 단호히 거부하는 의사가 늘어간다. 그중에는 ‘공짜 점심 사절(No Free Lunch)’이라는 단체에 소속된 의사들도 있다. 이 단체에 가입하려면 제약회사 영업사원의 출입을 금하겠다는 서약을 해야 한다. 회원 수는 아직 소수에 불과하다. 1999년 창설 이래 미국의 개업의 80만 명 중 800명이 가입했을 뿐이다. 미국의대생연합(AMSA)도 전체 의대생 6만8000명 중 약 800명에게 서약을 받았다. 하지만 1년 전에 비하면 두 배로 늘었다. 그런 제한 정책을 도입하기 시작한 병원과 의료기관, 의과대학원, 주정부가 점점 늘어간다. 미네소타주는 이미 공짜 선물 제공을 금했고, 다른 3개 주도 비슷한 법안을 심의 중이다. 보스턴대 의과대학원의 캐런 앤트먼 학장은 “의사들은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관계가 약처방에 영향을 준다는 증거가 많다”고 말했다. 그 학교는 지난달 제약회사의 선물과 점심을 전면 금지하고, 초청받은 경우에만 영업사원의 방문을 허용하는 정책을 도입했다. 대기업 제약회사가 의사들을 겨냥한 판촉 비용으로 거액을 지출한다는 사실은 비밀이 아니다. 미국의약품연구제조협회(PhRMA)에 따르면 2004년 제약회사의 판촉 비용은 230억 달러에 달했으며, 그중 159억 달러어치가 무료 시약품이었다. 화이자제약의 캐트린 클래리 부사장은 “늘 많은 약의 설명서가 계속 개정되기 때문에 의사가 전부 다 알기는 어려운 실정”이라며 영업사원들이 “우리 약품의 안전성과 효능에 관해 확실하고, 과학적이며, FDA가 인정한 정보를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영업사원이 단지 해당 약의 최신 정보만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비판도 만만찮다. 그들은 사전에 자료를 찾아 개별 의사의 처방 방식을 알아낸다. 또 공략 대상인 의사가 경쟁사의 약을 처방하는지, 그리고 판촉 방문 뒤에 처방을 바꾸는지 미리 알고 찾아온다. 또 선물도 가져온다. PhRMA는 2002년 유람선 관광과 골프 같은 비싼 선물을 금하는 자발적 기준을 설정했다. 그러나 사회과학자들은 펜 같은 사소한 선물일지라도 부담을 유발시키며, 그런 선물에다 직원들에게 공짜 음식을 가져다주는 영업사원이 정기적으로 찾아온다면 부담은 더 심해진다고 설명한다. 게다가 펜이나 메모지에 제약사 로고가 들어 있으면 그 약이 의사의 뇌리에 남게 된다. 공짜 샘플 약은 환자들이 좋아하고 또 때로는 거기에 의존하기도 한다. 하지만 제약사가 아무런 욕심없이 환자를 도와주지는 않는다. 대개 샘플은 가장 최근 개발된, 가장 비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환자들이 수년 동안 복용해야 하는 심장병 약이나 피임약 같은 경우 특히 그렇다. 환자가 어느 약품을 복용하기 시작해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면 계속 그 약에 매달리게 되고, 그것이 바로 제약회사의 이익으로 직결된다. 그런 활동이 별 문제가 안 될지도 모른다. 비슷한 약인 경우 경쟁사의 제품 대신 판촉을 받은 회사의 제품을 처방해도 상관없다. 그러나 영업사원들은 주로 고가의 신약을 팔려고 애쓰게 마련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환자의 비용 부담이 는다. 또 신약이라고 반드시 약효가 뛰어나지는 않다. 기존의 저렴한 약품들이 신약 못지않은 효과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또 기존의 약이 더욱 안전한 경우도 있다. 심각한 부작용은 대개 그 약품이 출시된 후 발견되기 때문이다. 비옥스의 회수와 당뇨병 치료제 아반디아(Avandia)를 둘러싼 최근의 논란이 좋은 예다. 다행히도 제약회사의 도움 없이 신약 정보를 얻는 방법이 있다. 약품과 치료를 다룬 의학 소식지(The Medical Letter on Drugs and Therapeutics)가 대표적이다. 이 소식지는 소비자 보고서의 일종으로 광고를 싣지 않으며, 구독료는 연간 100달러다. 하지만 영업사원들의 끈기를 당할 장사는 없다. ‘공짜 점심 사절’ 단체의 창립자 로버트 굿맨은 최근 뉴욕에 있는 자기 병원 앞에 주차된 여러 대의 영업사원 차량을 보았다. 그들은 SUV의 뒷문을 열어놓고 자사 제품을 선전하면서 “건설 현장의 커피 트럭처럼” 의사들에게 베이글과 크림치즈를 나눠줬다고 말했다. 그는 그들이 그곳에 있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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