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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향후 5년 동북아 태풍의 핵

북핵, 향후 5년 동북아 태풍의 핵

17대 대선 후보 등록이 마감되고 대선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각 후보들이 앞다퉈 발표하는 각종 정책공약은 앞으로 5년간 대한민국의 운명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각 후보의 정책을 평가하는 일은 유권자들의 선택을 돕는 한편 정책공약 그 자체를 개선시키는 효과를 가져 온다는 점에서 대단히 바람직하다. 우리가 외교·안보·통일을 망라한 대외 정책 분야에 특히 주목하는 이유는 그 영향이 넓고, 깊고, 길기 때문이다. 경제와 안보 등 제반 분야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자칫 나라의 생존과 국민의 복지를 치명적으로 위협할 수도 있다. 그리고 대한한국, 나아가 한민족의 장기적인 발전도 좌우한다. 그러나 대외 정책 공약을 평가하는 작업은 결코 쉽지 않다. 적어도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외교 정책의 성패는 상대의 반응에 맞물려 결정되기 때문이다. 둘째, 대외 정책의 결과는 간접적이다. 국내 상황에 영향을 미치기보다 외부 환경을 바꾼다. 셋째, 외교의 큰 부분은 목적을 지향하는 능동적 행위가 아니라 외부로부터의 충격에 맞서는 대응행위다. 외부의 충격은 구체적이고 사전에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정책공약은 대략적인 지침밖에 제공하지 못한다. 따라서 정책공약을 보고 향후 전개될 구체적 사안의 대응을 점치기 어렵고 그것을 평가하기란 더욱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뉴스위크 한국판이 외국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그로부터 상황을 추출해 각 후보에게 대응을 물어 본 방식은 발상이 기발했다. 다만 기고문의 일부를 발췌해 질문을 제기함으로써 맥락을 벗어나고 각 후보가 질문을 달리 해석하고 답변한 항목이 없지 않아 아쉽다. 그렇지만 이번 특집은 각 후보 진영이 공약을 개발할 당시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지도 모를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공약의 철학과 일관성을 추론해볼 만한 좋은 자료를 제공했다. 전문가들의 질문은 대체로 북핵 문제, 남북 관계, 대북 지원, 평화 체제, 한·미 관계와 북·미 관계, 남북 기본 관계, 통일 등을 다루었다. 후보자들의 답변엔 역시 각 후보나 그 후보가 대표하는 정치세력의 이념적·철학적 지향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예컨대, 보수 - 진보의 연장선에 이회창, 이명박, 정동영, 권영길 후보 순으로 위치시킬 때 그 성향이 가장 대조적으로 드러나는 사례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문항 2)다. 이회창 후보는 포괄적인 재협상을 주장한다. 이명박 후보는 합의 자체는 존중하되 시기에는 융통성 있는 접근을 주장한다. 정동영 후보는 재협상의 필요를 부인하고 권영길 후보는 환수시기를 앞당기는 재협상을 주장한다. 북·미 관계의 조기 개선(문항 1) 문제에서도 뉘앙스의 차이가 두드러진다. 이회창 후보와 이명박 후보는 북·미 관계 개선에 찬성하되 북핵 문제 해결 속도에 연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동영 후보는 북·미 관계 개선을 통해 북핵 문제 해결의 속도를 가속화시킨다고 본다. 권영길 후보는 북·미 적대관계가 북핵 문제의 원인이기 때문에 우선 해결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외견상 의견의 일치를 보이는 사안에도 그 이유는 대조적이다. 예컨대 남북 간 외교관계 수립(문항 7)에 네 후보는 한 목소리로 남북 관계는 통일을 전제로 하는 특수 관계임을 강조,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대만·중국 관계와 같은 일국양체제(문항 10)의 가능성엔 보수 성향의 이명박, 이회창 후보가 반대의 뜻을 분명히 한 반면, 진보 성향의 권영길 후보는 찬성의 뜻을 분명히 했다. 정동영 후보도 사실상 찬성의 뜻을 밝혔다. 또 북한에 한류를 전파(문항 4)하자는 문제에서는 모두 찬성하지만 보수 후보들은 북한의 변화와 개방을 촉진하는 측면을, 진보 후보들은 남북 간 이질성 해소, 동질성 회복 측면을 강조했다. 또 대북 지원을 위한 국제 연합 마셜플랜(문항 3)이나 국제 특별 기금 설립(문항 8), 그리고 북한에 경수로를 지원하는 안(문항 11)을 두고는 모든 후보가 기본적으로 찬성했다. 그러나 보수 후보들은 그것의 집행은 북핵 해결이나 북한의 개혁·개방을 전제로 했다. 진보 후보들은 그것을 대북 지원 혹은 북핵 해결 과정의 일부로 인식했다. 요컨대 각 후보와 진영의 입장은 지난 수년간 두드러지게 나타난 우리사회의 이념적 대립구조를 반영했다. 지난 수년간 우리 사회에 나타난 대외 문제에서 이념 대립은 결국 한국-북한-미국 3자관계의 불균형에 기인하고 그것이 각 후보들의 대선공약에 투영됐다. 심리학의 인지적 일관성의 원칙에 따르면 양자관계에서 우호관계를 (+)로 표기하고 적대관계를 (-)로 표기할 경우 3자관계에 존재하는 세 개의 양자관계를 곱한 값이 (+)가 돼야 하고 (즉 하나가 우호적이고 나머지 두 개가 적대적이거나 셋 모두 우호적인 경우), 그렇지 않으면 인지적 불균형을 불러와 심리적 갈등을 초래한다. 예를 들어 아래 그림을 보자. 그림 1은 한·미 관계는 공고한 동맹관계였고 남북 관계 및 북·미 관계는 적대관계였던 냉전시대의 3자관계를 보여준다. 세 관계를 곱한 값은 (+)×(-)×(-)=(+)로 3자관계는 안정적이었다. 1990년 중반 제1차 북핵 위기 이후 남북 관계가 정체된 상태에서 북·미 관계가 개선되자 곧 한·미 관계의 악화를 의미한다고 보여 [소위 ‘통미봉남(通美封南)·미국과는 소통하고 남한은 봉쇄한다’]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그림 2). 반면 소위 “친북반미”의 논리는 그림 3으로 표현된다. 미·북 적대관계가 지속되는 상태에서 한·미 관계와 남북 관계의 동시에 우호적이라면 인지적 불균형을 초래한다. 남북 관계를 우선하는 한, 그리고 미·북 적대관계가 지속되는 한 반미는 논리적 귀결이다. 그림 3은 기본적으로 “진보의 논리”를 보여준다. 진보의 논리는 남북 화해의 “당위”를 강조한다. 북한의 존재는 미국에 우선한다. 북·미 적대관계라는 “현실”의 책임은 미국에 있다. 따라서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한·미 관계의 냉각은 불가피하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의 입장이 이에 가깝다. 그림 1은 또 “보수의 논리”를 보여준다. 보수의 논리는 북핵 문제로 나타난 남북 대결의 “현실”을 강조한다.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남북 사이에 완전한 화해는 없다. 한·미 동맹은 주어진 기본이고 (핵 포기를 동반한) 남북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북·미 관계의 개선에는 소극적이다.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와 무소속 이회창 후보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이에 가깝다. 그림4처럼 결국 3자관계가 모두 우호적인 관계로 발전해야 가장 바람직하다. 한·미 동맹의 현실을 출발점으로 한다면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가 균형 있게 발전해야 한다. 따라서 북·미 관계가 적대적인 상태에서 남북 관계와 한·미 관계의 병행발전을 표방한 노무현 정부의 정책은 당연히 한·미 동맹에 균열을 가져왔다. 마찬가지 이유로 북·미 관계의 개선에 노무현 정부는 정책의 초점을 두게 됐다. 정동영 후보가 인지적 균형의 논리를 가장 잘 이해한다고 보인다. 그는 시종일관 북핵 문제 해결, 남북 관계 발전, 평화체제 수립을 하나의 일체로 인식하고 추진하는 방안을 제안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 후보가 북핵 문제의 해결을 너무 낙관한다는 느낌이다. 문항 5와 관련해 정 후보는 9·19 공동성명이 “분명하게 ‘모든 핵무기 및 현존하는 핵 프로그램’의 폐기를 목적”으로 한다고 지적하고 “연내 불능화가 마무리 되면 내년부터 핵무기 폐기 단계로 들어간다”고 본다. 그것이 기대대로 이루어진다면, 그리하여 남북 관계가 군사 관계를 포함해 실질적으로 화해 단계에 들어가면 대북 지원이나 북·미 관계의 개선이 일체를 이뤄 선순환 관계 속에서 속도감 있게 진행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폐기 목록 혹은 검증을 둘러싼 갈등이 북핵 문제 해결을 지연시킨다면 누가 집권하든 정부는 매우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하게 된다. 각 후보 정책공약의 진정한 검증은 그때 이루어질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게 있다. 실로 향후 5년간 동북아 국제정치는 북핵 문제를 핵으로 하여 크게 요동칠 게 분명하다. 6자회담은 동북아 국제정치 구조를 크게 바꿀 잠재성이 있고, 그 구조가 바뀌면 한반도의 정세 또한 크게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 차기 정부는 아마 공약 개발 때 깊이 고민하지 않았을 지도 모를 상황에 처하게 돼 제대로 된 정책 개발 능력을 검증 받게 될지 모른다. 곧 통일문제다. 1989년 동독의 최고 지성이었던 오토 라이홀트는 고르바초프 시대 동독이 처한 딜레마를 이렇게 요약했다. “이데올로기 분열이 아니라면 두 개의 독일이 따로 존재할 이유가 무엇인가?” 각 후보는 이구동성으로 남북 관계가 통일을 전제로 한 특수관계임을 강조했다. 그리고 북핵 문제 해결이나 남북 관계 개선을 통한, 혹은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북한의 개혁과 개방을 강조한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더 이상 남한의 적이 아니라면, 그리고 북한이 세계시장 경제 체제에 전면 편입된다면 굳이 두 개의 한국이 존재할 이유가 무엇인가? 다들 공약으로 내세우는 북핵 문제 해결, 남북 관계 개선의 결과가 급속하게 통일의 가능성으로 다가온다면 차기 대통령은 통일이라는 대업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단순한 립 서비스가 아니라 진정한 정책적 차원에서 통일 문제의 복안이 있는가? 아니라면 각 후보의 대외정책 능력은 그때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유권자들은 거기까지 내다보고 후보들의 공약을 검토하거나, 적어도 그 점에서 믿음을 주는 후보를 선택해야 한다. [필자는 서울대학교에서 국제정치학 학·석사 과정을 마친 뒤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국제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플로리다대 방문 교수, 일리노이대 연구원을 거쳐 현재 중앙대에 재직 중이다. ‘외교 정책 신념 체계와 국가 이미지에 관한 실증 사례 연구’(한국정치학회보,2003) 등 논문과 저서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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