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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돈 되는 소리’ 찾는 데 20억 쏟아

[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돈 되는 소리’ 찾는 데 20억 쏟아

▶미국 보스턴에 있는 영창악기 기술연구소 전경. 전문연구원 20명이 상주하고 관계자 수십 명이 보조를 하고 있다.

영창악기의 사실상 제2창업을 주도하고 있는 박병재 대표이사 부회장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했다. 그의 말은 그동안 먼지와 오염투성이, 냄새 나고 치유되지 않을 것 같던 회사의 고질적인 영창 문화를 청소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어쩌면 이질적인 건설업체가 점령하다시피 인수한 이후, 예술의 혼을 뿜어내는 악기회사를 성공의 반석 위에 올려놓는가를 보여주겠다는 공개선언 같았다. 영창이 선언한 ‘제2의 창업’ 속에는 최소한 세 가지의 자신감이 뒷받침해주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박 부회장은 연구소부터 언급했다. “첫 번째는 미국 보스턴에 소재하고 있는 영창악기 연구소가 있잖아요. 보스턴 연구소는 현대산업개발이 영창을 인수하기 훨씬 전인 90년 6월에 설립해서 지금까지 계속 발전하고 있는데, 겨울에 보면 눈 덮인 언덕에 마치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집처럼 아름다운 풍광 속에 자리 잡고 있지만 그 안에는 정말 세계적인 음률연구 석학들과 그 원음을 창조해내는 수십 가지의 기기들이 있어요. 그 사람들이 연구하는 순수 연구비만 연간 20억원 이상 이거든요? 근데 알아듣기 쉽게 얘기를 하려니까 기술연구소도 제품 개발비로 투자되고 있다는 말을 하는데, 나는 사실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어요. 제품 개발이 목적이지만 제품까지 못 나와도 좋다 이거야. 제대로 된 소리가 어떤 거냐, 우리가 발견하지 못하고, 이름을 붙여주지 못하고 있어서 그렇지 그걸 악기로 담아낼 수 있는 소리가 이 우주공간에는 수없이 있다 이거야, 그것만 찾아내도 대성공이라는 자세로 돈을 쏟아 붓고 있다고요. 이미 소리가 상품이고 돈이 되는 시대 아니에요? 명창들이 부르는 소리만 돈이 아니라 자연의 소리도 돈이에요. 굉장한 부가가치가 있는 무한대의 자산이 ‘소리산업’이라고. 그걸 정부도 모르고 기업들도 미처 생각을 못하고 있어요.” 대단하다 싶었다. 원래 덕담도 잘하지만 아이디어도 남달리 풍부한 박 부회장은 두 번째 ‘시작의 힘’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은 ‘피아노의 한계’에 도전하는 도전정신을 꼽고 있었다. 피아노의 한계에는 여러 가지 나타나고 있는 품질의 문제, 디자인의 문제, 시장의 문제 등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가 내포되고 있을 텐데 감히 한계에 도전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대뜸 피아노의 고질병처럼 느껴지고 이사할 때마다 고생해야 하던 악몽이 있어서 끊임없이 토해져 나오는 그의 설명을 끊고 질문을 던졌다.

-피아노가 왜 그렇게 무겁습니까? 꼭 무거워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겁니까? 집안에 변화를 주고 싶어도 피아노가 턱 하니 공간을 차지하고 있으면 아주 꼴통 망나니를 보는 것 같단 말입니다. 어느 집이나 그렇게 느낄 걸요?
“하하, 그거요? 나도 먼저 의구심을 가졌던 부분이 그거였어요. 자동차든 비행기든 하다못해 철판과 섬유소재까지, 첨단을 달린다 하는 제품들은 전부 기능은 향상되면서 경량화로 가고 있는데, 피아노는 어째서 30년 전에 본 피아노나 지금 나오는 피아노나 한결같이 무겁느냐 이거지요. 그건 이사할 때 별도로 계산해줘야 되잖아요. 결론은 내가 무식해서 가졌던 의문이었다고요. 한마디로 고급 피아노일수록, 좋은 피아노일수록 무겁습니다. 왜냐, 나무 때문에 그래요. 피아노라는 것이 건반을 치고, 현을 때리고, 공명의 기능을 거쳐서 사람의 귀에 전달되는 과정은 어느 피아노나 똑같습니다. 그런데 그 소리를 얼마나 원음에 가깝게, 깨지지 않고 멀리까지, 오래도록 전달되게 하느냐 하는 것은 나무에 달렸다는 거지요.” 지면으로 이해시키기는 쉽지 않지만 박 부회장은 언어의 마술사처럼 그림이 눈앞에 떠오르도록 전달하느라 애를 썼다. 내용 속에는 상식을 넘어 지식이 될 수 있는 부분까지 있었다. “일단 피아노에 사용되는 나무는 0.001 mm, 그러니까 1000분의 1mm이상만 변형이 있어도 고급화가 될 수 없다는 게 업계의 평가예요. 설명하자면 끝도 없지만 피아노에 들어가는 나무는 6개월 동안 함수와 탈수의 과정을 거치는데 그런 무변형에 가까운 소재를 쓰려니까 나무보다 더 좋은 소재가 현재까지는 없고, 그만큼 건조가 잘 되고 단단한 것을 쓰다 보니 무거운 나무가 될 수밖에 없는 거지요. 가령 조선 500년 역사에서 지금까지도 뒤틀림 하나 없이 고궁에 남아 있는 옛 기와집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될 겁니다. 그럴 정도로 나무의 질은 설명하기 어려운 세세한 부분까지 영향을 미쳐요. 우리가 북방 나무를 쓴다고 자랑하는 이유가 있는데, 그게 단단하기 때문이라고요. 나무의 나이테를 보면 추운 북방 지역 나무는 좁다고. 굉장히 오밀조밀하지. 남방의 나무는 나이테가 넓고 쑥쑥 자라고. 그러면 그런 나무들은 물러터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나이테가 좁은 나무를 수천, 수만 개씩 똑같은 면적을 만들어 붙여야 되거든요? 그래서 좋은 피아노는 무거워질 수밖에 없는 거예요.” 배석했던 김정현 기획이사가 일본의 야마하 악기공장을 설명하면서 이해를 도왔다. 그는 야마하 공장을 견학하면서 알게 된 내용들을 사실 그대로 전했다. 피아노는 왜 무거운 걸까 “야마하가 있는 공장 입구 기차역에 내리면 첫눈에 들어오는 것이 야마하 전시장과 바로 옆에 카와이(Kawai)악기 전시장이죠. 거기에 보면 정말로 고급나무의 중요성을 알게 해주는 전시물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직경이 4mm밖에 안 되는 나무를 88개의 건반에 들어가도록 가공하고 구멍을 뚫고 하는데, 그게 충분한 건조기간을 거치지 않거나 조금이라도 변형이 생기면 구멍을 뚫을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일일이 수작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대량으로 막 찍어내려면 말이죠. 그래서 그 전시장은 정말 단단하고 깨지거나 갈라지지 않는 질 좋은 나무를 써야 되는 이유를 눈으로 보여주고 있는 거지요. 그 사람들이 진짜 대단하다 싶은 건 카와이가 똑같은 전시장에 과감하게 ‘카와이의 신기술 ADS의 승리’라고 안내 문구를 붙여놨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나무는 아니고 플라스틱 비슷한 합성소재인데 그걸 나무 대신에 쓴다는 거지요.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무엇보다 피아노의 중량을 상당히 줄일 수 있고 가격도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니까 큰 폭으로 낮출 수 있지요. 그래가지고 카와이가 돌풍을 일으켰다는 선전문을 걸어놨는데, 도대체 나무의 중요성을 전시물로 보여주면서 동시에 신소재도 놓는다는 얘기는 뭐냐 이거죠.”

-그렇게 좋은 소재가 있다면 영창에서도 ADS 소재를 사용하면 되지 않습니까.
“바로 그겁니다. 카와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질이 문제라는 겁니다. 어떤 소재도 나무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카와이도 상급 피아노에는 그걸 쓰지 않습니다. 아주 미미한 차이가 있을 뿐인데도 그래요. 일본에는 상급, 중급, 하급의 피아노가 엄정하게 구분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업라이트(UP)피아노냐, 그랜드 피아노냐 하는 정도의 구분만 있잖습니까? 일본에서는 그게 구분되기 때문에 ADS를 쓸 수 있었던 거죠. 물론 90년대 중반에 한국에서도 영창에서 ADS를 쓴다고 해서 소문이 확 돌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땐 카와이에서 쓸 정도라면 나쁜 소재는 결코 아닌데 경쟁사인 삼익악기에서 ‘영창은 최고급 나무를 쓰지 않고 싸구려인 ADS를 쓴다’고 광고를 하는 바람에 혼이 났죠. 그때만 해도 영창이 워크아웃에 들어가고 그랬을 때라서 제대로 ADS에 대해 홍보도 못하고 고스란히 당한 겁니다. 입도 벙끗 못하고 무대를 내려온 목 쉰 웅변가처럼 전전긍긍하다가 결국은 나무로 다시 돌았지요.”

▶중국 톈진의 영창악기 피아노 생산라인. 먼지와 각종 오염물질들을 모두 정화시키고 1등급 공장으로 판정받았다.



-결과적으로 피아노는 고가품이고 나무로 만들어야 제격인데 왜 싸구려 이미지를 주는 플라스틱 소재를 쓰느냐 그거 아닙니까.
“인식이 그만큼 무섭다는 거지요. 그래서 아예 지금의 영창피아노는 아무리 첨단 신소재라고 하더라도 금속성 소재는 넣지를 않습니다만 결론은 역시 나무라는 거지요. 실제로 피아노 형판(사운드보드)을 손으로 탕 두드려보면요, 좋은 나무는 북처럼 웅 하고 울립니다. 길게 오랫동안 울려요. 바로 그런 나무가 최고급이고 그런 이유로 무거운데도 나무를 외면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김 이사의 설명을 듣고 있던 박 부회장은 영창의 비밀 한 가지를 공개했다. 일절 외부에 공개되면 안 된다고 했지만 기자의 귀는 항아리가 아닌 것이다. 국가 이익에 반하지 않는다면 항아리 속에 고여만 있는 정보가 될 수 없고 흘러나가게 돼 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피아노가 무거운 것도 앞으로 해결해야 할 연구대상이지만 결국은 소비자들에게 싸고 좋은 피아노를 공급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영창의 최종 목표가 아니겠느냐면서 그는 품질 면에서 내세울 게 있다는 얘기를 했고, 그 과정에서 비밀이 안테나에 잡힌 셈이었다. “스타인웨이(Steinway)피아노 알지요? 흔히 피아노의 제왕이라고 하잖아요. 역사적으로 봐도 스타인웨이가 1862년에 업라이트 피아노(일반적인 연주용)로서 첫선을 보였다니까 벌써 몇 년입니까? 세계적인 콘서트홀이나 연주장에 가면 언제나 이목을 끌면서 조명을 받고 있는 그야말로 세계적인 명기가 스타인웨이 피아노 아닙니까. 어떻게 보면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나 ‘게릭 올슨’ 같은 세계 정상급 연주가들이 극찬하고 있는 파지올리(세계에서 가장 긴 그랜드 피아노)보다 내용 면에서 더 명기로 평가 받고 있다고요. 그런 스타인웨이가 지금도 연간 5000대 정도밖에 생산을 안 합니다. 우리 영창이 인천공장에서만 연간 1만 대를 생산하고 중국 공장에서 4만5000대를 생산하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되지요.” 400명이 하루 피아노 5대 생산

-스타인웨이가 연간 5000대밖에 나오지 않습니까?
“그걸 숫자적인 면으로 비교를 한다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스타인웨이 피아노는 실질적으로 수공업 제품이거든요. 연주가들 사이에서는 독일산 스타인웨이를 더 알아준다고 그러는데 생산은 함부르크 공장하고 미국 롱아일랜드 공장에서 해요. 근데 각각의 공장에서 몇 대를 생산하는지 아세요? 스타인웨이가 직접 생산하는 선(Sun) 함부르크에 350명이 있고, 뉴욕 롱아일랜드 공장에는 400명의 근로자가 있어요. 놀랍게도 함부르크 같은 경우 350명이 하루 5대를 생산합니다. 뉴욕 롱아일랜드 공장에서도 400명이 하루 5대를 생산한다고요. 생산성에서 말이 돼요? 그렇지만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품질로 평가 받고 최고의 가격을 받거든요? 스타인웨이라는 브랜드만 붙으면 보통 3억원에서 4억원씩 한다고요.”

-그런데 영창의 비밀이라는 건 어디에 숨어있다는 겁니까?
“하하, 궁금하지요? 스타인웨이 피아노에 견줄 만한 세계적인 피아노가 또 있어요. 영업비밀이기 때문에 밝힐 수 없지만 A라는 브랜드가 있어요. 그 피아노를 우리 영창에서 공급하는 겁니다.” 특급비밀이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피아노를 취미 삼아 친다고 하는 사람이더라도 스타인웨이 피아노의 건반 한번 두드려보는 것이 소망이라고 할 정도로 스타인웨이는 귀족으로 분류된다. 그런데 그런 피아노와 버금가는 피아노를 국내 업체에서 납품하고 있다니까 충격적인 정보가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스타인웨이처럼 A브랜드의 피아노 회사도 어디서 생산하고, 어디로 운반되고, 가격이 얼마라는 것을 밝히지 않는 게 고집스러운 전통처럼 알려져 있다.

-A브랜드 피아노에도 여러 부분이 있을 것 아닙니까. 자동차에도 여러 협력업체가 부품을 납품하면 완성차 업체에서 완성품을 내듯이 영창도 A브랜드에 일부분을 납품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 말입니다.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하면요, 피아노를 열면 쇠판이 하나 나오지요? 그 프레임을 우리가 직접 제작해요. 모든 피아노는 우리가 직접 만든 프레임을 써요. 건반도 우리가 만들어요. 건반을 치면 안에서 작용하는 뭔가가 있지 않겠어요? 그게 싱크라고 그래요. 현을 때리는 해머가 있지요? 해머하고 액션 부위 전체가 또 있어요. 그걸 전부 우리 영창에서 직접 만들고 있다고요. 전부 완제품으로 들어가요. 영창피아노의 품질을 얘기하느라고 스타인웨이와 동급인 A브랜드 피아노를 말하게 됐는데 일부 부품만 가지고 얘기가 돼요? 솔직히 관악기는 이제 시작이다 보니 아직 얼굴을 쳐들기가 조금 쑥스러운 부분이 있지만 피아노의 품질은 자신 있다고요.”

-그렇다면 OEM방식으로 생산한다는 얘기 아닙니까?
“사실 우리한테는 다행이고 자존심 상하는 문제가 아니더라고요. 우리한테 협상이 들어온 것이 영창을 인수하고 나서 2개월쯤 지나서인가? 2006년 7월이었으니까. 어느 악기회사가, 더구나 완제품을 생산하고 영창이라는 독자적인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데 남의 회사 브랜드로 OEM 생산하는 걸 좋아하겠어요. 자존심 상하고 스타일 구기는 일이라서 안 하지. 그러나 했어요. 왜, A브랜드 피아노이기 때문에 한 거예요. 협상을 받아들인 거지요. 그랬더니 결과적으로 아주 잘된 겁니다. 그 회사가 우리한테 주는 사양과 그 회사의 기술지도 방식, 품질, 그런 모든 게 사실 전부 우리 영창으로 이전이 되는 셈 아닙니까. 우리가 어지간한 바보가 아니라면 그렇게 되는 거 아니에요? 우리가 갖지 못했던 세계적인 A브랜드 피아노 기술이 전부 영창으로 왔다고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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