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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정책과 장기 수사는 모순”

“국가 정책과 장기 수사는 모순”



“론스타 사건은 한국 시장이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외국인들의 한국 투자를 더욱 조심스럽게 만들 수도 있다.”-윌리엄 오벌린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

‘외환은행 헐값 매각’ 관련 재판과는 달리 론스타가 기소된 외환카드 주가조작 관련 재판은 탄력을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검찰은 16일 유회원 전 론스타코리아 대표에게 징역 10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검찰은 결심 공판에서 “주가조작 같은 행위는 미국에서도 강력히 처벌하고 있다”며 “국제적 규범에 맞춰 한국 법을 어긴 범죄 행위에 대해 단죄를 내린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 수사가 국민정서법이 아닌 글로벌 스탠더드에 입각한 것임을 강조한 것이다. 검찰은 또 17일 주가조작 의혹과 관련해 입국한 존 그레이켄 론스타 회장에 대한 출국정지 기간을 열흘 연장했다. 세계 금융계의 거물이 20일이나 묶인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레이켄 회장은 매일 검찰에 출석해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12시간씩 강도 높은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레이켄 회장은 외환은행 매입과 외환카드 합병 과정에 위법 행위가 없었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아직 수사 초기 단계라 그레이켄 회장의 사법처리에 대해 말하긴 이르다”고 밝히기는 했지만, 경제 논리보다는 법과 원칙에 따라 해결하겠다는 것이 지금 검찰의 입장이다. 탄력을 받긴 했지만, 이 재판 역시 쉽게 끝날 것 같지는 않다. 한국에 발이 묶인 그레이켄 회장에 대해 국외의 관심은 심각한 수준이다. 우선 외국인 투자자와 국내 금융권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론스타에 대한 사법처리가 반(反) 외자정서로 비치면서 새 정부의 외국인 투자 확대를 통한 금융산업 강화 전략 드라이브에도 브레이크가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법원은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에 대한 1심 판결을 다음달 1일로 잡아놨다.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에 대한 재판도 신속히 진행할 계획이지만 지루한 법정 공방이 계속되고 있어 언제 끝날지 기약할 수 없는 상태다. 금융감독위원회는 법원 판결이 나야 외환은행 매각 승인 건을 심의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HSBC와 론스타의 계약 만기일인 4월 30일 이전 1심 판결이 나오더라도 항소가 이어질 경우 재판은 2~3년을 더 끌 가능성이 높다. 지금 상황으로 봐선 HSBC의 외환은행 인수는 물 건너 갈 공산이 크다. 이렇게 될 경우 한국의 외자유치는 심각한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제 발로 온 기업인을 붙잡다니”



“물론, 한국 사법권의 독립성과 완전함을 신뢰하지만, 우리는 대중정서와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반 외자정서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칼 요한 하그만 주한유럽상공회의소 회장

문제는 외국의 반응이다. “한국은 외국인 투자자가 투자수익을 환수하는 데 분노를 표하고 있어 외국인들의 한국 투자를 더욱 조심스럽게 만들 수 있다.” ‘제 발로 들어온’ 그레이켄 회장에게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진 것에 대한 월스트리트 저널의 평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의 말처럼 외국인들의 한국 투자에 브레이크가 걸릴 것인가. 본지는 30여 명의 외국인 CEO에게 e-메일 설문을 한 결과 대다수의 주한 외국인 CEO는 “그럴 것”으로 보고 있었다. 공통된 이유는 “한국 시장은 예측불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윌리엄 오벌린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회장과 태미 오버비 암참 대표도 16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론스타 사건은 한국 시장이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지적한 바 있다. 주한외국인 CEO가 말하는 ‘한국 시장의 예측 불가능’이란 무엇일까. 칼 요한 하그만 주한유럽상공회의소(EUCCK) 회장의 설명은 이렇다. “산업과 외국인 투자는 특별히 법적 체계 아래서 신용을 가져야 한다. 신용은 법이 지속적이고 ‘예측 가능한’ 태도로 적용될 때 쌓이는 것이다. EUCCK는 한국 법을 어기는 것을 좌시하지 않으며 또 언제나 기업 시민정신을 장려했다. 물론, 한국 사법권의 독립성과 완전함을 신뢰하지만, EUCCK는 대중정서와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반 외자정서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반 외자정서가 검찰에 작용해 론스타가 ‘지나치게 이윤을 냈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검찰이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수가 위법이라고 소급한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태미 오버비 암참 대표는 “외국인들은 론스타가 어떤 문제를 일으켰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며 “지나친 단순화일 수도 있지만 한국인들은 론스타가 돈을 많이 벌어놓고 세금을 내지 않은데 대해 불만을 품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외국에는 법을 지켰다면 지나친 이윤을 냈다는 개념 자체가 없다”고 설명했다. 전 서울재팬클럽 회장인 다카스키 노부야 후지제록스 고문도 검찰 당국의 장기간에 걸친 조사가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수가 위법이다’라고 소급하는 데서 나온 것으로 보고 있었다. 그는 이에 대해 “한국 국가경제 정책이 모호하고 일관성이 결여된 것으로 보인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김대중 대통령의 경제방침은 민주주의, 시장경제주의였다. 한국 경제의 발전은 외국인 투자(FDI)에 있다고 해서 문호를 개방하고 외국 투자를 장려했다. 이에 따라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매수, 즉 FDI를 한 것이다. 외국 투자를 장려하는 국가방침과 검찰 당국의 장기간에 걸친 수사는 모순이라고 본다.” 가이 워링턴 주한영국대사관 부대사는 “반 외자정서에서 벗어나, 외환은행이 론스타에 매각돼 HSBC에 인수되는 것이 외환은행 주주와 소비자, 한국 금융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따져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외국기업과도 비즈니스 프렌들리”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매수, 즉 외국인 투자(FDI)를 한 것이다. 외국투자를 장려하는 국가방침과 검찰 당국의 장기간에 걸친 수사는 모순이라고 본다.”-다카스키 노부야 후지제록스 고문

그는 “이명박 정부가 어떻게 이 이슈를 다루는지가 한국 내 투자와 금융서비스센터로 한국이 발전하는 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태도에 강한 신호탄이 될 것”이라며 “HSBC가 외환은행을 살 수 있어야 외국인 투자자에게 올바른 메시지를 전달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월스트리트의 ‘분노’라는 표현처럼 우리의 반 외자정서는 어느 정도 심각한 것일까. 위의 답변자를 제외한 나머지 외국인 CEO의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대답하기 곤란하다. 한국인은 외국 자본에 부정적이지 않은가.” “이 부분에 대해선 대답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론스타 재판은 새 정부에도 여러모로 부담스러울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17일 신년 외신기자회견에서 “이미 론스타는 법적 절차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언급하는 게 적절치 않다”면서도 “한국 기업이 외국에 투자하거나 외국 기업이 한국에 투자할 때 그 나라의 법을 존중하고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당선인은 그러면서도 “차기 정부는 ‘비즈니스 프렌들리’(기업친화적)라고 했는데 이는 외국 기업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말했다. 법대로 하면서 외국 투자자도 끌어안으려는 노력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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