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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기업 한국서도 기지개

외국기업 한국서도 기지개

한국은 떠오르는 경제대국 중국·인도의 등쌀에 밀려 신흥시장의 지위를 점차 잃고 있는가. 실제 외국인 투자 규모만 놓고 보면 신흥시장이라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산업자원부 ‘2007년 외국인 직접투자 동향’에 따르면 1999년 155억 달러이던 투자액이 2007년에는 105억 달러로 32%나 줄었다. 2004년 128억 달러로 잠시 회복됐다가 2005년부터 다시 116억, 112억, 105억 달러로 3년 내리 하향곡선을 그렸다. “ 한국 경제가 성숙기 초기단계에 접어들면서 중국, 인도, 브라질처럼 거대한 시장 기회를 만들어내지 못했다”고 이경상 대한상공회의소 기업정책팀장은 분석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외국기업고충처리팀 유정호 전문위원은 “국내에 진출한 많은 외국 기업이 자국보다 까다롭고 번거로운 규제와 법령들에 큰 불편을 느낀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시장이 좁고 규제가 심한 한국시장에서도 가파르게 성장한 외국 기업도 적진 않다. 특히 1998년 외환위기를 전후로 국내 기업을 인수해 세계시장 공략의 전초기지로 삼은 기업들의 성장세가 돋보인다. 업계에서는 GM대우와 볼보코리아를 대표 사례로 든다. 2002년 GM이 대우자동차를 인수했던 당시 대우 자동차 판매대수는 41만1573대에 그쳤다. 같은 해 GM의 전 세계 판매 실적(862만 대)의 4.8%에 불과한 수치다. 하지만 해가 바뀌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특히 지난해 GM대우는 국내외 시장에서 188만6632대의 자동차를 팔아 GM 판매실적(937만 대)의 20%를 차지했다. 무엇보다 GM이 거느린 전 세계 판매망이 GM대우의 매출신장에 큰 지원군이었다. 2002년 8000명이던 직원 수도 지난해 1만6000여 명으로 두 배가량 늘었다. GM대우는 2006년 전 세계 GM의 글로벌 경·소형차 개발기지로 선정되면서 더 큰 날개를 달았다. GM은 향후 1~2년 안에 3조원가량을 추가 투자해 차세대 경·소형차를 선보일 계획이다. GM은 세계시장에서 일본 도요타의 기세에 밀려 고전하지만 중국에서는 2005년 이후 3년 연속 판매 1위를 달린다. GM대우가 중국시장에서 36만 대를 판매하면서 힘을 보탰다. 전 세계 완성차 업체 가운데 중국 내 판매 100만 대를 돌파한 업체는 GM이 처음이다. GM그룹의 릭 왜고너 회장은 그동안 GM의 글로벌 경영에서 GM대우가 차지하는 비중을 높게 평가해 왔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지는 2006년 5월 GM대우를 GM의 인수합병 가운데 최고의 성공사례로 꼽기도 했다. 그렇다고 GM이 한국시장에서 돈을 쓸어 담는 건 아니다. 2005년 이래 내수판매가 3년간 꾸준히 증가했지만 겨우 13만 대를 웃돌았다. 그만큼 해외시장 비중이 크다. 2021년 정리해고 된 직원 1700명 중 1600여 명이 복직하면서 노사 간 상생모델로 주목을 받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는 아직 걸림돌로 남아 있다. “GM의 글로벌 자원 및 네트워크를 활용한 제품 라인업 보강, 체험 마케팅을 기반으로 한 혁신적이고 적극적인 판촉활동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GM대우 김성수 기업홍보팀장은 강조했다. 볼보그룹 코리아도 한국기업을 인수해 외형 확대에 성공한 기업으로 꼽힌다. 1998년 삼성중공업 건설기계 사업부문을 5억 달러에 사들여 현재 건설기계, 트럭, 펜타(엔진) 등 3개 사업부를 운영하고 있다. 이 가운데 트럭과 펜타사업부는 완제품을 수입하지만 건설기계사업부는 국내에서 제품을 생산해 이 사업부문 그룹 매출의 85%가량을 차지한다. 볼보그룹은 향후 굴삭기 비즈니스의 본사 역할을 하는 한국을 아시아 시장 전진기지로 만들 구상이다. “한국은 높은 경제성장 잠재력, 제조 기술력, 우수한 산업 인프라 등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매력적인 투자환경을 보유했다”고 홍보실 김희장 팀장이 말했다. 삼성의 우수한 인적자원과 선진화된 생산설비를 확보해 볼보그룹은 취약했던 굴삭기 분야의 경쟁력을 다진 셈이다. 현재 회사는 생산물량의 85% 이상을 유럽과 북미, 아시아 등 세계시장에 수출하고 있다. 2005년 7억 달러, 2006년 10억 달러어치를 수출한 볼보그룹 코리아는 2009년까지 세계 굴삭기시장 점유율을 현재의 8%에서 15%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이처럼 외국 투자기업이 국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점차 늘고 있다. 2003년 11.7%이던 외국기업 수출비중이 2004년(13.3%), 2005년(13.7%)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제조업 매출에서도 외국인 투자기업은 2003년 13.4%에서 2005년 13.9%로 비중이 커졌다. 국내에 진출한 다국적기업 가운데는 한국 시장의 강점을 최대한 살려 매출신장을 이룬 곳도 있다. 특히 삼성, LG, 현대자동차처럼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는 국내 대기업들과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외국기업들은 승승장구하는 분위기다. 유코 카 캐리어스(Eukor Car Carriers)는 낯선 이름이지만 자동차 전용 수송 분야에서 세계 2위 기업이다. 이 회사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산하 국가 투자유치 기관인 ‘인베스트 코리아’가 한국에 진출한 외국기업 중 가장 성공한 기업으로 꼽은 회사다. 유코 카 캐리어스는 2002년 유동성 위기에 몰린 현대상선으로부터 자동차 운송사업 부문을 인수하며 한국에 진출했다. 현대상선이 그동안 독점해 온 현대자동차의 해외운송 업무를 그대로 물려받는다는 조건이었다. 당시 현대상선의 자동차 운송 실적은 200만 대에 달했지만, 지금은 현대·기아자동차를 포함해 330만 대를 훌쩍 넘어섰다. 이 회사의 매출액은 지난해 17억 달러를 돌파했다. “우리에게 현대와의 연계는 거절하기 어려운 절호의 기회였다”고 현대상선 인수를 주도했던 칼 요한 하그만 전 사장은 한국 진출 당시를 떠올렸다. 국내에서 급성장한 외국계 기업 가운데 LCD 주요 부품을 생산해 온 ‘동우화인켐’도 빼놓을 수 없다. 외환위기 때 이 회사의 대주주가 된 일본계 스미토모 그룹은 한동안 연구·개발 투자와 생산설비라인 증설에 매달렸다. 2001년 이후 쏟아 부은 투자액은 16억 달러. 이런 노력 덕분에 첫해 2만 달러에 그쳤던 동우화인켐의 매출액은 2006년 13억 달러로 치솟았다. 스미토모 화학부문의 전체 매출 가운데 동우화인켐이 차지하는 매출 비중도 2002년 1.4%에서 2006년 8.4%로 늘어나면서 주력 사업장으로 떠올랐다. 설립 당시 40명에 불과했던 종업원 수도 현재 1900명으로 불어났다. 문희철 동우화인켐 사장은 “최고 고객을 가까운 곳에 둔 행운 때문에 이 같은 실적을 거둘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전 세계 LCD 시장의 40%를 장악한 삼성전자와 ‘LG 필립스 LCD’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이들 두 회사는 동우화인켐이 생산하는 LCD부품의 최대 고객이다. 세계 시장의 전초기지 구상이나 국내 대기업과의 특별한 연계 없이 차근히 기반을 다진 기업들도 있다. DHL코리아는 1977년 국내에서 처음 국제특송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시장점유율에서 한 번도 선두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올해도 5000만 달러를 투자해 인천공항에 허브터미널을 건설한다. ‘동북아 항공 물류 허브 기지’로 중국 상하이 푸둥 공항을 선택했지만 인천공항 역시 물류 집하기지로 활용하겠다는 게 DHL의 포석이다. 경제전문지 ‘포춘’이 2006년, 2007년 연속 ‘가장 존경 받는 기업’으로 선정한 GE도 한국을 기업 성장의 한 축으로 삼고 있다. GE코리아는 지난해 15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고, 한국에서 약 10억 달러어치의 제품과 부품을 매입해 해외에 수출해 왔다. 2004년과 2005년 현대캐피탈과 현대카드에 1조7000억원을 투자하는 등 한국시장 투자액을 지속적으로 늘려 오고 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국내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외국자본은 우려되는 대목이다. 2003년 12억4000달러였던 외국인 투자기업 회수금액이 2005년 32억3000만 달러, 2006년 49억8000만 달러로 계속 증가하기 때문이다. 산자부는 “한·미 FTA 체결 등 새로운 투자유치 동력을 발굴해 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당선인 신분이던 지난 1월 15일 주한 외국인 투자기업과의 신년인사회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겪는 문제 해결을 위한 ‘태스크포스’ 구성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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