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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Market View] 세계경제는 여전히 안개 속

[World Market View] 세계경제는 여전히 안개 속

‘난기류의 시대(The Age of Turbulence)’.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얼마 전 발간한 책의 제목이다. 심하게 덜컹거리는 요즘의 글로벌 경제 및 금융시장 상황에 가장 어울리는 표현인 것 같다.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라는 괴물이 출현해 글로벌 경제를 뒤흔들기 시작한 지 벌써 1년이 흘렀다. 처음에는 미국의 주택금융 부실이 뭐 그리 대수로운가 하고들 생각했다. 미국 경제가 좀 어려워져도 중국·인도·한국 등 신흥국가들은 안전할 것이란 진단이 우세했다. 이른바 ‘디커플링(탈동조화)’론이었다. 하지만 예상은 여지없이 깨졌다. 미국을 넘어 글로벌 경제가 흔들리는 가운데 각국의 주가가 동반 급락했다. 그래도 주식과 같은 금융자산이 많은 이들이나 걱정할 문제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았다. 재테크는 엄두를 내지 못하는 서민들 입장에서야 무슨 상관이냐는 시각이었다. 그런데 서브프라임 사태는 서민들까지 울리는 더욱 무서운 괴물을 불러들이기에 이르렀다. 인플레이션이 그것이다. 원유·금·구리 등 원자재와 밀·콩 등 곡물 값이 하루가 멀다 하고 치솟는다. 원유 값은 배럴당 106달러까지 뛰어올라 인플레를 감안한 오일쇼크 당시 사상최고치(1980년 3월, 103달러)를 넘어섰고, 금 값은 온스당 1000달러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 여파로 국내 생활물가도 급등한다. 급기야 대통령이 직접 나서 물가대책을 독려하고 라면 값이 100원 인상된 문제가 국무회의의 논의 대상에 올랐다. 서브프라임 사태와 물가 문제가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할지 모른다. 중국과 인도 같은 인구 대국이 경제 성장을 발판으로 거대 소비시장으로 전환하면서 국제 원자재와 곡물을 빨아들이고 있는 게 주요인 아니냐는 시각이다.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그랬다. 신흥시장의 성장에 따른 실수요를 반영해 원자재 값이 꾸준히 올랐던 게 사실이다. 당시 국제 원유 값은 60달러대였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양상이 달라졌다. 실수요를 감안하더라도 가격 상승 속도가 너무 빨라졌다. 투기적 수요가 본격 가세한 탓이다. 지난해 9월 이후 미국 FRB는 서브프라임 사태에 따른 신용경색과 경기침체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금리를 급격히 내렸고, 그럴 때마다 원자재 값은 용수철처럼 한 단계씩 뛰어올랐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도 최근 “투기자금 때문에 국제 유가가 10% 이상 부풀려져 거래되고 있다”고 밝혔다. 두 가지 경로가 작용했다. 먼저 직접 경로다. 금리 하락은 유동성을 잔뜩 불려놓지만 금융자산에 대한 기대수익은 떨어뜨리게 마련이다. 넘치는 돈은 원자재와 곡물 등을 먹잇감으로 노리게 된다. 국내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원자재펀드는 큰 인기다. 거액 투기 자본은 물론이고 소액 재테크 자금까지 원자재시장으로 몰리고 있으니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 다음은 간접 경로다. 미국의 금리인하는 미국의 통화인 달러화 가치를 계속 떨어뜨리고 있다. 그런데 국제 원자재시장의 결제 화폐가 바로 달러화다. 원자재를 팔아 달러를 받는 산유국 등은 가만히 앉아 손해를 보게 됐다며 높은 가격을 계속 요구하고 있다. 그게 달러화 가치 하락분과 일치하면 그만이겠지만 그렇지 않고 탄력을 받아 더 오르기 일쑤다.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공급도 늘어날 법한데, 산유국 등은 왜 물량을 늘리지 않을까. 문제를 초래한 미국에 먼저 근본 처방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달러화 가치의 안정을 위한 미 정부의 선제적 노력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실물경제 전망이 어두운 것도 원자재 공급이 쉽게 늘어나지 않는 이유다. 오일쇼크 이후 지난 25년간의 원자재 가격 흐름을 보면 경기가 상승할 때 가격이 오르고 경기가 침체하면 가격도 내리는 모습을 반복했다. 자칫 공급확대를 위해 설비를 잔뜩 늘렸다가 투기적 수요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면 가격이 급락해 낭패를 볼 수 있다는 게 원자재 공급 국가들의 걱정이다. 이래저래 서브프라임 사태가 진정되지 않는 한 글로벌 경제는 난기류에서 빠져나오기 힘들 전망이다. 과연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 하반기부턴 나아지지 않겠느냐는 견해가 우세한 편이다. 그렇다면 몇 달만 더 견디면 된다. 하지만 미국의 투자은행 골드먼삭스의 최고경영자(CEO)인 로이드 블래크페인은 이렇게 내다봤다. “마무리는 아직 멀었다. 이제 겨우 절반을 지나 절반과 3분의 2 사이에 있다고 본다. 적어도 올 연말까지는 서브프라임 문제에 관심을 둬야 한다. 계속 어려운 시기가 될 것이고 월가는 물론 서민들까지 고통 받게 될 것이다.” 골드먼삭스는 미 투자은행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서브프라임 피해를 비켜 가 “역시 골드먼삭스”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필자는 중앙일보 경제부 차장을 거쳐 중앙선데이 경제 에디터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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