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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 대란 ‘12일의 악몽’ 주범은?

환율 대란 ‘12일의 악몽’ 주범은?

말 그대로 2주간의 악몽이었다. 2월 말부터 3월 17일까지(개장일 수 12일) 벌어진 환율(원-달러) 폭등 사태는 ‘제2 환란’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단기간 환율 폭등에 많은 기업은 경영 계획 자체를 수정해야 했고, 개인들은 쪼그라들 살림살이를 걱정해야 했다. 최근 벌어진 환율 폭등 사태는 많은 의문점을 낳고 있다. 전 세계 달러 약세 속에서 유독 원화 가치만 폭락했기 때문이다. 과연 외환시장에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세계 5위 외환보유액을 자랑하던 정부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악몽은 끝난 것일까. 지난 2주간 벌어졌던 환율 폭등 사태의 미스터리를 파헤쳤다.
“다시는 경험하기 싫은 악몽이었습니다.” 환율 폭등 사태가 다소 진정된 19일 한 외환딜러는 지난 2주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패닉 그 자체였다”며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속된 말로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어제는(18일) 넉 놓고 차트만 보고 있었죠. 환율이 1030원까지 올랐을 땐 여기저기서 허공에 대고 욕들을 하기 시작했죠.” 환율 폭등 사태로 패닉에 빠진 것은 외환딜러만이 아니다. 기업들도 비상이 걸렸다. 특히 환율 상승이 곧 경영실적 악화를 뜻하는 수입업체들엔 2주간의 환율 폭등은 그야말로 청천병력이었다. 한 식품업계 임원은 “환율이 10원 오르면 수입 원재료 값 상승으로 20억~30억원의 손실을 봐야 한다”며 “2주간 환율이 계속 오르면서 공장 가동을 중단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고 토로했다. 개인들도 마찬가지였다. 해외펀드에 투자했던 많은 개인은 환헤지로 환차익 기회를 날려야 했고, 해외에 가족을 보낸 기러기 아빠들은 껑충 뛴 생활비 부담 때문에 한숨만 내쉬어야 했다. “매달 중순 500만원가량의 생활비를 보냈는데 이달에는 환율이 너무 올라 송금을 늦추기로 했죠. 아내가 묻더군요. 이러다 외환위기가 다시 오는 것 아니냐고요.” 지난해 미국에 가족을 보낸 P씨는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 환율 폭등 사태가 시작된 것은 2월 말부터였다. 연초 이후 930~940원 사이에서 움직이던 환율은 2월 29일부터 오르기 시작하더니 3월 17일까지 2주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상승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승폭은 가팔랐다. 급기야 17일에는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하루 30원 이상 환율이 오르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렇게 환율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단 2주 만에 1000원을 넘어섰다. 2년 2개월 만에 ‘1달러=1000원’ 시대로 돌아간 것이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청와대와 정부, 외환시장 곳곳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냐”며 사태의 진원지를 찾으려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전 세계적으로 달러 가치가 뚝 떨어지는 가운데 유독 원화만 달러 대비 약세를 보이는 이상현상이 계속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명박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사태 파악에 나서라”고 지시할 정도였다.
하지만 아무도 속 시원한 해답을 내놓지 못했다. 사태를 미리 파악하고 대책을 내놨어야 할 청와대와 정부는 환율 폭등이 절정에 달한 17일까지 ‘묵묵부답’이었다. 오히려 정부는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라며 여유를 부리기까지 했다. 이 가운데 주식시장에서는 외국인들이 환율 폭등 사태의 원흉으로 지목됐다. 경상수지 적자 등 국내에 달러 공급이 감소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 경기침체를 우려한 외국인들이 국내 주식을 대거 팔아 달러로 바꿔 나가면서 환율이 요동쳤다는 분석이었다. 실제로 외국인들은 올 들어 지난 17일까지 단 4일만을 제외하고 매일 수천억원의 주식을 내다 팔았다. 이 기간 동안 외국인들의 주식 순매도 금액은 17조원이 넘는다. 이 때문에 일부 언론에서는 “외국인이 원화가치 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며 이번 사태의 주범으로 몰아갔다. 하지만 외환시장에서는 전혀 다른 분석이 나왔다. 외국인 주식투자자금 이탈은 환율 시장을 불안하게 만든 요인이긴 했지만 단기 폭등이라는 이상현상을 일으킨 원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대신 해외펀드를 주범으로 지목했다. 정확히 말하면 해외펀드의 선물환 매수 거래가 단기간 집중적으로 달러 수요를 폭증시키면서 환율을 요동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한 외환딜러는 “외국인 주식투자자금 이탈로 유동성 문제가 불거진 외환시장에 해외펀드가 가세하면서 단기간 환율이 폭등했다”고 설명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환율 방어를 위해 해외펀드에 비과세 조치를 취한 노무현 정부도 이번 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또 사태를 방기한 정부도 공범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정부의 방치가 환율 상승을 용인한다는 메시지로 해석되면서 환율 폭등 사태가 더욱 심각해졌다는 것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환율이 오르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환차손을 입을 수밖에 없다”며 “따라서 정부의 시장개입 의지에 따라 외국인 자금은 더욱 빨리 이탈할 수밖에 없고, 이는 다시 환율을 끌어올리는 악순환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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