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기업 DNA엔 철학이 있다
100년 기업 DNA엔 철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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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로마에서 만난 교포에게서 들은 얘기다. 초등학교 3학년짜리 아들 하나를 데리고 이민 왔는데, 현지 학교에 입학시킨 며칠 후 담임교사의 호출을 받았다고 한다. 아이가 낯선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나 하고 달려갔는데, 교사의 말은 뜻밖이었다. “어떻게 아이가 구구단을 줄줄 외우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아이 아버지가 “한국에서는 그 정도는 다 떼고 입학한다”고 설명하자 교사는 “수리력이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구구단을 외우게 하는 것은 아이의 창의성을 망치는 것”이라며 호되게 주의를 주었다고 한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 등장하는 분수정원은 물을 뿜어내는 데 단 1볼트의 전력도 필요하지 않다. 오로지 기하학과 수리학을 통해 얻어낸 위치에너지로 곳곳에서 수십m나 치솟는 불가사의한 분수를 만들어냈다. 수천 년 전부터 아이에게 구구단을 외우지 못하게 해서 얻어낸 창의성이 뿜어낸 걸작이다. 이탈리아가 세계적인 명품의 나라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그런 교육철학과 무관하지 않다. 이탈리아에는 수백 년, 심지어 1000년을 이어온 명품가(家)가 셀 수 없이 많다. 이미 우리 귀에도 익숙한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도 알고 보면 50년 전쯤에는 이들 중 하나였다. 이들 집안에선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할 즈음, 부모가 신중한 결정을 내린다. 계속 공부를 시킬 것인지, 아니면 가업을 물려줄 것인지. 나중에 명문대에 갈 정도로 학업 성적이 좋지 않다면 일찌감치 가업을 전수시켜 최고의 명장으로 키우겠다는 것이다. 수백 년 전통을 자랑하는 명가의 장인정신은 이렇게 전수돼 온 것이다. 200년이 넘은 장수 기업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윌리엄 오하라 교수는 “세계적인 장수 기업은 장인정신으로 철저하게 무장돼 있다”고 분석했다. 서기 578년에 창업해 장장 1430년을 이어 온 세계 최장수 기업인 일본의 건설 명가 곤고구미를 비롯해 1000년이 넘는 프랑스 와인 명가 샤토 굴랭, 700년 장수한 독일 호텔 기업 필그림하우스, 467년 된 영국 모직 회사 존 브룩, 454년 된 네덜란드 비누 회사 데베르굴데한트, 359년 된 핀란드 가위 명가 휘스카스 모두 장인정신으로 정평이 나 있는 기업들이다. 장인정신이 부족해서일까. 100년을 넘기는 기업은 극히 일부다. 세계 기업의 평균 수명이 고작 12년 6개월이다. 초우량 기업도 마찬가지다. 미국 경제지 포춘이 1970년대에 선정한 500대 기업 중 3분의 1이 13년 뒤에 사라졌다. 우리 기업들 사이에도 이른바 ‘지속 가능한 경영’이 화두다. 살아남기도 힘든 치열한 경쟁시대에 ‘오래 사는’ 기업을 만든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그러나 바꿔 말하면 오래 사는 비법을 안다는 것은 이미 살아남는 법 정도는 꿰고 있음을 뜻한다. 장수 비법이 결국 건강 비법인 셈이다. 100년이 넘은 전통을 자랑하는 기업을 두고, 그 장수의 비결을 찾으면서 경영전략으로 접근하는 것은 그다지 실익이 없을 것 같다. 전략이란 것은 그때그때 달라질 수 있는데다 문화가 다른 곳에 무턱대고 적용했다간 낭패 보기 십상이다. 보다 근본적인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기업의 근간을 이루는 전통과 문화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풍(社風)은 역시 창업 당시의 가풍(家風)에서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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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기업의 메시지 ■ 발렌베리 존재하지만 드러내지 않는다 능력 검증돼야 경영권 승계 ■ 타타그룹 자연처럼 사회의 일부가 돼라 사회적 의무 회사정관에 명시 ■ 골드먼삭스 헌신이 준비된 직원만 뽑는다 나보다는 회사, 회사보다 고객 먼저 생각하라 ■ HSBC 관시는 어디서나 통한다 진출국의 문화를 수용하라 ■ 코닥 다양성과 포용력을 견지하라 항상 고객의 곁에 있으라 ■ 도시바 중역은 직원보다 10배로 일하라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봐라 ■ 밀레 직원은 비용이 아니라 가족이다 동업의 의리를 깨지 마라 ■ JP모건 약속은 생명과도 같다 윤리는 법보다 엄하다 ■ 브리지스톤 전선도 뛰어넘는 기업가 정신 무조건 고객을 믿으라 ■ 미셸린 오너ㆍ경영진은 무한책임 전 사원의 69%가 회사 주식 보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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