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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문화’가 더 해롭다

‘부의 문화’가 더 해롭다

수십 년 전부터 사회학자, 정책 전문가, 정치인들은 이른바 빈곤의 문화를 연구하고 토론해 왔다. 거기서 도출된 결론은 미국에 지역·계층·소득에 따라 주류 사회와 확연히 구별되는 계층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 계층 구성원들은 다른 사회에 적용되지 않는 규범을 따르고 국가 전체에도 상당한 부담을 주는 자멸적인 행동을 한다. 그후론 빈곤 문화는 강력한 정치 소재가 됐고 (과거 로널드 레이건은 사기나 조작으로 복지수당을 타내는 ‘복지귀족’ 문제를 지적했다) 우파(찰스 머리)와 좌파(조너선 코졸) 가리지 않고 베스트셀러 이론서를 탄생시켰다. 요즘에는 빈곤 문화에 대한 논쟁이 시들해졌다. 아마도 시장혼란으로 우리 모두가 좀 더 가난해졌다고 느끼는 탓일까. 아니면 어디서나 눈길을 끌던 상류계층이 이제 하류계층 사람들과 처지가 다를 바 없어 보이기 때문일까. ‘복지귀족’과 빈곤의 문화는 옛날 얘기다. 이제 ‘월스트리트 귀족’과 부의 문화를 논할 때가 됐다. 월스트리트형 인간들은 흑인이나 라틴계 빈민가 또는 애팔래치아 골짜기에서 살지 않는다. 롱아일랜드의 햄프턴스, 피프스 애버뉴, 코네티컷주 그린위치 등 다른 세계와 사회적으로 차단된 환경에서 거주한다. 중산층 소득자들(일부 의사, 변호사 또는 실내 인테리어업자 제외)과 거의 교류가 없어 미국을 위대하게 만든 확고한 부르주아적 가치가 뭔지 감을 완전히 잃었다. 하류계층의 어린 미혼부들은 자녀 양육을 책임지지 않는다. 반면 상류계층의 재혼한 중년 월스트리트 아빠들은 비정상적인 투자 실패의 결과를 책임지지 않으려 한다. 월스트리트의 거물들은 회사 주식이 폭락한 해에도 수억 달러의 연봉을 보란 듯이 챙긴다. “그들이 받는 보수와 그들의 행동에 따르는 책임이 완전히 단절돼 있다”고 투자은행 라자드의 은행가에서 저술가로 변신한 윌리엄 코핸은 말했다. 자유주의 저술가 브링크 린지는 저서 ‘풍요의 시대(The Age of Abundance)’에서 극빈층과 초(超)부유층의 차이는 장기간에 초점을 맞추는 능력이라고 요약했다. “하류계층 사람들은 아주 좁은 시간대와 신뢰망 안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만성적인 혼란과 역기능이 그들의 삶을 지배한다”고 그는 말했다. 반면 엘리트 계급은 조직적이고 장기적으로 생각한다. 백번 옳은 말이다. 하지만 체이스의 은행가 출신으로 ‘수조 달러의 붕괴(The Trillion Dollar Meltdown)’를 저술한 찰스 모리스는 “요즘 월스트리트는 장기적인 결과를 고려하지 않고 비정상적인 단기간의 리스크 투자에 보상을 주는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하류계급에 만연한 피해의식을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베어스턴스가 제 손으로 자기 발등을 잘못 내리찍고 쓰러진 후 최고경영자 앨런 슈워츠는 직원들에게 “우리는 폭력의 집단적 피해자”라고 말했다. 강자가 강자에게 당한 경우다. 보수파 비평가들은 빈곤의 문화가 미국 정부에 대한 의존심리를 조장했다고 끊임없이 비난한다. 물론 최근 몇 달 동안 행정당국(연방준비제도이사회, 연방주택청, 주택투융자기관들)은 대체로 서민 주택보유자들의 어려움을 외면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투자를 잘못해 망하게 된 은행들을 구하기 위해 민첩하게 대응했다. 미국 업계 5위의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가 지급불능 지경에 이르자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나서 JP모건이 인수토록 중재했다. 1993년 고(故) 대니얼 패트릭 모이니핸 상원의원은 ‘일탈 하향(defining deviancy down)’이란 용어를 만들었다. 하류계층에 만연한 비행 때문에 기관들이 기준과 기대를 낮추게 되고 그에 따라 사회 전체가 역기능 비용을 부담하게 됐다고 그는 주장했다. 요즘은 FRB를 가리켜 ‘지급능력 하향(defining solvency down)’이라고 부를 만하다. 최근 몇 주 동안 FRB는 융자에 대한 담보의 기준을 크게 낮추는 방법으로 월스트리트의 위기에 대응했다(지금까지는 국채 또는 주택투융자기관이 보증하는 채권만 담보 요건을 충족시켰다). 그러나 베어스턴스 거래를 성사시키려고 성격이 모호한 자산을 담보로 300억 달러를 빌려주기로 했다. 그 300억 달러를 돌려받지 못한다면 누가 그 위험을 떠안게 될까. 바로 우리들이다. 평가손이 계속된다면 FRB가 스포츠 기념품, 동물 봉제인형, 포케몬 카드를 담보로 받을지 모른다는 소문도 나돈다. 하류계층과 상류계층 간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고 시카고 대학 해리스 공공정책 대학원의 수전 메이어 학장은 말했다. 상류계층은 인맥이 폭넓게 분포해 더 많은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이다. “가난한 도심 빈민가 청소년이 교외 청소년들에게 마약을 파는 행위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고 메이어는 말했다. “그러나 금융시장은 수십만 명을 파멸시킬 수 있다.” 파멸적인 부의 문화는 더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 자칭 불량배 사회학자 수디르 벤카테시가 가난의 문화를 연구할 때 시카고의 악명 높은 로버트 테일러 홈스 지구를 배회하면서 마약 거래상을 친구로 사귀었다. 이 이야기는 흥미로운 그의 저서 ‘하루짜리 조직 두목(Gang Leader for a Day)’에 실려 있다. 컬럼비아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벤카테시가 미국의 가치를 위협하고 국가 자원을 갉아먹는 역기능적인 계층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정말 이해하고자 한다면 맨해튼 북동부 고급주거지의 고급 맨션에서 살면서 모건스탠리의 트레이딩 룸에서 일해 봐야 한다. 그래서 ‘하루짜리 헤지펀드 매니저’가 돼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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