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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전쟁을 택할 건가

어떤 전쟁을 택할 건가

▶미군이 헬기와 보병을 동원해 베트콩 진지를 공격하고 있다(1965년 3월).

대규모 육군과 해군은 늘 최후의 전쟁을 치르는 듯 전쟁에 임한다. 제1차 세계대전 때의 대영제국 군대를 보라. 영국군은 19세기 초의 워털루 전쟁처럼 보병들이 떼거리로 진격하는 전술을 고집했다. 그러나 이미 20세기 초 기관총이 등장하면서 그런 전술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정말로 무서운 군대는 차세대 전쟁에 대비한다. 제2차 세계대전 초 독일군은 전투기와 탱크를 동원한 전대미문의 전격전으로 연합군의 허를 찔렀다. 그러나 만약 하나의 전쟁이 아니라 두 가지의 상이한 전쟁에 동시에 대처해야 한다면? 초강대국 미국이 21세기 초 당면한 과제다. 미군은 첨단기술이 동원된 전쟁뿐 아니라 중국 같은 신흥 강대국들을 상대로 ‘대규모 전쟁’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미군은 ‘저강도(low-intensity) 전쟁’에도 대비해야 한다. 저강도 전쟁이란 예컨대 막강한 화력의 미군이 급조폭발물(IED)처럼 조잡한 무기를 사용하지만 투쟁의지가 확고한 게릴라들을 상대로 벌이는 소규모 전투를 말한다(미국은 엄청난 군사력에도 불구하고 IED 공격에는 속수무책이다). 노벨상 수상 작가인 러디어드 키플링은 이런 전쟁을 “평화를 위한 야만적 전쟁”이라 불렀다. 미국이 어떤 종류의 전쟁에 대비해야 하느냐는 문제를 놓고 미군, 특히 육군 내부에서는 세대 간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원로 세대는 전면전을 중시하고 첨단 무기를 이용한 정밀 공격으로 적을 분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젊은 세대는 오늘날처럼 국가의 장악력이 떨어진 혼란 지역에서는 군사력만으론 불충분하고 현지인들의 환심을 사는 게 필요하다고 믿는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한 젊은 장교들은 후자에 속한다. 그들은 미국이 지난 한 세대 동안 배출한 가장 유능한 군인들이다. 문제는 그 두 종류의 전쟁을 동시에 수행할 만한 자원이 미군에는 없다는 점이다. 게다가 정치 지도자들은 아직 이 문제에 대한 인식도 부족하다. 미군의 형태와 규모, 그리고 예산 조달 문제는 차기 대통령이 풀어야 할 가장 급박한 현안 중 하나다. 냉전의 종식은 승리자인 미국에 휴식시간을 주는 듯했다. 1999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공화당 후보인 조지 W 부시는 재래식 무기에 의존하는 세대를 뛰어넘어 화려한 첨단기술 전쟁의 새 시대로 들어가겠다는 야망을 피력했다. 그 시대에는 전자감지기와 군사위성 그리고 컴퓨터가 인간을 대체할 것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그 뒤 군사 전략가들 사이에서는 ‘네트워크 중심의 전쟁’‘디지털화’‘투명한 전쟁터’ 같은 용어들이 크게 유행했다. 그 새로운 사고방식은 9·11 테러 이후 미군이 아프간과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시험대에 올랐다. 사실 첨단 전자장비로 무장한 군대를 좀 더 신속하고 간결하게 운용해 승리하겠다는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의 전술은 적중했다. 아프간에서 미군 특수부대는 현지 군벌의 도움을 받고 랩톱 컴퓨터를 이용해 정밀 폭격을 유도하면서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렸다. 이라크에서 미군의 토미 프랭크스 장군은 적군에 대한 “신속한 사살”을 자랑했고, 바그다드는 3주도 안 돼 함락됐다. 재앙은 그 다음에 왔다. 동맹국 군대와 미군은 아프간에서 오사마 빈 라덴을 생포하거나 사살하지 못했고 탈레반 잔당은 계속 기습 공격을 가했다. 이라크에선 저항세력이 되살아나면서 미군을 당황케 했다. 설상가상으로 정치인을 비롯한 미국민의 상당수는 이라크 전쟁의 명분이 사라졌다고 믿게 됐다. 미군 역시 그 엄청난 첨단장비로도 저항세력을 분쇄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미군에 공포의 대상인 저항세력의 IED는 동네 가전제품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 싸구려 전자장비와 주차장 문을 여는 리모컨만 있으면 만들 수 있다. 돌이켜 보면 미군이 이처럼 준비가 안 된 사실도 납득하기 어렵다. 미 의회 조사국에 따르면 1990년 냉전 종식 이래 미군은 88번 해외에 파병됐다. 소말리아, 발칸반도, 시에라리온 등지에 파견돼 ‘평화를 위한 야만적인 소규모 전투’를 수행했다. 그런데도 그 경험을 통해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했다는 말인가. 대답은 ‘예스’이면서 ‘노’다. 미군의 나이 먹은 장교 세대(군사작전을 주도하는 장성들)는 미군 탱크가 나치 독일로 진격할 때부터 소련군과 싸우도록 훈련 받았다. 그들은 탱크전과 포격전에 길들여진 사람들이다. 그리고 진정한 대규모 전쟁은 아니더라도 1991년 이라크군을 상대로 재래식 전쟁을 치를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사담 후세인 군대를 100시간도 안 돼 궤멸시켰다. 걸 프전이 끝난 뒤 미군의 규모는 약 40% 줄었다. 최고위직까지 승진한 장교들은 대부분 재래전에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반면 제3세계 군대를 훈련시키거나 식민지 시절의 소규모 전쟁을 연구했던 장교들은 특수부대 내에서만 승진하거나 아예 전역했다. 전격적인 이라크 침공을 주도한 장군들은 ‘사막 폭풍작전’(1차 걸프전)을 경험했던 사람들로 대(對)반란 전쟁에 관해선 대부분 아는 게 없었다. 결국 이라크 침공은 어설픈 장기 점령으로 이어졌다.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된 미군 장병들은 탈레반의 매복 공격에 시달렸다.(207년 8월).

그러나 젊은 장교 세대는 그림자 같은 반군 세력과 싸우며 이라크의 길거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1990년대에 발칸반도, 아프리카, 아이티 등지에 파견돼 국가 재건 임무에 투입되기도 했었다. 이라크에서 이들 젊은 장교들은 살아남기 위해 임시변통식의 전술을 개발해야만 했다. 일부는 그처럼 준비되지 않은 전쟁에 자신들을 파견한 고위층을 향해 분노를 표출한다. 일례로 폴 잉글링 중령은 2007년 5월 육군 간행물에 ‘실패한 장군들’이라는 글을 기고했다. 그는 군 수뇌부를 그다지 명석하지 못한 체제 순응주의자들로 묘사했다. “현재의 승진제도는 창의성이나 도덕적 용기에 대해선 보상하지 않는다. 승진하기 위해선 오로지 자신의 상관들을 기쁘게 해줘야 한다.” 또 이라크전의 실패에 대해 책임지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의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2004~2006년 이라크 사태가 악화되던 시절 주둔군 사령관을 지낸 조지 케이시 장군은 오히려 육군참모총장으로 승진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2차대전이 일어나기 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치하에서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된 조지 마셜 장군은 취임 첫해에 장성 34명과 대령 445명의 군복을 벗겼다. 당시 미군 규모는 오늘날의 절반 수준이었다. 1941년 12월 전쟁이 시작된 후에도 마셜은 사단장 17명을 해임했다. 그렇다면 이미 2차대전보다 더 오래 지속되고 있는 이라크전쟁에서는 왜 그런 식의 숙정이 없는가? 물론 1941~45년에는 훨씬 더 많은 것이 위태로웠다. 그런 만큼 군기가 엄격해야 했다. 이라크전의 미군 사령관들이 부시와 럼즈펠드의 정책을 추종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상상력의 실패는 상층부에서 시작됐다. 더 많은 장교가 자신들의 민간인 상관들에게 이의를 제기했다. 문민 통제에 순종하는 미군의 전통에서는 드문 일이다.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예기치 못한 저항에 직면한 미군은 훈련 방식을 바꿨다. 캘리포니아주 모하비 사막에 있는 포트 어윈 훈련기지에서는 요즘악몽 같은 훈련이 실시된다. 이라크식으로 꾸며진 12개 마을에서 수백 명의 ‘이라크인’을 상대로 모의 전투를 치른다. 아랍어를 구사하는 그 이라크인들은 하청업체에서 공급받은 엑스트라들이다. 그러나 미군 당국의 개혁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더 중요한 테스트가 있다. 이라크와 아프간 전쟁터에서 돌아온 젊은 장교들을 계속 임용하고 승진시키는지를 지켜보는 일이다. 레이먼드 오디에르노 장군은 “군 개혁이 관건이다. 반군과의 전쟁에서 결코 패배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라크 주둔 미군 서열 2위였던 그는 최근 육군참모차장으로 임명됐다. 이라크 주둔군 시절 그의 상관으로, 대반란 작전의 대가로 불린 페트라우스 장군은 미군 당국이 특정한 장교들을 배려하는 시스템을 마련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전쟁터에 여러 차례 파견된 탓에 승진에 필요한 군사대학 강좌를 이수하지 못한 장교들이 그 대상이다. 그러나 젊은 장교들은 페트라우스 장군 직속의 명석한 대령들 중 일부가 근년 들어 승진에서 누락된 것에 실망감을 나타냈다. 그러나 단순히 소규모 전쟁 쪽으로 균형추를 옮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지난주 미군은 2006년 레바논에서 이스라엘군이 헤즈볼라를 상대로 벌인 전투 성과를 비판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가자지구와 서안에서의 반란 진압 작전에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재래식 전투에 대비한 훈련을 게을리했고 그 결과 막대한 대가를 치렀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만약 미군이 대규모 전쟁과 소규모 전쟁, 그리고 전후 국가 재건 노력 등에 함께 대비해야 한다면 어떻게 균형을 이뤄야 할까? 특히 대반란 작전과 국가 재건 노력은 노동집약적인 과제다. 거기에는 지상군이 필수고 이를 대체할 만한 수단도 마땅히 없다. 현재 미군의 규모는 최저 한도까지 축소됐다. 그래서 이라크에 서너 차례씩 파병될 수밖에 없는 젊은 장교들은 가족들이 받는 스트레스 때문에 초조해 한다. 현재 미군은 더 작은 규모의 기동부대들로 분산돼 운용된다. 이런 소규모 부대를 지휘할 대위나 소령의 수가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모병을 위한 최저 학력 수준은 고등학교 중퇴다. 그렇다 보니 고교를 졸업하지도 못한 10대 지원병 수는 계속 는다. 일부 전문가는 현역병 규모를 현재의 거의 두 배인 80만 명 이상으로 증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럴 경우 늘어나는 예산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현재 미군 장병 1명에게 들어가는 평균 예산은 연간 12만5000달러 정도다. 게다가 현재 육군 당국이 미래의 대규모 전쟁에 대비해 수립해 놓은 ‘미래 전투 시스템’은 3000억 달러의 예산을 필요로 한다. 각종 군사 장비가 전자감시기, 무인항공기, 인공위성 등으로 연결되는 시스템이다. 어려운 선택을 하고 모든 비용을 대라고 유권자를 설득하는 일은 정치 지도자의 몫이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그런 문제가 거의 논의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 유감이다.


With BABAK DEHGHANPISHEH and LARRY KAPLOW in Baghd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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