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팀은 어디에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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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경유 가격이 휘발유 값을 추월했다. 5월 30일 전국 주유소에서 판매하는 경유의 평균 소비자가격은 ℓ당 1892원 17전. 휘발유 값(1888원 38전)보다 3원 79전 비쌌다. 정유사가 주유소에 공급하는 경유 가격의 역전 현상은 이미 5월 19일부터 나타난데다 그 차이가 커지고 있어 경유와 휘발유 값 격차는 더 벌어지게 생겼다. ‘경유 대란’은 건설현장에서 시작됐다. 5월 23일부터 인천경제자유구역 내 영종신도시 조성공사가 운반비 인상을 요구하는 덤프트럭의 운행 거부로 중단됐다. 이튿날에는 화물연대 경남지부 창원동부지회가 파업에 들어갔다. 개인 화물차주 1만2000여 명으로 구성된 화물연대는 6월 초부터 총파업에 들어가겠다고 예고했다. 다급해진 국토해양부와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가 26일 협의에 들어갔다. 여당도 정부 대책을 촉구했다. 한나라당 이한구 정책위의장은 28일 최고위원 회의에서 “에너지 대란의 영향이 너무 심각하고 광범위하다”며 전방위적인 종합 대책(Maximum Policy)을 주문했다. 그날 한승수 총리 주재로 관계장관 회의가 열렸다. 정부 대책이 나왔다. 하지만 당장 시행하는 게 아니라 ‘검토 수준’이었다. 6월 말로 끝나는 화물운송업계와 영세 사업자에 대한 유가보조금 지급기간 연장과 에너지 바우처 제도 도입이 골자였다.
시장은 이미 ‘대란’ 정부는 ‘대책 검토 중’ 유가보조금 지급은 시행 중인 정책을 연장하는 것이다. 에너지 바우처 제도는 가스·전기요금, 난방, 주유 대금 등에 쓸 수 있는 쿠폰을 정부가 서민들에게 지급하는 것으로 지난 2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검토하다 암거래 가능성 등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폐기한 대책의 재탕이다. 지원 대상과 절차, 예산 등 아직 정해진 게 하나도 없다. 업계의 반응은 싸늘했다. 화물연대는 “위기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전혀 인식하지 못한 안일한 사고”라고 비판했다. 5월 29일 유우익 대통령실장 주재로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가 열렸다. 청와대 측은 “경제논리에 집중해 서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대책과는 거리가 있어 강력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질책성 주문이 있었다”고 밝혔다. 한나라당도 거들었다. 전재희 최고위원은 “현장에 가서 조사를 면밀히 한 다음 대책을 만들라”고 주문했다. 난감해진 기획재정부는 그날 오후 늦게 “유류세 인하를 포함한 추가 대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심각한 민생 현안에 대한 대책을 놓고 정부와 여당, 청와대의 손발이 맞지 않고 따로 논다. 그 결과 정책도, 정치도 없고 대신 1980년대에 보았던 ‘거리의 정치’가 나타나면서 사회 문제로 키운다. 국내 경유 소비의 80%는 수송용이다. 화물차·덤프트럭·관광버스 개인사업자와 1t 트럭을 몰며 장사하는 영세상인, 농어민 등 서민들이 생계수단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 서민층 에너지인 경유의 반란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예고됐다. 중국·인도·브라질 등 신흥공업국의 경유 수요가 급증하면서 국제 현물시장에서 경유 가격이 휘발유보다 비싸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는 “석유제품 시장에서 경유 값이 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유류세를 내리면 경유 소비가 더 늘어난다” “지금도 휘발유보다 경유에 붙는 세금이 적다”며 민생보다 세수(稅收) 감소를 걱정했다. 그사이 동해안에서만 고기잡이를 나간 어선이 올 들어 지난해보다 30% 줄어들면서 산지 수산물 값이 20~30%씩 뛰었다. 버스운송사업조합은 시외버스 한 대에 월 300만~400만원씩 적자를 본다며 요금 인상을 요구했다. 일부 지방에서 시외버스 운행횟수를 줄이거나 차내 에어컨 가동을 중단했다. 그 판에도 교육과학기술부 장·차관과 간부들은 경유에 붙는 교육세도 들어갔을 특별교부금으로 모교와 자녀가 다니는 학교를 찾아가 지원금을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경유 값 상승은 하반기 중 버스요금 인상으로 이어질 게다. 6월부터 오른 LPG(액화석유가스) 값은 택시요금 인상을 불러올 테고. LNG(액화천연가스) 가격도 6월부터 올랐고, 하반기 중 전기요금 인상이 예고된 상태다. 정부가 공공요금 인상을 최대한 억제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지키기 어렵게 됐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물가는 거침없이 하이킥인데 성장은 되레 뒷걸음질이다. 4월 중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1%로 3년 8개월 만에 4%를 넘어섰다. 대통령 지시로 ‘MB 물가지수’를 만들어 52개 생필품을 따로 관리했지만 효과가 없다. 게다가 1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전 분기 대비 0.7% 성장에 그쳐 3년 반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러다간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7% 성장은커녕 3월에 낮춰 잡은 6%, 4월에 다시 수정한 5% 성장도 어렵게 생겼다. 삼성경제연구소는 5월 29일 하반기 성장률 전망을 기존 4.6%에서 3.8%로 낮췄다. 성장을 떠받쳐야 할 설비투자와 서비스업 생산 증가율은 3월부터 꺾였다. 성장의 결과인 고용 사정은 더욱 나쁘다. 3~4월 두 달 연속 신규 취업자가 20만 명에도 못 미쳤다. 이명박 후보가 대선 공약으로 제시한 5년간 300만 개(연간 60만 개)는 물론 정부 출범 초기 세운 일자리 창출 목표 35만 개에도 한참 모자란다. 지상과제로 내세운 성장은커녕 안정도, 일자리 창출도 이뤄내지 못할 거라는 예측이 분분한 가운데 하반기 경제운용 틀을 다시 짜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이런 판에 한나라당은 엉뚱하게 지난해 말 대선과 올 4월 총선까지 숨겨두었던 발톱을 드러냈다. 5월 21일 당정협의에서 종합부동산세 과세 기준을 현행 6억원에서 9억~10억원으로 높이고, 장기적으론 종부세를 폐지하며 거래세에 통합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1가구 2주택자의 양도소득세 중과를 없애는 방안도 거론됐다. 하지만 이는 안정세를 보여온 서울 강남 부동산 가격을 다시 들먹이게 만들 소지를 안고 있는 시한폭탄이다. 당·정·청 간 엇박자는 정책에 대한 신뢰와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을 떨어뜨렸다. 추경예산 편성과 혁신도시 재검토, 국책은행 민영화, 서울 뉴타운 추가 지정 논란 등을 놓고 좌충우돌한 결과다. 단기 성과에 급급해 설익은 정책을 내놓아 혼선을 빚었다. 그 와중에 규제 혁파와 감세, 공공 개혁 등 MB정부의 개혁 프로그램이 추진 동력을 잃고 있다. MB노믹스는 지금 이렇게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高유가 + 高환율’ 악재들 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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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정책도 정치도 실종 상태 고환율 정책으로 수출 중심 대기업들이 반사이익을 보는 동안 더 많은 중소기업과 영세 자영업자, 서민들은 내수 위축과 물가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더구나 높은 환율은 MB정부가 그토록 원하는 기업들의 투자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설비투자를 늘리고 공장을 돌리려면 해외에서 장비와 부품, 원·부자재를 들여와야 하는데 환율이 오른 만큼 비용이 더 들기 때문이다. 이를 의식한 대한상공회의소가 5월 28일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경상수지 적자가 투자 부진으로 이어져 미래 성장동력 약화를 야기하는 악순환이 고착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성장에 올인하며 고환율을 유지하던 정부도 고유가와 고물가의 부작용이 큰 데다 올해 환율이 떨어질 것으로 보고 환헤지 상품에 가입한 중소 수출업체들의 손실이 커지자 5월 14일부터 환율이 1050원을 넘을 것 같으면 보유 달러를 매도하는 방식으로 한 발 빼는 모습이다. ‘새 정부 효과’는 찾아보기도 전에 사라졌다. 공무원들은 정부 출범과 함께 불어 닥친 ‘얼리 버드(Early Bird)’ 바람이 생산성을 높이고 창의력을 키우기보다 피로를 가중시킨다며 불만이다. 효과가 없을 것이란 점을 알면서도 MB물가지수 품목을 선정한 뒤 조류 인플루엔자(AI) 확산 여파로 닭고기 값이 폭락하자 “돼지고기 말고 닭고기를 넣을 걸”이라고 자조할 정도다. 게다가 300여 공공기관장으로도 모자라 국책 연구기관장에 이르기까지 한꺼번에 사표를 받고 새로 임명하느라 힘을 빼고 있다. 사장이 있어도 제대로 돌아가는지 걱정인 공공기관 업무가 누가 신임 사장으로 오는지 쳐다보느라고 정신이 없다. 여당 안에서도 반대가 많은 한반도 대운하 건설 계획이 4대강 하천 정비사업으로 포장돼 추진되자 국책 연구기관인 건설산업연구원의 연구원이 양심선언을 했다. 농림수산식품부 직원도 미국산 쇠고기 협상 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이러다가 MB노믹스는 ‘유상누각’ ‘환상누각’에다 대운하 건설 추진에 따른 ‘하상누각(河上樓閣)’ 경제 논란으로 조용할 날이 없을 것 같다. 광우병 논란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는 5월 29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고시를 강행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괜찮다고”만 할 게 아니라 국민이 걱정하는 부분을 설득하는 리더십이다. 하지만 여당은 여전히 ‘친이’ ‘친박’으로 나뉘어 아웅다웅이다. 의료 산업화로 병원 치료비가, 공기업 민영화로 수돗물 값이 몇 배로 뛴다는 등 정부·여당이 ‘괴담’으로 평가한 각종 설이 쏟아지고 청와대 홈페이지에 질문이 쇄도하는데 청와대 비서관들은 나 몰라라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적한 대로 국민과의 ‘소통’이 없다. 무조건 따라오라는 식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는 매일 계속되고 있다. ‘경유 대란’에 화물차가 시동을 끄고, 어선이 닻을 내리고, 농기계가 멈추는데 정부·여당은 회의만 거듭하고 있다. 이러다간 정치권이 그토록 강조하는 ‘민생’이 거덜나고 ‘민심’은 더욱 멀어진다. 치솟는 철근 값에 건설 현장도 일손을 놓고 있다. 노동계는 강력한 하투(夏鬪)를 예고하고 나선 상태다. 경제의 불확실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경제 위기를 헤쳐나가는 해법도, 시장의 힘을 복원하는 에너지도, 광우병 파동으로 촉발된 우리 사회의 신뢰의 위기 해소도 바로 국민과의 ‘소통’과 ‘공감’에서 찾아야 한다. 6월이다. MB정부가 출범한 지 100일이 지났고, 18대 국회의 4년 임기가 시작됐다. 정치권과 경제팀은 지금이라도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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