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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안에서 DVD 보며 파도 소리 듣다

차 안에서 DVD 보며 파도 소리 듣다

하늘을 이불 삼아 풀벌레, 파도 소리 들으며 자연의 품속에서 낭만적인 밤을 보내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일명 ‘캠핑카’ 여행이 그것. 2004년 방영된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 주인공 한기주(박신양)와 강태영(김정은)이 호젓한 물가로 둘만의 약혼여행을 떠나는 장면에서 깜짝 등장한 캠핑카는 시청자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약혼자도 잊은 채 캠핑카에 푹 빠진 태영은 “여기 부엌도 있고 물도 나오네. 침대도 있고!”라며 감탄사를 연발해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아내 등쌀에 캠핑카 여행을 다녀온 김유성씨는 “어디서 봤는지 아내가 밤마다 ‘캠핑카~캠핑카~’ 노래를 불러 마지못해 가게 됐다”며 “처음엔 운전하기 힘들고 피곤할 것 같아 내키지 않았는데 생각과 달리 아주 즐거웠다”고 밝혔다. 그 뒤로 아이들까지 주말만 되면 캠핑카 타고 놀러 가자고 조른다. 김씨는 “호텔이나 콘도 숙박과는 다른 특별한 매력이 있다”고 말했다.
일명 캠핑카로 불리는 이동주택 식 자동차의 정식 명칭은 ‘모터 캐러밴(motor caravan)’이다. 주방과 침실, 화장실을 갖춘 캠핑카는 따로 숙소를 예약할 필요 없고 식사도 자체적으로 해결하면서 어디든 원하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장점 덕에 미국과 유럽에서 일찍이 자유로운 여행수단으로 보편화됐다. 국내에서 캠핑카 여행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3년 전부터다. 사단법인 한국캠핑캐라바닝연맹(KCCF·이하 한국연맹)의 문혜식 사무차장(2008가평세계캠핑대회 조직위원회 사무차장)에 따르면 2002년 동해시에서 열린 동해세계캠핑대회(이하 동해대회)를 기점으로 캠핑카 여행이 국내에 알려졌다. 이후 TV 드라마를 통해 안방에 널리 소개되면서 본격적으로 활성화하기 시작했다. 문 사무차장에 따르면 제도적 뒷받침도 캠핑카 여행의 기폭제가 됐다. 그는 “캠핑카는 2002년 동해대회 전까지 국내에서 차종 분류가 안 돼 대회를 치르느라 고생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한국연맹이 100여 대의 캠핑카를 해외에서 들여왔는데 차종 분류가 안 되니 번호판을 달 수 없고 세관 통관도 불가능해 동해시 대회장을 임시 보세구역으로 지정하고 경찰 협조를 얻어 어렵게 대회장까지 캠핑카를 가져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캠핑카는 대회 개막 일주일 뒤에야 승합차로 차종 분류 승인이 났다. 분류 승인이 나자 기다렸다는 듯 캠핑카 제조업체, 수입·판매 업체, 대여업체 등이 줄줄이 생겨났고 캠핑카 여행은 새로운 레저여행 문화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캠핑카 수입·판매업체와 대여업체, 제작업체는 스무 곳에 이른다. 이 가운데 대여업체는 열네 곳이고, 캠핑카 수는 무동력 트레일러 캐러밴을 포함해 1000여 대로 추정된다. 개인이 직접 개조한 캠핑카는 포함하지 않은 수치다. 이 외에 수입 등을 통해 개인이 보유한 캠핑카 수는 400여 대로 추정된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7000만~8000만원 선인 국산 캠핑카와 1억3000만원대에 이르는 수입 캠핑카를 보유한 사람은 개인사업자나 고액연봉의 전문직 종사자 등 고소득층이 대부분이다. 그는 캠핑카가 값이 비싼 편이라 보유한 이들이 외부 노출을 극도로 꺼린다고 했다.
8년째 국내외에서 캠핑카를 대여해 온 레저서비스 업체 굿위크앤드는 7, 8월 성수기를 앞두고 6월 1일부터 예약을 받고 있다. 장혁재 굿위크앤드 대표에 따르면 최근 하루 수십 통에 이를 정도로 예약 문의가 폭주하고 있다. 다른 대여업체 분위기도 비슷하다.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예약 대기자 명단에 올려 달라고 ‘통사정’하는 글이 수십 건씩 넘쳐난다. 겨울을 제외하면 캠핑카 여행은 주말마다 성수기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업계에 따르면 초등학생의 ‘놀토’인 매월 둘째, 넷째 주말에 사용자가 폭주하기 때문에 한 달 전부터 예약을 서두르지 않으면 캠핑카를 사용하기 어렵다. 3년 전부터 해마다 캠핑카 대여 예약률이 두 배 이상씩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캠핑카의 해외 렌털은 3년 전 같은 시기와 비교해 열 배 이상 늘었다. 장혁재 대표는 “3년 전만 해도 전혀 없다시피 했던 해외 렌털 캠핑카 여행객이 요즘은 연간 4000~5000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현대상선에 다니는 이재혁(37)씨는 지난해 장인, 장모, 아내와 함께 캠핑카로 16일간 유럽 4개국 여행을 다녀왔다. “나이 드신 분들은 외국 음식이 입에 잘 맞지 않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캠핑카에서 직접 요리해 먹을 수 있어 장인, 장모님이 무척 좋아하셨어요. 또 이동 중에 피곤하면 언제든 차를 세워 쉴 수 있고 경치 좋은 곳에 머물 수도 있어 자유로웠고요.”
현대상선 야유회로 캠핑카 여행
이씨는 직장에서도 캠핑카 여행을 다녀왔다. 팀 야유회를 동해망상오토캠핑장으로 간 것. 이씨는 “렌털 캠핑카 두 대와 일반 승용차 두 대에 모두 스무 명이 타고 동해망상오토캠핑장으로 떠났는데 콘도를 빌려 가는 일반 야유회 때보다 비용이 조금 더 들어 망설였지만 직원들 모두 신선한 경험이라며 좋아했다”고 전했다. 캠핑카를 예약하는 사람은 주로 30대 중반~40대 중반으로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자녀가 있는 직장인이 많다. 아이들이 캠핑카 여행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성수기에는 가족단위 여행객이 80%를 차지하고 비수기에도 70%나 된다.
30대 중반의 사업가 이호승씨는 2년 전 처음 캠핑카 여행을 경험했다. 초등학생 자녀 두 명을 둔 그는 지금까지 가족과 함께 세 차례 캠핑카 여행을 다녀왔다. 이씨는“아이들에게 뭔가 색다른 여행을 경험하게 해 주고 싶었다”며 “여행경비는 일반 여행과 비슷하면서도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캠핑카 여행이 짧은 시간에 확산된 것은 사람들이 북적대는 관광지나 여행지를 벗어나 한적한 곳에서 친환경 웰빙 휴가를 즐기려는 사람이 늘었기 때문이다. 콘도, 펜션 등에서 머무르는 천편일률의 여행 패턴에서 벗어나 신선하고 새로운 방식의 여행문화를 원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도 이유다. 캠핑카를 이용한 여행경험담, 캠핑카 여행정보 등을 담은 책이 쏟아지고 캠핑카 동호회나 클럽이 급속도로 늘어난 것도 최근의 일이다. 다음(Daum) 카페에서 ‘캠핑카 동호회’로 검색하자 148개 이름이 떴다. 동호회마다 캠핑카 여행 감상기가 수없이 올라와 있다. 닉네임 ‘스리드래곤’은 “주말에 캠핑카를 빌려 친구들과 무작정 서해안으로 떠났다”며 “비디오를 빌려 캠핑카 침대에서 친구들과 뒹굴며 개구리 소리, 풀벌레 소리를 들으면서 정말 재미있게 지냈다”는 감상기를 남겼다. 여행 동호회나 클럽 외에 직접 캠핑카를 제작하는 자작캠핑카 동호회, 자작캠핑카에 대한 정보를 나누는 동호회 등 동호회도 갈수록 세분화하고 있다.

▶2007년 아일랜드 밀스트리트에서 열린 세계캠핑대회 모습.

최근에는 ‘캠핑카 엔지니어’라는 신종 직종과 캠핑카를 이용한 패키지 여행상품도 등장했다. 제주의 한 여행사는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연인과 로맨틱한 제주 캠핑카 여행! 평생 기억에 남을 겨울여행 하루 18만원’이라는 문구로 10월까지 여행객을 모집 중이다. 마케팅 차원에서 캠핑카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현대카드는 캠핑카 대여를 원하는 카드회원을 대상으로 최대 15%까지 렌털 비용을 할인해 준다. 한국연맹에 소속돼 적극적으로 캠핑카 여행을 즐기는 유명 인사도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성악가 임웅균씨,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 이재언 경남모직 대표(KCCF 산하 캠핑클럽 사무국장), 신상훈 휠코 회장(KCCF 산하 캠핑클럽 회장), 채명기 대승항운 회장(KFCC 이사) 등을 들 수 있다. 2002년 동해대회 이후 정부는 자동차 캠핑문화를 국민 기초관광 사업으로 인식하고 전국 지자체와 함께 각 지역에 자동차 캠프장을 건설 중이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광산업과에 따르면 2010년까지 전국에 32개소를 확대, 설치할 계획이다. 김훈 관광산업과 주무관은 “2005년부터 시설사업 지원에 나서 지난해까지 13개소를 지원했고 이 가운데 가평, 연천, 단양, 해남 등 6곳에 다목적 캠프장을 완성했으며 나머지는 공사 중이며 올해 신규 지원이 확정된 지역은 9곳”이라고 말했다.


캠핑카 바로 알자

캠핑캐러배닝: 캠핑(camping)과 캐러배닝(caravanning·이동식 주택에서 휴가를 보내는 것)의 합성어. 조리시설과 화장실, 침실 등이 갖춰진 이동주택 식 자동차를 이용해 산과 바다 등 자연에서 즐기는 야영생활을 말한다. 캐러배닝은 캠핑을 할 수 있도록 일정 규모의 사이트를 갖춰 놓은 자동차 캠프장에서 할 수 있으며 자동차 전용 캠프장에는 세탁실, 화장실, 매점 같은 서비스 시설이 갖춰져 있다.

오토캠핑: 자가용 등 일반 차량에 텐트 같은 야영 장비를 갖추고 떠나는 캠핑. 주로 SUV 차량이 많이 이용된다.

캠핑카: 캠핑에 사용되는 이동주택 식 차량을 일컫는 것으로 정식 명칭은 ‘캐러밴’이다. 대표적으로 모터 캐러밴과 트레일러 캐러밴이 있다. 모터 캐러밴은 자체 동력으로 움직이고 트레일러 캐러밴은 무동력으로 보통 일반 승용차 뒤에 매달아 견인된다. 일반적으로 모터 캐러밴을 ‘캠핑카’라 부른다.


인터뷰 장경우 2008세계캠핑대회 조직위원장


“일본에선 일왕 부부와 장관들까지 참석”
가평세계캠핑대회 주관기관인 KCCF 총재를 맡고 있는 장경우(66) 위원장은 이번 대회에 아시아 최초로 ‘세계캠핑캐라바닝연맹’ 총회까지 유치해 감회가 남다르다. 캠핑카 여행문화의 불모지에서 그가 캠핑캐러배닝과 인연을 맺은 것은 16년 전 국회의원 시절이다. “당시 국내는 캠핑카를 이용한 캠핑문화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유학에서 돌아온 젊은이 세 명이 대전엑스포가 한창일 때 한켠을 빌려 캠핑캐러배닝 대회를 열더군요. 20억원을 투자한 사업이 적자가 나자 분쟁이 나서 국회에 청원했는데 그 문제를 우리가 다뤘어요. 알고 보니 세 사람이 세계연맹에 대한민국을 회원국으로 가입해 놓고 회비를 안 내서 자칫 국가 위신 추락으로 이어질 상황이었습니다. 세계연맹에서 한국연맹에 무슨 일이 있는지 우리 외교부에 질의해 온 겁니다. 이걸 나한테 맡으라고 해서 밀린 회비를 내고 세계연맹 총재에게 편지를 써 사태를 수습했지요. 이때 인연으로 캠핑캐러배닝 대회가 뭔지도 모른 채 한국연맹을 떠맡게 됐습니다.” 장 위원장은 한국연맹 총재를 맡으면서 매년 열리는 세계대회에 사람들을 이끌고 참석했다. 그와 함께 참석한 이들이 정병국 의원, 이기택 전 총재, 유준상 전 의원, 개그맨 최양락·이봉원씨 등이다. “이기택 전 총재는 동해대회를 앞두고 유럽연맹 소속 사람들과 합류해 한 달간 캠핑카를 타고 대륙을 횡단했습니다. 이봉원씨는 가족과 함께 해외에서 열리는 세계대회에 두 차례 참가했고요. 스페인 대회를 끝내고 독일로 이동하는 중간에 스위스 융프라우 산에 올랐는데 아들이 졸도해 응급 구조된 일도 있었어요.” 장 위원장은 일본에서 세계대회가 열릴 때 일왕 부부와 여섯 개 부처 대신(장관)들까지 참석한 것을 보고 놀랐다고 했다. 그는 “영국은 캠핑클럽이 여섯 개 있는데 그중에는 100년 역사를 지닌 곳도 있다”며 “영국 여왕이 10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클럽 간부 20여 명을 부부동반으로 버킹엄 궁에 초청하기도 했다”고 부러워했다. 그는 이어 “정부와 지자체가 시설사업을 지원하는 자동차 캠프장이 전국적으로 문을 열면 더욱 쾌적한 환경에서 캠핑캐러배닝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며 “캠핑의 가장 큰 매력은 온 가족이 자연과 더불어 여가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이뿐만 아니라 자동차 캠프장은 콘도나 기타 관광지보다 개발 과정에서 자연훼손이 덜하기 때문에 친환경적 여행문화에도 일조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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