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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질병 정복에 서광 비치나

희귀질병 정복에 서광 비치나

▶지놈 연구를 활용하면 희귀질병 치료가 빨라질 것이다.

재커리 타운슬레이(8)의 출생 후 4년간은 의학계의 미스터리였다. 재커리가 태어난 지 6개월 됐을 때 어머니 재닌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아들의 잔등에 자그마한 혹이 있었다.” 소아과 의사는 걱정할 게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살쯤 됐을 때 새로운 증상이 나타났다. 걷기 시작할 나이지만 기어 다니지도 않았다. 타운슬레이 부부는 신경과 의사를 찾아갔다. 그러나 의사도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염색체 검사 결과도 깨끗했다. 작업요법사, 물리치료사, 언어치료사, 청각 전문가 등도 명쾌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재커리는 네 살 무렵부터 걷기 시작했지만 무릎을 구부린 채 걸었다. 언어 장애도 있었다. 천사 같던 얼굴은 기괴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놀이터에 가면 다른 아이들이 재커리를 빤히 쳐다봤다. 재커리처럼 정체 모를 질병으로 고통 받는 미국인이 2500만 명이나 된다. 그들 대다수에게 제대로 된 진단이 내려지려면 몇 년 혹은 몇 십 년이 걸릴 수도 있다. 정확한 진단이 가능한지도 의문이다. 이런 질병의 일부는 최근 발견됐기 때문에 아직 병명조차 없다. 병명이 붙은 질환들, 예컨대 선천성 순적혈구 빈혈, 주기성 마비, 헤르만스키-푸드랙 증후군 등에 걸린 사람은 수백 명 내지 수천 명에 불과하다. 희귀 질병은 고혈압이나 피로증처럼 흔한 질병의 증상과 유사한 경우가 있어 오판이나 오진의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 어렵다. 운 좋게 정확한 진단이 내려진다 해도 치료하기에 너무 늦은 경우가 많다. 미 인간지놈연구소(NHGRI)의 임상 책임자인 윌리엄 갤 박사는 “진단 없이 20년간 방치된 질병은 그 사이에 온갖 합병증을 부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나중에 질병의 정체가 밝혀진다 해도 속수무책이 된다.” 이런 환자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나왔다. 5월 19일 미 국립보건원(NIH)은 ‘진단 미확정 질병 프로그램(UDP)’을 출범시켰다. 정체불명의 질병에 시달리는 환자들을 연구해 실체를 밝혀내고 치료법을 개발하기 위한 학제적 연구기관이다. 일라이어스 저후니 NIH 원장은 원격 화상회의에서 UDP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면서 유전학과 지놈 연구 성과를 활용하면 “획기적인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화상회의에 참가한 어맨더 영(26)이란 여성도 희망을 피력했다. 그녀는 NIH 산하 클리니컬 센터에서 IRAK-4 결핍증(매우 희귀한 유전자 돌연변이성 질환)이란 진단을 받기 전까지 20년간 고통스럽게 살아왔다고 토로했다. UDP를 이끌게 될 갤 박사도 축사를 했다. 그러나 그의 메시지는 비교적 차분했다. “이것은 연구 프로그램일 뿐이며, 치료 받기를 원하는 모든 환자를 돕지는 못할 것이다.” 나중에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메시지가 충분히 전달되지 못한 듯하다고 우려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 소식을 들은 많은 환자가 ‘아, 이젠 나도 정확한 진단을 받을 수 있겠구나’라고 착각하게 될 것이다.” UDP는 혁신적이긴 하지만 규모가 매우 작다. 1년에 환자 100명만 엄선해 연구할 정도밖에 안 된다. 상근 직원도 정식 간호사 두 명과 스케줄 관리자 한 명뿐이다. UDP는 출범 2주 사이에 미국 안팎의 절박한 환자들로부터 200여 통의 문의 전화를 받았다. 그들 모두 종합 판정을 받기 위해 NIH를 찾아오고 싶어 했다. UDP는 NIH 산하 다른 연구기관 의사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문제는 그 의사들도 본업이 있어 적극적인 지원을 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선 갤 박사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연구소에서 현재 각종 실험을 진행 중인 만큼 그가 UDP 업무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은 30% 정도다. 그는 더 많은 자금과 인력의 지원을 바라지만 NIH는 이미 예산 부족에 허덕인다. 희귀병 환자들로선 UDP가 희귀의약품법(Orphan Drug Act) 정도의 성과를 거두길 희망한다. 환자 수가 적어 수익성이 낮은 희귀병 치료제의 개발에 대형 제약사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그 대가로 세제 혜택 등을 주는 법이다. 올해로 25주년을 맞는 이 법 덕분에 희귀 의약품 종류는 그동안 13배 늘었다. 약값은 대부분 비싸지만 희귀질환자들에겐 고통을 끝낼 수 있는 귀중한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일단 정확한 진단이 내려지면 처방약 개발도 가능하다. 재커리 타운슬레이도 그런 혜택을 입었다. 네 살 생일을 맞기 한 달 전 재커리는 헌터증후군이란 판정을 받았다. 물질대사 장애의 일종으로 미국에선 환자가 500명에 불과하다. 2006년 10월 재커리는 엘라프라제를 복용하기 시작했다.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지 얼마 안 된 희귀약품으로 헌터증후군의 유일한 치료제다. 엘라프라제는 완벽한 치료제는 아니지만 재커리의 증상이 많이 좋아졌다. 그나마도 큰 다행이다. 예전에 의사들이 재커리의 어머니에게 해줄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말뿐이었다. “그 아이를 사랑하고 잘 돌봐주시고 기도를 많이 하세요. 그럼 이제 돌아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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