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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과 역행하다 곳간만 비울라

시장과 역행하다 곳간만 비울라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왼쪽)과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7월 6일 회동을 가진 다음날 외환 시장 개입을 발표했다.

7월 9일 일명 ‘도시락 폭탄’이 떨어졌다. 이날 점심시간에만 35억 달러가 시장에 투하돼 붙여진 명칭이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은 물가안정을 이유로 9일 하루 동안에만 60억 달러를 쏟아 부으며 ‘환율 전쟁’에 돌입했다. 세 차례에 걸친 초강력 시장개입에 따라 이날 원화 값은 전날보다 27.8원 오른 달러당 1004.9원에 거래를 마쳤다. 정부의 기습 작전에 시장은 휘청댔다.
지난 7월 7일 외환당국인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함께 외환시장 개입을 통한 환율 하향 안정화를 선언했다. 이 선언은 두 가지 측면에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첫째, 외환당국이 공개적으로 외환시장 개입을 선언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외환시장 개입은 시장에 알리지 않고 해야 효과도 크고 환율조작 비난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방향성을 정한 개입을 선언한 것이다. 외환시장 개입은 보통 외환시장의 안정에 목표를 둔다고 발표한다. 실제 정한 방향이 있다 하더라도 반대 거래를 피하고 과도하게 쏠림 현상이 나타날 경우 반대 방향으로의 개입 가능성을 열어두기 위해서다. 선언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강력한 구두개입을 한 외환당국은 실제로 적극적인 시장개입을 통해 달러당 1040원대의 환율을 4일 만에 1002원으로 끌어내렸다. 이러한 외환시장에 대해 염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때까지 시장에 맡겨왔다고 주장하던 환율에 대한 개입은 무엇을 목표로 하는 걸까? 그리고 이러한 개입이 과연 성공할 수 있는 걸까, 아니면 또 보유외환만 바닥내고 더 큰 문제를 초래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다. 외환시장 개입의 목표는 통상 두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는 특정 환율수준 방어(level targeting)이며, 둘째는 환율변동성 축소(volatility targeting)다. 특정환율 수준을 방어하기 위해 외환 시장에 개입하는 국가는 고정환율제도를 운용하는 국가, 환율을 거시경제적 안정화 지표로 쓰는 국가, 혹은 수출경쟁력을 높이고자 하는 국가 등이다. 그 밖의 국가들은 대부분 환율이 급변동하거나 환율이 경제 펀더멘털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때 외환시장의 안정을 위해 변동성 축소를 목적으로 개입한다. 변동성 축소를 위한 개입은 시장 왜곡을 막는 것이 목표이므로 단기적이고 시장친화적 개입이다. 이러한 개입은 어느 나라에서나 시행하는 정책수단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주로 특정 환율수준을 유지하려는 정책이다.
외환위기도 시장 역행해 발생
이번 우리나라 외환당국의 개입은 무엇이 목표인가. 물가안정이 목표인 것으로 보인다. 물가안정은 엄밀히 말해 전통적인 환율정책의 목표는 아니다. 환율은 대외거래에서 비롯된 것으로 대외균형 수준을 회복하게 하는 가격 지표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잘 아는 외환당국이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추측할 수 있는 이유는 두 가지다. 기존 환율수준이 일정수준 인위적으로 높아진 것이어서 이를 정상화함으로써 물가안정을 해쳤다는 비난을 피하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정부의 정책 전환에 대한 강력한 신호를 주기 위한 것이다. 시장이 그동안의 정부정책을 중상주의적 고환율 정책으로 간주하고 있었으므로 이러한 기대를 불식하고 물가 안정에 역점을 두는 환율 정책을 시행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려는 것이다. 만약 이런 이유 때문이라면 환율을 일정 수준 하락시킨 후 그 이하에서 안정시키려는 일종의 특정 환율수준 방어가 목적이 되기 쉽다. 특정 수준의 환율 방어가 성공할 수 있으려면 몇 가지 여건을 점검해야 한다. 첫째, 시장의 방향과 일치하는가의 문제다. 대외거래에서 시장의 펀더멘털을 반영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는 경상수지다. 경상수지 결과와 순방향으로 개입하면 성공하지만 그 반대로 개입하면 성공하기 어렵다. 평균적으로 경상수지 흑자가 예상되는 경우 환율 하락을 위한 개입은 시장의 기대와 동일한 방향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둘째, 개입 방향이 환율 상승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환율 하락이 목표인지가 중요하다. 원화 가치를 낮추기 위해 환율 상승 쪽으로 개입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성공 가능성이 높지만 환율 하락 쪽으로의 개입은 성공 가능성이 제한적이다. 그 이유는 외환시장 개입에 필요한 재원 때문이다. 환율을 상승시키기 위해서는 한국 원화를 팔아 달러화를 사면 된다. 따라서 발권력 있는 중앙은행이 개입하면 이론상 무제한으로 개입이 가능하다. 단지 인플레 압력 등 거시경제적 비용을 치러야 하는 부담 때문에 한계가 있다. 반면 환율을 하락시키기 위한 개입은 외환보유량에 의해 제한 받는다. 달러화를 시장에 팔고 원화를 사는 경우 외환보유량 이상으로 개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외환시장 개입에 실패한 대표적인 사례들은 대부분 시장 펀더멘털과 반대 방향으로 개입한 경우였다. 첫 번째 사례로 1997년 외환위기 무렵의 개입 사례를 들 수 있다. 1990년대 한국의 경상수지는 지속적으로 적자를 보였는데도 외환위기 직전까지 거의 움직임이 없었다. 오히려 1994년과 1995년에는 약간 하락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1997년에는 전년도 경상수지가 231억 달러의 적자를 보였음에도 환율 하락을 막기 위해 개입을 지속했다. 그 결과 외환보유액은 바닥나고 환율은 2000원까지 치솟아 결국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는 위기를 초래했다.
또 하나의 대표적 실패 사례는 2004년의 외환시장 개입이다. 당시에는 원화 가치를 하락시켜 수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 개입의 목적이었다. 내수부진으로 인한 성장률 저하를 만회하기 위해 수출부문의 성장이라도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기간에는 경상수지가 지속적으로 흑자를 기록하고 있었다. 시장의 펀더멘털과 역행하는 개입은 성공하지 못할 것임을 아는 해외투자자본이 주가상승과 환차익을 겨냥하고 포트폴리오 시장으로 몰려 들었다. 결국 환율은 정부의 방어선으로 알려졌던 달러당 1100원대가 무너지고 만다. 2004년 환율방어를 위해 소진된 외국환평형기금은 10조원이 넘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의 사례들은 외환시장 개입이 시장의 펀더멘털과 역행해 특정 환율수준을 지키려 할 경우 외환시장 개입은 실패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개입은 성공할 수 있을까? 아직 분명치는 않다. 경상수지와 외국인 투자자금 이탈 규모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 중 더 중요한 것은 경상수지다. 신흥시장국에서 경상수지는 국가경쟁력의 지표로 인식돼 자본이동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6월 경상수지만 본다면 흑자이므로 환율은 하락해야 한다. 그리고 이번 개입이 하락 방향으로 진행되었으므로 성공 가능성은 일단 높다. 유가만 더 급속히 오르지 않는다면 경상수지 흑자도 지속될 전망이므로 환율 하락은 기조적인 방향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크지 않은 개입 규모로도 환율하락을 유도할 수 있다. 그러나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서는 경우에도 환율하락을 위한 개입을 시도한다면 결국 외환만 잃고 실패하게 될 것이다. 특히 환율하락을 위한 개입은 환율상승을 위한 개입에 비해 리스크가 훨씬 더 크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정부는 이번 개입이 잘못된 방향으로 시장의 기대가 쏠려 있어 이를 시정하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 주장이 사실이라면 특정 환율수준을 목표로 하는 것도 아니므로 시장의 기대만 안정되면 더 이상 잦은 개입이 없을 것이다. 제발 그렇게 되길 기대한다. 환율이 지금처럼 정치적 이슈가 되지 않고 중립적인 경제지표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결국 외환당국의 몫임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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