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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빅 3와 손잡아라

미국 빅 3와 손잡아라


LPG엔진과 전기모터를 함께 사용한 현대 쏘나타 LPI하이브리드 차량.

잃어버린 가을을 되찾아올 수 없을까? 추석을 쇠고도 다시 피서를 떠나야 할 만큼 기온은 섭씨 30도를 오르내렸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탄소로부터 지구를 지켜야 한다는 세계인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전 세계 이산화탄소(CO2) 배출량의 약 20%를 차지하는 수송업계를 보는 눈이 더욱 차갑다.

그래서인지 자동차 산업은 대변혁을 예고한다. 일본은 2020년에 생산차량의 50%를 차세대 자동차로 바꾸겠다는 비전을 설정했고, 렉서스는 모든 엔진을 하이브리드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유럽연합(EU)은 2020년까지 바이오 연료와 전기자동차, 수소연료 전지차 비율을 40%까지 높일 계획이다. BMW는 2020년까지 생산차량의 50%를 수소엔진으로 하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자동차 산업의 차세대 과제는 전기자동차, 하이브리드차, 수소연료 전지차, 클린 디젤, 바이오 연료차 개발로 압축된다. 온난화와 고유가의 지렛대는 대형차에 집중해온 미국 자동차 산업에는 큰 악재지만 ‘달릴수록 공기가 맑아지는 자동차’ 이미지를 강조해 온 일본 자동차업체엔 오히려 기회다.

차세대 자동차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높아질수록 지난 10여 년간 친환경 자동차 상용화를 시도해온 일본 업체들은 연비, 안정성, 경쟁력 측면에서 1석3조의 효과를 만끽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비해 한국의 친환경차 기술은 법적인 선언수준에 머문다. 2004년 10월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지만 정부의 지원 규모는 지난 4년간 1330억원 정도에 그쳤다.

미국의 2조7000억원, 일본의 2조5000억원에 비해 구체화 의지는 매우 미흡한 편이었다. 우리나라는 2004년에서 2007년에 이르기까지 현대·기아차가 공공기관에 프라이드와 베르나 등 소형차 하이브리드 모델 337대를 시범 보급하는 초기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최근 들어 친환경차에 대한 국가적 관심이 고조되고 나서야 한국 특유의 관·민 합동의 압축 성장에 시동이 걸렸다.

이명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녹색 성장을 선언하고, ‘그린카 4대 강국 진입’ 목표를 제시하면서 자동차 업체들의 행보에도 가속도가 붙는다. 현대·기아차 정몽구 회장은 최근 친환경 자동차 개발로 저탄소 녹색성장을 견인하겠다는 요지의 신발전 전략을 발표하면서 “핵심부품과 원천기술을 개발하는 데 기술역량을 집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 일환으로 내년 9월에서 7월로 앞당겼던 아반떼 LPG 하이브리드차 양산 시기를 4개월 더 단축해 내년 3월로 정했다. 현대·기아차는 개발 중인 액화석유가스(LPG) 하이브리드 기술력이 세계적으로 앞서 있으며 유럽, 동남아, 중동 등 해외시장에서도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2010년엔 중형급 하이브리드차 2개 모델(가솔린 및 LPG)을 내놓으며, 이후의 미래를 준비하고자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를 개발할 계획이다. 2012년에는 수소연료 전지차를 조기 실용화해 친환경 차량 라인업을 확대하겠다는 공격적 목표도 제시했다. 친환경 자동차에 대한 한국 정부의 노력도 점차 두드러진다.

정부는 기후 변화 연구개발(R&D)에 5조원을 투자키로 하고 그중 친환경 그린카 개발에 7200억원을 배정했다. 신성장 동력사업 중 하나인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PHEV)를 위해 지식경제부는 최우선 과제인 배터리 공동개발에 향후 5년간 200억원의 예산을 지원키로 했다. 지난 8월 25일엔 지식경제부, 현대자동차, 자동차부품연구원과 배터리 생산 3개사인 LG화학, SK에너지, SB리모티브가 포괄적 업무제휴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배터리 시스템을 2013년까지 개발하기로 했다.

이로써 현대차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의 양산 시기를 2015년에서 2013년으로 2년 앞당긴다는 복안이다. 체결식에 참석한 이현순 현대차 연구개발총괄 사장은 “하이브리드차는 도요타나 혼다에 뒤처졌지만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 기술은 모두가 출발선상에 있어 열심히 하면 우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린카 경쟁의 종착역은 수소연료 전지자동차라 할 수 있다. 수소연료 전지차는 10년 이후에나 본격적인 양산체제가 예상되지만 이미 컨셉트카 수준에서 벗어나 조기 실용화에 많은 노력을 쏟아 붓는다. 혼다는 지난 8월 25일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차세대 수소연료 전지차량인 FCX클래러티를 첫 리스 고객에게 인도하며 본격적인 실용화에 나섰다.

2004년 9월부터 2009년 8월까지 5년간 미 에너지부에서 주관하는 수소연료 전지차 시범운행 프로그램에 참여한 현대·기아차도 현재 29대의 투싼 및 스포티지 연료 전지차를 성공적으로 운행 중이며, 올해 8월 중순까지 총 누적 운행거리가 47만6000km에 달한다. 이 정도면 내연기관 자동차에 몰입해왔던 한국자동차 산업에 녹색시대가 도래하는 걸까?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우선, 하이브리드 차량은 일본 업체의 특허로 둘러싸여 있어 기술개발의 여지가 매우 좁은 편이다. 하이브리드 차량 관련 기술특허 3572개의 분포를 국가별로 살펴보면 일본 국적의 특허출원이 전체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친환경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수록 우리 자동차 산업의 해외기술 의존도가 심화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둘째, 당분간 수익성이 없어 막대한 투자와 적자시대를 감수해야 한다는 위험도 있다. 지난 10여 년 동안 차세대 자동차 개발에 공을 들여 양산 체제에 성공한 일본 업체들도 아직 수익성 확보엔 이르지 못했다. 세계 최초 하이브리드차 프리우스는 지난해 세계시장에서 43만여 대가 팔렸고 올해는 50만 대를 넘길 전망이다.

이제 막 양산체제의 첫발을 내딛는 우리 기업들로선 커다란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차세대자동차는 국내시장 규모가 너무 작아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어렵고, 해외로 진출하더라도 일본과 경쟁이 불가피하다. 그러므로 일정 양산규모 확보, 핵심부품 국산화 이전까진 친환경차 판매에 따른 자동차업계의 손실은 불가피하며 차종당 수천억원 손실이 예상된다.

셋째, 한국은 일본에 이어 세계 둘째로 하이브리드차 시제품 개발에 성공하고 내년도 양산체제에 돌입하는 등 성과를 거두었으나 하이브리드차 기술력은 일본의 70% 수준에 그치고 있다. 게다가 항상 미완성 차세대 자동차는 돌발사고가 예상돼 순항이 쉽지 않다. 예를 들어 리튬-이온 전지는 안전에 문제가 있다.

과열되면 화재로 이어질 우려가 있어 아슬아슬한 마케팅 게임을 할 수밖에 없다. 또한 배터리·모터 등 핵심 부품의 기술력이 취약하다. 핵심 부품을 수입에 의존하면 부품공급 불안정, 차량가격 상승이 예상된다. 현대차의 양산형 아반떼급 하이브리드차에는 혼다 방식과 유사한 소프트 타입을 장착하고, 도요타 방식과 유사한 하드 타입은 쏘나타급에 장착해 연간 4만~5만 대를 생산할 계획이다.

아반떼 하이브리드차에는 LG화학에서 공급하는 배터리가 공급될 것으로 보이며, 다수의 핵심 부품은 해외글로벌부품업체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쏘나타급 하이브리드차의 경우 핵심부품인 인버터, 배터리, CVT는 히타치, 파나소닉, 자트코에 의존하고 있다. 한국 자동차 산업은 차세대차의 80% 이상을 판매하는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길을 찾을 수 있다.

오랜 기간 적자로 투자 여력이 달리는 미국의 빅3 업체와 제휴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고 미국 시장에 접근성을 키우면 된다. 미국 자동차 업체들은 일본이 주도하는 하이브리드차 시장 선점에 대응하고자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와 기술적 우위에 있는 연료전지차의 조기양산에 주력하는 중이다.

미국 정부도 새로운 방식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 개발에 2008년부터 2010년까지 3년간 모두 3000만 달러의 신규 지원계획을 발표했다. GM은 2010년 PHEV 차량인 볼트(Volt) 양산을 추진 중이다. GM은 연료전지차도 2010년 양산을 개시, 2020년 100만 대 판매를 목표로 미 정부와 실증사업을 진행 중이다. 포드 또한 대체연료 차량(E85)의 차종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한국은 1996년 CDMA방식의 디지털 휴대전화 서비스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는 데 성공한 바 있다. 자동차 업계도 이 참에 연료전지차에 집중해 보는 제2의 CDMA 신화에 도전하는 건 어떨까? 1990년대 누가 삼성전자가 소니를 앞지를 거라고 생각했나? 아날로그에 강했던 소니에 맞선 과감한 디지털 도전이 오늘의 삼성전자를 만들었다.

한국 자동차 산업은 2012년 수소연료 전지차 조기 실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업계의 한정된 자원을 더 이상 분산할 게 아니라 미국의 빅3와 함께 연료전지차에 몰입해봄직도 하다. 고위험 고이익(high risk high return)에 도전하는 어려운 길을 가기 위해서 때로는 현명한 선택이 필요하다. 앞만 봐서는 안 된다. 고개를 돌려보면 경쟁자도 있지만 동반자도 있다.

[필자는 가톨릭대 경영대학원장으로 한국자동차산업학회 회장, 자동차산업 연구 네트워크인 미국 MIT공대 IMVP 연구위원으로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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