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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싸고 품질 좋은데 ‘끝난 거지’

값싸고 품질 좋은데 ‘끝난 거지’


일본 도쿄에 위치한 유니클로 매장 전경.

불황 때 꽉 닫힌 소비자의 마음을 여는 첫 번째 열쇠는 저렴한 가격이다. 그렇다고 올라간 소비자들의 눈높이를 무시한 채 값만 내려서는 곤란하다. 품질과 가격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기업만이 불황을 극복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일본의 유니클로(UNIQLO)는 불황에 강한 대표적인 브랜드라고 말할 수 있다.

최근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발표한 ‘2008년 최고 인기상품’에서도 유니클로가 공동 1위로 선정됐다. 미국발 경제위기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경쟁 브랜드를 비웃기라도 하듯 유니클로의 지난달 매출액은 32%나 급증했다. 유니클로가 불황 때 명성을 떨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8년 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2000년 당시에도 일본은 경기둔화와 디플레이션이 겹친 복합 불황을 겪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유니클로는 외투 속에 입는 방한용 ‘후리스’가 2600만 장이나 팔리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일약 ‘불황의 스타’로 떠올랐다. 불황에 강한 유니클로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최단기간에 최저비용으로 생산

사람들은 1998년에서 2000년에 걸친 유니클로의 후리스 붐을 상기하며 “불황일수록 유니클로가 잘 팔린다”고 말한다. 소비자들이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고 가격을 꼼꼼히 따지는 때에 저렴한 유니클로가 주목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유니클로는 단순히 값싼 브랜드가 아니다.

품질이 매년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의류 전문가는 “3900엔짜리 유니클로 청바지와 같은 제품을 다른 업체에서 만든다면 판매가격은 8000엔이 넘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모든 기업이 회사의 비전을 내세우고 있지만 유니클로 만큼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 기업은 드물다. 유니클로의 힘은 ‘비전에 대한 실천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니클로 브랜드를 만든 ㈜퍼스트리테일링의 회사 비전을 살펴보자.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가 입을 수 있는 고품질 베이직 캐주얼을 시장 최저 가격으로 제공한다. ▶이를 위해 저비용(Low Cost) 경영을 철저히 해 최단시간, 최저비용으로 생산과 판매를 직결시킨다. ▶자사에 요구되는 고객 니즈를 파악해 최고의 고객 서비스를 실현시킨다. ▶세계적 수준의 인재들이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따뜻한 피가 흐르는 한 팀으로서 혁신적으로 일한다. ▶그 결과 매출과 수익의 고성장을 목표로 세계적인 캐주얼 그룹으로 성장한다.

유니클로는 이러한 비전을 착실하게 수행함으로써 불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탄탄한 브랜드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유니클로 1호점이 문을 연 것은 1984년 6월. 상품기획, 생산, 유통, 판매까지를 일괄 진행하는 SPA(제조소매업)모델을 확립하고 고품질 캐주얼을 압도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제공함으로써 비약적인 성장을 실현했다.

세계적인 트렌드를 재빨리 파악해 상품개발, 디자인에 반영하기 위해 2005년부터 도쿄·뉴욕·파리·밀라노를 거점으로 글로벌 R&D 체제를 확립했다. 각 거점은 점포나 거래처 등으로부터 트렌드, 고객 니즈, 라이프 스타일, 소재 등에 관한 최신 정보를 수집해 본사로 보낸다. 이를 바탕으로 시즌별 컨셉트를 정하고 4개 도시에서 동시에 디자인을 결정해 각국 시장에 맞춘 상품을 편집하고 있다.

유니클로는 압도적인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제품의 9할 이상을 중국에서 생산한다. 그러나 수준 높은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중국 현지공장에 일본 기술자를 파견해 철저하게 지도하고 있다. 앞으로는 중국에 대한 생산 의존도를 전체의 3분의 2 정도로 줄이고 방글라데시 등 다른 생산거점을 찾을 계획이다.

2001년에 유럽·미국과의 섬유쿼터제가 폐지되면서 이들 국가 의류회사들이 중국 생산을 확대하는 바람에 한정된 우수 공장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1998년에 시작된 후리스 열풍은 유니클로의 지명도를 절대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당시 후리스는 일본인들에겐 낯선 방한의류였다.


새로운 패션 트렌드를 제시한 데다 가격까지 저렴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후리스 붐이 끝난 2001년부터 2~3년간은 유니클로의 침체기였다. 단순히 값이 싼 제품이 아니라 유행을 선도할 수 있는 새로운 아이템을 찾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수익 감소 시기를 극복하고 2004년부터 수익이 점차 회복세에 들어섰지만 내세울 만한 히트 제품은 나타나지 않았다.

시행착오 끝에 2006년 여름, 바지통이 아주 좁은 ‘스키니진’이 400만 장이나 팔리는 히트를 쳤다. 유니클로가 패션성을 강조하며 경쟁사들보다 앞서 투입한 제품이다. 시키니진의 성공으로 유니클로는 패션성을 과신하게 되었다. 2006년 추동 시즌에는 지금까지의 베이직 제품을 줄이고 유행을 의식한 제품들을 대량 투입했다.

유니클로의 이미지 상승, 신규 고객 확보가 목적이었다.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 매장에 원하는 베이직 제품이 없어지자 기존 고객의 발길이 멀어졌던 것이다. 이런 실패를 통해 야나이 다다시(柳井正) 회장 겸 사장은 유니클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분명히 알게 됐다. 그것은 ‘패션성을 가미한 베이직 제품’이었다.

2007년은 히트상품 풍작의 해였다. 습기에 강하고 보온효과가 뛰어난 속옷 ‘히트테크’와 가느다란 어깨 끈의 탱크톱에 브래지어를 붙인 ‘브라톱’이 각각 2000만 장, 300만 장이나 팔렸다. 사실 두 제품 모두 2007년 발매한 신제품이 아니라 3~4년 전부터 꾸준히 팔리던 제품이었다.



2020년 세계 1위 의류업체 꿈꾼다

그렇다면 이러한 평범한 제품을 어떻게 히트상품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었던 것일까? 제품의 특성을 부각시킨 프로모션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히트테크’는 습기에 강하고 보온 효과가 뛰어나며 겹쳐 입을 수 있는 속옷이란 점을 강조했다. 또한 브라톱은 속옷 메이커의 브래지어에도 손색이 없는 몰드컵을 캐주얼 의료와 합쳤다는 점을 부각시켜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유니클로는 3년 내 ‘매출 1조 엔’, 2020년에는 ‘세계 1위의 의류 기업’을 꿈꾸고 있다. 2007년에 이어 2008년에도 좋은 실적을 내고 있는 유니클로로서는 이러한 계획이 점점 현실감 있게 다가오고 있다. 퍼스트리테일링은 2010년에 일본 내 유니클로에서 매출 6000억 엔, 해외 유니클로에서 매출 1000억 엔, 그리고 나머지는 M&A를 통한 매출로 1조 엔을 채운다는 계획이다.

야나이 회장은 이를 위해 현재 750개에 달하는 일본 내 매장을 늘릴 뿐만 아니라 중국·한국 등 아시아권에서도 출점 속도를 높이겠다고 한다. 한국 매장은 2005년 1호점을 연 이래 현재 13개 점으로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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