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현지시간) 경주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미정상회담에 대해 워싱턴DC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경제·안보 양면에서 의미 있는 진전이 있었다"는 평가를 내놨다.대미 투자금 상한 설정과 관세 인하 등 실질적 합의가 도출된 점을 긍정적으로 보면서도, 근로자 비자 문제와 장기 전략 부재를 아쉬운 점으로 꼽았다.전문가들은 “예상보다 선방한 협상”이라면서도 “디테일 속의 변수들이 한미 관계의 새 과제로 남았다”고 진단했다.다만 한국 기업들의 근로자 파견과 관련한 비자 문제가 빠진 것이나, 기존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일본, 유럽보다 낮은 관세를 적용받았던 한국 자동차 관세가 이들과 같은 수준으로 확정된 것은 아쉽다는 지적도 동시에 제기됐다.이 대통령이 국방비 증액 의지를 거듭 밝힌 것과 양국이 원자력 협력에 일정부분 공감대를 형성한 것 등과 관련해선 한미 안보 동맹이 확인된 계기였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했다.패트릭 크로닌 허드슨연구소 아태지역 안보 의장은 연합뉴스의 한미정상회담 평가 요청에 보내온 이메일 답변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거의 흠 잡을 데 없는 상호주의적 정상회담을 조율했다"고 평가했다.크로닌 의장은 "이 대통령은 균형 잡힌 경제 합의(한미 무역합의)를 확보했다"며 "한국의 대미투자금은 연간 200억 달러의 한도가 설정됐고 양국은 조선 분야에서 전략적 협력을 심화하기로 했다"고 평가했다.그는 또 "한국이 핵추진 잠수함 확보와 관련한 지원 요청을 했는데, (미국이 수용할 경우) 한국 해군의 대양 및 해저 작전 능력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다만 크로닌 의장은 "문제는 거래적인 합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적대적인 나라들을 상대하는 포괄적 전략의 부재에 있다"고 꼬집었다.그는 "김정은은 핵 개발을 가속화하고 러시아 및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면서 트럼프와의 회담을 건너뛰었다"며 "4중 전회(중국 공산당 제20기 중앙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10월 20∼23일)를 막 마친 시진핑은 차기 5개년 계획을 통해 중국의 핵심적 우위와 공급망 확보, 첨단 산업 정책 추진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이어 "전략적 프레임워크가 없는 거래적 접근 방식이 장기적인 우위에 대한 명확한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경쟁국으로 하여금 우리를 추월하도록 만들 수 있다는 점이 리스크"라고 지적했다.로버트 랩슨 전 주한미국 대사 대리는 "이재명 대통령과 그의 팀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손님맞이를 훌륭하게 해냈다"며 "화려한 격식, 의전, 따뜻한 공개 언사 등은 8월 워싱턴에서 열린 두 정상의 첫 정상회담에서 있었던 긍정적인 톤과 분위기에 기반한다"고 평가했다.그는 "양측 모두 안보 분야, 반도체, 조선 등에서 강화된 협력을 재확인하는 매우 좋은 발언을 했다"고 덧붙였다.랩슨 전 대사 대리는 그러나 "정상회담의 실질적 합의에 대해 말하자면 악마는 여전히 디테일(세부 사항) 속에 있다"며 3천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금을 포함한 한미간 무역-투자 합의를 거론했다.그는 "핵심적인 세부 사항에 대한 협상은 의심할 바 없이 계속될 것"이라며 무역합의의 세부 사항이 한미동맹과 양국 관계에 변수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그는 이어 "이 대통령이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권리와 핵추진 잠수함 프로그램과 관련한 미국의 지원을 요청한 것은 다소 놀라운 일이었다"며 "특히 미국의 승인이 핵 비확산 정책과 중국, 일본에 미칠 영향, 미국의 대북 접근에 미칠 영향 등을 감안할 때 트럼프 행정부가 어떻게 대응할지는 지켜볼 일"이라고 말했다.톰 래미지 한미경제연구소(KEI) 경제정책 분석관은 무역 합의에 대해 "한국 입장에서는 무역 합의 타결로 더 예측 가능한 틀 안에서 교역을 정상화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특히 "한국이 2천억 달러 규모의 투자 운영과 관련해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조건을 확보했다"며 "연간 200억 달러 상한과 분할 투자 방식을 통해 외환보유고와 원화 경쟁력에 대한 부담을 덜게 됐다"고 말했다.다만 25%에서 15%로 낮춘 자동차·자동차 부품 관세에 대해 "15% 관세 합의가 상당한 성과이긴 하지만, 과거 한미 FTA를 통해 확보했던 '최혜국 관세율 대비 2.5% 인하 혜택'이 고려됐어야 했다"고 말했다.과거 2.5% 관세가 부과됐던 일본, EU 자동차와 달리 한국은 무관세로 자동차를 수출해왔는데, 이번 미국과의 무역합의 과정에서 한국도 일본, EU와 마찬가지로 자동차 관세율이 15%로 확정된 점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낸 것이다.래미지 분석관은 아울러 대미 투자 합의 내용에 대해 "프로젝트 과정에서 가급적 한국이 추천한 기업을 선택하고 한국인 매니저를 채용한다고 돼 있지만, 미국 투자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한국인 근로자들의 비자 문제 해결에 대한 언급이 보이지 않았다"고 평가했다.그는 안보 분야 합의와 관련해선 "한국은 방위 역량에 보다 많은 자율성을 갖게 됐고,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주한미군 주둔 비용에 대한 동맹국의 재정적 기여 확대라는 성과가 있었다"고 말했다.이미지 확대트럼프 대통령 맞이하는 이재명 대통령트럼프 대통령 맞이하는 이재명 대통령(경주=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한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경북 경주박물관에 도착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맞이하고 있다. 2025.10.29 photo@yna.co.kr앤드루 여 브루킹스연구소 한국석좌는 자동차 관세율 인하와 대미 현금투자 상한 설정 등을 언급하며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서울에 더 좋은 결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또 "이 대통령에게 이번 합의는 외교적으로 큰 성과"라면서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국 내에서도 긍정적인 분위기를 이끌 수 있는 호재"라고 말했다.여 한국석좌는 다만 연간 200억불 대미 투자 상한에 대해 "한국이 매년 이 금액을 반드시 투자해야 하는지, 아니면 트럼프 대통령이 1월 취임한 이후 현대차, 삼성 등 한국 기업들이 이미 발표한 투자 내용이 포함됐는지가 명확지 않다"고 지적했다.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일련의 무역 합의들은 장기적으로 관세를 지렛대로 동맹국과 적대국 모두를 압박하는 '마가'(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무역 방식을 일상화할 것"이라며 "한국과 미국 사이에는 원래 FTA(자유무역협정)가 있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무시하거나 밀어붙인 것이라는 걸 어떤 사람들은 이미 잊어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패트리샤 김 브루킹스연구소 아시아 담당 연구원은 이번 한미정상회담에 대해 "한국은 트럼프 대통령을 환대하기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며 "금관과 최고훈장 선물은 이번 방문에 얼마나 큰 의미를 뒀는지를 보여준다"고 평가했다.김 연구원은 무역합의에 대해 "협상 타결에 불확실성이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결국 합의를 이룬 것은 경제 협력 강화에 대한 공통된 의지를 보여주는 신호"라고 말했다.아울러 "또 다른 주목할만한 진전은 한국이 핵추진 잠수함용 연료를 확보하도록 민간 핵 협력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가 논의하기로 한 점"이라면서 "경제와 국방 양측 모두에서 양국 관계를 견고히 다지는 기반이 됐다"고 말했다.한편,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에 불발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의 만남이 내년 초로 예상되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 등을 계기로 재추진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랩슨 전 대사 대리는 "이제 관심은 두 사람이 내년 초쯤 회담을 가질 가능성으로 옮겨가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방문이 성사될 경우 그걸 계기로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여 한국석좌는 "김 위원장은 단순히 사진 찍기용 회담에는 관심 없을 가능성이 있다. 자신이 원하는 시점에 보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회담을 선호할 것"이라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대화 재개 가능성을 여전히 열어뒀기 때문에 가까운 시일 내에 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