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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위기라도 현장에 해답 있다(보고수정)

어떤 위기라도 현장에 해답 있다(보고수정)

사상 초유의 경제 위기에 기업들이 대책을 세우기 쉽지 않다. ‘경기가 나쁘니 우리도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자조 섞인 반응도 많다. 하지만 위기 때 경영자의 실력이 판가름 나게 마련이다. 우왕좌왕하는 경영자도 있지만 어떤 CEO는 틈만 나면 작업용 장갑을 끼고 현장으로 달려간다. 통제할 수 없는 경기 대신 땀과 노력 그리고 새로운 아이디어로 생산, 판매, 서비스를 바꿔 위기를 극복하려는 것이다. 불황에 아랑곳없이 현장 경영으로 승리하는 기업들을 찾아봤다.

이원태 금호고속 사장이 지난해 12월 22일 새벽 6시 반포고속터미널에서 광주행 첫차를 배정받은 김승일 기사와 악수하고 있다.

1978년 당시 수원경찰서 강력계 고병천 형사는 미궁에 빠진 살인 사건 하나를 두고 깊은 고민에 잠겼다. 수원 시내 한 다리 밑에서 여자 공원(工員)이 변사체로 발견된 것. 성폭행 당한 후 살해된 것으로 보이는 여성은 옷이 벗겨져 있었고, 사건 주변에는 범인을 추정할 흔적이 전혀 없었다. 물론 목격자도 없었다.

답답한 고 형사는 매일 사건 현장에 갔다. 고 형사는 무작정 다리 주변과 냇가를 뒤졌다. 그러기를 1주일째, 형사의 눈에 물가에 버려진 반쯤 먹은 과자봉지가 눈에 띄었다. 지문 같은 흔적은 없었지만 고 형사는 직감적으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배고픈 시절 과자를 반도 안 먹고 버리는 경우는 흔치 않았기 때문.

그는 주변 가게를 탐문했고 마침내 어느 청년이 가게에서 과자 한 봉지와 막걸리 두 병을 사갔다는 증언을 들었다. 역으로 탐문해 가면서 결국 수원에 있는 친구를 만나러 부천에서 온 한 청년이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을 밝혀냈다. 미궁에 빠질 뻔한 이 사건은 과자 봉지를 발견한 한 형사의 끈질긴 현장 탐문을 통해 전모가 드러났다.

33년간 경찰로 재직하면서 23년간 강력계 등 현장 수사관으로 잔뼈가 굵은 고병천 경정(혜화경찰서 청문감사관)은 “수사가 미궁에 빠질 때는 항상 현장에 달려가는 게 최상책”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장에 가보지 않고 보고서 올라오는 것만으로 수사한다면 되는 게 없을 것”이라고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았다.

아무리 철저한 조사와 증거 수집을 했더라도 형사들은 현장을 직접 가본다. 거기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세기를 뛰어넘는 천재로 추앙 받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역시 현장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열네 살 때 다빈치는 화가 겸 조각가인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의 제자가 됐다.

피렌체에서 가장 큰 공방에 들어간 것이다. 스승인 베로키오는 어느 날 다빈치에게 계란꾸러미를 주며 그려보라고 했다. 다빈치의 눈에 비친 계란은 모두 같아 보였다. 제자가 그린 그림을 본 스승이 말했다. “1000개의 계란이 있다 해도 모양이 같은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서로 다른 각도에서 보면 전부 다르다. 따라서 1000개의 계란은 제 나름의 차이를 다 가지고 있다.”

이후 다빈치는 사물마다 갖고 있는 미미한 차이를 관찰하는 방법을 익혔고, 마침내 대기원근법이라는 표현기법까지 만들어냈다. 현장에 밀착하지 않고 보면 모든 것이 같고, 매일 같은 것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모든 것이 다르고 매일 다르다. 수많은 통계와 최신의 경영기법이 하루가 다르게 나오고 있는 요즘에도 현장 경영이 빛을 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역사적인 천재인 다빈치가 그럴진대 경영자가 자기의 생산현장, 고객현장, 판매현장을 다 안다고 자부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그것은 어쩌면 자기 과신이고 자만일 수 있다. 한국의 도요타로, 혁신의 본거지로 불리는 삼원정공의 양용식 사장은 “현장 경영은 끝이 없다”고 단언한다.

“한 번 가면 개선할 점이 하나 발견되고, 두 번 가면 두 개 발견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밀착해서 애정을 가지고 보면 매일매일 개선할 것이 나오고 그것이 모이면 불황이나 침체니 하는 외부 변수들이 더 이상 회사를 흔들 변수가 되지 않는다는 논리다.



이원태 금호고속 사장
63년의 전통 ‘굿모닝 미팅’



지난해 12월 18일 새벽 6시 서울 신반포로에 있는 고속버스 호남선 터미널에 양복과 작업복을 입은 일군의 남자가 몰려왔다. 11명의 남자는 광주행 버스가 있는 1번 플랫폼 앞에서 둥그렇게 원을 그리듯 서서 낮은 목소리로 무언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매일 보는 일인 듯 주변 사람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다. 문을 열기 시작하는 상점 주인은 가게 문 열기에 바빴고 버스 기사들도 차량을 확인하며 난로를 쬐고 있었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그중 한 명이 플랫폼으로 나서서 기사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안부를 물었다. 간간이 웃음을 띠며 어깨를 두드리는 사람은 이원태 금호고속 사장. 이 사장은 올해로 만 6년째 매일 아침 고속버스 첫차 기사들과 악수하며 격려하고 있다. 이 사장이 ‘굿모닝 미팅’으로 명명한 이 새벽 행사는 휴일도 없다.

이 사장이 만들어낸 것도 아니고 무려 63년째 이어져 오는 금호고속의 전통이다. ‘고속버스 사장은 반드시 첫차 기사와 악수하고 격려하라’는 무언의 지침은 창업주인 고(故) 박인천 금호그룹 회장 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이날 광주행 첫차를 맡은 김승일씨는 “사장이 매일 나와서 이렇게 해 주니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매일 아침 기사들과 악수하고 그 직전에 10분 정도 서서 전날의 특이사항과 실적 등을 점검하고 현안을 간단히 나누는 이 회의를 통해 사장은 회사의 분위기와 문제점을 파악하고, 기사들과 소통도 한다. 매일 아침 현장에 투자하는 10분 덕에 금호고속은 국내 최대 육상 여객운송 업체로 자리를 확고하게 잡고 있다.

1946년 택시 2대로 운수업을 시작해 지금은 보유 차량만 1154대, 운행노선은 169개를 보유한 국내 최대 업체로 발돋움했다. 지난해 매출은 4500억원을 기록했고 영업이익률은 13.5%(2007년 기준)로 2위 업체보다 3% 이상 높다. 중국, 베트남 등 해외사업도 활발하다. 한물간 사업이라고 치부된 고속버스 사업에서 금호가 이렇게 성장하는 비결은 63년째 이어지고 있는 현장 경영 덕분이다.

이 사장은 “60년 넘게 매일 이렇게 아침에 나와서 기사들을 격려하는 전통 덕분에 사장과 현장의 승무사원 간 거리가 좁혀지고 고객의 불만이나 지적이 확 줄어들었다”고 성장의 비결을 이야기했다. 매일 새벽에 나와야 되기 때문에 이 사장의 저녁 약속은 짧을 수밖에 없다. 각종 CEO 모임에도 활발히 참여하는 이 사장은 “모임에서 일찌감치 찍혔다”고 웃었다. 새벽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저녁시간 관리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금호고속의 63년 현장주의
“아침 10분이 60년 지탱한 저력”

금호고속은 1946년 창업 이래 CEO가 항상 첫차 기사를 격려하러 새벽에 나온다. 수십 명의 사장을 거치면서도 이 전통은 유지되고 있다. 덕분에 금호고속은 우리나라 최대 육상 여객운송 업체를 넘어 중국과 베트남까지 진출하고 있다. 이원태 사장에게 현장 경영의 효과를 물어봤다.



-디지털 시대에 꼭 직접 손을 잡아야 하나?
“사장 취임 때 없애자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서비스업은 현장에 있는 사람이 중요하다. 내가 잠깐 수고하면 회사의 서비스가 좋아진다.”



-새벽에 나와서 별로 하는 것도 없는 것 같던데….
“사소한 것을 하는 게 중요하다. 직원과 격의 없이 이야기할 수도 있고. 서비스업은 사소한 것에서 문제가 시작된다.”



-‘굿모닝 미팅’이 경영 실적에도 영향을 미치나?
“물론이다. 자리를 만들면 대화가 이뤄진다. 매일 사장과 만나는 회사와 그렇지 않은 회사의 경영 실적이 같은 수 있나?”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매출, 시장점유율, 영업이익률, 안전사고 비율 등이 다른 회사와 비교가 안 된다. 모든 면에서 우리가 1등이다.”



-1946년의 경영 방식이 2009년에도 통하는 게 신기하다.
“서비스업의 본질은 안 변했다. 친절하고 안전한 게 좋다. 사람이 하는 일 아닌가? 아침 10분이 60년을 지켜온 힘이다.”



박기주 KD파워 사장
매일 ‘뺑뺑이’ 돌며 현장 공기 맡아



건물에 배전반, 분전반 등을 공급하는 전력 IT업체인 KD파워의 박기주 사장은 경기지역에 있는 4개 사업장을 매주 번갈아가면서 찾는다. 요일을 정해놓고 4개 사업장을 5일에 걸쳐 매일 ‘뺑뺑이’를 돈다.

지난해 매출 1120억원을 올린 중견기업 사장인 박 사장은 “사장이 사장실에 앉아 있으면 사업 현장과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뺑뺑이’ 이유를 말했다. 그렇다고 박 사장이 현장에 가서 무슨 큰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공장을 다니며 청결 상태와 자재관리 등 소홀하기 쉬운 곳을 챙기고, 자재와 제품을 실어 나르는 기사휴게소에 가서 생강차나 커피를 대접하는 일을 주로 한다. 박 사장은 “직원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 현장 경영의 출발”이라고 말했다. 그는 “회사의 큰일, 눈에 띄는 일은 직원들이 알아서 한다. 문제는 작은 일”이라고 강조했다.

사실 사장이 공장을 다니면서 볼트를 줍느냐 마느냐가 직원들에게는 큰 메시지가 될 수 있다. KD파워는 전 사업장을 인터넷 카메라로 실시간 관찰할 수 있고, 모든 업무가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보고·실행될 정도로 정보화에 앞서 있지만 박 사장은 여전히 몸으로 하는 현장 경영을 실천하고 있다.

그는 “현장의 감을 알기 위해서는 짧은 순간이라도 CEO가 현장의 공기를 맡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런 현장 경영 덕분일까? KD파워는 지난해 매출 31% 성장을 달성했고, 최악의 불황이라는 올해도 42%(1675억원) 성장을 자신하고 있다.



조영돈 ㈜진양 사장
한밤중에 음료수 사 들고 가 격려



경남 창원에 위치한 ㈜진양은 LG전자와 웅진 등에 전자레인지와 전기압력밥솥의 솥을 납품하는 중소기업이다. 이 회사의 조영돈 사장은 중소기업이 다 그렇듯 공장과 사무실이 붙어 있다. 당연히 조 사장은 현장과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구조다.

이런 회사의 문제는 현장 경영 부족이 아니라 과잉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 사장은 현장을 최대한 아랫사람에게 맡긴다. 자칫 ‘사장이 나타나면 잔소리만 한다’는 인식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장의 일상적인 경영은 공장장인 전무에게 일임하고 조 사장은 대외적인 업무나 원청회사와의 계약에 몰두한다. 대신 그는 부정기적으로 생산 현장에 가서 현장 직원을 격려하고 문제점을 체크한다. 조 사장은 “직원들의 집중력이 떨어지는 저녁 때나 한밤중에 가서 음료수라도 사주고 온다.

마음에 안 드는 점은 체크해 놨다가 팀장이나 책임자에게 전해 준다”고 말했다. 조 사장은 절제된 현장 경영을 통해 중소기업 사장들이 고질적으로 겪는 ‘과잉 현장 경영’의 문제점에서 벗어났다. 덕분에 진양은 창업 20년 만인 지난해 매출액 1000억원을 달성했고, 올해는 불황에도 불구하고 1300억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양용식 삼원정공 사장이 현장에서 근로자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조 사장은 “현장 경영과 책임 경영 덕분에 중국에 있는 경쟁업체의 생산성을 넘어서 올해부터는 LG전자가 중국 공장으로 발주하던 물량까지 우리에게 맡기고 있다”고 뿌듯해 했다. 사상 최악의 불황이라고 하지만 탄탄한 현장 경영을 한 회사들은 오히려 성장하고 있다. 현장을 꿰뚫어 보고, 직원들과 한 몸으로 똘똘 뭉친 회사는 웬만한 불황에도 끄떡없다.

사실 현장 경영은 중소기업이나 할 수 있는 것, 또는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는 오해다. 대기업의 총수조차 해마다 현장 경영을 강조하고 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나 구본무 LG그룹 회장 같은 기업 총수들도 시간을 쪼개 현장을 찾고, 계열사 CEO들에게 현장 경영을 강조하는 것은 그만큼 현장이 경영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떨어진 보고나 서류로만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현장에서 직원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사례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외환위기 당시 극적으로 생존한 한국전기초자의 경우다. 브라운관용 유리 생산업체인 한국전기초자는 당시 미국의 세계적 경영컨설팅사인 부즈앨런앤드해밀턴으로부터 ‘현재의 경쟁력으로 볼 때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경영진단을 받았다. 그로부터 한 달 뒤 노조의 파업으로 한국전기초자는 공장을 폐쇄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전기초자의 총 부채는 4700억원, 부채비율은 1114%에 달해 있었다. 그러나 한국전기초자는 새로운 사장인 서두칠 대표가 취임한 1년 뒤 경상손익이 600억원 적자에서 307억원 흑자로 전환됐고, 부채비율은 174%로 낮아졌다. 그는 취임 3년 만에 무차입 경영을 실현했고, 700여 개 상장회사 가운데 영업이익률 35.5%로 수위를 기록하는 등 퇴출 위기의 기업을 초우량 기업으로 변신시켰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러한 성과가 일체의 자산 매각이나 인적 구조조정 없이 이뤄졌다는 점이다. 서두칠 전 사장은 “3년간 구미공장에서 기숙하면서 집에 한 번도 가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또 “위기가 닥치면 CEO가 중심에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 위기 극복의 중요한 열쇠”라고 강조했다.

서 전 사장은 “사장이 위기! 위기!를 외치면서 자기는 희생하지 않는다면 이미 그 회사는 위기를 극복할 힘이 없는 회사”라고 충고했다. 땀과 열정, 헌신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김정환 영풍제약 대표가 인천공장에서 약품생산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김정환 영풍제약 대표
30년 넘게 약재상 다니며 직접 구매



현장 경영은 사장의 솔선수범이 전제돼야 한다. 1998년 외환위기 때 약재 공급 중단 위기에 몰린 영풍제약도 같은 경우다. 김정환 영풍제약 대표는 1972년 대표가 되고 나서도 무려 30년 이상을 약재상에 직접 다니면서 약재를 구입하고 대금을 결제했다.

75세인 지금도 김 대표는 회사 근처(대방동 일대) 약국과 병원 약재 도매점은 직접 다니면서 이야기를 듣고 약재를 공급한다. 영업 현장뿐 아니라 생산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1990년대 초까지는 인천 남동공단에 있는 공장에서 근로자들과 숙식을 함께 하며 일했다. 요즘도 공장에 가면 포장 등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 회사에서 10년째 근무하고 있는 한 근로자는 “70이 넘은 사장님의 솔선수범을 보면 위기에도 불안한 마음이 크게 안 생긴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선 CEO가 먼저 ‘넥타이를 풀고 작업복을 입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조영돈 진양 사장이 현장을 방문한 손님들에게 공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직원들과 바이어들이 숨쉬고 있는 현장을 느껴야 위기 극복 방안이 생긴다”는 원로 CEO의 조언이다. 사실 현장 경영의 본거지는 일본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대기업들은 하나같이 현장주의를 금과옥조로 삼고 있다. 세계 최고의 자동차 기업인 도요타의 3현(현장·현물·현상)주의나 이를 바탕으로 한 ‘가이젠(改善)’은 책상머리 경영을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일본에서 ‘경영의 신(神)’으로 추앙받는 마쓰시타 고노스케 마쓰시타전기 창업자는 “경영학은 경영 현장에서만 배울 수 있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혼다 소이치로 혼다자동차 창업주 역시 젊었을 때 온천을 빌려 숙박하는 경영 세미나에 참가한 교세라의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에게 “당신은 정말 온천에서 먹고 마시면서 경영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질문한 적이 있을 정도다.

당시 혼다 소이치로는 기름이 얼룩진 작업복 차림이었고, 이나모리 회장은 유카타를 입고 술에 취해 있었다. 최근에는 아시아 최대 위생용품 업체인 유니참의 다카하라 게이치로 회장이 『현장이 답이다』(선돌 刊)는 책에서 “인생을 사는 동안 답을 찾지 못해 방황할 때는 늘 현장을 찾았다”고 말할 정도로 일본은 현장 경영을 경영의 궁극점으로 여긴다.

경영컨설팅사인 딜로이트코리아의 김경준 부사장(파트너)은 “현장 경영을 몸으로 때우는 경영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라면서 “일본의 현장 경영은 암묵지를 형식지로 바꾸고 지식을 축적하는 일종의 지식 경영 방식”이라고 해석했다. 일본의 경영자들은 현장과 유리된 경영을 믿지 않으며 그 힘으로 90년대 10년 장기 불황에도 일본 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해 냈다.

이웃나라지만 일본의 사례는 사상 초유의 위기로 불리는 올해 우리나라 기업에도 시사점이 크다. 공장 혁신 컨설팅 전문회사인 월드 컨설팅의 백대균 사장은 “아무리 위기라도 사장이 자기 살림처럼 꽉 틀어쥐고 현장에 나서면 해결방법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장이 되면 좋은 차 타고, 모임에나 나가는 것이 앞서가는 것인 줄 아는 세태가 최근 몇 년 사이에 한국 기업들을 망치고 있다”고 개탄했다.

한국의 1세대 경영자들은 사실상 모두 현장 경영 신봉자들이었다. 건설 현장을 누빈 고(故) 정주영 회장이나 공장에서 숙식을 한 고(故) 최종건 전 선경섬유 회장은 물론, 생산현장을 가장 잘 아는 경영자로 평가 받는 구자경 전 LG그룹 회장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모두 현장에서 직원과 고객을 직접 몸으로 만나면서 사업을 키웠다. 지금이 역사상 최악의 위기라고 하지만 1세대들은 더 열악한 환경에서도 기업을 일궜다. 위기에 현장 경영은 빛을 발한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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