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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석유 황제들’

추락하는 ‘석유 황제들’


이런 것을 두고 상전벽해라고 했던가? 반년이라는 짧은 세월이 가져온 변화가 실로 엄청나다. 지난여름 유가가 배럴당 147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을 때 ‘석유 황제(petro-czar: 독재체제의 산유국 지도자)’들의 오만도 하늘을 찔렀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는 그루지야로 탱크를 진격시켜 옛 소련 제국의 영토에 대한 러시아의 지배권을 되찾겠다는 야심을 드러냈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달러화 때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는 달러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돈”이라며 이란의 외화 보유 통화를 유로화로 전환했다. 한편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러시아를 방문해 무기 거래 계약서에 서명하면서 푸틴과 포옹했다.

이런 석유 황제들의 승승장구는 세계경제의 황금기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였다. 나날이 번성하는 세계는 석유에 목말라 울며 겨자 먹기로 그들로부터 석유를 사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요즘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세계경제가 불황에 접어들면서 석유 수요가 크게 줄어 유가가 배럴당 37달러로 폭락했다. 그 결과 석유 황제 트로이카인 푸틴·차베스·아마디네자드의 등등하던 위세도 빛을 잃었다. 석유를 기초로 건설된 제국들은 인플레이션과 실업에 취약한 체제임이 입증되고 있다. 그러면서 정정 불안으로 그들의 개인적인 권세가 위태로워졌다.

“지난 몇 년 동안 고유가와 그로 인한 오일달러가 지정학을 크게 바꿔 놓았다”고 석유 전문가인 대니얼 예르긴 케임브리지 에너지연구협회 회장이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모든 것이 반전되고 있다.”

어쩌면 석유 황제들의 몰락은 어둡기만 한 세계경제의 불황 국면에 비치는 뜻밖의 한 줄기 서광일지 모른다. 버락 오바마 신임 미국 대통령이 미국의 적들을 대화의 자리에 초대하자 푸틴·차베스·아마디네자드가 놀라울 정도로 민첩하게 반응했다. 그들의 그런 반응은 유가가 더는 그들의 지정학적 야심을 떠받쳐주지 못하기 때문인 듯하다.

미국 ‘제국주의’에 담대하게 대들던 그들이 갑자기 오바마 행정부와 머리를 맞대고 화기애애한 대화를 원하는 진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곧잘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악의 화신”이라고 부르던 베네수엘라의 차베스는 오바마와 “대등한 상호 존중의 조건”으로 기꺼이 대화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이란의 아마디네자드는 지난주 이란 혁명 30주년을 맞아 이란은 “언제든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선언했다. 그렇다면 러시아의 푸틴은 어떤가? 비록 그가 아직도 이웃 국가들을 완력으로 위협하고 있긴 하지만 그의 보좌관들은 우호적인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러시아와 나토의 관계가 정상으로 회복돼야 한다”고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말했다.

수많은 사람이 오바마는 전임 부시 행정부로부터 국제 문제에서 풀기 힘든 숙제를 넘겨받았다고 생각한다. 수단에서 북한에 이르기까지 난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석유 황제들은 야망의 크기와 호전성에서 여느 국가들보다 더 골칫거리다. 푸틴은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필적하는 천연가스 카르텔을 만들려고 했다.


또 정치적 영향력을 늘리고 동유럽과 중앙아시아를 관통하는 가스 파이프라인을 장악하려고 미국에 계속 딴죽을 건다. 차베스는 자신의 영웅 시몬 볼리바르가 꿈꾸었던 라틴 제국의 건설을 마무리 짓고 싶어 했다.

거기에는 차베스 자신이 관리하는 라틴 아메리카 은행도 포함된다. 아마디네자드는 이란의 중동 패권을 회복하고 싶어 했다. 그는 핵무기를 등에 업고 이스라엘을 지도에서 지워버린 중동에서 맹주 자리를 노렸다.

따라서 이 트로이카의 힘이 쇠락한다는 것은 그만큼 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는 의미와 다르지 않다. 그들의 추락은 현기증이 날 만큼 급작스럽게 이뤄졌다. 산유국들은 대다수 다른 나라보다 세계적인 신용 경색의 타격을 더 많이 받는다. 특히 이 석유 황제 트로이카는 오일달러를 복지 프로그램, 식품과 에너지 보조금 등 대중 인기를 노린 프로그램에 대거 투자해 권력의 기반을 구축했다.

그들은 유가가 배럴당 86∼100달러로 안정되리라는 가정 아래 그 모든 지출을 감안해 2009년 예산을 짰다. 그러나 유가가 폭락하면서 경제만이 아니라 정권의 정통성마저 위태로워졌다. 그런 지출을 계속하려는 충동 때문에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성장률이 떨어지는데도 인플레율은 솟구치고 있다.

세계적인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러시아는 올해 국내총생산(GDP)이 3.5% 줄어들고, 베네수엘라는 감소율이 1%에 이를 전망이다(이란의 수치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러시아는 다른 어떤 신흥시장보다 외국 투자자들의 이탈 속도가 빠르다. 그 결과 러시아의 주식시장은 지난해 여름 이래 75% 하락했다(세계 어느 나라보다 낙폭이 크다).

지난해 5월만 해도 푸틴의 보좌관들은 BP 같은 서방의 석유 대기업과 제휴한 합작 회사에서 러시아 주주들이 외국 임원을 몰아내도 못 본 체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푸틴이 직접 나서서 외국 투자자들의 환심을 사려고 안간힘을 쏟고 있다. 이런 몰락은 사실 불가피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석유 황제 트로이카는 기존 유전의 효율성 제고나 석유 외의 다른 수출 품목을 개발하는 데 투자를 충분히 하지 않아 몰락을 자초했다. 워싱턴 소재 에너지 컨설팅 업체 PFC 에너지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페르시아만의 산유국들은 경제가 여전히 양호하다.

반면 이란과 베네수엘라는 정부가 제대로 굴러가게 하느라 비축 자금을 소진하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 몇 달 동안 루블화를 방어하는 데 6500억 달러의 외환보유액에서 3분의 1가량을 썼다. PFC 에너지는 올해 말이 되면 베네수엘라의 외환보유액이 2008년 말 기준에서 38% 줄어들고, 이란은 약 25%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결론적으로 현재의 경제 상황이 지속된다면 이들 산유국이 빚더미에 올라 앉지 않고 오래 버틸 재간이 없다는 얘기다. 실업률이 오르고 금융 상태가 악화되면 정치적 반발이 따르게 마련이다. 이란에서는 공장들이 대거 문을 닫고 있으며, 인기 있는 개혁가 모하마드 하타미 전 대통령이 6월 12일로 예정된 대통령선거에서 아마디네자드에 도전장을 내밀 계획이다.

베네수엘라에서는 이번 주 대통령의 무한정 연임을 허용하는 개헌안에 대한 국민투표를 앞두고 반정부 시위가 격화됐다. 러시아에서도 세금 인상, 제철 및 제조산업의 임금 체불 문제를 둘러싸고 수많은 시위가 벌어졌다. 그에 대한 반응으로 크렘린은 여러 가지 새로운 악법을 의회에서 통과시켰다.


이란인들의 반미감정은 여전히 강하다. 그러나 미국과의 관계가 개선될 가능성도 있다.

그중 하나는 “집단 시위”에 참여하는 행위를 “반국가 범죄”로 규정한다. 군 장교 28만 명을 감원하겠다는 계획은 무기 연기됐고 내무부는 도시 세 곳에 소요 진압용 감시장비를 갖춘 ‘특수목적 센터’를 설립했다. 석유 황제들이 운영하는 석유와 가스 산업은 세계에서 효율성이 가장 낮은 축에 든다.

주로 외국 기업의 진출을 어렵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세계 3위의 석유매장량을 가진 이란에는 미국과 유엔의 제재로 대다수의 외국 회사가 진출할 수조차 없다. 러시아의 석유기업들은 최근 합작 회사 운영에서 BP뿐 아니라 셸과도 분쟁을 빚어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일방적으로 계약과 사업 조건을 재해석했다.

차베스는 유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를 때 베네수엘라의 석유 산업 대부분을 재국유화하고 외국 회사들이 부담하는 세금을 16배로 올렸다. 대다수 외국 기업이 짐을 꾸려 떠났다. 이제 유가가 크게 떨어지자 차베스는 외국 회사들을 다시 불러들이려고 애쓰고 있다. 인정하려 들지는 않겠지만 그들에게는 서방과 돈독한 관계를 맺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러시아의 경우 석유와 천연가스 매장지 다수가 채굴하기 어려운 곳에 위치한다. 시베리아의 영구 동토층 몇 겹 아래에 깊숙이 묻혀 있다. 그 자원을 채굴하려면 서방 기업들의 자본과 기술이 필요하다. 페르시아만의 카타르는 유가 10.18달러 때도 적자를 면할 수 있었지만 베네수엘라가 재정적자를 면하려면 유가가 그것의 9배 이상 돼야 한다.

석유 황제들은 유가가 평균 100달러였을 때는 복지 공약을 이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올해엔 유가가 더 이상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그들 국가 전부가 적자를 기록할 가능성이 크다. 현명한 해결책은 남아 있는 오일달러 중 일부를 효율성 제고에 재투자해 낮은 유가를 벌충하는 방법이다.

현재 일부 페르시아만 국가들이 그렇게 한다. 그러나 석유 황제들은 정반대로 나아간다. “그들은 석유로 벌어들이는 수입을 극대화하려고 하면서도 석유 산업의 장기적 건강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세계적인 투자은행 골드먼삭스의 에너지 담당 수석 분석가 제프리 커리가 말했다. “특히 베네수엘라는 유전 관리를 전혀 하지 않는다.

그러면 나중에 공급 중단 사태를 빚을 수 있다.” 차베스가 대통령 연임 무제한 허용 개헌안 국민투표에서 이기든 지든 간에 대다수 전문가는 위태로운 금융과 점증하는 긴장으로 그의 권좌가 산유국 지도자들 중에서 가장 허약하다고 본다. 아마디네자드의 권세도 얼마 못 갈지도 모른다. 포퓰리스트인 그는 석유 산업의 개혁을 공약으로 내걸어 대통령에 선출됐다.

그러나 그의 임기 동안 중앙은행 총재 두 명이 사임했다. 마지막 총재는 아마디네자드가 국가 재산을 탕진한다고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지난 1월 이란의 최고 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는 향후 석유 수입의 20%를 새로운 기금으로 적립할 것을 지시했다. 일각에서는 아마디네자드가 그 돈에 손을 대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라고 해석한다.

아마디네자드의 경제 실책을 감안하면 당연한 조치일지 모른다. 아마디네자드가 대중의 지지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실시한 에너지 보조금 지급 정책은 이란의 국내 석유 시장을 기괴하게 왜곡시켜 이란을 천연가스 순수입국으로 만들어 놓았다. 또 착상이 잘못된 금리 정책으로 인플레율은 26%로 치솟았고, 신규 일자리를 창출하도록 기업들에 뿌린 수백억 달러도 대부분 낭비되고 말았다.

아마디네자드는 대중의 갈채를 노리고 석유로 번 돈을 유로로 전환했지만 지금은 어리석은 판단으로 판명이 났다. 최근 달러화가 유로화에 비해 가치가 올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디네자드의 최근 인권 탄압은 석유 수입이 올해 10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기대되면서 간과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유가 하락으로 그 추정치가 약 300억 달러로 낮춰졌기 때문에 하타미 전 대통령이 이끄는 개혁파가 선거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

러시아는 세계적인 경기 침체의 타격을 가장 심하게 받았을지 모르지만 푸틴은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의 석유 산업 대부분이 여전히 민간 부문에 속해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러시아에서 고통 받은 쪽은 푸틴이 아니라 주로 신흥재벌들이었다”고 시장조사업체 샌포드 번스타인의 석유 산업 분석가 오스왈드 클린트가 주장했다.

크렘린은 일찍이 2004년부터 잉여 석유 수입을 만일에 대비해 기금으로 적립하기 시작했다. 이제 경제 위기가 닥친 상태에서 그 자금이 푸틴의 보호망 역할을 한다. 물론 그 돈을 어떻게 쓸지를 두고 크렘린 내부에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예컨대 푸틴은 자신이 선호하는 은행과 신흥재벌들을 위한 구제금융에 그 돈을 사용하고자 하는 반면 재무장관은 학교 건설에 사용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어쨌든 러시아의 경제는 이란이나 베네수엘라보다는 낫다.

러시아는 지난해 11월 이래 루블화를 떠받치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었지만 국민 개인당 외환보유액은 여전히 2734달러에 이른다. 이란(1421달러)이나 베네수엘라(1046달러)보다 훨씬 많다.

그러나 푸틴은 러시아가 서방보다 지금의 경제위기를 더 잘 헤쳐나갈 것이라고 계속 우긴다. 또 벨라루스·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 같은 이웃 나라들에 차관과 원조로 수십억 달러를 제공하겠다고 계속 약속한다.

미국이나 유럽이 그곳에 외교적으로 진출하지 못하게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과연 그가 이런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그건 경기 침체가 얼마나 오래 지속되느냐에 달려 있다. 러시아의 오일달러 금고는 유가가 회복되지 않으면 2010년 말이면 바닥날 수 있다. 그러나 석유 황제들이 자신의 무능력에서 오히려 이득을 보고 서방이 크게 손해를 보는 한 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PFC 에너지의 로빈 웨스트 회장은 그들의 실책이 궁극적으로 세계적인 공급을 낮추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 약 2년 후 세계경제가 침체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유가가 급등할 수 있다는 점이 위험 요인이다. 이들 국가가 석유 산업에 충분한 투자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 이유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PCF 에너지는 2010년 유가를 60달러로 예측한다. 다른 많은 전문가는 그보다 더 높게 추정한다.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하락하는 유가(일부 분석가는 25달러까지 예측한다)가 경기 침체의 고통을 완화해줄 듯하다. 그리고 석유 황제들이 일으키는 골칫거리도 줄어들 것이다. 데니스 블레어 미국 국가정보국장은 의회 청문회에서 세계적인 경기 침체가 미국에 최대의 안보 위협이라고 말했다.

세계 전체에서 약 4개국 중 하나꼴로 “낮은 수준의 소요”가 이미 일어났다는 사실을 두고 한 말이다. 하지만 그는 그 이면에 있는 좋은 기회는 언급하지 않았다. 경쟁 상대국들의 명백한 약점을 이용할 수 있고, 미국의 적들이 내부 문제로 타협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말한다.

“유가가 100달러를 넘어서면 제재 조치나 부패, 잘못된 금융 정책의 효과를 간과하기 쉽다”고 미국 외교협회(CFR)의 이슬람 전문가인 이란계 학자 발리 나스르가 말했다(최근 그는 러처드 홀브룩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특사의 팀에 합류했다). “그러나 석유 수입이 쏟아져 들어오지 않으면 그 효과를 무시하기가 힘들다.” 현재로서는 오일 달러가 석유 황제들의 금고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With OWEN MATTHEWS in Moscow, BABAK PIROUZ in Tehran and MICHAEL MILLER in New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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