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국내 대출 늘려라
중국은 국내 대출 늘려라
현 금융위기의 한 가지 교훈은 그동안 서방 세계에서 대출이 통제 불능이었다는 점이다. 이제는 과거보다 대출이 줄었다. 지난 10년과 달리 이젠 사실상 아무도 돈을 빌려 주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10년 동안 미국에서는 은행들이 자기자본 1달러당 26달러를 빌리고, 일반 가계는 주택을 담보로 평균 12만1000달러를 빌려 썼다.
그러나 대출 축소는 서방 세계에서는 일리가 있을지 몰라도 중국에선 단호히 배격돼야 한다. 뉴욕과 런던은 새로운 절약 풍조를 수용해야겠지만 중국의 은행들은 오히려 예전의 시티그룹과 JP모건으로부터 배워야 한다(물론 무절제한 대출과 차입 투자는 배제하고 말이다). 중국인들에게 더 많은 돈을 대출해 줘야 한다는 얘기다.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은 돈을 빌려 주게 되면 중국이 현 경제위기를 헤쳐 나가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서방 세계에도 혜택이 돌아간다. 중국 은행들은 규모 면에서는 문제가 없다. 일례로 중국공상은행(ICBC)은 세계에서 여섯째로 큰 기업으로 시장 가치가 마이크로소프트보다 높다.
문제는 자금력에 비해 대출 규모가 지나치게 작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대출이 대부분 대기업과 국영회사에 집중된다. 모건스탠리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중국 은행들의 대출금 중 일반 가계로 간 부분은 7%에 그쳤다. 이는 우연이 아니라 의도적인 정부 정책의 결과다. 중국 정부는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려고 대출 축소 ‘전쟁’을 해 왔다.
고도성장기에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은행들의 대출에 쿼터제를 적용했다. 그러나 이제 세계 경제가 냉각되는(일설로는 냉동되는) 만큼 인플레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중국 정부는 “은행들의 족쇄를 풀어 줘야 한다”고 미국외교협회(CFR)의 경제 전문가 브래드 세처는 지적한다.
세처 등 몇몇 전문가는 중국 정부의 대출 축소 전쟁이 뜻밖의 부작용을 초래한 만큼 이런 정책 변화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부작용 중 하나는 은행들의 예금 금리가 터무니없이 낮다는 점이다. 이는 정부가 은행의 주된 수입원인 예수금의 재대출을 엄격히 제한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호황기에 많은 수익을 거둔 중국 기업들은 그 돈을 은행에 저축하기보다는 곧바로 지출(때론 아무 데나 투자)했다고 미국 코넬대 경제학 교수 에스와르 프라사드는 지적한다. “아무 데나 투자해도 은행의 사실상 제로 금리보다는 수익률이 높다.” 대출 축소 전쟁은 일반 가계에도 부정적 결과를 불러왔다.
중국인들은 소득의 25%가량을 저축한다고 알려졌다. 이렇게 저축률이 높은 주된 이유는 사회적 안전망이 부족한 탓이다. 일반 가계는 긴급한 현금 수요에 대비해 상당히 많은 비상금을 간직한다. 만약 중국에도 미국의 시티뱅크처럼 모든 사람에게 돈을 빌려 주고 신용카드를 발급하는 은행이 있다면 이런 비상금의 필요성은 줄어들 것이다.
급전이 필요한 경우엔 신용대출을 이용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소비재 구입에 지출하는 돈이 늘어나 경기 부양에도 기여한다. 중국의 국내 대출 증가는 서방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중국은 오랫동안 수출 경쟁력을 키우려고 위안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해 왔다. 이는 서방 제품의 가격을 상대적으로 높이는 결과를 낳아 대(對)중국 수출 감소를 초래했다.
또 미국은 중국이 환율을 조작한다고 비판해 왔다. 중국이 국내 대출을 늘려 개인소비 지출(GDP 대비 약 33%)이 늘어나면 중국 수출업체들의 내수 시장 의존도가 높아진다. 이렇게 되면 중국 정부도 위안화의 평가절상을 허용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외제 물품의 수입을 늘리고 대미 관계의 걸림돌을 제거하는 효과를 거둘 것이다.
중국의 일반 소비자는 대출 증가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지하 경제가 번창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지하 은행은 친구나 친인척의 조직망처럼 비공식적이거나 전당포·농협처럼 공식적인 형태를 띤다. 이런 지하 은행 시스템이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한다는 데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일치한다.
스탠더드차터드은행 상하이 지점의 스티븐 그린은 “지하 은행은 유연성이 뛰어나다”고 말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2007년 중국 전역의 지하 은행 대출 규모는 2900억 달러나 됐다. 지하 은행들은 효율성이 떨어지고 최소한 60%의 높은 이자를 받는다(제도권 은행의 대출 금리는 법정 상한선이 26%다).
그러나 사법제도는 고리대금 분쟁을 제대로 처리할 만한 여건을 갖추지 못했다. 다행히 중국 정부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한 듯하다. 중국 당국은 경기 침체 심화를 막기 위해 현금 흐름을 약간 늘리는 조치를 취했다. 신용대출 쿼터제 폐지, 대출 금리 인하, 지급준비율 인하 등이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중국 은행들은 지난해 12월 최소한 1100억 달러를 신규 대출했다.
전년 동기 대비 14배 증가한 수치다. 그러나 이 신규 대출금의 50%가량은 각종 청구서 정산 등 기업의 단기적 용도로 사용됐다. 일반 가계로 들어간 대출은 거의 없었다. 지하 은행 시스템이 여전히 성행하는 이유다. 중국 정부는 이 문제에 정면 대처해야 한다. 지하 은행 시스템의 합법화가 한 가지 방안이다.
정부도 미온적이나마 조치를 취하긴 했지만 지하 시장의 반응은 냉랭했다고 그린은 전한다. 합법화란 대출 금리 상한선 등 정부 규제를 받아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지하 은행가들이 좋아할 리 없다. 이들은 금융 당국의 규정이 너무 극단적이어서 제도권을 멀리한다. 중국 정부는 이런 우려를 감안해 착취에 가까운 고리대금은 규제하되 비공식적인 은행들을 합법화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대형 제도권 은행들을 예전의 시티은행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은행으로, 즉 ‘인민공화국의 인민을 위한 은행’으로 변신하도록 설득하는 것은 또 다른 방안이다. 이런 개혁을 위한 세부 사항은 은행마다 다르겠지만 대출 증가라는 대원칙은 똑같다. 서방 세계에선 대출을 줄여야 할지 몰라도, 중국에서는 늘려야 한다.
With LAUREN HILGERS in Shangh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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