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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도 일선 누비며 불황 이긴다

사장도 일선 누비며 불황 이긴다

경기가 침체되면 일자리 형태가 다양해지면서 정규직이 줄고 파견직이 늘어날 수 있다. 반대로 전체 인력을 감축하면서 파견직까지 줄이는 경우도 있다. 인력파견 업체에 경기침체기는 빠르게 성장할 기회이자 돌이킬 수 없는 위기다.

시노하라 요시코 템프홀딩스 회장.

템프스텝코리아는 국내 인력파견 시장에서 지난 3년간 매출을 매년 300% 이상 신장해 왔다. 현재 약 2만 명의 인재 풀을 갖추고 있으며 약 300개의 고객사를 확보하고 있다.

닌텐도, 파나소닉코리아 등 국내에 진출한 일본계 기업 대부분을 고객사로 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올해 실적이 지난 3년처럼 고무적인 결과를 보여줄지는 미지수다.

유현주(35) 템프스텝코리아 대표는 “한국이나 일본, 세계적으로 화이트칼라 파견인력을 찾는 수요가 현저히 줄고 있는 추세”라고 말한다. 현재 업계에서는 사장이 소속 직원들의 4대 보험료 등을 가로채 달아난 인력파견업체가 하나 둘 생기는 실정이다.

얼마 전 방송국 전문인력을 파견하는 H업체는 파견 나간 직원의 보험금 등을 책임지지 않은 채 부도를 맞았다. 일자리 수주에만 급급해 덤핑정책을 써 회사 재정에 구멍이 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배경에는 국내 인력파견 시장의 특징적인 면이 작용했다. 파견업체 간 경쟁이 심해 고객이 먼저 가격을 제시해 파견업체가 울며 겨자 먹기로 가격조건을 받아들이는 일도 적지 않다. 파견직원의 관리가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지난해 말부터 경기침체 여파로 일자리가 줄자 국내 파견업체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고 이것이 몇몇 업체의 부도로 드러나고 있다. 한국보다 50배나 시장이 큰 일본의 경우에는 국내시장에서처럼 일종의 ‘원가’를 공개하는 일은 없다. 일본도 파견직 근로자의 보수는 고객회사에서 정한다.

하지만 파견회사의 직원관리 비용은 파견회사가 적정가격을 청구할 수 있다. 유현주 템프스텝코리아 대표는 “어려워진 환경을 돌파할 방법은 오직 하나, 더 뛰는 것밖에 없다”고 말한다. 사무실에 앉아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고 말하는 그는 대표직에 있지만 영업사원처럼 현장을 누빈다.

사무실이 있는 서울 남대문로에서 광화문 근처의 고객사까지 걸어가는 일도 당연하게 여긴다. 템프스텝코리아의 현장경영주의는 시노하라 요시코(75) 템프홀딩스 회장이 몸소 실천하는 일이기도 하다. 도쿄 롯폰기 본사 빌딩에는 아예 회장실도, 사장실도 없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시노하라 회장은 당연하다는 듯 “원래 맨바닥에서 시작했다”며 자신의 집무실이 없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아침 8시에 출근해 고객사를 방문하고 저녁 8시에 퇴근한다. 회장이 영업하면 오히려 고객사가 불편해하지 않느냐고 묻자 “거의 그렇지 않더라”며 웃었다. 특히 그는 ‘접대비 0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임원이 접대를 통해 일을 따오면 부하직원은 참새 새끼처럼 임원만 쳐다보게 돼 영업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개인적 인맥을 동원한 프로젝트는 제값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접대비 0는 한국이나 일본 영업 현장 모두에서 지키기 어려운 원칙일 수 있다. 그러나 회장은 “접대비 0로 0에서 매출 3조원까지 회사를 키울 수 있었다”며 “접대비 대신 차라리 직원의 교육에 신경 쓰는 편이 좋다”고 말했다.

이런 경영방식으로 템프홀딩스를 키운 시노하라 회장은 일본에서 ‘파견 서비스의 어머니’라 불린다. 종신고용의 마지막 보루라고 생각되는 일본에서 어떻게 파견인력에 대한 비판과 불신을 해소했을까. 시노하라 회장은 “고객은 왕, 파견 사원은 공주, 나는 한낱 시녀일 뿐”이라며 자신의 사업철학을 밝혔다.



고용 유연화가 일본 경제의 힘

그는 덧붙여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에서는 한국도 고용 유연화가 중요한 사안일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일본에서도 고용 유연화 측면에서 파견사원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이것이 잃어버린 10년을 돌파하는 힘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고용 유연화는 일자리 부족을 해소하는 동시에 육아를 담당하는 여성의 사회진출을 돕는 효과가 나타나면서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가 고용 유연화를 지원하는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한 것도 템프홀딩스와 같은 파견회사를 키운 원동력이었다. 일본에서는 정책적으로 1999년에 독극물, 의료 등 파견금지 업종을 제외한 대부분의 업종에 인력파견이 허용됐다. 2003년엔 파견계약 기간이 사라졌다. 일본 기업은 잃어버린 10년을 이겨내는 동안 파견직 직원을 늘리면서 점차 파견직이 노동 형태의 하나로 인정받게 됐다.

일본에서 1990년대 파견근로자 수는 매년 15% 이상 증가했다. 이에 따라 2001년 210만 명이던 파견근로자 수가 2006년에는 320만 명으로 늘었다. 현재 일본 파견시장은 약 50조원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2008년 닛케이신문에서 보도한 일본 인력파견회사의 매출액 랭킹을 살펴보면 1위가 리크루트그룹, 2위가 템프홀딩스, 3위는 파소나그룹이었다.

한국에서 파견법은 1992년에 입안됐지만 법안이 통과·시행된 것은 1998년이다. 2008년 상반기 노동부의 ‘근로자 파견사업 현황’ 자료를 보면 노동부에서 파견사업 허가를 받은 기업은 2007년 1208개, 2008년 상반기 1303개로 증가했다. 파견근로자를 사용하는 기업은 2007년 1만670개에서 2008년 상반기 1만2157로 약 14% 증가했다. 파견시장은 약 1조200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경기불황이 지속돼 고용 유연화와 함께 파견직 확대가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진다면 국내시장도 충분히 커질 가능성이 높다. 일본에서 1위에 오르기 위해 무엇을 노력하느냐고 묻자 시노하라 회장은 “업계가 힘을 합쳐 시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꼭 1등이 되려고 사업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아직 ‘일자리=정규직’이라고 생각하는 풍토가 있는 한국에서도 사회 전체적으로 고용 유연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이 1등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시장 전체가 어려울 때는 경쟁도 중요하지만 시장 전체를 키우는 협력도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3조원 매출의 일본 최강 인력파견 회사
템프홀딩스는…

파견직원과 전화상담 중.
일본 템프홀딩스는 1973년 템프스텝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이래 현재 세계 약 10위의 종합 인력파견 기업으로 성장했다. IT, 외식업, 제조업, 방송출판업 등 분야별로 특화된 인력 아웃소싱 서비스를 제공하며 인력파견, 채용대행, 헤드헌팅뿐 아니라 교육연수, 해외취업, 재취업, 인사컨설팅 서비스도 제공한다.

일본 내에 215개의 지점을 갖추고 있으며 매출액은 2009년 3월 결산 기준으로 2610억 엔을 예상한다. 최근 일본 나고야에 본사를 둔 피플스텝과 합병해 39개 자회사와 5000명의 직원을 보유한 템프홀딩스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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