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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 족히 100편은 봤지요”

“한국 영화 족히 100편은 봤지요”

까르띠에의 한국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필립 갈티에 사장은 한국 영화광이다. 그는 한국 문화와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 영화를 본다고 말했다.

1847년 파리에서 보석 판매 회사로 출발한 까르띠에(Cartier)는 160년 넘게 그 브랜드를 이어오고 있다. 1988년 까르띠에가 최고급 시계와 보석, 고급 의류 브랜드 회사들을 인수·합병(M&A)한 스위스의 리치몬트(Richemont) 그룹에 합병된 후에도 그 명성은 높아만 가고 있다.

현재 까르띠에는 약 55개국에 진출했으며 세계 유명 도시에 직영 매장 273개를 두고 있다. 97년 우리나라에 첫발을 디딘 까르띠에의 한국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필립 갈티에(Philippe Galtie) 사장을 3월 9일 서울 청담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필립 갈티에 사장의 첫인상은 부드러웠으며 주름이 거의 없는 동안이었다.

성격은 매우 조용한 듯했다. 인터뷰 말미에 안 사실이었지만 그의 이런 조용하고 섬세함은 취미 생활과 연관 있어 보였다. 그의 취미는 예술 작품을 모으는 것이라고 한다. 갈티에 사장은 미리 e메일로 보낸 30여 개의 인터뷰 질문서에 꼼꼼히 자필로 적은 답변서를 탁자 위에 올려 놓고 있었다.

그는 포브스코리아 같은 잡지와 인터뷰를 하게 돼 매우 영광이라고 밝혔다. 갈티에 사장은 2006년 한국에 부임했다. 그는 까르띠에 한국지사가 명품 거리 청담동에 있고, 거기서 근무하게 돼 행복하다고 했다. 청담동 까르띠에 직영 매장은 ‘까르띠에 메종(Cartier Maison)’이라고 불린다.

메종(Maison)은 프랑스어로 ‘집’을 뜻하는 말이지만 가족, 회사, 상점 등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기도 하다. 그는 ‘까르띠에 메종’이라고 말함으로써 은연중에 까르띠에의 자긍심을 표현했다. 까르띠에 경영 철학에 대해 갈티에 사장은 “고객에게 꿈을 주는 것, 그리고 고객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예술적 창의성으로 제품을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창의성, 예술, 기술 혁신, 고객 서비스 등의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이 단어들은 리치몬트 그룹의 경영 가치이기도 하다.“까르띠에가 갖고 있는 본질적인 경영 전략은 명품 보석이나 시계 같은 제품을 경쟁사들과 차별화하기 위해 어떤 재료로, 어떤 디자인으로, 어떻게 기술적으로 진일보시킬 것인지가 중요하지요.”



“한국은 아주 매력적인 시장”


까르띠에와 리치몬트의 관계에 대해 갈티에 사장은 까르띠에 브랜드를 인수한 리치몬트 그룹이 까르띠에를 독자적으로 경영한다고 밝혔다. 그는 “까르띠에가 각국에 맞게 로컬화하는 것이 글로벌 전략”이라고 짧게 말했다. 실제로 까르띠에의 국가별 제품 및 유통 전략은 다르다.

예컨대 한국의 경우 먼저 가죽 제품, 액세서리 등을 론칭한 후 시장 상황을 확인하고 시계, 보석 등의 순으로 브랜드를 들여오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 까르띠에가 시장점유율을 높일 마지막 제품군은 고급 보석류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까르띠에 제품의 포지셔닝과 구매층은 어떻게 되는지 갈티에 사장에게 물었다.

“한국에서 까르띠에의 주 고객이 고소득층과 중년층이라고 예상하셨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은 구매층이 매우 넓고 다양해 마케팅 포지셔닝도 선진국이 대부분인 중부 유럽 시장과 거의 비슷하죠.” 국내에선 까르띠에 시계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보석 제품에 대한 인지도가 높지 않아 보였다.

이에 대해 그는 “한국 진출 이후 시계가 판매에서 사업 우위를 차지했다”며 “이는 처음 한국 시장에선 값비싼 보석이 잘 팔리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한국인의 생활 수준이 높아져 최근에는 이에 부응해 까르띠에 보석 제품에 대한 마케팅에 치중하고 있다.

청담동에 있는 직영 매장 ‘까르띠에 메종’.

지난해 서울 덕수궁 미술관에서 ‘까르띠에 소장품전’을 열었다. 영국의 대영박물관,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박물관에서 열렸던 이 전시회는 까르띠에의 고급 보석 역사와 예술성을 보여줬다. 서울에선 관람객이 5만 명 넘게 다녀갔다. 갈티에 사장은 이 전시회로 인해 한국에서 까르띠에의 이미지를 새롭게 했다고 생각한다.



세계적인 경기 불황이 한국에서도 예외는 아닙니다. 명품 업체들도 고전할 것으로 보이는데 까르띠에는 어떻습니까.
“까르띠에가 처음 문을 연 후 162년 동안 수많은 위기가 있었죠. 1, 2차 세계대전도 겪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꾸준히 성장해 왔습니다. 지금의 경제 위기가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봅니다. 까르띠에의 고객은 충동구매를 하지 않고, 로열티가 있기 때문이죠. 계속 고객을 충족시킬 수 있는 새로운 제품에 대한 연구·개발을 지속하며 출시된 제품을 잘 관리하는 전략을 갖고 있습니다.”

리치몬트 그룹에 속한 보석 브랜드 반클리프 아펠(Van Cleef-Arpels)은 최근 한국 시장에서 인기가 많은 편이다. 이와 관련해 까르띠에의 시장을 잠식하고 있지는 않은지 물었다. 같은 그룹에서 생산하는 서로 다른 보석 브랜드가 경쟁하는 게 의아했기 때문이다. “두 브랜드는 리치몬트 그룹에 소속해 있지만 이웃사촌처럼 지냅니다. 그렇지만 같은 계열사 브랜드라도 경쟁하는 입장이에요. 그룹에서도 일부러 선의의 경쟁을 하게 합니다.”

까르띠에의 일본 시장 비중과 매출은 상상 이상이다. 지난해에 까르띠에를 포함한 리치몬트 그룹의 대륙별 매출을 보면 일본(3조150만 유로)은 북남미 시장(4조970만 유로)의 3분의 2에 달하며, 아시아·태평양 지역(7조290만 유로)의 절반에 조금 못 미친다. 일본과 한국 시장의 다른 점을 갈티에 사장에게 물어봤다.

“한국과 일본은 국내총생산(GDP)에서 큰 차이가 있어요. 럭셔리 마켓과 그 세분화도 한국이 일본에 비해 덜 발달돼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 시장은 포화 상태라 좀 있으면 쇠퇴기에 접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은 세계 명품들의 이머징마켓으로서 시장이 확대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한국의 명품 유통 채널은 세계적으로 찾기 어려울 정도로 잘 돼 있죠. 이런 면에서 한국은 아주 매력적인 시장입니다.”

그가 말하는 명품 유통 채널은 대도시마다 점포를 두고 있는 3대 백화점(신세계·롯데·현대백화점)을 말한다. 부산에서 최근 문을 연 신세계 센텀시티에 며칠 전 방문한 그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에서 사업을 하면서 높은 보석 관세율과 같은 규제라든지 어려움은 없습니까.
“한국 여성들은 홍콩에서 명품을 대량 구입한다고 하더군요. 만약 관세율이 떨어진다면 홍콩까지 가서 달러를 주고 구입하겠습니까? 한국은 명품에 붙는 관세율이 높아 홍콩의 가격경쟁력이 있는 것입니다. 한국의 달러 유출을 막기 위해서라도 관세율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유럽에서는 보석 같은 고가 제품에 대해서도 부가세 정도의 관세율만 적용하죠.”



“한국 여성은 세련된 스타일 추구”


갈티에 사장은 “한국 여성들이 ‘스트롱 센스(strong sense)’를 갖고 있으며, 세련된 스타일을 추구한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톱 브랜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는 이런 면에서 볼 때 한국 시장은 에너지가 넘치는 곳이며 까르띠에 매우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말미에 취미 생활과 한국에 대한 인상을 물었다.

그는 한국 영화 감상이 취미며, 또한 예술을 사랑한다고 했다. 놀랍게도 그는 한국 영화광이다. 한국에 온 이후 한국 영화를 100여 편가량 봤다고 한다. 갈티에 사장은 한 나라의 문화와 언어를 이해하는 데는 그 나라의 영화를 감상하는 것이 가장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예술 작품도 모으고 있다. 그는 한국 유명 사진 작가의 작품들도 소장하고 있다.

애초 까르띠에 제품은 예술로부터 시작됐다. ‘아트처럼 창의성이 높고, 예술적 감각의 디자인으로 제품을 만드는 것’이 까르띠에의 경영 철학이기도 하다. 그런 까르띠에가 잠재력 있는 예술가를 후원하는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Cartier Foundation pour l’art contemporain)을 설립하고 20년 전부터 예술가들을 후원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예물시계 ‘발롱 블루’스틸

그들의 사업 목적에 부합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차원 높은 경영 전략일 수도 있다. 설치 예술가 이불 씨도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에서 후원하는 예술가 중 한 사람이라고 갈티에 사장은 말했다. 한국의 결혼 예물 문화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한국인에게 맞는 예물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또 현재 한국에서 잘 팔리는 까르띠에 제품에 대해 물어봤다.

이에 대해 김은수 홍보이사는 “예물 시계로는 스틸 버전 ‘발롱 블루’ 라인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반지의 경우는 러브 링 혹은 MK 링이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이 밖에 트리니티(삼색 링), 러브(스큐르 드라이브 문양을 한 까르띠에 대표적 보석 라인) 등을 꼽았다. 갈티에 사장은 인터뷰가 끝날 무렵 탁자에 미리 갖다 둔 케이스에 진열된 7~8개의 까르띠에 고급 시계에 대해 설명했다.

“그동안 까르띠에 시계는 스위스 기술에 의존한 나머지 대부분 제품이 스위스에서 제작됐죠. 그러나 여기에 있는 시계들은 까르띠에가 자체적으로 개발한 무브먼트 시스템을 가진 야심작입니다. 제품의 이름은 ‘발롱 블루 드 까르띠에 플라잉 투르비옹’이며 영어와 프랑스어를 합성해 지었습니다. 이 중 한 개의 가격은 1억3000만 원입니다.”

시계 한 개 값이 고급 BMW 한 대와 맞먹는 게 놀라울 뿐이었다. 제품 하나 하나를 예술품처럼 만들어 고객 가치를 높인다는 예술적 장인정신. 이것이 까르띠에가 160년 넘게 브랜드 가치를 높여온 힘이 아닐까.

도움 준 곳 한불상공회의소(KFC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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