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EOUL SERENADE] 매일 달라지는 서울의 얼굴
인사동의 사무실 창문 밖을 바라보니 13년간의 서울 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1989년 7월 1일 김포공항에 첫발을 디뎠을 때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당시 대학을 갓 졸업한 나는 녹색 현대 포니II를 타고 88고속도로를 달렸다. 에어컨이 없는 차 안은 장마철의 눅눅한 공기와 겹쳐 숨쉬기가 힘겨울 지경이었다.
통신 수단도 일반 전화와 팩스뿐이어서 고립된 세상에 갇힌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폴 사이먼의 노래 ‘더 박서’의 가사처럼 이 도시를 떠나겠노라고 말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딱히 뭐라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무언가가 나를 이곳에 붙들었고(89~97년) 다시 돌아오게 했다(2005~지금까지).
돌이켜 보면 두 번의 한국 생활은 내게는 큰 행운이었다. 외환위기 이전과 이후를 뚜렷이 비교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전만 해도 한국은 기본적으로 폐쇄된 시장이었다. 그러나 그 후 한국은 세계화의 측면에서 엄청난 발전을 이뤄냈다. 현재 나는 서울에서 외국 홍보회사의 대표를 맡고 있다.
98년 이전에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다. 당시만 해도 외국인이 한국에 회사를 세우려면 한국인 파트너를 끼고 합작을 해야 했으니 말이다. 20년 후 한국이 어떻게 바뀔지 상상할 수 있을까? 짐작하기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국이 지금보다 훨씬 더 역동적이고 흥미진진한 나라가 되리라 확신한다.
불과 십수년 만에 서울은 한국인만이 아니라 나 같은 서양인이 보기에도 환상적인 코즈모폴리턴 도시가 됐다. 처음 한국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개방성의 상징과도 같은 맥도날드 가게가 서울에 단 두 개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보기만 해도 절로 군침이 도는 전 세계 온갖 음식을 선보이는 고급 식당이 즐비하다.
외국인 요리사가 더 이상 5성급 호텔의 전유물이 아닌 지도 오래다. 서울 시내를 둘러보다 보면 멋진 노천식당도 곳곳에 눈에 띈다. 간혹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OB호프집은 자취를 감추고, 나 같은 맥주 애호가라면 쾌재를 부를 만한 최신 유행의 펍에서 전 세계 맥주를 ‘푸짐히’ 즐긴다. 여기서 더 이상 어떻게 바뀔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도 들 정도다.
보다 수준 높은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추구는 외국인의 욕구에 부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인 스스로 그런 변화를 원했기 때문이다. 91년 여행제한이 해제된 이후 많은 한국인은 해외여행을 통해 서양 문화가 줄 수 있는 긍정적인 면도 많이 경험했다. 불과 십수 년 전만 해도 낯선 외국인은 한국인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던가.
요즘엔 누구든 도와주겠다고 친절하게 다가온다. 택시기사들은 예전보다 훨씬 더 예의 바르다(합승 택시는 오래전의 이야기다). 한국의 택시는 지금도 매우 유용하지만 다른 대중교통 수단도 크게 늘어났다. 처음 서울에 왔을 때 4호선까지밖에 없었던 지하철 노선은 이젠 9호선까지 생겨났다.
여전히 잘 운영되고, 매우 깨끗하며, 어쩌면 서울 안팎으로 시민들을 나르는 가장 효율적인 교통수단이다(내가 처음 서울에 왔을 때 지하철 기본요금은 200원이었지만 지금의 900원 요금이 꽤 ‘적정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서울은 심야에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라는 점 말고 놀라운 ‘환경 변화’도 겪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나무가 별로 없던 삭막한 도시가 집중적인 녹화사업 덕분에 녹지가 온 사방에 널려 있다. 단지 교차로에 불과했던 서울시청 앞 광장은 여름엔 시원한 잔디를, 겨울엔 아이스스케이팅 링크를 선사한다. 세계 어디에도 수도 한복판에서 스케이팅을 즐기는 곳은 없다.
곳곳에 생긴 공원과 아름다운 한강변, 그리고 도심을 유유히 흐르는 청계천. 거기에다 지금의 서울시장은 ‘비전 서울’이란 야심찬 목표 아래 도시를 더욱 멋지게 가꾸고 있다. 북악산에서 도심을 거쳐 남산을 지나고 한강을 건너 관악산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그린벨트가 그것이다. 서울을 획기적으로 업그레이드할 비전이다.
만일 뉴욕에서라면 이런 변화가 가능했을까? 거기에다 도심재개발 사업과 놀라운 디자인, 건축적인 스타일까지 겹쳐 서울의 미래는 더욱 밝다. 고개만 돌리면 서울의 새로운 스카이라인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제 한강 다리는 멋진 분수와 독특한 조명을 자랑하고, 한때 서울의 골칫거리였던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은 하나둘 자취를 감춰간다.
서울의 얼굴은 얼마나 더 바뀔까? 그것은 독자 여러분의 상상의 몫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누구도 예측 못할 놀라운 변화가 또다시 재현될 거라고 생각한다.
아시아 전역을 돌아보았지만 서울을 ‘서울스럽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역시 서울은 ‘보여줄 게 많은 도시’라는 점이다. 오늘도 서울은 변화의 고동을 멈추지 않는다.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마치 나를 놀라게 하듯이 슬그머니 새로운 모습이 고개를 든다.
[필자인 제프리 본은 미국인으로 서울에 있는 홍보회사 ‘에지 퍼블리시스 컨설턴츠’의 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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