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고귀한 양복을 위한 ‘왕진 가방’
당신의 고귀한 양복을 위한 ‘왕진 가방’
일명 ‘슈트 왕진 가방’이라 불리는 브리오니의 ‘MTM 특별 수선 가방’에는 슈트 수선을 위한 모든 것이 담겨 있다. |
다동! “브리오니입니다.”
국내에서 ‘이건희 슈트’로 유명한 이탈리아 명품 슈트 브랜드 브리오니에서는 사후관리 서비스(AS)를 위해 일일이 고객의 집을 방문한다. 마치 왕진 나온 주치의처럼 슈트 수선을 위한 전용 ‘왕진 가방’을 들고서. “어떻게 집까지…” 같은 상용 어구처럼 집에 초대하는 걸 꺼리는 우리 민족의 정서를 감안할 때 약간 위험한 서비스라고 여겨질 수도 있겠으나 반응은 뜨겁다.
슈트 왕진 서비스는 이렇게 이뤄진다. 이탈리아 브리오니 본사에서 교육을 받은 브리오니의 한국인 재단사는 슈트 수선이나 맞춤을 위해 ‘왕진 가방’을 들고 VIP 집을 직접 방문한다. 왕진 가방은 이탈리아 본사의 ‘맞춤형 컬렉션(Made to Measure·이하 MTM) 특별 수선 가방’이다.
이 가방에는 슬리퍼부터 각종 컬러의 실과 줄자, 및 작업 지시서 등 모든 게 담겨 있어 원스톱 서비스를 할 수 있다. “집에 찾아온 손님에게 깎듯이 대하는 게 우리 정서라서 그런지 VIP 고객은 방문 이후 브리오니와 더욱 돈독한 관계를 맺게 된다”고 관계자는 귀띔한다.
VIP 고객과 끊임없이 대화하는 ‘관계 마케팅(Relation Marketing)’으로 불황에 대처하고 있는 브리오니는 5월 한 달간 ‘무상 수선 서비스’를 실시해 눈길을 끌었다. 고객이 갖고 있는 브리오니 제품을 바뀐 고객의 체형, 변화된 트렌드에 맞게 수선해주는 서비스다. 한 번 고객은 영원한 브리오니 고객이라는 브랜드 철학이 바탕에 깔려 있다.
은밀한 원터치 서비스
‘럭셔리하면서도 감동적인’ 서비스는 요즘 명품 업계의 화두다. 골프대회나 음악회 초대 등은 물론 해외에서의 오페라 관람, 자녀 골프 레슨, 전세기 이용권, 비슷한 수준의 집안과 중매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0.1%를 대상으로 하는 VVIP 마케팅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러나 요즘 같은 불황엔 ‘조용히 그렇지만 보다 특별한 서비스’가 은근히 브랜드 충성도를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대개 명품 브랜드 리스트에 올라갈 정도의 VIP는 영업장에 직접 나오기보다는 근무하고 있는 사무실이나 집으로 직원을 불러들인다. 백화점에 나오더라도 안락하고 비밀이 지켜지는 공간에서 원터치 서비스를 받는 걸 좋아한다. 부자나 귀족들은 쇼핑 등 사생활에 관한 정보가 새나가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제일모직 브랜드 란스미어는 매장 방문이 어려운 바쁜 고객을 위한 서비스 전담 팀까지 두고 있다. ‘CAT(Customer Advising Team)’라 불리는 이 제도는 노련한 패턴 전문가(모델리스트)와 세일즈 스태프가 2인1조가 된 특별한 서비스 시스템이다. 패턴 전문가는 등이 굽거나 좌우 팔 길이가 불균형한 고객의 미묘한 신체적 약점까지 파악해 이를 보완할 슈트를 고안한다.
이미지 컨설팅 경험을 지닌 세일즈 스태프는 연령과 체형, 행동 패턴과 생활 습관 등을 고려해 고객과 가장 잘 어울리는 슈트 디자인을 제시한다. 슈트 디자인과 원단의 선택부터 완제품을 받는 일까지 고객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이뤄진다. ‘오더 메이드(Order Made)’ 서비스의 결정판이라고나 할까.
프라이버시를 중시해 상위 1% VVIP는 백화점보다 호텔 아케이드 쇼핑을 선호하기도 한다. 대개 호텔 아케이드에 입점한 브랜드들은 의류부터 핸드백 및 슈즈, 보석과 시계, 생활용품까지 업종을 대표하는 최고의 명품들이다. 호텔 아케이드 부티크는 고객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별실을 마련하기도 하고, 고객이 매장 방문을 원하지 않을 경우 직접 제품과 카탈로그를 준비해 기꺼이 출장 서비스를 나간다.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맞춤 서비스 ‘수미주라’를 통해 한국에서도 ‘메이드 인 이탈리아’ 맞춤 슈트를 만날 수 있다. |
본사 장인이 비행기 타고 날아온다
단골 고객을 위해 본사의 장인이 비행기를 타고 찾아오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MTM, 수미주라(Su Misura; 당신의 사이즈에 맞춘다는 뜻의 이탈리아어), 스페셜 오더 같은 방식으로 셔츠, 정장 등을 기호에 맞게 선택해 입는 고객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때 타이와 속옷을 맞춰 입기까지 한다.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맞춤 서비스 수미주라 라인은 고객의 치수를 재서 보내면 이탈리아 본사에서 숙련된 장인의 손으로 제작하는 시스템이다. 완성된 슈트는 고객 이름과 제작 날짜, 그리고 장인 이름 등이 새겨진 ‘Taglio Exclusivo’라는 라벨을 달고 전달된다. 제작 기간이 4~5주가량 걸리는데 가격은 350만 원에서 1000만 원에 이르기도 한다.
MTM 생산 비율이 25%에 달하는 이탈리아 브랜드 브리오니는 VIP를 위해 재단사들이 세계 곳곳으로 날아가 브리오니의 맞춤 전통을 시연한다. 1000명의 재단사와 바느질공이 모든 의상을 핸드메이드로 만들며, 하루 슈트 300벌만 생산하는 게 브리오니의 특징이다. 초고가 명품 남성복 브랜드 키톤도 MTM을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다.
슈트 디자인은 물론 매장에 준비된 원단, 단추, 라이닝, 이니셜 등 세밀한 부분까지 고객과 대화하면서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슈트를 탄생시킨다. 이렇게 정밀 측정된 고객 사이즈와 취향 기록은 이탈리아 나폴리 본사에 보관된다. 다음 번 맞춤 주문 때는 이 자료를 바탕으로 옷을 제작한다. 슈트가 완성되기까지는 6주쯤 걸린다.
“한 번 키톤을 입은 사람은 영원히 키톤의 단골로 만들기 위해서”라고 관계자는 설명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수년 전부터 이탈리아의 수석 재단사 ‘주세페 바실리’가 세계 주요 도시를 순회하며 고객 사이즈를 직접 측정하고 피팅과 재단을 하는 ‘MTM 프로모션’을 진행한다. 한국에서는 매년 3월과 9월 각각 이틀간 이 행사가 열린다.
슈트, 코트, 이니셜이 새겨진 셔츠와 타이 등을 자신의 취향으로 맞출 수 있는데 제품이 완성되기까지 보통 셔츠는 1개월, 슈트는 6~8주 걸린다. 루이비통은 의상 외에 맞춤 가방 제작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제작 기간은 최소 6개월이지만 까다로운 VIP들은 기꺼이 기다린다. 앞다퉈 원정 서비스를 하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에르메네질도 제냐, 키톤, 브리오니 등 명품 양복 브랜드의 고객들은 주로 CEO, 국회의원 등 VIP들이다. 이들은 대체로 대중적인 브랜드를 멀리하는 경향이 있다. 값이 조금 비싸도 신뢰가 가는 브랜드를 택한다. 무엇보다 같은 브랜드는 피하는 것이 재벌가나 최상위 부자들의 습성이기도 하다. 슈트만큼 맞춤 생산이 중요한 아이템은 바로 구두다.
남성 수제화 브랜드 벨루티에서는 프랑스 본사의 수석 장인 ‘패트리스 록’이 매년 2회 한국을 찾아와 1000만 원이 넘는 고가의 오더 메이드 슈즈 ‘비스포크(Bespoke)’를 맞춰준다. 예약한 고객에 한해 발을 측정하고 상담도 해준다. 치수 측정, 발 모양과 라이프스타일 분석, 구두의 가죽겺첨??디자인 결정 등 복잡한 단계를 통해 만들어지는 비스포크 슈즈는 9~10개월간 최고 장인의 손을 250회나 거쳐 탄생한다.
달빛으로 왁싱하고 염색에는 베니스의 바닷물과 알프스의 눈을 사용한다. 이 특별한 브랜드가 100년 넘게 상류사회 멤버십의 대명사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도 ‘찾아가는 신발 맞춤 서비스’ 덕분이다. 벨루티는 지난해 국내에서 200% 가까운 성장세를 보였다. 페라가모도 이탈리아에서 직접 제화사를 파견해 고객의 발에 맞는 수제화를 디자인해 주기도 했다.
원격 조정으로 본사에서 즉석 맞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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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세계고급시계박람회(SIHH)에서 첫선을 보여 화제가 된 맞춤 시계 ‘케드릴(Quai de l’Ile)’ 라인이 국내에서 론칭하는 것. “그동안 한국 소비자들의 문의가 빗발쳐 론칭하게 됐다. 벌써 주문을 여럿 받아놓은 상태”라고 브랜드 관계자는 밝혔다.
맞춤 시계를 위해 시계 장인이 스위스에서 날아오지는 않지만, 원격 조정으로 충분히 실현 가능하게 한 것이 케드릴의 매력이다. 바쉐론 콘스탄틴 매장에서 터치 스크린으로 원하는 디자인을 간편하게 선택해 스위스 제네바 본사로 보내면 3개월 후 누구나 나만을 위한 맞춤 시계를 손에 넣을 수 있다.
위조할 수 없게 보안 시스템까지 장착된 시계에는 평생 동안 하나의 패스포트가 주어진다. 이 패스포트는 은행 어음 및 스위스 패스포트의 보안과 출력을 맡은 오렐 퓌슬리사가 담당했다. 까르띠에의 청담동 메종에서는 첨단 장비를 활용해 맞춤 서비스를 실시한다. 메종 2층에 있는 프라이빗 라운지에 있는 작은 카메라가 장착된 TV를 활용하는 것.
“비디오 콘퍼런스 장비다. 서울에 있는 고객이 특별 주문을 할 때 파리 본사의 디자이너와 좀 더 효율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하기 위한 수단이다. 디자이너가 자신이 디자인한 스케치를 화상으로 보여주고 고객이 이를 하나하나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장비는 기존 까르띠에 매장은 물론 다른 명품 브랜드도 아직 시도하지 못한 것”이라고 까르띠에 관계자는 설명했다.
까다로운 취향의 한국 소비자들을 위한 특별 맞춤 서비스라는 것이다. 특별함을 찾는 고객이 증가하면서 ‘찾아가는 서비스’에 대한 수요도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프라이빗 서비스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고객 한 명 한 명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이해가 우선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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