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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외이사 월권은 절대 금물”

“사외이사 월권은 절대 금물”

금융권 사외이사를 ‘거수기’라 부르는 일은 거의 없다. 사외이사는 주요 시중은행과 금융지주사 이사회의 과반수를 차지한다. 거수기는커녕 힘이 막강하다. 그렇다 보니 사외이사를 견제할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11년 전 사외이사가 처음 도입됐을 때와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지동현 KB금융지주 부사장은 “사외이사도 이제 감독되고 검증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뉴스위크 아시아판은 2001년 7월, 아시아적인 전통과 직위에 도전하는 인물들을 선정해 소개했다. 그중 한 명이 지동현(51) KB금융지주 부사장이다.

뉴스위크 아시아판이 지 부사장에게 붙인 별명은 gadfly. ‘등에’라는 뜻의 이 단어는 성가시고 시끄럽게 따지는 사람을 가리켜 쓰는 말이다.

지 부사장이 등에에 비유된 것은 그 무렵 조흥은행 사외이사로 재직하면서 좋게 말해서는 고언(苦言)을 하고 나쁘게 말해서는 까칠하게 굴기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기사는 사외이사가 아직 자리 잡지 않은 한국에서 조흥은행 사외이사인 지 부사장이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그는 뻣뻣하며(Mr.Stiff) 때로는 그런 뻣뻣함이 불필요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고 전했다. 서울 남대문로 KB금융지주 6층에 있는 그의 사무실 책장 위엔 이 기사가 액자에 담겨 있다.

지동현 부사장은 그 이후에도 줄곧 사외이사 역할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던 그가 얼마 전 열린 세미나에서 사외이사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5월 27일 한국이사협회가 주최한 ‘기업지배구조와 사외이사제도’ 세미나 자리에서였다. 그는 “대부분의 경영 의사결정은 CEO에게 위임하고, 사외이사는 경영감독에 집중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사외이사의 힘이 이전에 비해 강력해진 반면, 사외이사를 견제하거나 평가하는 제도는 미미한 상황도 함께 지적했다. 이날 같은 자리에서 이구택 포스코 전 회장은 “분명 사외이사의 힘이 엄청 커졌다”며 “경영진 감독과 의사결정 참여 사이에서 사외이사의 역할을 과연 어디까지로 할 것인지, 또 누가 어떻게 사외이사를 평가하느냐가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갈등의 중심에 자리한 사외이사


2일 지동현 부사장을 만나 금융권 사외이사제도의 문제점과 개선책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들어봤다. KB금융지주 안팎에선 황영기 KB금융지주 회장과 강정원 KB국민은행장 간 갈등설이 무성하다. 이 갈등설의 중심에 사외이사가 있다. 사외이사가 강 행장을 견제하기 위해 황 회장을 세웠다가 최근엔 황 회장을 다시 견제하기 위해 강 행장을 지지한다는 것이다.

지 부사장은 인터뷰에 앞서 “KB금융지주의 사외이사를 지적하는 게 아니고 사외이사 제도가 일으킬 수 있는 문제점을 지적한 것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KB금융지주의 사외이사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혹시 사외이사와의 마찰 때문에 일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나?
“그런 적은 전혀 없다. 나는 다만 사외이사 제도가 고칠 것이 있으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 11년 전 당신이 사외이사를 했을 때와 무엇이 달라졌는가?
“그 당시와는 환경이 다르다. 11년 전에는 외환위기 영향으로 감독당국의 감시가 심했을 때다. 감독당국을 대리하는 역할을 사외이사가 하기도 했었다.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안식년을 보내고 있었는데, 위성복 당시 조흥은행장이 불러 상근 사외이사로 활동하게 됐다. 매일 출근하는 사외이사는 드문 경우다. 그러다 보니 일상적인 업무까지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고, 은행을 더 이해하게 됐다.

참 쓴소리를 많이 했다. 그러나 그때는 사외이사의 의견이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 사외이사가 문제를 제기하긴 했지만 변화의 주체는 되지 못했다. 철저히 ‘관찰자’에 가까웠다. ‘결정권자’인 조흥은행 부행장이 되면서 경영에 적극 참여하게 됐다. 그러다 KB국민은행 연구소장으로 오게 됐다. 이곳의 사외이사에 대한 첫 느낌은 듣던 대로 목소리가 강하다는 것이었다.”



>> 지난달 이사협회 세미나에서 사외이사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어떤 금융사에서는 사외이사에 줄 서는 현상까지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뭐가 문제인가?
“금융권에 인사청탁이 들어오는 것이 드문 일은 아니다. 심지어 어떤 금융사에서는 전 직원에게 e-메일로 ‘인사청탁을 받거나 하는 사람이 있으면 불이익을 주겠다’고 한 곳도 있다고 한다.

인사철이 지나면 소문도 무성하다. ‘누가 누구에게 부탁을 해서 승진했느니’ 하는 소리 말이다. 그런데 이제 사외이사도 그 소문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아무개 사외이사가 아무개의 뒤를 봐줬다는 소문이 도는 경우도 있다. 나도 그런 소문이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다.
이런 소문이 도는 데는 일반 직원에게 사외이사가 큰 힘을 가진 것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임원을 비롯해 부장 등 중간 간부들이 참석한 회의 자리에서 사외이사가 부행장을 깨는 경우가 있다면, 아래 직원들은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우리 부행장이 잘못됐구나’하고 생각하거나 나아가 사외이사를 더 높은 보스로 생각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CEO 잘 뽑는 게 사외이사의 가장 큰일




>> 사외이사의 목소리가 강한 것이 나쁜 것은 아닌 것 같다. 독립성이 있다는 것 아닌가?
“사외이사의 목소리가 강한 것을 나쁘다고 하는 게 아니다. 실제로 사외이사가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 KB의 경우 사외이사가 CEO를 뽑는다. 이런 곳은 정말 드물다. 독립적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목소리가 큰 게 아니라 목소리를 어디에 내느냐다. 대부분의 의사결정은 CEO에게 위임하고, 사외이사는 경영감독에 집중하는 게 바람직하다.

사외이사는 일상업무는 CEO에게 맡기고, 연간 예산을 검토하거나 인수합병(M&A) 감독, 경영실적 평가, 후계자 승계 같은 큰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하는 것이 더 맞다. 그 외에 다른 이슈에 대해 관여하는 것은 좋아 보이지 않는다. 사외이사가 경영진에 대해 너무 세세한 이슈들에까지 관여하게 되면 ‘누가 경영진을 모니터하는 사외이사를 모니터할 것이냐’의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 그렇다면 사외이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무엇인가?
“좋은 CEO를 뽑는 것이다. 그리고 믿고 맡겨야 한다. CEO를 쥐고 흔들면 그 밑에 있는 사람들도 줄줄이 힘들 수밖에 없다. 부모가 아이 교육을 잘 시키려면 좋은 선생님을 구해 믿고 맡겨야 하는 것과 다름없는 이치다.”



>> 사외이사 제도를 어떻게 개선하면 좋겠는가?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사추위)에 사내이사를 포함시키는 방법이 있다. KB금융지주의 경우 2006년부터 사외이사만으로 사추위가 구성되기 시작했는데, 이전엔 그렇지 않았다.

또 사외이사 보수를 성과에 따라 스톡옵션 등을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사외이사는 리스크 관리에도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스톡옵션을 받은 사외이사는 성과지향적인 결정을 내리는 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있다.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사외이사의 보상은 실적과 연동돼서는 안 된다.”



>> 마지막으로 좋은 사외이사가 갖춰야 할 조건이 있다면?
“같은 말도 잘 돌려 말하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중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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