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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증세’ 앞서 ‘부자 감세’ 재검토를

‘서민 증세’ 앞서 ‘부자 감세’ 재검토를


생산원가보다 많은 담배·술 세금 - (단위: 원)

집을 여러 채 가진 사람이 전세를 놓을 경우 전세보증금에 임대소득세를 매기는 방안이 추진된다. 담배와 술에 대한 세금을 올리는 방안도 함께 검토된다.

정부는 국책 연구원인 조세연구원에 용역을 주고 잇따라 공청회를 여는 등 분위기를 띄우는 작업에 들어갔다.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우지 않는 정책은 없다. 더구나 근거를 법으로 정해야 하는 세금(조세법정주의)은 더욱 그렇다.

월세(현재 2주택 이상 소유자와 9억원 넘는 1주택자에 과세)와 상가 임대소득에는 세금을 매기면서 전세에 대한 비과세는 형평이 맞지 않는다고 한다. 담

배와 술의 경우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의 건강까지 해쳐 사회 전체의 의료비 부담을 키우기 때문에 세금을 높이는 게 세계적 추세이고 청소년의 흡연과 음주를 절제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강조한다.

문제는 이런 명분이 새삼스럽지 않을뿐더러 논란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는 점이다. 먼저 전세보증금이 과연 세금을 매길 만한 ‘소득’이냐 여부다. 전세금은 계약을 연장하지 않는 이상 2년 뒤 돌려줘야 하는 일종의 ‘빚’이다. 전세금을 은행 등 금융회사에 맡길 경우 이자소득세를 내기 때문에 이중과세가 된다.

전세금에 대한 임대소득세는 2001년 월세의 전세 전환을 유도하기 위해 없앴다. 당시 은행 금리가 낮아지면서 임대업자들이 전세를 월세로 무더기 전환하자 세입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이었다. 이런 전세금에 세금을 매기면 세금 부담을 세입자에게 떠넘겨 전셋값이 오르고 월세가 다시 늘어날 수 있다.

세금을 덜 내려고 전세금을 실제보다 낮춘 ‘다운 계약서’를 남발해 많은 국민을 탈세 혐의자로 만들 수도 있다. 양도소득세야 부동산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거둔 투기성 차익에 물리는 세금이지만, 전세금은 부동산을 매매하면서 생긴 불로소득이 아니다. 더구나 직전 노무현 정부가 시행했던 양도소득세 중과 제도를 없애고선 전세금에 세금을 매기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국민 건강을 생각해 담배와 술에 대한 세금을 높인다지만, 죄악세(罪惡稅) 운운하며 납세자를 죄인 취급하면 어느 누가 웃으며 세금을 낼까? 담배와 술에 붙는 세금은 이미 소비자가격의 절반을 넘는다. 더구나 담배세와 주세는 답답해서 한 대 피우거나 속상해서 한 잔 마시는 서민들이 느끼지도 못한 채 값에 얹어 내는 간접세다.

정부로선 조세정의와 형평성을 내세우지만 속셈은 뻔하다. 경기를 활성화한다며 법인세와 소득세, 상속세 세율을 낮추고 종합부동산세 요건을 완화하는 등 감세정책을 폈는데 경기침체에다 감세 때문에 세수에 차질을 빚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4대강 정비에 22조원을 쏟아 붓겠다는 정부가 다급한 나머지 그동안 들고 나왔던 증세 방안을 모두 꺼내든 격이다.

베르사유 궁전을 신축하고 전쟁을 하느라 세금을 많이 거둔 프랑스 루이 14세 시절 재상 콜베르는 세금 징수를 거위 털 뽑는 기술에 비유했다. 거위가 소리를 적게 지르도록 하면서 털을 뽑듯 조세 저항을 최소화하면서 세금을 거둬야 한다는 말이다. 부족한 세수를 메우려면 먼저 감세정책부터 재검토하는 게 순서다.

부자와 대기업에 더 큰 혜택이 돌아가는 기존 감세정책을 유보하거나 철회해 세수를 늘린 뒤, 그래도 부족하면 다른 증세 방안을 찾는 게 맞는 방법이다. 또 경기를 살리기 위해 투입하는 재정이 엉뚱한 데로 새지 않는지 재정집행에 대한 감시를 제대로 해야 한다. 그래야 증세의 정당성도 인정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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