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메디톡신으로 시장 석권 꿈
차세대 메디톡신으로 시장 석권 꿈
메디톡스 연구소에서 실험 중인 연구원들. |
고려 말인 1363년 사신으로 원나라에 간 문익점이 붓대 안에 목화씨를 감춰 오지 않았다면? 이 땅의 사람들이 면으로 만든 옷을 입기 시작한 때는 꽤 늦춰졌을 듯하다. 그렇다면 1969년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식품미생물학을 연구한 양규환 박사(3대 식약청장)가 식품연구소(FRI)에서 보툴리눔 균주를 카이스트로 반입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많은 한국인이 주름살을 펴거나 눈꺼풀 떨림 현상을 치료하느라 보톡스에 의존해야 했을지 모른다. “당시만 해도 균주의 외부 반출에 제약이 없었던 점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양 박사는 말했다. 몇 년 전 학계에서 은퇴한 양 박사가 다행이라고 말한 이유는 또 있다.
자신의 수제자 한 명이 9년 전 보툴리눔 독소를 상품화하겠다며 창업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바로 정현호(46) ㈜메디톡스 대표다. 독성물질 연구가 서구처럼 활발하지 않던 시절 양 박사는 카이스트 실험실에 보관 중이던 균주를 그에게 흔쾌히 건넸다.
정 대표를 비롯한 카이스트 출신 과학도들이 2000년 세운 메디톡스는 각고의 노력 끝에 설립 5년 만에 효능은 보톡스와 같으면서도 값은 70~80% 저렴한 ‘메디톡신’을 세계 네 번째로 독자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메디톡스가 그동안 보여준 성과는 놀랍다. 메디톡신 출시 첫 해인 2006년만 해도 8%에 불과하던 국내시장점유율이 2007년 18%, 2008년 26%, 올해 1분기엔 보톡스를 누르고 38%로 껑충 뛰었다(자체 조사 결과).
2위는 보톡스(26%), 3위 프랑스 디스포트(20%), 4위 중국 BTXA(16%) 순이다. 송영호 경영기획 담당 이사는 “올해 주름개선제 시장규모를 500억원 정도로 잡을 때(지난해 456억원) 시장점유율을 최대 45%까지 늘리겠다”고 말했다. 창동에서 오랫동안 피부과를 운영해 온 의사 박현철씨는 “중국 제품은 문제가 좀 있지만 메디톡신은 값은 보톡스보다 싸고 효능은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보툴리눔 제제는 ‘클로스트리디움 보툴리눔(Clostridium botulinum)’이란 맹독성 박테리아가 분비하는 신경마비 독소단백질이다. 1g만으로도 100만 명 살상이 가능하며 자연계에서 가장 강력한 독소다. 그처럼 독성이 강한 의약품이 사시와 주름살 개선에 놀라운 효과를 나타내는 원리가 뭘까?
흔히 사시 환자의 안구가 한쪽으로 돌아가는 이유는 안구에 연결된 눈 근육이 한쪽으로 과도하게 긴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도한 긴장을 일으키는 신경전달물질을 독소단백질로 마비시키면 사시가 완화된다. 주름개선제로 쓰일 때도 마찬가지다. 과도하게 긴장하는 근육의 신경전달물질을 차단하면 주름이 현저히 펴진다.
“효능은 4~6개월간 지속되며 분말 형태의 주사제로 만들려면 고도의 정제·희석 기술이 필요하다”고 정 대표는 말했다. 보툴리눔 제제 시장은 진입장벽이 매우 높다. 메디톡신 같은 ‘생물학적 의약품’의 경우 동일한 균주 확보가 쉽지 않은 데다 균을 배양하는 조건도 매우 까다롭기 때문이다.
게다가 “배양액에서 원하는 물질을 분리하는 기술도 최고의 전문가만이 가능하다”고 양기혁 상무(연구소장)는 말했다. 진입장벽이 높은 또 다른 이유는 만에 하나 생물학적 테러에 쓰일 위험성 때문이다. 특히 9·11 테러 이후엔 탄저균과 동급으로 관리되는 맹독성 물질로 분류된다(이달 초 기자가 충북 청원군 오창 바이오단지에 있는 메디톡스 본사의 생산라인을 보러 갔을 때도 방진복을 입고 손을 두 번씩이나 세척해야 했다).
메디톡스의 지난해 매출은 해외가 65%, 국내가 35%다. 올해는 해외 70%, 국내 30%로 해외매출 비중이 더 커진다. 그러나 세계시장 점유율은 아직 미미하다. 지난해 1위는 미국 엘러간(보톡스: 82.94%), 2위 프랑스 입센(디스포트: 12.50%), 3위 한국 메디톡스(메디톡신: 1.53%), 4위 미국 솔스티스 뉴로사이언스(마이오블록: 1.32%), 5위 중국 란저우생물제품연구소(BTXA: 1.07%), 6위: 독일 머츠(제오민: 0.65%) 순이다.
지금까지 메디톡신이 정식 판매허가를 받은 나라는 인도, 태국, 홍콩, 콜롬비아, 페루, 볼리비아, 우크라이나, 그루지야 등 11개국이다. 특히 의약품 인허가 과정이 까다로운 일본에선 아직 공식 판매허가가 나지 않았지만 많은 양이 수출된다.
“일본은 의사 개인의 권위를 존중해 후생성의 허가가 나지 않은 의약품도 의사가 환자 치료에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수입을 허가한다”고 정 대표는 말했다. 곧 2조원 규모로 성장이 예상되는 전 세계 보툴리눔 제제 시장은 70%가 미국·유럽시장이다. 그러나 선진시장은 진입 요건이 매우 까다롭다.
메디톡스가 이 거대 시장을 겨냥한 ‘차세대 메디톡신’ 개발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보톡스와의 차별화 전략은 이미 시동이 걸렸다. 정 대표는 “차세대 메디톡신은 이미 연구·개발이 완료돼 지금은 전 임상(Pre Clinic) 단계를 밟는다”고 밝혔다. 그 과정에서 기존 제품의 단점을 획기적으로 보완했다.
예컨대 동물성 원료 대신 비동물성(미생물) 원료로 균을 배양해 뜻밖의 위험을 미리 방지하고, 인간혈청 알부민이 배제된 안정화 제제(stabilizer)를 이용해 감염위험도 사전에 차단했다. 게다가 동결건조제 형태인 기존 제품을 편리한 용액(solution) 제제로 바꾸고, 인도처럼 냉장시설이 부족한 나라를 고려해 상온보관도 가능하게 했다.
메디톡스의 미래를 낙관하는 이유는 보툴리눔 제제가 원래 용도인 치료제로 쓰이는 경우가 갈수록 늘기 때문이다. 이젠 한국에서도 미용제 대 치료제 비율이 2005년 9 대 1에서 최근엔 7 대 3으로 치료제 시장이 계속 커진다(미국은 5 대 5 비율). 예컨대 전립선 비대증, 요실금, 다한증, 뇌졸중 등 신경계통과 관련된 질환이면 모두 적용 가능하다.
“8월께면 메디톡신이 뇌성마비 치료제용으로도 식약청 허가가 난다”고 정 대표는 말했다. 거대 시장을 향한 메디톡스의 여정은 이미 시작됐다. 현재 2011년 완공을 목표로 미국·유럽시장의 수출품질 기준에 맞는 공장건립을 추진 중이다. 부지는 이미 확보됐고 곧 공사에 착수한다.
선진시장 공략의 청신호는 또 있다. 메디톡신은 미국이나 유럽시장 못지않게 의약품 허가조건이 까다로운 일본이 전체 수출의 약 40%를 차지한다. 그만큼 미국·유럽시장이 활짝 열릴 날도 멀지 않았다는 얘기다.■
“2014년 세계시장 점유율 5% 목표” 정현호 대표 1990년대 초 미국 국립보건원에서 초빙연구원으로 일한 정현호 ㈜메디톡스 대표는 전 세계적으로 이름난 보툴리눔 독소제제 전문가다. 보툴리눔 독소단백질이 탄저균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사실이 뜻밖이다. 단위량을 기준으로 하면 탄저균보다 100배나 강하다. 그러나 탄저균은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공중살포나 우편물을 통한 흡입이 가능하지만 보툴리눔은 입을 통해 들어가야만 효과가 나타난다. 인명을 해칠 정도가 되려면 보툴리눔 주사를 200대는 맞아야 한다. 메디톡신이 올해 1분기 국내시장 점유율에서 미국 보톡스(26%)를 누르고 1위를 차지한 비결이 뭔가? 미국 엘러간사가 올해 들어 국내 판매 대행사와 결별하고 직판체제로 가면서 우리가 ‘반사이익’을 본 측면도 물론 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지난 3년간 우리가 착실히 시장의 신뢰를 쌓아온 덕분이다. 우리는 매년 총매출의 20% 이상을 연구개발(R&D)에 투자한다. 메디톡스의 현재 주가(지난주 2만5000원 선)에 만족하나? 주가는 시장이 스스로 알아서 반영하리라 본다. 대표로선 회사를 계획대로 끌고 가는 일이 더 중요하다. CEO가 주가 등락에 일희일비한다면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대우증권의 정근해 애널리스트는 “미국 엘러간사의 주가수익률(PER)이 17~18인 점을 고려하면 메디톡스의 현재 주가는 적정선”이라고 말했다. 메디톡스의 PER은 현재 15다). 올해 매출 목표액 170억원 중 영업이익 목표가 100억원이란 사실이 놀랍다. 그만큼 부가가치가 높다는 얘기다. 당기순이익 81억원 달성도 충분히 가능하다. 게다가 우리의 주력시장은 세계시장이다. 국내시장의 30배인 1조5000억원 규모다. 그중 70%가 미국·유럽시장이다. 그러나 현재로선 나머지 시장(4500억원 규모)을 공략하는 일도 우리에겐 매우 중요하다. 본격적인 세계시장 공략의 첫 단추는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 아닌가? FDA 승인은 2014년께 나리라 예상한다. 그러나 지금도 미국과 유럽을 제외한 모든 나라에서 판매가 가능하다. 세계시장의 70%를 차지하는 미국·유럽 진출이 어려운 이유가 뭔가? FDA는 전 세계적으로 최고 수준의 의약품 제조관리규정(GMP)을 두었으며 유럽도 마찬가지다. 2011년 새 공장이 완공되고 FDA 실사를 거치면 2014년부터 선진시장 진출이 본격화된다. 일본과 미국 중 어느 시장이 먼저 뚫릴까? 정식등록으로 치면 미국시장이 먼저 열릴 듯하다. 하지만 FDA의 승인이 나면 일본시장의 본격적인 공략도 한결 쉬워진다. 총매출 2000억원은 언제까지 달성 가능한 목표인가? 차세대 메디톡신이 2014년 양산체계에 돌입할 경우 세계시장 점유율 5%, 국내시장 점유율 50%를 전제로 한 수치다. 현재 계획대로 간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바이오산업이 발전하려면 정부나 업계가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나? 정부가 좀 인내력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바이오산업은 부가가치가 매우 높은 반면 일정 궤도에 진입하기까지는 오랜 시일이 걸린다. 바이오 벤처기업들도 지금까지 너무 꿈만 좇아온 측면이 있다. 그렇다면 바이오벤처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투자자나 대중에게 자신들의 플랜보다 더 큰 환상을 심어주기보다는 좀 더 현실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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