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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기세포 치료의 서막 열린다

줄기세포 치료의 서막 열린다

생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진다. 교통사고나 낙상으로 척수 손상을 당하는 사람이 내년엔 세계 전체에서 13만 명에 이른다는 전망이다. 그중 90% 이상이 적어도 부분적인 신체 마비로 고통을 받는다. 현재로서는 완전 회복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희망의 빛도 언뜻 비친다.

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둘러싸고 10년 이상 과장된 선전과 격정적인 논란이 반복됐지만 마침내 이제 배아 줄기세포를 이용한 척수 손상 치료의 첫 임상시험이 시작됐다(배아 줄기세포는 다른 용도도 많지만 척수 손상을 복구할 잠재력이 있다). 가장 최근 척수 손상을 당한 미국인 10명이 참여했다(물론 위험성을 감안해 저용량 치료의 안전성을 평가하는 데 목적이 있다).

순조롭게 진행되면 지금까지 기적으로 간주되던 ‘걷지 못하는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일이 현실화 단계로 성큼 다가서게 된다. 이번 임상시험은 줄기세포 연구 분야에 새로운 에너지가 충전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지난 7월 9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국제줄기세포학회 연차대회에는 과학자 3000명 이상이 참석했다.

5년 전만 해도 참석자는 600명에 불과했다. 주요 제약회사들도 투자에 적극적이다. 벤처투자사 클라이너 퍼킨스 코필드 앤 바이어스의 임원인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 적극 지지한다. 지난 4월 이 회사는 하일랜드 캐피털 파트너스와 손잡고 줄기세포 요법을 개발하는 신생업체 아이즈미 바이오(현재 이피어리언)에 2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지금까지 줄기세포를 둘러싼 과장 선전이 난무했지만 실제로 그 가능성이 대다수 사람의 생각보다 훨씬 클지 모른다. 줄기세포는 당뇨나 파킨슨병 같은 질환을 앓는 환자의 손상된 세포를 대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치료제를 개발하고 질병의 원리를 밝혀내는 방법을 바꿔놓을 만한 잠재력도 있다.

조만간 거기서 이식 가능한 대체 장기도 만들어질 전망이다. “최근 이 분야에 낙관론이 팽배하다”고 줄기세포 생물학자인 앨런 트룬슨 캘리포니아 재생의학연구소장이 말했다. “발전 속도가 놀랍다.” 새로운 희망은 주로 새로운 형태의 줄기세포에서 나온다. 유도만능 줄기세포(induced Pluripotent Stem Cell: iPS)를 말한다.

2007년 세계적인 권위자인 야마나카 신야(山中伸彌) 교토(京都)대 교수가 성체 피부세포에 유전자 네 개를 주입해 iPS를 처음 선보였다. 그 세포는 배아 줄기세포와 거의 똑같이 기능한다. 신체의 220가지 세포 형태 중 어느 형태라도 무제한적으로 만들어내는 잠재력을 지녔다.

iPS 세포는 환자의 성체 세포에서 추출되기 때문에 면역체계의 거부 반응이 나타날 위험이 없고 윤리·종교적 문제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iPS 세포는 처음부터 척수나 다른 신체기관의 대체 조직을 만드는 데 사용되지는 않을 계획이다. iPS 세포는 배아 줄기세포와 미묘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아직 위험성을 떨치기 어렵다.

대다수 의사는 더 많은 연구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환자에게 이를 직접 주입하기를 꺼린다. 그런데도 iPS 세포는 유전자와 관련된 질병을 이해하고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 기대된다. 질병은 완전히 진행된 상태가 되면 추락한 비행기와 같다고 하버드대의 줄기세포 생물학자 콘래드 호헤들린저가 말했다.

추락한 비행기의 잔해를 조사해서 단서를 찾는 일도 물론 가능하다. 그러나 비행 자료와 조종실 음성 기록이 담긴 블랙박스를 찾는 게 가장 좋다. 그 자료는 전기 시스템에 고장이 났는지, 하드웨어가 오작동했는지, 조종사가 결정적인 실수를 했는지를 정확히 알려준다.

의사들은 iPS 세포가 그런 정보를 제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iPS 세포를 헌팅턴병, 1형 당뇨, 루게릭병에 의해 영향을 받은 세포가 되도록 유도하면 과학자들은 실험실에서 그 병의 진행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또 특정 질병이 어떻게 유발되는지 알면 그 질병을 막을 새로운 방법을 개발할 가능성도 커진다.

그러나 iPS보다는 배아 줄기세포가 가장 이상적이다. 이번 척수 손상 치료의 임상시험에 비상한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캘리포니아 소재 제론사가 후원하는 이번 시험은 부상한 지 1~2주밖에 안 된 환자를 대상으로 한다. 일단 반흔 조직(상처 딱지)이 생기면 시험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환자의 척수 부위에 줄기세포 유도 물질인 ‘전구 세포(progenitor cell)’를 주입한다. 전구 세포는 신경세포의 가늘고 긴 돌출부위(축삭)를 감싸는 마이엘린이라는 물질을 만들어낸다. 전선에 입히는 절연 피복과 마찬가지다. 척수 손상의 경우처럼 마이엘린을 생성하는 세포가 손상되면 신경이 뇌의 신호를 전달하지 못해 하반신 마비가 생긴다.

이런 치료법이 효과적인지 또는 안전한지 여부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완치가 불가능한 현 상황을 감안하면 부분적으로나마 기능이 복구되더라고 성공으로 간주된다. 제론의 CEO 토머스 오카르마 박사는 척수 손상이 이번 임상시험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환자의 허리 아래가 완전 마비되기 때문에 기능이 조금만 회복돼도 실질적인 효과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아울러 척수는 ‘면역체계가 힘을 못 쓰는 특수 구역’이다. 면역체계의 공격 세포가 배아에서 발달한 세포를 파괴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이 치료법이 안전하고 유효하다고 판명되면 그 잠재 효과는 척수 손상을 훨씬 뛰어넘어 더 확대될 전망”이라고 오카르마가 말했다.

“그럴 경우 의학 치료에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 제론 외에 다른 회사들도 뒷짐을 지고 있진 않다. 미국의 대형 제약회사 화이자는 두 가지 다른 배아 줄기세포 기반의 치료법을 2011년께 임상시험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지난 4월 화이자는 유니버시티칼리지 런던(UCL)과 손잡고 고령자 실명의 주요 원인인 황반변성의 치료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망막의 예민한 중심 부분인 황반의 점진적인 파괴를 가져오는 증상이다. UCL의 피터 커피 교수는 배아 세포를 이용해 망막 바로 뒤에서 망막에 영양을 공급하는 지지 세포와 똑같은 세포를 만든다. 그 다음 이 디스크 형태의 세포층을 망막 뒤에 이식하고자 한다. 면역 체계의 거부 반응은 문제가 안 된다.

눈 역시 면역 체계가 힘을 쓰지 못하는 특수 구역이기 때문이다. 다른 질병에도 적용 가능하다. 현재 인슐린에 의존하는 당뇨 환자가 전 세계에 약 1억 명에 이른다. 그런 현황을 고려해 화이자는 캘리포니아주의 노보셀사와 제휴했다. 노보셀은 배아 줄기세포를 이용해 당뇨를 일으키는 췌장(이자)의 다섯 가지 세포를 모두 재생하려 한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눈이나 척수와 달리 췌장은 면역 반응으로부터 보호되지 않는다. 노보셀은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기발한 기법을 고안했다. 줄기세포에서 얻은 전구 세포를 캡슐에 넣어 이식하는 방법이다. 캡슐 조직의 미세한 구멍은 산소, 포도당, 인슐린은 통과시키지만 면역세포의 침투를 막을 만큼 작다.

“문제가 생기면 그 캡슐을 제거하면 된다”고 노보셀의 지적재산권 담당 이사 리즈 부이가 말했다. 단지 손상된 세포를 교체하는 데 만족하지 못하는 과학자들도 있다. 그들은 성체 줄기세포를 이용해 대체 기관이나 조직 전체를 만들려 한다. 노스캐롤라이나주 소재 웨이크 포레스트 대학의 재생의학연구소 소장인 앤서니 아탈라 박사는 이런 방법으로 인간의 방광을 만들었다.

그는 환자의 방광에서 작은 부분을 떼어내 거기서 줄기세포를 추출했다. 그 세포를 실험실에서 약 한 달간 증식시킨 뒤 방광의 형태로 만든 콜라겐 뼈대에 발랐다. 그런 다음 신체 내부와 똑같은 조건(온도, 산소, 성장인자, 영양소)을 제공하는 생물반응장치(bioreactor)에 넣어 배양했다.

2주가 지나자 크기는 작지만 환자에게 이식해도 무방할 정도로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방광이 만들어졌다. 아탈라는 2000년대 초 척추분리증을 앓는 어린이 7명에게 그 시술을 했다(척추분리증을 앓으면 방광의 발육이 제대로 안 된다). 그는 현재 자신이 시술한 환자들을 8년째 추적 조사하면서 기능 부전이나 부작용이 없도록 조치한다.

이제 아탈라는 인체에 이식 가능한 다른 조직이나 기관도 만들어낼 생각이다. “현재 신장, 심장 판막, 연골을 포함해 인체 조직과 기관 22개를 만드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이런 새로운 치료법은 내재적인 위험이 있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환자들에게 완치가 임박했다는 허황된 기대를 주지 않으려고 신중을 기한다.

실험실이라는 이상적으로 만들어진 세계에서 성공하는 치료법은 현실 세계에선 실패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고, 실제 활용되려면 수십 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의사들과 규제 당국이 줄기세포를 이용한 실제 환자 치료에 적극 나서긴 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기본적인 의문을 떨치지 못한다.

그 세포들이 몸 안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살아남을까? 제대로 기능하는 조직을 만들어낼까? 앞으로 수십 년 뒤에 생길지도 모를 부작용에 비해 환자에게 이점이 더 많을까? 그러나 과학자들은 지난 10년간의 과대선전과 치열한 논쟁 후 이젠 실질적인 진전이 눈앞에 닥쳤다고 큰 기대를 품는다. 세계의 수많은 환자가 언젠가 그 수혜자가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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